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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글에서는, 사회의 비민주성과 직장이란 조직 내에서의 비민주적인 구조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이러한 비민주적인 의사결정방식이 고착화 된 데에는 두 가지 원인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카리스마적인 리더에 대한 갈망.

다른 하나는, 민주주의가 비효율적이라는 생각.

 

먼저 첫번째. 인류의 역사를 살펴 보았을 때, 민주주의가 어떤 국가나 조직의 운영원칙이 된 시간은 매우 짧다. 인류사에서는 끊임없이 위에서 군림하는 제왕들이 있어왔다. 불과 반 세기전 독일과 이탈리아에서는 히틀러와 무솔리니의 전체주의가 팽배했고, 그이후에도 북한 등, 여러나라에서 독재체제는 끊임없이 생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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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에서도 이는 예외가 아니라서,특히 미국등지에서는 막강한 권한을 갖춘 제왕적 CEO들이 나타났다. GE의 전 경영자 잭월치는 수많은 경영서적을 발간하며, 그가 정리해버린 사업부들을 가지고 자랑을 했고, 거대은행 JP 모건의 현 경영자 제이미 다이몬은 월가의 왕이라는 칭호를 얻으며 그와 대립했던 수많은 임원들을 해고시켰다. 오늘날 거대 IT기업 애플을 일군 스티브잡스 역시, 혁신적인 제품과 대비되는 독단적인 경영을 해왔다. 항상 잡스는 본인만이 혁신적이었고, 그 기준에 못 미치며 안정을 추구했던 직원들과 늘 대립해 왔다.


이들의 업적을 폄훼할 생각은 없다. 이들은 뛰어난 실적을 냄으로써 주주들의 기대에 부응한 기록이 있다. 다만, 내가 지적하고 싶은 것은 이들에게 주어진 권한이 지나치게 막강했다 라는 점이다. 그리고, 이렇게 강력한 권력이 잘못된 경영자의 손에 들어갔다간 끔찍한 결과를 낼 수도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 잘못된 사례 또한 찾아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1990년대 말, 가장 혁신적인 에너지기업은 엔론이었다. 1980년대만 해도 지역단위의 에너지생산 기업이었던 엔론은, 세계 최초로 전력, 가스 등을 거래하는 온라인 플랫폼을 만들었고, 이 플랫폼을 장악함으로써 에너지 투자기업으로 거듭났다. 이 사업부를 총괄하던 스킬링은 공로를 인정받아, 막강한 권한을 지닌 최고경영자가 되었다. 엔론의 주주들은 2001년 한 해 동안만 무려 1300억의 보수를 스킬링에게 지불했고, 그이상의 절대적인 지지를 보냈다. 하지만 스킬링은 자신에게 주어진 권한으로 자신의 실패를 감추기 위해 장부를 조작했고, 역사상 최악의 회계스캔들인 엔론사태를 발생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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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론사태가 보여주는 것은 어제의 실적을 냈던 경영자라도 오늘은 실패할 수도 있다는 단순한 사실과, 그렇기 때문에 막강한 권한이 개인에게 집중될 경우 위험할 수 있다라는 점이다.


그럼에도 실적에 목마른 주주들은, 약간이라도 실적을 낸 최고경영자들에게 높은 급여와 그이상의 권한을 부여하며 베팅한다. 언론역시, 제2의 스티브잡스와 같은 수식어를 붙이며, 스타 CEO 탄생에 목말라 있다.


