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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돕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전화 내용은 이랬다. 연락이 닿지 않았던 브로커와 연락이 닿았고, 내가 잡힌 게 미안했던지 돈을 전액 돌려 주겠다는 얘기였다. 그동안 맘고생을 했던 게 풀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고 모든 것을 보상 받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돈은 샌프란에 있는 친구가 받아주기로 했고, 보석금을 지급하는 것도 친구가 도와주기로 했다.


하지만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지는 않았다. 미국은 돈을 송금하는 게 한국처럼 쉽지가 않았다. 그 돈을 기다리는 동안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돈 들어왔어?”


“아니, 아직 안 들어 왔어 좀 기다려봐. 내가 보기에는 돈 돌려준다고 말을 한 거 보니까 나쁜 사람은 아닌 거 같아.”


“한번 더 연락 해보면 안 될까? 나 진짜 빨리 나가고 싶어...”


“알겠어. 내가 최대한 연락해 볼 테니까, 좀 기다려 봐라.”


난 보석금 내는 방법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보석금을 내는 방법 또한 쉽지가 않았다. 10000불의 보석금을 지급하는 것도 영주권자도 아닌 시민권자만이 가능하다고 했다. 들은 내용으로는 10000불의 보석금을 지급하면 미국에 몇 년동안 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고, 매년마다 보호관찰식의 재판이 진행이 되며, 거주할 수 있는 기간이 지나면,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야만 하고, 돌아갈 때 보석금은 다시 돌려준다는 얘기였다.


돈이 입금이 되는 걸 기다리는 동안에도 난 안절부절 하지 못했다.


'혹시 돈을 안 주면 어떻게 하지? 주겠지? 아... 줄 거야.'


하루에도 몇번씩 맘을 졸이고 스트레스 받고, 언젠가부터는 오른쪽 머리가 깨질듯이 아팠다. 너무 신경을 썼던 탓이었을까. 돈은 1주일이 지나도록 입금이 되지 않았고, 난 하루하루 맘을 졸이며 기다리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날.


“240, 240~”


교도관이 날 부르기 시작했다. 시간을 보니 어느덧 저녁 시간이 가까워 오고 있었다. 난 천천히 교도관에게 걸어갔다. 교도관은 살며시 웃으며,


“240, 그동안 고생했어. 이제 나가도 좋으니까 가서 짐 챙기고 내 앞으로 다시 와.”


난 그동안 참았던 눈물을 하염없이 흘렸다. 흔들리는 내 어깨를 잡으며 교도관은 축하의 메세지를 남겼고, 난 내 자리로 돌아와 힘없이 풀썩 주저앉아 더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친한 친구들이 내 짐을 박스에 넣어주기 시작했다. 여지껏 제일 부럽게 쳐다보았던 박스를 들고서 감옥 문 앞에 서 있는 날 볼 수 있었다. 박스를 살며시 내려놓고 "그라시아스 아미고" 라며 크게 얘길 했다. 200명 가까운 인원들은 축하의 함성을 질러주기 시작했다. 눈물을 흘리는 날 껴안아 주며, 잘 살라고 인사를 나누었다.


처음 잡혀왔을 때 보았던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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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여지껏 사용했던 모든 짐들을 반납하고, 서류에 사인을 하고, 한 달 반 전, 잡힐 당시 입고 있던 옷을 받아들고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다. 그들은 더이상 나에게 240이라고 부르지 않았고, 이름을 불러주기 시작했다. 서류 작업이 다 끝이 나자,


“자, 오늘 나가는 사람들 이쪽으로 줄 서서 날 따라와요.”


나와 같이  출소하는 사람은 소말리아인 2명, 인도인 1명, 필리핀인 1명, 나. 5명이었다. 절대 열리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의 큰 철문이 옆으로 천천히 열리면서 철문 사이로 자유의 냄새가 서서히 들어오고 있었다. 한시라도 빨리 나가고 싶었던 난 그 철문 사이에 몸을 끼우고 끙끙 대고 있었다. 그때, 문을 열어주던 교도관이 날 살짝 끌어당기며,


“길. 그렇게 빨리 나가고 싶어? 난 너랑 쫌 더 있고 싶은데?”


