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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연재할 이야기는 제가 미국에서 겪었던 일입니다. 사람의 기억이란 늘 그렇듯 재구성 상에 약간의 과장이 있을 수 있으니 그 점은 양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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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가락이 튀어나온 샌들, 제 몸보다 훨씬 큰 회색 트레이닝복 바지, 민무늬 검은 티셔츠, 검은 안경, 검은 머리가 삐죽삐죽 삐져나와 있고 반 밖에 가리지 못하는 작은 모자. 캐나다와 국경 사이 도랑을 하나 두고, 긴 금발 머리의 여자와 고개를 숙인 채 걷고 있던 난.


"Just run."


소리와 함께 정신없이 아파트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아파트에 다다르자, 아파트와 나무 수풀 사이를 헤집어 걸어갔다. 재빨리 회색 호랑이 무늬가 있는 티를 검은 티 위에 덮어 입고, 아파트를 빠져나가려 하자 일층 부엌 창문으로 외국인과 눈이 마주쳤다. 난 순간 멈칫했지만 신경 쓰지 않고 다시 뛰었다. 아파트 골목을 빠져나가니 회색 차가 저 멀리에서 날 기다리고 있는 듯 했다.

'아 씨, 다시 돌아가? 어쩌지?'

하는 순간, 차가 나를 향해 왔다. 밀입국 시도하기 전 주유소에서 잠시 본 차량이었다.

"Hey. Come over here."

운전자는 여성이였고, 날 손짓하며 불렀다.

난 차에 올라타자마자,

"빨리 가줘, Let's go"

"400불 줘, 안 그럼 안 갈거야. 현금으로"

미칠 노릇이다. 1초라도 빨리 출발해야 하는데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아...

"아니 아저씨(블록)한테 돈 다 줬는데 무슨 소리야? 미쳤어? 일단 가자고…."

"안 주면 안 가. 내려"

"아 미치겠네... 나 캐나다 달러 200불 있어 가서 찾아줄 테니까 가자."

여잔 끄덕이며 차를 출발 시켰다. 그와 동시에 여러대의 차량이 한 번에 동시에 울리는 듯한 사이렌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가뜩이나 빨리 뛰고 있던 가슴이 사정없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너무 긴장했던가, 호흡곤란까지 살짝 올 정도였다.

여자는 나에게

"어디로 가? 왼쪽? 나 길 몰라."

에씨~ 나도 모르게 욕이 튀어나왔다.

"아 미친것아. 아. 나도 몰라... 일단 왼쪽"

차 머리가 왼쪽으로 틀어지기도 전에 저 멀리서 세 대의 차량이 내 맞은편에서 오는 게 보였다. 난 재빨리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고개를 숙이고 화면만 쳐다보았다.

세 대의 차량이 무사히 지나가고... 난 깊은 한숨과 빠른 숨을 동시에 내쉬며,

"후... 지나간 거야? 빨리 가자, 도착하면 500불 줄게"

"저기 표지판 시애틀 보인다. 오른쪽"

여자가 소리를 지르며 말했다.

표지판을 보니 왼쪽 캐나다 이민국, 직진은 아파트, 오른쪽은 시애틀 I-5 라고 쓰여 있었다. 순조로웠다. 드디어 미국이다. 아즈씨에게 잘 넘어간다. 전화를 하려는 순간 신호는 노란빛으로 바뀌었다. 난 소리쳤다.

"그냥 달려"

끼익-. 운전자는 이미 서 버렸다. 잠시나마 평정심을 가졌던 심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제발 제발..."

난 사이드 미러로 내가 지나온 길을 쳐다보고 있었다. 여자도 초조한지 신호가 바뀌기만을 기다렸다.

발을 동동거리는 횟수가 늘어날 때쯤. 내 시야에 국경수비대 차량이 보였다.

'제발 이쪽으로 오지 마라...'

다행히 직진한다. 가슴은 안마기 의자 진동보다 더 커지고 거세지고...

아... 이게 웬일인가, 차량이 후진해서 우리 쪽으로 사이렌도 켜지 않고 전속력 돌진을 하고 있었다.

'제발 지나가세요.'

난 모자를 푹 눌러쓰고 발가락에 모든 힘을 집중시켰다. 여잔 갑자기 울기 시작했다. 모자를 살짝 올리고 눈을 드는 순간, 두 손으로 앞유리를 내리치며 녹색 옷의 국경수비대 백인이,

"I got you."

가슴에 ICE란 노란 배지가 눈에 들어왔다 난 깊은 한숨을 내쉬며 차에서 내렸다. 여잔 꺼억 꺼억 거리며 숨을 쉬지 못하는 척을 하고 있었다.

오 년 만에 밟은 미국땅.

그렇게 미국생활이 시작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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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문을 부수듯이 발로 차고, 백인 수비대가 밖에서 소리를 질러댔다.

"내가 잡았어. 내가 잡았어 테러리스트. 내가 잡았어. 차에서 내려 테러리스트."

