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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말’도 진심처럼

아래 링크는 ‘국제노동기구’(International Labour Organisation, ILO) 이상헌 박사가 페이스 북에 올린 글이다.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 귀국 인터뷰에 대한 의견을 담아놓은 것. 이 박사는 자신의 글에, 반 전 총장 특유의 자기 방어 태도와 한국적 사고에 대한 해제를 담았다. 전문가의 입장에서 본 반 전 총장은 그동안 우리 국민들이 알고 있었던 모습과는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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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링크

이 박사의 해제를 보면 반 전 총장의 캐릭터를 아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분량이 많지 않다. 시간이 된다면, 아니 시간을 내서라도 일독을 강력 추천한다). 그 중에서 몇 가지 인용한다.

반 전 총장 : "유엔 총회에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을 포함해서 각국 정상들이 빈말하는 것이 아니다. 전부 다 공개적으로 저를 칭찬한다. 유엔 총회 본회의장에서도 하고. 중국 CCTV가 한 시간 분량으로 제 특집을 냈다.”

이에 대해 이 박사는, 아래와 같이 답했다.

“평생 외교관으로 살아오신 분이니,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하면, 아실 게다. 유엔 총회에서 각국 정상이 다른 국가 수반이나 국제기구 수장에게 하는 말은 "외교적 수사"고, 우리식으로 말하면 "빈말"이다. 내가 일하는 회사에서는 총회가 열리면 모든 대표 연설에서 우리 보스가 칭찬받는다. 그런 뒤, 따로 만나 면전에서 따진다.”

그렇다. 반 전 총장은 ‘외교적 수사’인 ‘빈말’들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순수한 분(?)이었던 거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켄 블랜차드’의 책을 읽어봤다면, 각국의 정상들이 왜 반 전 총장을 칭찬했을 지에 대해서 아주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반 전 총장은 원만한 대인관계를 위한 스킬 중 하나인 ‘칭찬’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순진한 면모를 보인다. 70여년간 인생을 살면서 ‘지천명’(知天命)과 ‘이순’(耳順)을 겪어 하늘을 뜻을 알고 이치를 깨달을 만도 한데, 여전히 ‘묘령’(妙齡)에만 머물러 있는 건 아닌지 의문이다.

(어쩌면, 스스로를 굉장히 대단한 사람이라고 자화자찬하는 스타일은 아닐지.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I am King of the world 수상소감이 생각난다.)

https://youtu.be/PwjfLMa7_3E

어느 조직이든 비슷할 순 있지만, 필자는 반 전총장을 보면서 대사관에서의 일화가 겹쳐졌다. 간단한 예를 들어본다. 대사관에서는 1년에 한 두 차례씩 (물론 아예 기회조차 없는 경우도 많지만) 직원들을 모아놓고 서로의 의견을 듣거나 고충을 얘기할 수 있는 시간을 갖는다. 보통 이런 일들은 총무과장이나 영사, 또는 공사 급의 상급자가 대표로 진행을 한다. ‘허심탄회’하게 의견을 개진하라고 하는게 오프닝 ‘단골 멘트’.

물론, 선뜻 자신의 의견을 얘기하는 사람은 없다. 정확히 말하면 얘기하기를 꺼려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얘기해 봤자 개선될 리 없을 뿐더러, 괜히 얘기했다가 오히려 불이익을 당할 게 뻔하기 때문이다. 침묵이 흐르면, 진행자는 각자 돌아가면서 의견을 얘기해 보자고 한다. 그렇게 해서 참여한 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답변들은 뻔하다.

‘괜찮다’, ‘별 문제 없다’, ‘만족한다’ 등이다. 그러나 보통 이런 말들은 ‘빈말’이다. 무슨 말이든 해야하니 할 수 없이 하는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주최측이 직원들이 하는 빈말을 진심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그렇게 간담회는 끝이 난다.

