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생길 거라 상상한 적도 계획한 적도 없었다. 곧잘 다니던 20대 여성 위주의 여초 커뮤니티에서 괴담처럼 소비되던 이야기들, 트럭이 배를 치고 지나가는 고통이라더라, 마취 없이 생살을 째도 모른다더라 하는 ‘카더라’들이 유일한 학습 자료였다. 임신을 발견하고 나서 부랴부랴 경험자들의 후기를 뒤지고 다녔지만, 마음의 준비와 상관없이 분만의 고통은 상상을 초월했다. 배고프든 졸리든, 춥든 덥든, 불편하든 심심하든, 하는 일이라고는 혀를 떨며 울어대는 것뿐인 갓난쟁이가 세상에 똑 떨어졌다. 산후조리원의 도움조차 받지 못하는 나라에서 몸 추스를 새도 없이 육아에 투입됐다. 모유가 돌지 않는 빈 젖을 손으로 쥐어짜면서, 오로(분만 후 자궁에서 나오는 혈액 및 점막 분비물)가 흘러 넘치는 패드를 한 시간마다 갈고, 소변 줄을 단 채 침대 위를 기어 다니며 아기를 들고 놓느라 24시간 보초를 섰다.
꿰맨 회음부는 퉁퉁 부어 올랐고 돌처럼 굳은 변이 일주일을 나오지 못했다. 자리에 엉덩이를 대고 앉을 수조차 없을 만큼 고통스러웠지만, 두세 시간에 한 번씩, 1회당 40분씩 수유를 했다. 하루에 기저귀를 열 번씩 갈고, 자꾸만 풀리는 속싸개를 수십 번씩 고쳐 매고, 달래지지 않는 아기를 안고 밤새도록 집안을 거닐며 나도 울었다. 한 달 내내 두 시간 이상을 이어서 자본 적이 없어서 의식과 무의식 경계가 불분명할 만큼 피로했다. 젖을 물릴 만하려니 유두 백반이 생겼다. 칼로 가슴을 쑤시는 통증에 이를 악물고 다리를 벌벌 떨면서도 젖 물리기를 쉴 수 없었다. 바닥에 등만 닿으면 깨는 아기를 안고 하루를 소파에서 지냈다. 전날 밤 남긴 밥을 선 채로 게걸스럽게 먹고, 아기를 포대기에 안고 용변을 보고, 새벽에나 겨우 샤워를 하다가도 울음소리를 듣고 뛰쳐나오기 일쑤였다.
육아는 문명화된 인간의 존엄성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육체 고문이자 정신 고문이었다. 아기는 내가 적응하는 속도보다 더 빨리 자랐고 난 늘 우왕좌왕했다. 학교에는 자퇴, 회사에는 퇴사, 결혼에는 이혼, 가족에는 절연이라는 최후의 카드가 있는데 육아에는 중도 포기가 없었다. 매일같이 포털 사이트에 접속해 ‘생후 XX일’을 검색하고 적어도 열 페이지를 봤다. 다들 이 정도 고생하는지, 내 아이가 유별난 건지, 길 가는 사람에게라도 묻고 싶을 만큼 절박했다. 배란이니 착상이니 하는 용어만 헐레벌떡 언급하는 생물 시간, 조작된 낙태 비디오를 관람시키는 성교육 시간이 내가 받은 ‘공식적’ 임신, 출산, 육아 교육의 전부였고 그 밖의 문제들은 모두 ‘비공식적으로’ ‘알아서’ 주워 먹어야 했으니 그럴 법도 했다.