왜 그럴까? 나는 여기서, 심리적인 요소가 일정부분 작용한다고 본다. 기업의 주식을 사는 외부 투자자는 뉴스에 나오지 않는 비공개 정보를 입수하기 힘들다. 가령, 애플의 다음 폰이 잘 나올지 어떨지, 중국에서 얼마가 팔릴지, 또 그 회사가 가진 특허나 기술력의 잠재적 가치가 얼만지 판단하기는 대단히 어렵다. 그러나, 매체에 드러난 모습만 가지고 최고경영자 한 명이 똑똑한 사람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건 꽤 쉬운 일이다. 그래서, 과거의 성과만을 가지고 그 사람을 믿어버리고, 나보다 똑똑해 보이는 경영자에게 믿고 맡기고 싶은 욕구가 우리 안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히틀러의 전제정치에서 도망쳐 미국으로 망명한 심리학자 에리히 프롬의 저서 중에 'Escape from Freedom'이라는 책이 있다. 이 책에서 프롬은, 전체주의가 탄생하는 이유를, 인간의 불안감 때문이라고 서술했다. 프롬에 따르면, 창조성이 결여된 자유는 파괴적이다. 내가 지금 뭘 해야될지 모를 때, 특히 심리적으로 압박을 받을 때, 선택의 자유가 주어지면 인간은 행복감보다는 불안감에 빠지게 된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보다 좀 더 우월하고 강하다고 생각하는 존재에게 선택을 위임하고, 스스로를 위탁하고자 하는 심리가 발생한다고 보았다. 전체주의에서 독재자는 하나같이 스스로를 위대한 존재로 묘사하고, 약한 군중들의 심리를 파고들어 사디스트적으로 이들에게 복종을 강요한다. 이들에게 지배당하는 신민들은 마조키스트적 성향을 띄게되며, 철저히 복종함으로써 스스로가 강력한 제국의 시민이라고 위안을 얻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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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메커니즘이 어느정도는 기업에서 통용된다고 생각한다. 거대한 불확실성이 앞에 놓여지면, 주주와 직원들은 자기대신 중요한 결단을 내려줄 카리스마적인 경영자를 갈망하게 된다. 그가 인간적으로 어떤 결함이있든, 실제로 자기가 한 말을 지킬 능력이 있든 없든, 우리는 자기보다 많이 알고 똑똑해 보이는 선지자가 나타나길 원하고, 그에게 힘을 실어주고 싶은 욕구가 존재한다. 게다가 기존에 약간의 성과까지 있다면, 더욱 더 그사람의 말이 신빙성 있게 들리게 된다.


이러한 심리적인 이유 말고도, 보다 근본적인 두 번째 이유가 있다. 우리는 민주주의적인 의사결정 방식 자체를 효율적이다 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성과가 전부라고 할 수 있는 기업에서 민주주의는 뒷전으로 밀리게 된다.


회사에서 모두가 둘러앉아 직급과 상관없이 자유롭게 토론을 하고, 좀 더 나은 안건을 선택하는 방식은 시간도 오래 걸리고, 그 누구도 또 좋은 결론을 낼지 확신하지 못한다. 상사는 부하직원이 미덥지 못하기도 하고, 부하직원은 어차피 상사가 마음대로 결정할 건데 책잡힐 말은 하지 않으려고 몸을 사리게 된다. 이렇다 보니, 회의를 통한 의사결정은 형식적이 돼 버리기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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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정신에 입각해 토론과 투표를 통해 의사를 결정하는 것이 효율적인가, 아니면 소수의 엘리트가 중대결정을 내리는 방식이 더욱 효과적인가?


내가 대학생 때 가장 많이 고민했던 주제였다. 정확히 말하면, 나의 고민은 박정희정권을 어떻게 이해할지였다. 박정희는 독재시절 정치적으로 유신과 고문같은 온갖 악행을 자행했으나, 강력한 추진력으로 사회간접자본을 발달시키고, 국가보호적으로 지금의 대기업들을 키워냈다. 비록, 오늘날 우리가 그로인해 많은 비용을 지불하고 있으나, 절대적인 빈곤에서 벗어나는데 그는 기여한 게 아닐까. 추후, 이러한 나의 박정희에 대한 인식은 사관에 의해 일부 극복되었지만, 지금도 그가 '충분히 더 나쁜 선택을 할 수 있었다'라고 생각한다.


이 주제를 가지고, 당시 대학교에서 대안 경제학을 가르치던 교수님에게 찾아갔다. 그 교수님은 평생을 민주화운동을 하는 데 바치셨던 분이고, 참고로 지금은 에티오피아 반군을 이끌고 계신 분이다(내 논문의 부지도교수님이기도 하셨다). 평생을 민주화 항쟁에 바쳐오신분한테, 박정희를 운운했으니, 곧 말싸움이 났고, 나는 당연히 일방적으로 탈탈 털렸다.


나는 나름대로 이론이랍시고, 자칭 X자 이론을 만들어서 들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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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로, 독재주의, 민주주의 두 가지 체제는 산업구조의 단계 (농업, 공업, 서비스, IT)에 따라 각자 다른 스피드로  성장을 한다.


이 그래프에서 산업초반에 독재체제가 효율적인 국가주의적 계획경제로 앞서나가지만, 후기 공업화단계로 가면 경제의 민간부분이 부족해서 성장률이 더뎌진다. 반대로, 산업초반 민주주의는 투자부족 등으로 인해 공업화가 느리게 진행되지만, 서비스산업으로 옮겨가면, 더욱 가파르게 경제성장이 일어나게 된다.


두 그래프가 X자로 교차하는 지점이 바로 정치체제의 전환이 이뤄져야 하는 시기이고, 이 시기에서 벗어날 수록 후진적인 정치체제를 갖춘 국가는 뒤쳐진다라는, 뭐 그런 이론이다.