하면서 날 포근하게 안아주며 마지막 인사를 해주었다.


그렇게 나의 수용소 생활은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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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가락이 튀어나와 있는 샌들이면 어떠하리. 더러운 츄리닝이면 어떠하리. 난 수용소에서 최대한 멀어지기 위해 숨도 쉬지 않고 뛰기 시작했다. 주머니에서 전화기를 꺼내 여기저기 석방 소식을 알리기 시작했다. 


“나, 나왔어~ 나, 나왔어~”


“오 그래? 형 축하해. 그동안 고생 많았어. 내가 LA로 오는 비행이 지금 당장 끊을 테니까, LA에서 보자 형. 축하해~”


태어나서 그렇게 기분이 좋았던 적이 없었던 것 같다. 한 30분정도 정신없이 걷다보니, 점점 미국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난 뭐부터 해야할지 재빨리 생각이 들지 않았다. 멀리 주유소가 보였다. 걸음을 서둘러 주유소로 들어갔고, 한 달 반 동안 참았던 담배를 사기로 했다.


“말보로 라이트 하나랑 라이타 하나만 주세요.”


“아이디 좀 보여주세요~”


난 이민국에서 준 아이디를 꺼내 보이며, 내 모든 이빨을 보이며 환하게 웃고 있었다.


“오~ 오늘 출소 했나 보네요? 내가 딴 거는 못 해주고 콜라 하나 집어 오세요. 출소기념 선물입니다.”


난 담배를 입에 물고, 주유소 근처에 있는 철길에 걸터앉아서 내가 느낄 수 있는 최대한의 자유를 만끽했다. 담배를 깊게 한 모금 피우고, 연기를 내뿜으면서 그동안의 서러움을 모두 내보내고 싶었다. 동생에게 문자가 왔다. 엘에이로 향하는 비행기를 끊었다는 문자였고 난 공항을 가기 위해서 버스정류장을 검색하고 있었다. 그때 샌프란에 있는 친구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나왔어?”


“응~ 나 나와서 지금 LA로 가려고. 그동안 고마웠어. 엘에이 가서 정신 좀 차리고 너 만나러 갈께.”


“어딜 간다고? LA를 간다고? 야, 장난하냐? 너 지금 샌프란으로 와야 돼.”


“응?? 왜?”


친구는 보석금을 내는 과정을 나에게 다시 설명을 해 주었다. 보석금을 내면서 내가 향하는 주소를 자기집으로 해 놓았기 때문에, 난 다른 곳이 아닌 자기 집으로 와야 한다고 했다. 비행기를 취소하고, 당장 샌프란으로 오라는 얘기였다. 난 동생에게 전화를 하고, 샌프란으로 가야겠다는 얘길 했다. 동생은 비행기를 취소하고 샌프란행 비행기를 다시 알아봐 주었다. 비행기 값이 장난이 아니었다. LA행은 100불 정도였는데 샌프란 행은 500불이 넘었다.


난 친구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 비행기 값이 너무 비싼데, LA 갔다가 가면 안 되는 건가? 라고 말을 했더니,


"너 돈도 없는데 뭔 비행기야? 그냥 그레이 하운드 타고 와."


난 다시 동생에게 전화를 걸어 그레이 하운드 예매를 부탁을 했다. 출발시간은 다음날 오후였다. 큰일이었다. 버스를 타려면 하루를 버텨야 하는데, 현금도 없었고 카드 또한 없었다. 내 주머니에 들어있는 돈은, 캐나다 달러 700불, 미국달러 20불정도. 이렇게나 빨리 현실의 벽에 부딪힐 줄이야. 어떻게든 하루를 버텨야 하는데 시간은 흐르고 흘러서 어느덧 어두워졌다. 난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다. 그날따라 비는 왜 왔는지. 비는 점점 굵어지기 시작했고, 난 공항버스 정류장에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다.


