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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검사팀이 이재용 부회장을 전격소환, 15시간 넘게 강도 높은 조사를 했다. 이르면 오늘이나 내일쯤 구속영장을 재청구 할 거라는 관측이다.


이 뉴스는 외신에서도 꽤 자세히 다루었는데, 단순히 “삼성의 CEO가 검찰의 조사를 받는다”는 사실 전달을 넘어, 왜 조사를 받는지, 이 조사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전체적인 맥락을 살피고 있다.


지난 1월 15일 1차 소환조사 때, 진보적인 매체 <뉴욕타임즈>이재용 부회장소환수사를 ‘정권과 재벌의 뿌리 깊은 정경유착에 대한 조사(deep ties between top government officials and the handful of corporation that dominate South Korea’s economy)’로 규정한 바 있다. 두 차례나 이건희 회장을 구속하지 못했던 역사를 되짚으며 “만약 이번에 이재용 부회장이 구속이 이루어진다면 이는 대한민국과 재벌들의 부패간의 싸움에서 한국의 중요한 승리가 될 것(If Mr. Lee is arrested, it will be a milestone in South Korea’s effort to fight corruption involving the country’s powerful family-controlled conglomerates, known as chaebol)”이라고 말했다.


<뉴욕타임즈>보다 우파적인 성향이 강하고, 시장지향적인 <월스트리트 저널> 역시 특검의 이재용 수사를 ‘정부와 한국경제를 지배하는 재벌 간의 유착관계’로 규정했으며, 이것이 기각됨으로써 국민들이 분노하고 있음을 보도했다(The corruption scandal has led to President Park’s impeachment and shed light on the close ties between the government and the large, family-run conglomerates known as chaebols that dominate South Korea’s economy. The court’s decision fueled public anger).


외신들의 반응을 살핀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 두 신문 모두 사건을 정경유착으로 간주했다는 점, 둘, 한국 경제를 장악하고 있는 재벌을 고유명사 “Chaebol”로 표기했다는 점.


사실 ‘재벌’을 의미하는 영어 표현이 따로 없다. 즉, 재벌에 준하는 집단이 미국엔 거의 없다는 뜻이다. 미국에 명문가가 없다는 게 아니다. 미국은 우리보다 훨씬 앞서 급격한 산업화가 이루어졌는데, 그 과정에서 카네기 가문, 밴더빌트 가문, 그리고 록펠러 가문이 우리나라의 재벌 이상으로 막대한 부를 쌓았다.


이 가문들을 지칭할 때 ‘Robber Baron’라는 단어를 썼다. 번역하면 ‘날강도 귀족’쯤 된다. 과거 신성로마제국에서는 일부 영주들이 과도한 통행료를 받아먹음으로 부를 쌓았다는데, 이 단어를 19세기 <뉴욕타임즈>가 록펠러를 비난할 때 사용함으로써 널리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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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bber Baron’라는 단어의 핵심은 “단순히 이익을 많이 얻었다”가 아니다. 록펠러 이후에도 록펠러처럼 떼돈을 번 사람들이 여럿 나타났지만 이들에게 모두 날강도 귀족이란 호칭을 붙이지 않았다. 이 단어는 핵심은 “돈을 버는 과정이 떳떳하지 않다”는 것에 있다.


신성로마제국 귀족들이 귀족이란 지위와 징수권을 내세워 상인들의 등골을 후려먹었듯 록펠러는 시장 논리가 아닌 독과점의 지위를 이용해서 큰돈을 벌었다. 스탠다드 오일이라는 거대 오일회사의 유통망을 통해 석유를 단가 후려치기로 싸게 공급하여 경쟁자를 몰아낸 뒤 리베이트를 통해 부를 축적했다. 이 시기 록펠러를 비롯한 기업인들은 고용주의 권한을 이용해 노동자들의 임금을 한없이 후려치기도 했다. 모두 자유 경쟁과 기회의 보장이라는 시장논리에 반하는 것이라 많은 미국인이 공분했다.


미국은 산업화가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자연스런 인수합병, 뒤이어 발생하는 독과점과 노동문제라는 산업주의의 열병을 겪었다. 이러한 진통 속에서 미국과 시장경제 시스템을 살린 것은 사회적 합의였다. 뉴딜의 경제 정책의 핵심은 단순히 댐 몇 개 지어서 일자리를 늘리는 게 아니다. 시장경제에 부조리한 점을 뜯어고치고, 보다 공정한 경쟁이 되도록 사회 구조를 바꾸는 것이었다.


1890년, 독과점방지법의 시초라고 할 수 있는 셔먼법(Sherman Antitrust Act)이 입법되면서 독과점을 법적으로 금지하고 이를 규제하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었다. 또한 헌법까지 개정하면서 누진세를 도입했고, 고소득자에 대한 강력한 과세가 이루어졌다. 1917년 최고소득세는 67%였고, 1980년대 전까지 70% 이상의 높은 세율을 유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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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누진세는 한 때 20%이상 차지했던 상위 1%의 소득을 8%대까지 낮추었고, 임금불평등 문제를 대폭 해소시켜 미국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미국은 이런 과정–독과점과 사회적 합의로 인한 개혁(독과점방지법, 누진세 및 최고세율개정)-을 거쳤기에 우리가 아는 시장지향적인 경제를 이뤄낼 수 있었다.


미국의 사례를 볼 때 이재용 부회장의 특검 소환은 우리에겐 기회다. 아무리 큰 경제적 이권을 쥔 재벌이고, 힘이 막강하다고 해도 잘못을 저질렀다면 처벌을 받아야한다. 그래야만 사법질서가 바로 서고 공정한 경쟁이 가능해진다. 만약 현재 법이 잘못되어서 명백한 부정마저 처벌할 수 없다면, 정치인과 국민들이 사회적 합의를 이루어서 시스템을 공정하게 바꿔야 한다.


참고로 미국에 최초로 누진세가 도입되었을 때 위헌판결을 받았는데, 각지에서 노동자들의 데모, 집회가 많이 일어났다(노조가 가장 강성했던 시기기도 하다). 이후 국민여론을 두려워한 정치인들이 개헌에 나섰고, 누진세는 성공적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 우리도 시스템이 잘못되어 있으면 이를 고쳐야 한다. 부조리함을 반드시 바꿔나가야 한다. 공정한 경쟁과 시스템의 개선은 삼성이라는 기업 하나보다 경제에 훨씬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에.


한 가지 덧붙이자면, 위에서 언급한 날강도 귀족들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정말 존경받는 귀족이 되었다. 대중의 조롱과 비난을 받던 이들은 후대로 갈수록 사회환원사업에 관심을 갖고, 유명한 록펠러재단, 카네기재단 등을 만듦으로써 부정축재자의 이미지를 많이 희석시켰다. 나는 그 이유가 이들 스스로가 사회와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구성원임을 인정하고, 바뀐 정치적 환경 속에서 자신들의 명예를 지키기 위함이었다고 생각한다. 재벌들 본인들도 좀 더 현명하게 생각해야 할 필요가 있다.





씻퐈


편집: 딴지일보 챙타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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