난 내 옆에 경찰이 서있는 걸 모자사이로 본 후 이미 저항할 힘도 없었고, 무섭게 소리 지르는 수비대에게 고분고분 할 수 밖에 없었다. 난 연신 OK, OK, OK를 중얼거렸으며, 날 차에 밀치고 수갑을 채운 뒤.

“헤이, 차량 수색 좀 부탁할게.”

내가 차에서 내리기도 전에 근처에 있던 수비대들은 빠른 속도로 내가 있는 곳으로 몰려들었고, 이미 날 에워싸고 있었으며, 도착하자마자 차량을 수색하기 시작했다. 날 잡고 있던 수비대는 내 주머니에서 제일 먼저 휴대폰을 꺼내들고 자기 주머니에 넣고. 저 쪽에서 차를 수색하던 수비대가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오 마이 갓, 오 마이 갓, 왓더뻑!!!  너네 머하는 새끼들이야???!!!"

나를 향해 달려오면서 내 어깨에 걸려있던 가방을 낚아채며 말했다. 난 너무 놀라서 그 자리에 주저 앉아버렸고, 수비대는 나에게 속옷을 제외하고 옷을 벗으라고 말했다. 차량에서 소량의 코카인이 발견 되었고, 트렁크 뒤에서는 빈 맥주캔, 반 깨진 와인병, 남자속옷, 여자속옷, 대마초 파이프, 다량의 대마초가 발견된 거였다.

‘하... 이년이 그래서 지가 먼저 울어버렸구나...’

난 그대로 속옷을 제외하고, 모든 옷을 벗을 수 밖에 없었고, 뭐 나오는 건 없겠지만...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아있던 난 바지를 벗으며 펑펑 울기 시작했다. 무서운 것보다 억울함에 눈물이 흘렀고, 내가 무사히 넘어가길 바랬던 사람들에게 미안했으며, 가족들에게 미안했고... 

옷을 다 벗으니,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리라고 했다. 난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땅에 엎드렸다.

다행히 내  옷에선 아무 것도 나오지 않았지만, 땅에 엎드려 있을 때, 지나가는 차량의 사람들은 천천히 나를 쳐다보며 비웃기 시작했다. 민망함을 더한 눈물을 쏟기 시작했다. 안경은 찌그러졌는지 반은 보이고 반은 안 보이고.

“옷 입어. 일단 서로 가야겠다. 차에 타”

라며 날 차로 밀어넣었다. 운전자 또한 다른 차량에 타고 뒤따라 왔다. 차량에 앉아서 난 힘없이 바닥을 보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무심코 바라본 창문에는 미국 국기가 펄럭이고 있었다. 아주 큰 미국 국기가.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복잡하고 힘들었던 한국을 뒤로하고, 도착한 미국 땅. 미국은 미국이니...

난 더 이상 내이름으로 불리지 않았다. 테러리스트 마약사범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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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입국시도 전 한국.  캐나다에서 문자가 온다.

“준비는 다 했어요? 비행기표는 끊었나요? 제가 앤디 씨 잘 아니까 최대한 싸게 해주는 거야~ 이 가격에 했다고 말하지 마요”

난 이미 비행기표를 끊은 상태였고.

"네. 문자로 비행기표 보내드릴께요. 근데요 아저씨... 혹시 잡힐 확률 있나요? 거의 다 넘어가죠? 제가 괜한 걱정 하는거죠?"

“그럼, 그럼~ 나만 믿고 따라오기만 하면 돼. 멕시코처럼 몇시간 걷고 강 건너고 그런 거 없으니까 걱정하지 마요~”

“네에” 라는 문자를 마지막으로 작은 방구석에 있는 컴퓨터 전원을 끄고, 침대에 누웠다.

반지하 방바닥에 반쪽 창문에서 한무더기 달빛이 들어왔다. ‘가긴 가나? 내가 가는 게 잘 하는 건가? 아 돈도 조금 있는데 외국 느낌나는 제주? 부산? 가서 쥐 죽은 듯 몇년 지내다가 나올까?’ 몇 번을 다시 생각하고, 또 생각했지만, 어차피 그 전부터 가고 싶은 미국이었기 때문에 내 결정은 쉽게 바뀌지 않았다.

어차피 비행기표도 끊었고, 사표도 쓰고, 가서 방이라도 구할 돈도 있고... 에씨~ 그냥 가자.

며칠 뒤, 난 국제운전면허증이라도 발급 받기 위해 잠실 운전면허 학원을 찾았다.

“오빠아~ 미국 가니까 좋냐? 어? 헬로우 맨날 연습하냐?  커커커커 좋냐? 좋냐?”

헤어진 여자친구다. 그렇게 내가 싫다더니 회사 그만두고, 미국에 간다니까 아쉽기는 한가보다. 오늘은 유난히 시끄럽다. 아침부터 어디가냐고 나 오늘 쉬니까 서울에서 보자고 조르길래, 면허학원에서 만난 거다.