캐나다 달러 700불을 바꿀 수 있는 방법도 없었고, 이렇다 할 방법이 전혀 생각이 나질 않았다. 난 전화기를 들고, 그레이 하운드 정류장을 찾기 시작을 했다. 정류소 의자에서 하루 자야겠다는 생각으로 정류장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비는 점점 더 거세지기 시작했고, 도착한 그레이 하운드 정류장은 이미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아... 어떻게 하냐. 아 어떻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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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버스 정류장 앞에서 거세지는 빗줄기를 쳐다보며 한참을 서 있었다. 시애틀의 7, 8, 9월의 날씨는 정말 환상이다. 수용소에서 산책을 나갈 때마다 그렇게 좋았던 날씨가 왜 출소 하는 날 비가 그렇게나 많이 왔는지. 주머니를 뒤져보니, 캐나다 달러 700불, 담배 사고 남은 10불 남짓한 돈. 버스는 다음날 오후시간인데 하루를 어디서 버티나. 난 어떻게든 하루를 버텨야 했다. 캐나다 달러 700불을 들고 택시들이 줄을 서 있는 곳으로 향했다.


“저기, 나 캐나다 달러 700불이 있는데, 미화 70불이랑 바꾸면 안될까?”


택시 기사는 전화기를 꺼내 들고 뭔가를 검색 하더니, 흔쾌히 바꾸어 주었다. 그 후에 친구의 제보로 알게 되었지만, 700불은 미화 540불 정도 되는 돈이었다. 어떻게 그걸 몰랐을까. 난 80불 정도 되는 돈을 들고 비를 맞으며 미친듯이 뛰어다녔다. 근처에 있는 모텔을 찾기 위해서.


비가 오고 양말도 신지 않은 채 샌달을 신고 있었기 때문에 발가락은 감각을 잃은 지 오래요, 물기로 인해서 발바닥은 샌들 위에서 미친듯이 춤을 추고 있었다. 저 멀리 'DAYs Inn'이 보였다. 미국 깃발이 크게 달려 있었고, 깨끗한 빨강색 양탄자가 깔려있는 모텔입구. 짧은 머리카락 사이로 빗물이 뚝뚝 떨어지고, 걷는 발걸음마다 마르지 않은 빗물 자국이 따라오고, 영락없는 거지 꼴이었다. 그래도 카운터 직원은 그런 날 반갑게 맞아 주었다.


“어떻게 도와드릴까요?”


“저... 방이 하루에 얼마일까요?”


“혼자 쓰시는 거면 150불입니다.”


“아... 제가 80불 정도 있는데, 이 돈으로 하루만 묶을 수 있을까요? 수용소에서 오늘 나왔는데, 카드도 없고, 아무것도 없습니다.”


직원은 눈이 동그래져서 나를 위 아래로 쳐다보았다.


“음... 미안하지만 그런 방이 없는데요.”


오히려 미안해하는 직원에게 더 미안했고, 난 고개를 끄덕거리고 있었다. 어떤 방법이 없을까 하는 눈으로 직원을 바라 보았다. 직원은 잠시만 기다리라며 어딘가에 전화를 걸었다. 전화는 호텔 매니져에게 거는 것 같았다. 직원은 날 자신의 친구라고 말을 하며 직원 할인에 대해 얘기하는 것 같았다. 전화를 끊고 날 다시 쳐다보았다.


“내가 직원할인을 물어봤는데, 그렇게 해도 100불이네. 미안해.”


“그럼 혹시, 내가 80불을 줄 테니까, 로비에 있는 소파에서 내일 아침까지만 있다가 나갈 수 없을까?"


