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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증오의 정치에 저항한 사람, 조 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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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렉시트 운동을 주도했던 영국 독립당의 나이젤 파라지는 수많은 거짓말을 했었다. 당장 저 포스터만 하더라도 EU는 난민을 받아들이면서 임계점에 도달했고, 우리도 같이 좆 될 것이라고 선전하고 있다. 증세 없이 한정된 자원으로 현재의 복지 수준을 유지하는 논리를 만들기 위해 복잡한 수식이 들어간 논문을 파는 것보다 “우리가 피땀 흘려 건설한 것을 난민들이 들어와서 거저먹고 있다.”는 선동 문구 만드는 것이 만 배는 쉽다.

 

무엇을 잘할 수 있다는 말은 귀에 잘 박히지 않지만, "저 색희들 나쁜 색희들, 그런데 걔네를 찍으실라구요?"라는 말은 머리에 빠르게 들어간다. 게다가 증오와 파괴의 이념이 어떤 집단 내에서 집단적인 기억으로 존재한다면, 이를 악용하긴 훨씬 쉽다.

 

그런 주장에 맞서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런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수십만 배의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위험하다.

 

EU 잔류를 주장하다가 살해당했던 조 콕스 의원은 영국의 작은 도시 바틀리(Batley)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치약과 헤어스프레이를 만드는 공장의 노동자, 어머니는 학교의 보조원이었다. 공부를 너무 잘하는 바람에 가족 중에서 유일하게 대학을, 그것도 케임브리지로 갔던 그녀는 너무도 다른 세상에 적응하는데 5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했다고 한다. 졸업 후 옥스팜(영국에서 출발한 국제 NGO, 지난 네팔 지진 당시 이들은 우기 전까지 40만 명에게 긴급구호품을 배포한다는 계획을 실행했던 곳이다)에서 일했으며 난민 문제에 대해 그때부터 관여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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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디언은 조 콕스 의원의 죽음을 애도하는 사설 ‘The Guardian view on Jo Cox: an attack on humanity, idealism and democracy’의 끝을 이렇게 맺는다.

 


"The idealism of Ms Cox was the very antithesis of such brutal cynicism. Honour her memory. Because the values and the commitment that she embodied are all that we have to keep barbarism at bay."

 

콕스 의원의 이상은 그토록 잔혹한 냉소주의에 대한 정면 거부였습니다. 그녀의 삶과 정치, 꿈을 오래도록 기려야 합니다. 그녀가 헌신적으로 구현해 온 가치는 결국 야만이 우리 사회에 발을 들이지 못하도록 경계하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녀의 피살 이후 쏟아져 나온 외신들 중에서 가장 눈에 띄던 것은 영국 하원에서 그녀가 했던 첫 번째 연설이었다.

 


“의장님 감사합니다. 이렇게 중요한 토론에서 제가 국회의원으로서의 첫 번째 발언을 할 수 있게 된 것은 저에게 크나큰 영광입니다. 오늘 걸출한 첫 발언을 한 동료 의원들께도 축하드립니다.

 

저는 많은 내각 각료 의원님들과 의원님들의 선거구가 서로 상충되는 둘 혹은 다수의 그룹들로 구성되어 있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저의 지역구인 바틀리와 스펜 역시 그런 많은 선거구들 중에 하나입니다. 사실 그런 다양한 커뮤니티들을 대표할 수 있다는 것은 즐거운 일입니다.

 

바틀리와 스펜은 전형적인 독립적이고 간단명료하고 자부심으로 가득 찬 요크셔의 작은 도시들과 마을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우리 커뮤니티들은 이민자들로 공동체의 가치가 높아졌습니다. 아일랜드 기독교도, 인도 구자라트주의 무슬림들, 카슈미르 지방의 파키스탄 출신 이민자들로 인해서 말입니다. 제가 지역구를 돌아다닐 때마다 매번 놀라게 되는 것은 우리가 훨씬 더 단합되어 있고 우리를 나누는 요소들보다 서로의 공통점들이 훨씬 더 많다는 것이었습니다."



아일랜드인의 88% 가량은 로마 카톨릭(구교) 신자들이다. 구교 신자들이 압도적으로 많은 곳에서의 신교 신자는 소수다.

 

인도의 아요디야는 힌두교의 성지다. 그런데 무굴제국 시절에 힌두교 사원을 파괴하고 그 자리에 세워졌던 바브리 마스짓은 1992년 약 15만 명의 힌두교도들이 폭동을 일으켜서 파괴했다. 그 이후 인도에서의 종교 갈등은 심심하면 터지는 폭탄이 된다. 2003년 2월 27일 구자라트 주의 구드라 역 근처에서 무슬림들이 힌두교도를 습격해 어린아이 15명을 포함한 57명이 죽였다. 바로 이어진 힌두교도들의 보복으로 대략 1500~3000명의 무슬림들이 죽고 최대 50만 명의 무슬림이 고향을 떠나야 했다. (자세한 내용은 이 기사 참조-링크) 즉, 구자라트의 무슬림은 말 그대로 박해받는 소수다.

