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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시대는 제, 초, 연, 한, 조, 위, 진의 전국칠웅이 천하를 다투고 신분제 또한 노예제에서 봉건제로 넘어가는 격동의 시기였어. 모든 나라가 영웅을 필요로 했기에, 어제의 적장이 오늘의 우리 팀 에이스가 될 수도 있었어. 프로 야구의 트레이드처럼 말이야. 이 전국시대에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오기(吳起)라는 자가 있었으니. 이자가 평생에 걸쳐 출세를 위해 부린 오기(傲氣)를 살펴보자고.

 

오기는 기원전 440년에 태어나 381년에 세상을 떠난 것으로 추정되고 있어. 앞선 이야기 중의 하나인 앉은뱅이 천재 병법가 손빈의 라이벌이라 불릴 정도로 병법의 대가지만 그보다 40년 정도 먼저 세상을 떠났어. 오기의 집착에 가까운 집념을 볼 수 있는 청년 시절 일화가 있어.

 

“오기야! 오늘 우리 아들이 많이 늦나 보구나. 애가 요즘 워낙 바빠서 그만 너와의 저녁 약속을 깜빡했나 보다. 오늘은 그만 늦었으니 너도 집으로 돌아가는 게 어떻겠니?”

 

“아닙니다. 아주머니. 저는 내일까지라도 기다릴 테니, 신경 쓰지 말고 주무셔요.”

 

‘아. 그 인간 진짜. 지독하네. 내가 어떻게 신경을 안 쓰겠니! 이 눈치 없는 인간아!’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동네에서 이미 집착남으로 소문난 오기의 성격을 알기에 친구의 어머니는 자기 방으로 돌아갔어. 다음 날 아침 오기와의 약속을 깜빡하고 돌아온 친구는 깜짝 놀라고 말았어.

 

“오... 오기야... 진짜 미안하다. 내가 미쳤었다. 너와의 약속을 깜빡하다니. 그래도 남의 집에서, 그것도 밥상에서 하루 동안 나를 기다릴 줄은 몰랐다. 님 좀 짱인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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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오기가 드디어 인생의 목표를 정했어. 집안의 그 누구도 앞만 보고 달리는 오기를 제어할 수 없었어. 부동산을 팔아가며 출세를 위해 로비를 하는 아들을 보다 못한 어머니가 나서서 한마디를 했어.

 

“얘, 오기야! 출세도 좋지만 돈을 너무 많이 쓰는 게 아니냐? 이러다 우리 모자 길거리에 나앉는 건 아닌지 모르겠구나.”

 

“어머님! 걱정 마세요. 이제 고지가 보입니다. 어머님이 잘 몰라서 불안해하실 수도 있지만 지금은 전국시대입니다. 약을 칠해야 할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닙니다. 투자 대비 막대한 보상을 받을 날이 머지않았습니다.”

 

오기의 예상과 달리 두 모자는 결국 길바닥에 나앉게 되었고, 동네 사람들은 대놓고 오기를 비웃었어.

 

“뚝! 울음 그치지 않을 거야? 너 엄마 말 안 듣고 공부 안 하면 저기 저 오기 아저씨처럼 된다고 몇 번이나 말했어.”

 

"어휴~ 그 돈 그냥 부동산에 박아 두기만 했어도 평생 월세 받고 살았을 텐데. 어머니 말 안 듣고 괜한 오기를 부리더니. 꼴좋다. 그 많던 재산 다 날리기도 어려운데 말이야. 그것도 재주는 재주야. 낄낄낄.”

 

잘나가던 부잣집 도련님의 실패가 고소할 수도 있었지만, 남의 불행에 너무 심취하다 보면 심각한 역풍을 맞게 되는 법. 특히 그 상대가 오기라면 더욱 입조심을 했어야 했어. 오기는 자신에게 조롱의 눈빛과 악플을 단 사람들을 데스노트에 차곡차곡 적어 놓고 있었어. 데스노트에 30여 명의 이름이 꽉 채워진 어느 날 새벽 오기는 온 마을을 돌며 그들을 다 죽여 버렸다고 해. 이건 좀 심하게 아니지 않나? 이 인간 진짜! 졸지에 연쇄 살인범이 된 오기는 떠나기 전 어머니에게 작별 인사를 하러 들렀어.