tvN <리얼키즈 스토리 레인보우>의 한 장면
육아가 무엇인지 모른 채 육아를 시작했던 것이다. 심지어 아이를 갖기 전에는 공공장소에서 마주치는 아이들을 철저히 무시하곤 했다. 비혼/비출산 의지의 비뚤어진 표현이었다. 아이를 좋아하는 여성 꽁무니를 따라다니는 오지랖들을 -“너도 결혼할 때가 됐나 보다”, “시집가라”, “좋은 엄마 되겠다”- 원천봉쇄하기 위해, 상대방에게 일일이 따지는 대신 아이들을 있지만 없는 존재로 만드는 편을 택했다. 아이들을 모른 채 살아도 상관없고, 알려고도 하지 않는 어른이 득실대는 사회에서는 그래도 괜찮았다. 그러던 어느 날 TV에 아이들이 나타났다. tvN <리얼키즈 스토리 레인보우>(2011)가 예쁜 백인 혼혈 아동들의 외모로 관심을 끄는가 싶더니, MBC <아빠! 어디가>(2013. 01~2015)를 시작으로 유사 프로그램의 러시가 이어졌다. 윤후(윤민수), 준이(성동일), 민국이(김성주), 추사랑(추성훈), 하루(타블로), 서언이・서준이(이휘재), 대박이(이동국), 대한・민국・만세(송일국) 등 연예인이 대동하고 나온 아이들은 덩달아 스타가 됐다. 윤후의 베이비 토크를 인용한 유행어 ‘~인가봉가’, ‘왜 때문에?’ 등이 인터넷 커뮤니티를 휩쓸었고, 메신저 친구 목록을 열면 ‘추블리’(추사랑) 프로필 사진이 끝없는 행렬을 이었다.
그리고 수천 년간 여성이 주관하는 내밀한 영역으로 여겨져 왔던 육아가 마침내 보편적 관심사로 이행했을 때,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주인공은 아빠들이었다. <슈퍼맨이 돌아왔다>(이하 <슈돌>)의 오프닝 영상은 기획 의도를 충분히 반영한다. ‘한 여성이 슈퍼맨에게 도움을 청한다. 핸드폰 메시지를 확인한 남성은 양복에서 슈퍼맨 수트로 환복하고 신속하게 빌딩 숲을 날아간다. 집에 도착한 슈퍼맨은 한쪽 팔에 아이를 안고 엄지를 치켜든다.’ 전통적으로 ‘바깥일’을 도맡아온 아빠가 48시간 독박육아를 체험하면서 엄마를 가사노동으로 해방시킨다는 콘셉트는 퍽 신선했지만, 일상적인 육아 해프닝을 선보이던 초반의 분위기는 오래가지 못했다. 추사랑 센세이션은 아이들의 귀여움이 ‘팔리는 소재’라는 것을 강력하게 증명했고, 이후 <슈돌>은 셀링 포인트는 육아에서 아동 출연자로 이행한다. 추사랑이 모범적인 어린이의 기준이나 되는 것처럼 후속 출연자들은 예쁜 아이와 그렇지 않은 아이로 줄을 세워 비교평가 당했다. 프로그램은 인기 있는 출연자에게 방송 분량을 몰아주고 반응이 낮은 출연자를 하차시킨다는 의혹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이러한 경로를 거쳐 <슈퍼맨이 돌아왔다>를 필두로 한 육아 프로그램들은 그것이 수행해야 했을 ‘리얼 버라이어티’라는 소임에서 이탈한다. 새벽이면 두세 시간씩 보채고 잠을 못 자게 해서, 발을 동동 구르며 만든 유아식을 뱉고 던지고 엎어버려서, 아무리 말로 달래고 팔이 빠지게 안아도 고집을 꺾지 못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그리고 그 무지가 본성인– 아이에게 언성을 높이고 자괴감에 빠지는 순간들이 육아 예능에는 없다. 아이들은 견딜 수 있을 만큼만 울고, 밉지 않을 만큼만 떼를 쓴다. 싸우는 수아와 설아를 각방에 격리하고 반성의 시간을 주면 대박이가 알아서 방을 돌아다니며 둘 사이를 중재한다(<슈돌> 177화 이동국 가족). 아침부터 다투던 서언이와 서준이는 손들기 체벌과 약간의 훈육을 통해 자연스럽게 화해한다(176화 이휘재 가족). 커뮤니케이션에 문제가 있다고 느끼면 ‘육아의 신’이라고 불리는 소아·청소년 전문가 오은영이 가정에 방문해 1:1 코치를 제공한다(178화 고지용 가족). 문명보다 야만에 가까운 아이를 사회화하는 지난한 과정, 극한을 오가는 양육자의 인격 수련이 제거된 육아는 비단결처럼 매끄럽다.