 

소수가 모여서 하나의 나라가 되었음을, 그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이렇게 기품 있는 문장으로 말할 수 있었던 사람의 죽음은, 그래서 참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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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이자스민, 그리고 박용진

 

아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본 기자의 처는 네팔 사람이다. 네팔에서 나름 버라이어티하게 일하다가 지진으로 쫄딱 망해서 한국으로 같이 돌아왔다. 아내가 이 나라에서 정착하기 위해 애쓰며 가장 스트레스를 받은 것은 결혼이주여성에 대한 정형화된 시각이었다. 다문화가족 지원센터에서 같은 반에서 한국어를 배우는 결혼이주여성들의 30%는 그 나라에서 이주노동자로 일하던 한국 남자가 현지 여성과 눈이 맞은, 나와 같은 경우들임에도... 결혼중계회사를 통해 수입되는 제품 정도로 취급하는 사람들이 꽤 많더라는 것.

 

지난 19대 국회에서 다문화 가정의 형태는 이제 아주 다양해지고 있기 때문에 지금과 같은 형태의 다문화 가정 지원 정책은 문제가 있다고, 이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한다고 이야기하던 국회의원은 이자스민 의원이었다.

 

그녀에게 비례대표 자리를 준 것은 새누리당이었다. 전체 결혼의 10%가 다른 나라 사람과의 결혼이라는 현실에 대응한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소속당이 마음에 안 든다는 이유로 국회의원 임기 내내 공격에 고스란히 노출되었다. 대한민국 국적을 가져서 선거권과 피선거권이 있는 사람더러 “필리핀으로 돌아가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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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공감신문>


정치는 이질적인 집단들이 같은 하늘 아래서 같이 살기 위해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그런 일을 해야 하는 사람이 인종주의적 공격에 상시 노출되어 있다고 한다면? 그 사회는 하나의 통합된 사회로 나갈 생각이 없다는 이야기다.

 

며칠 전, 더민주의 박용진 의원이 보훈처장을 까겠다고 김일성의 외삼촌인 강진석을 서훈한 사실을 들었다. 해방 전에 죽은 사람이 해방 후 5년 뒤에 전쟁을 일으킨 주범과 친인척 관계니까 그 공헌은 유보되어야 한다는 논리는 아무리 봐도 연좌제다.

 

역사교과서 다시 쓰겠다고 발버둥 치고 계시는 여왕 전하와 그 신하들이 그토록 삭제하고 싶어 하는 것이 사회주의 계열의 독립 운동가들인데, 제대로 어시스트를 해준 것. 보훈처가 강진석에 대한 서훈 취소를 하면서 서훈수여 원칙도 재논의하겠다고 제시한 명단이 이렇다.

 

- 주세죽 (박헌영 남로당 책임비서의 부인): ‘07년 건국훈장 애족장

- 김철수 (조선공산당 중앙집행위원): ‘05년 건국훈장 독립장

- 이동휘 (최초의 사회주의 정당, 한인사회당 창당): ‘95년 건국훈장 대통령장

- 권오설 (고려공산청년회 책임비서): ‘05년 건국훈장 독립장

- 장지락 (조선민족해방동맹 결성) : ‘05년 건국훈장 애국장

 

장지락은 님 웨일즈가 쓴 "아리랑"의 주인공 김산이다.

 


3. 당신은 누구편이냐는 질문은 야만이다

 

1999년, 7년 뒤에 나를 인도 대륙에 던져 넣었던 다큐 찍는 선배가 인도에서 가장 못사는 지역들에서 무장 항쟁을 이끌고 있는 이들을 장장 1년에 걸쳐 취재한 적이 있었다. 그들은 지주에게 80~90% 뜯기는 소작농의 권리를 위해 무장봉기를 일으킨 낙샬라이트였다.

 

그러나 정작 선배는 인도 정부의 교묘한 훼방으로 낙샬을 인터뷰하지 못했다. 그때, 그들의 눈에 또다른 모습이 들어왔다. 낙샬라이트와 지주들의 민병대 사이에 끼어 학살당하고 있는 이들을 본 것이다. 그들은 사회적으로 가장 취약한 불가촉천민이었기에 누구의 편이 되길 강요받고 있었다.

 

구토를 참아가면서 이 현실을 찍어와 그다음 해 인권영화제에서 다큐를 틀었을 때, 선배를 당황하게 만들었던 것은 "당신은 누구 편입니까?"라고 다그치던 운동권이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189만 명이 죽은 전쟁을 일으켰던 나라에서 나라를 좀 더 낫게 만들어보겠다고 했던 인간의 뇌에 "내 편은 해방자, 상대방은 억압자. 그러니 억압자만 치우면 게임 셋"이라는 여왕 전하에 버금가는 단순한 기준 하나만 있었던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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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춘 보훈처장, 군사 독재 정권의 유물과 같은 인물이다. 하지만 그 유물을 치우겠다고 사회의 통합을 위해 애써야 할 정치인이 색깔론과 연좌제를 이용하겠다고 한다면, 그건 기본적으로 품위를 내던져버린 행위다.

 

난 야당을 지지하는 경상도 넘이다. 동시에 다문화 가구 중 하나로 별 개꼬라지를 다 보고 있다. 분열과 갈등을 해소하는 방안을 찾지 않고 그 분열과 갈등을 이용하려고만 하던 이들 덕택에 사회적 갈등만 증폭되어 온 세월이 꽤 된다.

 

그런 상황에서 대한민국의 정치인이 조 콕스처럼 다양성이 우리를 풍부하게 만든다고 설득하려고 하지 않고 제거되어야 할 적으로만 생각하고 있다면, 사회는 더 나빠지기만 할 것이라고, 더 야만적인 상태가 될 것이라고 예상해야 하지 않겠나? 적어도 그런 사람을 뽑아준 사람이 그 지역구에서 과반이라는 뜻이니까.






SamuelSe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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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딴지일보 coco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