“사정은 잘 알겠지만... 고객이 많이 다니는 곳이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가 없어.”


“아, 돈이 얼마가 있다고? 여기서 한 10분 거리에 60불 정도 하는 모텔이 있을거야. 거기 한번 가 볼래?”


난 대충 직원에게 그 모텔의 위치를 듣고, 호텔을 빠져 나왔다. 비는 점점 더 거세지고 있었다. 난 옷이 다 젖은 채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난 담배를 하나 피우고, 가로등도 하나 없는 어두운 골목을 향해서 미친듯이 뛰었다. 굵은 빗줄기에 앞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빗물이 미끄러져 내리는 안경을 벗자, 비를 쫄딱 맞고 있는 외국인 커플이 보였다. 남자는 작은 박스 조가리로 여자의 머리를 가려주고 있었고, 여자는 지나가려 하는 날 불러 세웠다.


“저기, 나 아기를 가진 임산분데."


하며 나에게 말을 걸었다.


겉으로 봐도 내가 불쌍해 보인다. 그들은 양말이라도 신었지. 나보다 두꺼운 후드티도 입었고, 어깨에는 비닐 봉지를 두르고 옷도 그렇게 많이 젖어 있지 않은 생태였고, 난 물에 들어갔다 온 사람 마냥, 온 몸이 다 젖어 있었다. 그들은 자기보다 더 거지같은 나에게 담배 2개비와 10불 정도 적선을 요구했다.


내가 왜 그랬을까. 난 그 여자의 배를 보고, 밥을 먹지 못했다는 소릴 듣고 80불 조금 넘는 돈 중에 10불을 꺼내주고, 담배도 4개비나 주었다. 미친놈 같지만 그렇게 해주고 싶었다. 그들은 '고맙다 고맙다' 말을 하며 반대 방향으로 천천히 사라졌다.


또 정신없이 뛰었다. 골목길을 돌아서니 큰 길 한쪽에 빨강색 네온사인이 떨어질 듯 말 듯 'MOTEL' 중 M자가 꺼져 있는 낡은 모텔을 찾았다. 오피스에는 오픈 사인이 켜져 있었고, 모텔 앞은 흑인 두 세명이 대마초를 피우며 시시덕 거리고 있었다. 시애틀은 대마초가 합법인 동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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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천천히 오피스 안으로 들어갔다. 작은 오피스 벽에는 손글씨로 모텔 가격이 적혀 있었는데, 직원이 보이질 않았다.


“계세요? 저기요~”


불러도 대답이 없었다. 오피스를 둘러보니 작은 벨 하나가 보였다. 벨을 누르자, 흰 백발에 돋보기를 쓴 할아버지가 입을 오물거리며, “무슨일입니까?” 하며 카운터 밑에서 수욱 올라왔다.


저... 방이 필요한데요.”


“택스까지 해서 56불 입니다.”


와~ 야르~ 방값을 계산하고 어느정도 돈이 남기까지 했다.


“아이디 좀 보여주세요. 쩝쩝.”


난 이민국에서 준 아이디를 보여주며, 직원을 쳐다 보았다. 직원은 내 인포메이션을 그대로 적고, 택스는 자신이 대신 내준다며, 거기서 방값을 깎아 주었다. 난 방 앞에 서서, 담배 한 모금을 피우고 '오늘 하루가 정말 길구나' 생각하며 키를 돌리고 방문을 열었다.


문을 열자마자, 담배 찌든 냄새, 100년은 넘어보이는 다 깨진 가구들, 에일리언 뒤통수를 가진 작은 화면의 티비, 냉장고는 왜 그리 화가났는지 위잉 소리를 더욱 크게 내며 불만을 뿜고 있었다. 그래도 난 그 방을 보고,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수 십일만에 처음 혼자 나만의 공간에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날 웃게 만들었다.