“아 내가 너처럼 자유로우면 내가 간다 미국. 근데 오빠 쩜프 뛰면 잡히는거 아냐? 혹시 잡히면 전도현 나오는 영화처럼 그런데 잡히는 건가? 느히~ 호호호. 그런 일은 없겠다 끄치?”

"야 너 그냥 집에 가라. 짜장면 값도 내가 냈으니까."

“오빠아~ 우리 오랜만에 영화보러갈까??? 오빠….. 근데 어차피 가는 거고 꼭 일찍 안 가도 되는 거면 며칠 더 놀다가 갈래??? 나도 연차도 조금 남았는데~ 에이 아니다…. 그냥 빨리가라…”

사실 면허학원을 찾기 전, 아침에 캐나다에서 연락이 왔다.

“앤디 씨~ 인천공항에서 태풍때문에 비행기가 취소되는 게 많다고 하는데, 취소됐어요 혹시?”

"아뇨. 전 취소 아닌데요. 제 날짜에 가는데요"

"아니 딴 게 아니고, 넘어 가려면 여러 명이 한 번에 가야 하는데... 다른 분들이 비행기가 취소가 됐다고 하네요. 뭐 앤디 씨랑 하루 이틀 차이나게 오는 사람들인데, 앤디 씨 것만 취소가 아니네..."

"그럼 취소 가능한지 전화해 보고 말씀드릴게요."

난 전 여자친구의 조금만 더 있다 가라는 그 말 때문에 더 빨리 가고 싶어졌다. 못된 짓을 한 게 많았기 때문이고. 나 또한 어차피 지워야 할 기억을 굳이 소 되새김질 하듯 머리에서 되새김질 해서 뭐하나, 억지로 기억을 새길 필요까진 없잖아, 라고 생각을 하며, 바로 문자를 보냈다.

"전 정해진 날짜에 가야할 것 같습니다. 그냥 쉬더라도 그쪽에서 쉴게요. 구경이나 하고 그렇게 있지요 뭐."

"아 그럴래요? 그럼 캐나다서 봅시다~"

문자가 온다.

"오빠~ 내일 오빠 가는데. 내가 배웅해주면 안될까? 나 인천공항패션 모자 샀거덩. 반차 냈으니까 내일 리무진정류장에서 봐."

"마음대로 해."

다음날, 이른 아침, 난 캐나다로 출발하기 위해서 엄청 바빴다. 아빠는 내가 미국에 다시 간다는데 이번에 가면 언제 다시 올지도 모르는데, 골프채널만 보면서 날 보지도 않으셨다. 회사 잘 다니고, 일하는 걸 좋아해 칭찬 받았다고 곧잘 자랑하던 큰아들이, 여자문제 때문에 힘들다고 떠나보내는 맘이 얼마나 힘드셨을까. 게다가 밀입국으로 들어간다는데...

아빠의 얼굴을 훔쳐보았다. 가방을 들고 오니 그제서야 자리에서 일어나셨다.

"잘 가고. 넌 사교성도 좋고, 세일즈 잘 하니까. 가서 그쪽으로 일해. 휴대폰 쪽으로. 몸 건강하고."

"아빵~ 키 여기 있어~ 주차장에 놨으니까~ 아빠 좀 타다가 버리세요. 알잖아요.  나~ 기가 맥히게 일하잖아요~"

마지막 애교를 부려주고 뒤로 돌아서기도 전에 입술이 좀 떨렸다. 엄마도 날 따라 나와서 엘레베이터를 타고, 어깨를 떠시며 우셨다. 

"흑흑... 우리 큰아들 뭐든지 잘 할 수 있지? 엄마는 큰아들 보러 꼭~ 갈거야. 아빠 밥차려 주고 아빠는 당장은 못 가시니까. 엄마 꼭 갈테니까, 잘있어~"

"어, 엄마... 나 알지?"

난 엄마를 끌어 안아주고, 엘레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빠른걸음으로 빠져나갔다. 뒤돌아 보지 않았다. 돈 많이 벌어서 꼭 비행기표 보내드려야지, 꼭 오시게 해야지.

문자가 왔다. 아빠다.

‘아들, 언제 볼 지 모르지만, 아빠는 아들을 사랑한다. 표현 못해서 미안하고 건강하길 바란다.'

택시를 타고선 목적지를 말하지 못한 채 한참 울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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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미국에서 이미 불체를 했던 기록이 있다. 아버지의 건강이 좋지 않아 한국으로 돌아온 적이 있다. 하지만, 언제든지 미국은 한번 놀러라도 꼭 갔다와야지 하는 생각이 있었다. 휴대폰 매장을 했을 때즈음, 사업자도 있고, 회사 다니는 기록도 있고, 한국에 온 지 삼 년 반정도? 지났으니... 비자 신청을 해볼까? 하는 생각에 어학원을 통해서 미국 대사관을 방문했다가 5년 입국 금지를 받은 적이 있다. 싼 게 그렇지 뭐.

어쨌든 난 밀입국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편집부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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