 

“어머니! 반드시 성공하여 돌아오겠습니다. 출세하기 전까지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돌아오지 않겠습니다.”

 

“오냐. 내 아들 오기야. 비록 나랑 네 아버지는 머리가 안 좋지만 너는 머리가 좋단다. 공부를 안 해서 그렇지 하면 잘 할 것이다.”

 

오기 어머니도 심각한 아들 바보였어. 이런 어머니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오기는 갑자기 자신의 팔을 물어뜯고 전의를 다지며 떠났다고 해. 흠... 확실히 정상이 아니야. 굳이 어머니 앞에서 피를 보이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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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기는 무서운 독기를 품고 공자의 제자 중 한 명인 증자 밑으로 살기를 숨기고 들어갔어. 학문에 대한 탐구욕 & 지적 호기심과 세상에 대한 애정은 1도 없이 공부를 통한 출세의 집념 하나만으로 인간성을 상실한 채 성적 장학생을 향해 가던 어느 날.

 

“오기야! 오기야! 어서 집으로! 고향집으로 돌아가 보거라. 어머님께서 돌아가셨다는 전갈이다. 참으로 애석하구나.”

 

“스승님! 저는 출세하기 전까지 이 책상에서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

 

“참으로 대단하구나. 너의 그 열정에 박수를 보낸다! 이럴 줄 알았냐? 이 싸가지없는 놈아! 넌 퇴학이야. 당장 여기서 나가. 이 천하의 배은망덕한 놈아! 내 대표 저서가 효경이다, 효경! 이놈아.”

 

증자가 아니라도 정신이 제대로 박힌 스승이었다면 오기의 파문 조치는 당연한 일이지 않았을까? 오기는 세상 사람들이 도대체 이해가 되지를 않았어.

 

‘아니, 남자가 야망이 있어야 하는 거 아냐? 그런 과정 중에 가족이나 주변인의 희생은 당연한 부산물이지. 내 부모 상에 내가 안 가겠다는데 자기들이 왜 난리인지. 에잇, 유교 공부는 나랑 영 맞지가 않다. 오늘부터 노나라로 넘어가서 병법을 공부해야겠다.’

 

노나라로 넘어간 오기는 이때부터 독학으로 각종 병서를 섭렵했어. 공부를 하는 와중에도 연애할 시간은 있는 법. 제나라의 여인과 결혼까지 하게 되었어. 결혼을 통해 안정된 환경 속에서 오기 체질에 더 맞는 병법을 공부하다 보니 모든 일이 술술 풀려나갔어. 노나라 정부에서 요직을 맡게 되었고 마침내 일생일대의 기회가 찾아왔어. 그건 바로 제나라의 대대적인 공격이었어. 오기가 몸담고 있던 노나라 수뇌부에서는 비상 대책 회의가 열렸지. 다름 아닌 제나라의 공격에 대항할 노나라 총사령관을 뽑는 일로 말이야.

 

“제나라가 객관적 전력이 우리 노나라보다 앞서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일이오. 이 절체절명의 위기를 타개할 장군을 빨리 추천해 보시오.”

 

“오기만 한 자가 없는 줄로 아뢰옵니다. 짧은 기간이지만 우리 노나라에서 그가 보여 준 탁월한 역량을 감안한다면 다른 대안은 없는 줄로 아뢰옵니다.”

 

“흠. 역시... 총사령관은 오기뿐이란 말이오. 허나 그 자의 아내가 제나라 사람 아니오? 아무래도 아내의 친정 국가와 전쟁을 하다 보면 결정적인 순간에 판단력이 흐려지지 않겠소?”

 

비대위의 이런 분위기를 진작에 알고 있었던 오기는 제나라 사람인 자신의 아내를 단칼에 베어 버렸어. 계백 장군의 결단과는 사뭇 다른 극도의 이기주의적인 행동이라 아니할 수 없어. 이 덕에 오기는 노나라의 총사령관으로 임명되었고, 유일한 재주를 발휘하여 전투에서 승리를 하고 돌아오게 되었는데!