젖은 옷을 싸그리 다 벗고, 곧바로 화장실로 들어갔다. 샤워기 물을 틀고 한참을 기다리니, 뜨거운 물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 뜨거운 물 만으로도 난 웃음을 질 수밖에 없었다. 누구도 쳐다보지 않는 샤워, 오랜만에 맡아보는 좋은 향의 샴푸. 그땐 어느 것 하나도 나에게는 소중했었다.


“아빠? 저 오늘 나왔어요."


“어~ 아들 고생했어. 이제 미국에서 잘 살 수 있는 거야? 아빠 걱정 안 해도 되지?”


난 수용소의 모든 생활을 부모님에게 말을 한 적이 없다. 아니, 가족 누구에게도 말을 하지 않았다. 그저 예전에 불체를 했던 기록때문에, 잠시 문제가 생겼던 거고, 이제 잘 풀려서 미국에 합법적으로 있을 수 있게 되었다고 말을 했었기 때문에. 난 부모님의 목소리를 듣고 울기 시작했지만, 전화로는 절대 티를 내지 않았다. 난 더더욱 아빠에게 수용소에 대해서 얘길 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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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오기 전 한국.


사이렌 소리가 요란하게 울리고 있고, 119 소방대원은 내 얼굴을 정신없이 때리며, "정신 차려요, 정신 차려요"를 외치고 있었다. 난 정신을 잃은 적이 없는데... 내 얇은 팔목에는 링거 바늘이 꼽혀 있었고, 응급실로 실려와 있었다.


“자, 위 세척을 시작할 테니까, 옆으로 누우세요.”


말과 함께 긴 호스를 코에 집어 넣고, 호스 끝에 끼워져 있는 주사기를 힘껏 당기기 시작했다. 고로로록 하는 소리와 함께 코 끝에서 한입에 털어 넣은 농약 찌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뭐, 많이 마시지도 않았네. 아니 멀쩡하게 생긴 사람이 왜 죽으려고해?”


뭐라 뭐라 중얼 거리며, 나를 쳐다보며 한심한듯 내려다 보았다. 난 고개를 돌려, 힘없이 누워 있었다. 그때, 응급실로 정신없이 뛰어 들어오는 아버지, 어머니, 누나, 매형이 보였고, 가족들은 쉽게 내가 누워있는 쪽으로 오지 못했다. 갑작스런 파혼, 낙태, 어차피 미련없는 세상. 죽고만 싶었다.


응급조치가 끝이나고, 난 병실로 옮겨졌다. 너무 힘들었던 탓일까. 나도 모르게 잠이 들고 말았다. 잠이 어느정도 깨었을 때, 작은 소리가 내 귓가에 들렸다.


“아들아. 살아줘서 고맙다. 아빠가 이렇게나마 너에게 얘길 해서 맘이 후련하고, 30년이 넘도록 난 우리 아들을 사랑하지 않은 적이 없어. 이런 생각을 할 정도로 힘이 들었는데 그걸 몰랐구나. 의사가 조금만 늦었어도 목소리를 잃을 뻔 했다는 얘길 듣고 아빠는 한참을 눈물을 흘렸는데... 이렇게 이쁘게 자고 있는 우리 아들에게 너무 고맙네. 살아줘서 너무 고맙다.”


난 눈을 뜰 수가 없었다. 몸을 옆으로 돌려 한없이 눈물을 흘렸다. 부모님께 이런 못을 박다니. 이런 이유에서인지. 난 모든 걸 숨길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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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시애틀 모텔.


시간은 10시가 훌쩍 넘은 시간이었다. 밖은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다. 난 오랜만에 넓은 침대에서, 누구의 감시도 없는 나만의 공간에서 편히 쉴 수 있었다. 아침이 밝아오고, 난 버스정류장을 향해서 걸어갔다. 뭔지 모를 기쁨에 콧노래가 나오고, 전날과는 다르게, 날씨도 꽤 맑았다. 버스 시간이 다가오자, 난 티켓을 들고 버스에 탈 준비하고 있었다.


