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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님. 올해로 8년째 이 곳에 이 글을 씁니다. 8년 전 이날, 퉁퉁 부은 눈으로 추모사를 쓰던 기억이 엊그제 같은데 세월이 이렇게 빠릅니다. 그리고 또 한편으로, 그 세월은 이렇게나 고통스럽게 길었네요.

 

지난 8년 동안 저의 감정과 생각도 조금씩은 변해 갔지만, 그래도 늘 똑같이 드리던 말씀이 있었습니다. 조금만 참으시면 형님이 원하시던 그 곳을 향해 가겠다. 저희가 아직 부족하고 세상은 어둡지만 지켜봐 달라는 부탁이었죠. 하지만 지금 와서 고백하자면 자신에 차 있지는 않았습니다. 그저, 언제가 되었던 결국은 그리될 것이라는 믿음을 가졌을 뿐이었죠.

 

그런데, 형님. 먼 곳에 가셨다고 잊진 않으셨지요? 생전에 그토록 자랑스러워 하던 친구, 내가 이런 친구를 가진 걸 보고 나를 믿어달라고까지 하시던, 30년 지기이자 정의의 동료였던, 문재인 그 분 말입니다. 그 시절 참으로 고통스럽게 대통령을 해내셨던 형님은 이렇게도 말씀하셨죠.

 


 “문재인 당신은 정치하지 마라.”


 

얼마나 힘드셨으면 그러셨겠습니까. 친구이자 일곱 살 어린 동생에게 주는 걱정어린 충고 아니었겠습니까. 그런데 2017년 오늘, 그가 우리의 자랑스런 대통령입니다. 절망과 좌절과 슬픔을 딛고, 무능과 독재와 부패를 이기고, 무지의 파도와 탄핵의 혼란과 삭풍의 고통을 감내하며, 우리 국민과 그가 결국 해냈습니다.

 

이제 겨우 2주일 남짓 지났지만 벌써 세상이 변해 갑니다. 비뚤어진 것이 바로 잡히고 거짓이 탄로나고 정직하고 능력 있는 사람들이 모여 부지런히 일하기 시작합니다. 9년간 거짓과 위선에 가득 차 있던 뉴스를 보며 분노하던 국민들의 얼굴에는 이제 행복이 피어오르고, 해외에서 우리를 바라보는 세계인들의 눈에는 부러움과 찬탄이 흐릅니다. 희망과 기대가 어느 때보다 가득한 지금입니다.

 

어떻습니까, 저희 이만하면 괜찮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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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는 이 표정이 얼마나 큰 분노와 고통을

담고 있던 것인지 몰랐습니다. 지난 2주 동안

대통령 문재인의 진짜 얼굴을 알고서야 깨달았죠.

우리는 이토록 무딘 사람들이었네요.

 

 

하지만, 이렇게 늦으나마 낭보를 전하면서 저는 기쁨만큼이나 서러움에 차 있습니다. 여기까지 오기 위해, 이 나라를 다시 민주와 평등, 자유의 궤도로 되돌리기 위해, 형님의 그 진한 피를 바쳐야만 했던 우리들의 미욱함이 슬프고 원통하기 때문입니다. 8년 전 이날 형님이 돌아가신 바로 그 순간 우리는 알았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갖고 있었고 또 잃었는지. 정녕 그 순간 바로 깨달았습니다. 바꿔 말하면 그 전날까지도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죠.

 

물론 호탕하신 형님은 지금 껄껄 웃고 계시겠죠. 내는 마 갠찮다. 문재인이 자슥 그래 정치하지 말라고 했더니 결국은 대통령이 돼 삤네. 마 잘됐다. 내보다 잘 할끼다. 이러고 계시겠죠. 하지만 이 자리에 만약 형님이 계셨다면, 그래서 그 말을 문 대통령에게 직접 하시고 우리 국민 모두가 웃게 되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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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 당신도 이제 대통령이야?”

“아이고 예. 그리 됐심더.”