교수는 내가 이 말을 하니 대놓고 비웃으면서, 내가 했던 말을 싱가폴의 국부 리콴유가 주창했던 'Lee’s Thesis'와 닮았다고 깠다. 그러면서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Amartya Sen'의 논문과 책을 던져주셨다.

 

  • Amartya Sen (1999:15): “[A] great many people in different countries of the world are systematically denied political liberty and basic civil rights. It is sometimes claimed that the denial of these rights helps to stimulate economic growth and is “good” for economic development. Some have even championed harsher political systems – with denial of basic civil and political rights – for their alleged advantage in promoting economic development. This thesis (often called “the Lee thesis”, attributed in some form to the former prime minister of Singapore, Lee Kuan Yew) is sometimes backed by some fairly rudimentary empirical evidence

 

대충 번역하면,


“전세계 곳곳에 많은 사람들이 정치적 자유와 기본적인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박탈당한 채 살고 있습니다. 이러한 억압이 경제발전을 촉진시킬 뿐 아니라 도움이 된다고 때론 주장되곤 합니다. 일부에서는, 좀 더 억압된 정치체제가 경제발전에 도움이 된다고 옹호하기까지합니다. 이러한 'Lee’s Thesis'라 불리는 이론은 엉터리적인 통계자료를 바탕으로 검증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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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Amartya Sen)는 이 독재와 경제개발의 주제에 대해서 두 가지 거대한 업적을 남겼는데,


하나는 통계적으로 민주주의국가와, 독재주의 국가의 경제성장률의 평균을 내봤을 때, 민주주의적인 국가의 경제성장률이 낮지 않다는걸 보여줬다. 독재주의 시대에 높은 경제발전을 이루었던 국가는 싱가폴, 한국 등으로 지극히 예외적인 사례들이고, 그외에 북한, 남미 및 아프리카 등에서 독재주의는 매우 낮은 경제성장률을 보였다.


또 하나는, 민주주의와 자유주의가 원칙 그 자체로 경제발전에 기여하며, 독재주의는 비효율적으로 작동한다는 메커니즘을 사례를 들어 분석했다. 대표적으로 그는 가뭄을 연구했는데, 민주주의를 채택한 국가에서는 가뭄의 정도와 상관없이 아사자가 거의 발생하지 않았다. 보통 한 지역에서 가뭄이 발생할 경우, 다른지역에서는 비가 더 많이 내려 국가전체로 봤을 때, 농작생산량은 거의 비슷했다.


이때 여론에 민감한 민주주의 국가의 정부에서는 국민에 대한 책임(accountability)을 다하기 위해 특별재난구역선포 및 긴급농산물지원등의 활동을 통해 아사자를 적극적으로 구제하게 된다. 반면, 과거 중국 및 소련등의 독재국가에서는 기후재난을 시스템의 실패로 보이지않기 위해 오히려 은폐 및 축소 발표하여 사태를 더욱 키운다. 즉, 당장 국민들이 굶어죽는데도, 정부는 필요한 곳에 적절한 식량지원을 하지 못해 대량의 아사자를 발생시킨다.


이러한 센의 연구에 나는 납득했고, '민주주의는 비효율적이다' 라는 생각에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국가단위의 문제이고, 과연 기업단위에서도 민주주의의 원칙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더 많은 공부가 필요했다. 그래서 나는 먼저 주류경영학에서 다루는 기업지배이론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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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여담이지만, 독재체제가 경제성장에 전혀 득이되지않는다는 결론을 내리고나서야 나는 비로소 박정희를 까는 데서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애초에 독재주의 자체는 사회에 전혀 이롭지가 않은데, 그가 독재를 선택한 건, 그냥 그의 탐욕 뿐이었을 따름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박정희가 독재를 할 때 국가경제에 훨씬 해가 되는 선택을 할 수 있었음은 인정한다. 남한을 북한처럼 만들 수도 있었으니까. 하지만, 애시당초 그가 독재를 하지 않았더라면, 이 사회는 그가 부디 좀 더 나은 독재자였길 바라거나 의지할 이유가 없다.


도둑이 돈을 훔쳤는데, 이 돈을 아껴서 유흥비에 안 썼다고, 혹은 설령 그 돈을 굴려서 주식투자에 성공했다고 그를 착한 도둑이라고 칭찬해야 할 이유가 없다. 왜냐하면 도둑질 자체가 잘못된 행위이고, 이후에 그가 투자를 한 건 오로지 그의 성공을 위해서였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착한 독재자, 나쁜 독재자 나눠서 생각할 필요가 없다. 독재 자체가 나쁘고,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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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비민주적인 사회에 살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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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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