난 예전에 시애틀에서 운전면허 브로커를 한적이 있다. 시애틀에서 LA까지 차로 여러 번 다녔던 적이 있다. 한 번도 쉬지 않고 운전을 하면 18시간 정도 걸리니, 당연히 버스도 그정도 시간이 걸릴 거라 생각을 했다. 주머니에 남은 돈은 5불 정도. 전날에도 제대로 먹지 못했었기때문에 배는 고팠지만, 5불 조금 넘는 돈으로는 뭘 할 수가 없었다. 저 멀리서 은색 하운드가 그려져 있는 큰 버스가 내 앞으로 들어오고 있었다난  5불로 물 한 통, 초코바 2개를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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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이제 버스탄다~ 샌프란 들렸다가 바로 LA로 갈 테니까 기다려~”


“형, 근데 29시간 버스 타야 하는데 괜찮겠어?”


“응? 29시간? 뭔 소리야?”


“형, 티켓 확인 안 했어? 샌프란으로 가는 버스가 한 가지 종류 밖에 없고, 29시간 걸려.”


아, 큰일이다. 버스를 29시간이나 어떻게 타나. 난 그제서야 티켓을 꺼내들고 확인을 했다. 버스는 한 번에 샌프란으로 가는 게 아니었고, 한국으로 따지면 완행 버스였다. 가는 곳마다 대기 시간이 적게는 2시간, 길게는 6시간 정도 대기해야 하는 버스였다. 지금도 배가 고파 죽겠는데 29시간을 어떻게 버티나.


일단 버스에 올라탔다. 버스는 내 자리만 빼고, 모든 좌석이 꽉 차 있었다. 내 자리 옆은 금발의 백인 여성이 파카를 덮고 잠을 자고 있었다. 버스는 날 태우자 마자 바로 출발하기 시작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그냥 모든 걸 기분좋게 생각하자는 나의 위로 주문이었다.


버스는 출발과 동시에 I-5 고속도로에 올랐고, 난 창밖을 힐끔 힐끔 보면서 다리를 동동 거렸다. 너무 기분이 좋았다. 다시는 올 수 없었던 시애틀. 차 안에서 구경했지만 그래도 기분이 좋았다. 기분이 좋은것도 잠시, 에어컨이 너무 쎄게 나오는 것 같았다. 옷이 덜 말라서 그런가 나의 몸은 금방 차가워지기 시작했고, 에어컨은 나를 향해서 무서운 바람을 뿜어대기 시작했다.


“저기 죄송한데 에어컨 좀 줄여 주시면 안 될까요?”


기사는 귀찮은 듯이,


“여기 당신만 있는 거 아니잖아?”


말하곤 툴툴거리며 에어컨을 만지기 시작했다. 띡, 띡. 에어컨은 갑자기 굉음을 내면서 더 차가운 바람을 내뿜기 시작했다.


“아, 나도 오늘 이 버스 처음 운전하기 때문에 잘 모르겠어.”


라는 말과 함께 귀찮으니 말 걸지 말라는 식으로 고개를 돌려 운전대를 더 꽉 잡았다. 난 머리 위에 있는 에어컨 구멍을 잠그고 벌벌 떨기 시작했다. 주변을 둘러보니 모두 다 잠바를 하나씩 두르고 있었다. 옆에 앉아 있던 백인은 추웠는지 잠바를 얼굴 끝까지 덮고 움직이지도 않았다. 티켓을 확인하니, 6시간 정도 달려야 했고, 처음 도착지는 포틀랜드였다.


6시간 동안 난 별 짓을 다 했다. 손을 비비고, 티셔츠 안에 얼굴을 넣고 몸으로 따뜻한 입김을 불어 넣고, 츄리닝 바지 안에 팔을 집어넣고 다리와 손바닥을 마찰시키며 열을 냈다.