 

 

이제 어렵사리 새 시대를 열면서, 한편으로 형님을 돌아가시게 한 그 거짓과 위선의 시대를 마감하면서, 우리에게 형님의 의미가 무엇인지 다시 한번 되새기게 됩니다. ‘조선 건국 이래 600년 동안’으로 시작하는 그 유명한 연설을 하실 때 우리는 깨달았습니다. 형님이 바로 우리가 그 600년의 기나긴 세월 동안 잊고 또 포기하고 살던 민주와 자유와 평등이라는 ‘이상’의 화신이라는 것을. 그 세월 동안, 아니 아마도 수천 년 역사를 통틀어 단 한 번도 실현하지 못한 정의로운 세상, 그것을 꿈꾸게 하는 두근거리는 심장이었다는 것을.

 

그리고 형님이 대통령이 되신 후, 우리는 다시 한번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 자신이 그 이상을 현실로 바꿀 신념이 없는 자들이었다는 것을요. 그 과정에서 형님은 이제 이룰 수 없는 꿈과 냉정한 현실 사이 간극의 상징이 되어 갔습니다. 그 간극을 견디지 못하고 약한 스스로를 인정하지 못한 우리는 형님을 조롱했습니다. 모든 것을 형님의 책임으로 돌렸습니다. 급기야 형님은, 인간이 결코 이룰 수 없는 장미빛 이상 세계의 유치함과 어리석음을 가리키는 대명사가 되고 말았습니다.

 

바보 노무현.

 

이 표현을 다시 순수함과 정의로움의 의미로 바꾸는 데 우리는 형님의 목숨이 필요했습니다. 진짜 바보천치는 과연 누구였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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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님. 문재인 대통령은 형님과는 참 다른 사람입니다. 우리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바보라는 점만은 같습니다. 그렇게 하지 말라던 정치를, 권력욕 따위와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먼 사람이, 존재하지도 않는 패권주의의 비난에 시달리며, 아버지 만큼이나 성숙하고 겸손한 아들에 대한 모함까지 감내하며 대통령의 자리에 오르고야 만 이유가 바로 형님이나 똑같은 바보이기 때문입니다. 그 모진 세월을 겪고도 정의롭고 자유로우며 평등한 세상을 여전히 만들고 싶은 바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절치부심 쓰라린 가슴을 부여잡고 버틴 것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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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따위가 울고 있을 때 이 순간 그의 심정은 어땠을까요.

바로 형님이 자랑하던 친구, 그 문재인의 힘입니다.

 

 

이상이라는 게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누구나 잠시나마 가졌던, 아름다운 세상을 향한 꿈 아니겠습니까. 나이가 들고 또 일상에 지쳐, 때로는 욕망과 향락에 빠져들어 갖다 버린 그 꿈 말입니다.

 

형님은 우리에게 그것을 되돌려 주셨던 분입니다. 삶으로 한번, 죽음으로 다시 한번, 그렇게 두 번이나요. 이제 형님의 절친인 새 대통령이 우리에게 그 꿈을 다시 꾸게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어떤 가시밭길이 펼쳐질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어쩌면 또다시 거짓과 위선의 나날이 돌아 올지도 모르죠. 하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우리는 또 한번 그때의 가슴 두근거림을 느낍니다. 무엇인가 이루어 질 지도 모른다는 희망에 부풉니다.

 

저는 이제 형님을 보내 드리려 합니다. 제가 눈물을 흘리며 이 곳에 추모글을 쓰는 것은 여덟번째인 오늘이 마지막이 될 겁니다. 이제 후배들이 새로운 생각과 마음으로 이어가 주겠죠.

 

그저, 저는 제 삶 속에서 계속 같은 꿈을 꾸렵니다. 그것이 형님을 향한 가장 뜨거운 추모의 삶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형님의 젊은 날, 문재인의 젊은 날, 그리고 우리들의 잊지 못할 그 나날들.

 

이제 다시 시작이다. 젊은 날의 꿈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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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딴지일보 coco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