외교적 수사(修辭)는 다양한 뜻이 담겨 있다. 따라서, 누군가 칭찬한다고 해서 이를 그대로 받아들이거나, 혹은 부정적인 뜻을 포함한다고 해서 무조건 나의 의견에 반대한다고 여겨서도 안 된다. 이 복잡한 ‘외교적 수사’는 총 없는 국제 관계의 전쟁터에서 외교관들이 쓸 수 있는 중요한 무기이자 기술이다. 그리고 이러한 ‘수사’의 무기를 사용해서 국익을 위해 싸우는 공식자격증을 가진 이들이 바로 외교관인 것이다.

따라서, 외교관의 직분을 맡은 이라면, 문맥과 상황을 종합적으로 살펴보는 능력은 물론이고, 다양한 외교적 수사 뒤에 숨겨져 있는 뜻을 제대로 이해하고 대응하는 자세를 기본적으로 갖춰야 한다. 일차원적인 사고력으로 상황을 판단해 ‘빈말’을 있는 그대로 직독직해 하는 사람들이 외교관이라면, 그 나라의 외교는 도대체 어떻게 꾸려지고 있는 것일까?

런던정경대(LSE)에서 외교사를 전공해 박사학위를 받고, 외교안보연구원과 이화여자대학교의 교수를 역임했던 구대열 박사의 글을 아래 링크로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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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링크

구한 말, 당시 대한민국의 외교관들이 외교적 수사에 얼마나 민감하지 못했고, 이로 인해 굴욕적인 역사를 가져오는 데 한 역할을 담당했는지를 보여준다. 형식적인 표현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단어 하나하나 뒤에 담겨 있는 의도들을 세밀하게 판단하지 못한 외교가 얼마나 나라에 큰 손실을 가져오고 국민을 고통에 빠트릴 수 있는지를 우리는 역사 속에서 배워야 한다.

그런데, 다양한 해석을 낳는 외교적 수사는 국제관계에서 국익을 위해 쓰여야 하는데, 오히려 국민에게 쓰이고 있진 않은지 의문이다.



긴가 민가

반 전 총장은 대선 불출마를 선언하기 전까지 공식적으로 ‘대선출마’를 선언하지 않았다. “이 한 몸 불사르겠다”는 간접적인 표현 때문에 일부 언론에서는 사실상 대선 출마를 선언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보도를 했었다. 하지만, 반 전 총장이 더불어민주당의 안희정, 이재명 후보와 같이 직접적으로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하지는 않았었다. 반 전 총장에게 대선 출마에 대해 직접적인 질문을 하면, 본인은 대선 출마를 하겠노라 직접 밝힌 적이 없다는 얘기를 자주 했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긴가 민가’ 했다. 대선을 출마하겠다는 것인지, 불리한 상황이 닥치면 출마 안 하려고 하는 것인지 끝까지 알 수가 없었다. 역설적이게도, 마지막에 했던 대권 불출마 선언만이 가장 명확했다.

이 뿐인가. 반 전 총장은 스스로를 ‘진보적 보수주의자’라고 했다. 얼핏 듣기에는 진보와 보수를 아우르겠다는 포부로 들릴 수 있지만, 모두를 아리송하게 만드는 어휘였다. 서로 어울리지 않은 말들이 억지로 끼워져 맞춰진 것을 보며 반 전총장의 수사학은 매우 ‘견강부회’(牽强附會)적이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쉽게도 ‘진보적 보수주의자’의 진정한 뜻을 제대로 알아보기도 전에, 그의 짧은 정치 행보는 마감이 됐다. 필자는 이러한 반 전 총장의 ‘긴가 민가’ 화법이 외교관 시절 습득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대사관을 통해 민원을 넣어본 사람이라면 거절도 승인도 아닌, 이도 저도 아닌 답변에 답답했던 경험이 있을 수 있다. 국민신문고 제도가 대표적인 사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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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원문 - 링크