'여기서 잠이 들면 더 추울거야. 절대 잠들지 말자'


자고 일어나면 추울걸 아니까. 어찌나 추운지 입술이 점점 새파래지고 있었다. 버스는 언제 도착할지도 모르는 포틀랜드를 향해서 가고 있었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난 버스기사에게 에어컨이 춥다고 더 이상 말도 하지 못했다. 수용소에서 너무나 작아져 있었기 때문이었는지 모르겠다.


어찌어찌 어떻게 버텼는지도 모르겠고, 어느새 버스는 포틀랜드에 진입하고 있었다. 포틀랜드. 시애틀 바로 밑에 있는 동네이며, 유일하게 서부 쪽에서 택스가 없는 동네였기 때문에 시애틀에 살던 당시, 전자기기를 사러 몇번 왔던 동네이고, LA에서 차를 타고 시애틀을 가면서 몇번 들렀던 적이 있는 도시다. 창밖은 어느새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다. 난 몸을 벌벌 떨면서 차에서 내리고 있었다. 여기서의 대기시간은 2시간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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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에서 내리니 추운 게 어느 정도 괜찮아졌다. 바로 화장실로 뛰어가 뜨거운 물을 틀고 손을 녹이기 시작했다. 버스 정류장에는 거지들이 참 많았다. 난 담배를 꺼내들고 한모금 깊게 내뿜었고 거지들은 날 쳐다보았다. 그들의 표정은 아시아 거지는 처음보는 듯한 표정이었다.


예전에 서울역에서 담배를 피려고 꺼내는 순간, 비둘기보다 더 빨리 내앞에서 담배를 구걸하던 거지들이 생각이 났다. 난 순간, '어? 거지들이 나에게 담배를 달라고 하지 않을까? 몇 개비 없는데' 생각했다. 다행히 거지도 거지는 알아본다. 날 쳐다보더니 가벼운 목 인사를 하며 날 불쌍하게 바라봤다.


난 담배를 태우고 버스 대기실에 앉아서 멍하니 티브이만 쳐다보고 있었다. 뒤를 돌아보니, 자판기에 진열되어 있는 과자 한 봉지가 2불. 내 주머니 안에 있는 돈은 1불 50정도. 과자 한 봉지 살수 없는. 어찌어찌 2시간을 버티고 버스를 다시 탈 시간이 되었다. 난 속으로 '아까 탄 버스가 아니였음 좋겠다, 좋겠다' 생각을 했지만 아까 탄 버스 고대로 똑같은 자리. 대신 버스 기사가 바뀌어 있었다.


“저기 에어컨이 너무 쎈데... 에어컨 좀 줄여주심 안될까요?”


“아, 잠시만요. 저도 이 버스를 잘 모르기 때문에... 엔지니어에게 말해 볼게요.”


기사는 자신도 추웠는지 엔지니어를 불렀고, 엔지니어가 와서 에어컨을 보더니,


“어? 이거 버튼이 나갔는데요. 다음 정류장 세크라멘토에서 부르세요.”


하면서 무책임하게 버스를 떠났다. 해는 떨어진 지 오래요. 난 덮을 잠바도 없고 이제 9시간을 가야 하는데 기사는 정말 얄밉게도 휴지로 자신 앞에 있는 에어컨 구멍을 틀어 막은 채로 버스를 움직였다. 내 입술은 버스를 탄 지 10분도 되지 않아서 파래져 있었고, 이빨은 너무 빨리 떨려서 딱딱 거리는 소리가 멈추질 않았다.


더이상 즐겁지가 않았다.





지난 기사


1편 밀입국

2편 국경을 넘어라

3편 미국 감옥에 들어가다

4편 감방 생활

5편 익숙해진 감방생활

6편 익숙해진 감방생활 2

7편 누군가 널 죽이려 한다던가

8편 거짓 증언

9편 망명 신청

10편 석방 명령서





길가이버


편집 : 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