고지용의 집에 방문한 오은영 박사
(<슈퍼맨이 돌아왔다> 178화)
육아를 고되게 만드는 결정적 요인인 ‘고립’ 역시 촬영장이라는 인위적 환경 안에서 녹아 사라진다. 외딴 섬 같은 집에서 아기의 욕구와 양육자의 욕구가 충돌할 때 주 양육자는 자신의 욕구를 포기하거나 지연시켜야 한다. 수면욕, 식욕, 배설욕 같은 기본적 욕구충족의 실패는 단 오 분이라도 아이를 돌봐줄 누군가가 상주하는 조건에서는 발생하지 않는다. 그래서 누군가를 초대하고, 지인을 방문하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스태프의 보살핌을 받는 <슈돌>의 육아 난이도는 현실의 그것에 한참 못 미친다. 자지러지게 우는 아기를 뒤로하고 허둥대며 밥을 준비하는 장면이 없다(대개 엄마가 음식을 준비해두거나 시판 이유식을 활용한다). 관심을 갈구하는 아기를 억지로 떼어놓으며 아기 가방 챙기랴 외출복 입히랴 최소 삼십 분에서 한 시간이 소요되고, 후줄근한 모습으로 집을 빠져나온 뒤에야 몇 가지 아기 준비물을 빠뜨렸다는 사실을 깨닫고 탄식하는 외출 과정이 생략된다. 늘 따라다니는 카메라 덕분에 아이들은 야외 활동 중에도 보호자의 사정거리를 벗어날 수 있다. 아이를 잃어버릴까 노심초사하며 미아 방지 리드(끈)를 사용했다가 아동학대의 주인공이 되는 현실은 현실로만 머무른다.
외출은 가장 비현실적인 파트다. 육아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아빠들은 ‘맘충’이라는 구속복에서 벗어난다. <슈돌> 180화에서 샘 해밍턴이 윌리엄(8개월)을 데리고 반려동물 페스티벌에 참가하는 장면을 보자. 샘 해밍턴은 푸드 트럭 점원에게 이유식을 데워 달라고 부탁하고(그동안 점원이 아기를 안아준다) 행사장 한편에 개인 매트를 깔고 그 위에서 기저귀를 교환한다. 176화에서는 허양임의 병원에 방문해 검사를 받는 동안 윌리엄을 허양임에게 맡기기도 했다(허양임은 윌리엄이 울기 시작하자 분유를 먹이고 잠을 재운다). 한편, 고지용과 승재가 만화방을 방문하는 에피소드에서는 승재가 다른 고객들에게 말을 걸고 뛰어다니며 스스럼없이 호기심을 해소하는 모습이 연출된다(176화). ‘아이를 핑계로 정해진 서비스 이상의 호의를 요구함’, ‘아기 기저귀를 공공장소에서 교환함’, ‘아이가 실내에서 소란(!)을 떨도록 방치함’ 모두 일반인이었다면 ‘무개념 맘충 썰’로 인터넷 커뮤니티를 뜨겁게 달궜을 죄목들이다. 출연자의 잘못을 지적하려는 것이 아니다. 엄마들이 맘충이라는 불명예를 피하고자 혹독하게 행동을 검열하고 위악적으로 아이를 단속하는 동안, 브라운관에서는 아이와 양육자에게 배려와 관용이 난무하는 육아 세상을 펼쳐 놓는다는 점이 문제다. 촬영 중이라는 이유로, 연예인의 아이라는 이유로 쏟아지는 호의들은 리얼 버라이어티라는 이름 뒤에서 현실로 가장한다.