위 기사는, 외교부와 관련된 기사는 아니지만, 국민신문고 제도의 절차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기사 제목처럼 국민신문고는 국민들이 민원을 제기하면 돌고 돌아 원점으로 회귀하게 되어 있다. 결국 민원이 처음 불만을 가졌던 담당 부처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답변이다. 문제가 있으면 해결을 해 줄 것처럼 얘기를 전개하다가, 말미에는 책임회피용 단어들을 사용한다. ‘-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매우 안타깝지만’, ‘제한적인 점 양해 바랍니다.’ 등이 그 예이다. 실제로 한 외교관은 ‘동문서답’형 답변을 하며 “일부러 그러는 거에요. 정확하게 답하면 다 책임져야 해요”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이러한 불분명한 의사표현은 실제 국제 외교로도 이어진다. 자고로 외교를 하려면, 우문현답을 해야 한다. 눈치가 빠르고 단시간에 빠른 판단을 해야 할 때가 많다. 필자도 각종 회의나 컨퍼런스 등에 참석했을 때를 떠올려 보면, 회의나 토론이 진행되는 중간중간에 중요한 지점에 봉착할 때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렇듯 외교에서도 어떤 순간이 되면 절대 놓치지 말아야 할 순간이 온다. 그때 재빠르게 낚아채야 국익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할 수 있다. 물론, 그 순간을 놓치면 엄청난 경제적 손실로 이어질 수 있는 게 당연지사. 따라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않겠다는 태도는 중요 사안에 대한 ‘골든 타임’(Golden Time)을 놓칠 확률이 높다.

실제로, 반 전 총장의 재임시절에 대한 평가 중, 국제적 재난 문제에 있어 적절한 대응 시기를 맞추지 못했다는 보도가 된 바 있었다. 아래 링크는 아태평양 지역의 외교와 관련된 소식을 전하는 전문 외교 매체, ‘더 디플로멧’(The Diplomat)의 관련 기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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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원문 - 링크

여러 가지 주제로 반 전 총장의 활동을 평가했지만 그 중에 ‘위기관리’와 관련 된 부분을 인용한다.

“Ban’s UN staff criticized his 1) lack of charisma and 2) fluency in English, and 3) uninspiring communication skills. Ban 4) read scripts written by his advisers, yet many senior heads of governments said they were disappointed by his 5) lack of personal engagement. Ban’s more serious failure, however, is on crisis management. He has been criticized for his 6) failure to act in a timely manner on global crises, including the conflicts in Syria, Yemen, South Sudan, and Sri Lanka as well as migrant and refugee crises.”

간략하게 내용을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1)카리스마도 없고, 2) 영어도 유창하지 않고, 3) 소통 능력도 떨어지는 데다가, 4) 연설 많이 한다고 자랑하셨지만 누가 써 준 거 읽은 것이고, 5) 인격도 별로이다. 그런데, 무엇보다 심각한 건, 6) 위기관리 능력이 현저히 낮다는 것. 특히 각종 글로벌 위기들에 대한 시기 적절한 대응에 실패했다는 것을 꼬집어 비판했다. 외신들에 의해 ‘우려왕’이라고 평가를 받은 것도 어쩌면 이와도 연결되는 부분이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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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원문 - 링크

결단해야 하는 순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망설이다 시기를 놓쳐, 각종 위기에 있어 골든 타임을 제대로 사수하지 못했다는 평가가 있는 이유는, 어쩌면 긴가 민가한 그의 태도에서 비롯되었다고 추측해 볼 수도 있다.

세계평화유지를 위해 갈등이 있는 국가들간의 교두보 역할을 해야 하는 곳이 유엔이다. 반 전 총장이 받은 이와 같은 평가가 과연 세계 각 국의 정상들이 칭찬할 만한 것이었는지는, 그것이 정말 칭찬인지, 언론들은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하지 않을까. 

반기문은 벌써 잊혀져 간다. 다만 '반기문 사태(?)'에 대해 아무 것도 배우지 못한다면 또 다른 반기문이 등장할 것이 분명하다.  




덧.
반 전 총장이 ‘우려’를 하고 있는 동안, 전쟁과 테러로 중동 지역이 어떻게 쑥대밭이 되었는지 알고 싶다면, 아래의 유엔난민기구 홈페이지를 방문해 보시라. 특히 아래 사이트 중간 부분에 있는 예멘 동영상은, 유엔이 얼마나 위기 관리에 실패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무슨 낯으로 ‘칭찬’을 운운하는지 모르겠다.


유엔난민기구 홈페이지 - 링크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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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부멘탈 반기문의 탄생







BRYAN


편집 : 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