반려동물 페스티벌에서 기저귀를 교환하는 샘 해밍턴
(<슈퍼맨이 돌아왔다> 180화)
이것은 기만이다. 실제 육아 환경은 포털 사이트에서 ‘노키즈존’으로 검색했을 때 펼쳐지는 아동 혐오의 향연에 더 가깝기 때문이다. 노키즈존을 금연구역에 비교하는 사람, 시끄러운 아이를 때리고 싶다는 사람, 웃거나 울거나 아이는 무조건 싫다는 사람, 이유도 형태도 각양각색이다. 노키즈존 옹호론자들은 제 목소리가 신기해서 옹알이를 하고 제 힘으로 서는 것이 재미있어 가만히 있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때로는 어른조차 파괴하는 공중도덕규범 –소음을 만들지 말 것, 의자에 얌전히 앉아있을 것, 소파에 발을 올리지 말 것, 매장 내의 물건을 건드리지 말 것, 식기를 초과 사용하지 말 것, 음식을 떨어뜨리지 말 것, 테이블을 깨끗하게 사용할 것 등등- 을 엄격하게 준수하라고 요구한다. 통제되지 않는 본성을 가진 아이들이 싫고 그 본성을 통제하지 못하는 부모들이 문제라고 한다. 일반적인 진상 손님 이슈에서 엄마들만 특정해 범주화하는 호명어가 개발된 뒤, 아이 동반 여성 고객들은 어딜 가나 ‘저 여자 혹시 맘충 아니야?’라는 의심의 눈초리를 받아야 했다. 매너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어른의 ‘조용히’ 식사할 권리가 침해될 ‘수도 있다’는 이유로 아이들 전체가 입장을 거부당하는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아무도 제동을 걸지 않았다.
노키즈존이 득세하는 배경에는 아동을 독립적인 인격체로 대우하지 않는 사회 풍토가 있다. 아이는 어른에게 딸린 부속물이고 어른의 의지로 통제 가능한(통제 당해야 마땅한) 존재라는 인식은 아이들의 권리를 손쉽게 앗아버린다. 장애인 출입금지, 성 소수자 출입금지, 유색인 출입금지의 잘못된 점을 지적할 수 있는 사람들이 어린이 출입금지 구역이라는 팻말 앞에서는 아무런 문제점을 발견하지 못한다. 아동이 사회적 소수자이고 절대적 약자라는 인식조차 희박한 성인중심사회에서는 ‘난 애들 싫다’는 말도 취향 문제로 환원된다. 이처럼 육아-비친화적이고 아동 혐오적인 환경에서 <슈돌>이 판매하는 판타지는 득보다 더 많은 실을 불러온다. 잘 먹고, 예의 바르고, 말귀를 알아듣고, 깜찍한 아이들의 모습만 걸러서 빚어낸 환상은 현실의 엄마가 왜 그렇게 허둥대고 애를 먹는지, 현실의 아동이 왜 시끄럽고 제멋대로인지 이해하는 데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부모는 ‘아이 잘 키우는 사람’ 혹은 ‘아이 키울 자격이 없는 사람’으로, 아동은 ‘늘 착한 아이’ 또는 ‘원래 못된 아이’로 양분된다. 그러나 육아는 <슈퍼맨이 돌아왔다>도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도 아니라는 사실을, 아이를 키워본 사람이라면 알 수 있다.
어쩌면 TV에서 리얼한 육아를 조명하게 될 날은 영영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육아는 유쾌한 것, 즐거운 것, 자극적인 것, 시선을 사로잡는 이야기에 길든 시청자를 만족시키기엔 지루한 소재이고, 폭력적으로 출산을 장려하느라 육아의 신성함만을 부각해온 사회에서 터부시해온 주제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예능이라는 좁은 장르의 바운더리 안에서 <슈퍼맨이 돌아왔다>가 제공할 수 있었던 내러티브의 유효성은 이미 몇 년 전에 소진된 셈이다. 연예인 게스트 초대, 이색적인 놀이와 여행과 체험들만이 프로그램의 수명을 힘겹게 연장하고 있다. 한 세트당 30만 원에 육박하는 플레이 매트로 빼곡히 채워진 집안, 미끄럼틀이 달린 유아용 실내 풀장을 설치한 대궐 같은 거실, K팝 아이돌 스타와 녹음한 노래를 아빠에게 선물하는 아이들의 모습은 셀러브리티의 육아를 엿보려던 시청자의 관음 욕구마저 좌절감 혹은 위화감으로 되돌려준다. 화면을 통해 유사육아를 판매하는 천사같은 아이들과 인터넷 맘충 후기에 오르내리는 작은 악마들이 공존하는 가운데 아무도 아이들의 진짜 성장 과정에는 관심을 주지 않는다. 이 혼돈의 카오스 속에서 <슈퍼맨이 돌아왔다>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이 무엇이든 육아만큼은 아니지 않을까.
탱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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