 

노나라 비상 대책 위원회에서 마련한 전승 기념 파티 현장에서는 묘한 기류가 흐르고 있었어.

 

“난 그자가 영 맘에 안 들어. 아니 아무리 총사령관 자리가 탐이 난다고 해도 그렇지. 자기 아내를 그리하다니. 자네들 생각은 어때?”

 

“저희도 같은 생각입니다. 저희가 이번 기회에 뒷조사를 좀 해 봤더니, 글쎄 증자 밑에서 공부하던 도중 어머님 상에도 참석을 안 했다고 합니다.”

 

“됐다. 됐어. 코드명 토사구팽을 실행하거라.”

 

이렇게 노나라에서도 지나친 오기로 인해 밀려난 오기는 지치거나 낙담하지 않고 인생의 목표인 출세를 위해 이번에는 위나라로 국적을 갈아탔어.

 

‘이왕이면 전국칠웅 중 최강인 위나라로 가서 출세를 하자. 이제 장군 따위는 내 인생의 목표가 아니다. 야전에서 신뢰와 신망을 얻어 재상, 재상이 될 것이다.’

 

여러분도 눈치챘겠지만 오기가 뭐든 하면 엄청 열심히 하잖아. 오기가 위나라 군대에서 있었던 일화를 잠시 소개할게. 어느 날 병사 하나가 등에 난 악성 종기로 고생을 하고 있었어. 이때 사단장급의 오기가 사병의 등에 난 종기를 입을 대고 빨아 대기 시작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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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장군님... 황공하옵니다.”

 

“야전에서는 모두가 같은 전우일 뿐이다. 나는 너희들과 같은 옷감으로 만든 옷을 입고, 같은 음식만 먹을 것이다. 이런 나를 믿고 따라서 얻게 된 공도 함께 나눌 것이다.”

 

오기가 이런 식으로 병사들의 마음을 얻었으니, 오기의 군대는 하나의 소울을 가진 원팀으로 거듭날 수 있었어. 당연히 팀 성적이 좋았겠지? 위나라에 머무는 27년의 시간 동안 오기는 70여 차례의 전투에서 10여 회의 무승부를 포함, 단 한 번도 지지 않는 놀라운 승률을 보였어. 하지만 위나라의 절대권력을 잡고 있던 보수 세력에 의해 그의 출세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어. 오기 스스로도 위나라에서 재상의 자리를 잡기는 어렵다는 판단을 하고 있었고, 때마침 절대권력이 자신을 제거할 움직임을 보이자 그는 미련 없이 위나라를 등졌어. 이쯤 되면 오기도 지치지 않았을까?

 

‘아! 참으로 고되구나. 정녕 내 능력은 국방부 장관이 한계란 말인가? 죽기 전에 국무총리 한 번 해봐야 할 텐데, 내 나이 어느새 환갑! 여기 초나라에서 인생의 마지막 승부수를 던져 보리다!’

 

이 당시 중원이라 함은 황하강 주변 지역이고, 초나라는 양자강 유역이라 빅리그라고는 볼 수 없는 지역이었어. 그렇기에 초나라는 중원에서 실력 하나만큼은 명성을 떨치고 있던 오기를 파격적으로 국무총리급으로 맞이하게 되었어.

 

“오기 재상! 오늘부터 당신은 이 초나라의 도왕으로부터 전권을 위임받았소이다. 험난한 전국시대에 우리 초나라의 부국강병이 그대 손에 달려 있소이다. 업무 보고를 받아 보면 알겠소만 우리 초나라는 아직도 왕의 친인척들이 득세를 하는 춘추시대에 갇혀 살고 있소. 당신이 우리 초나라를 실력 위주의 전국시대로 입문시켜 주시오.”

 

오기는 다음 날부터 대대적이고 파격적인 개혁을 단행했어.

 

“오늘 이 시간부로 우리 초나라에는 왕 이외의 기득권은 없습니다! 고인물에서 나는 썩은 냄새가 진동을 합니다. 오직 초나라의 부국강병을 위해 쓸데없는 부분에 지출을 최대한으로 줄여 국방력 강화와 경제 활성화에 매진을 할 것입니다.”

 

요즘으로 치면 대기업이나 그들과 결탁한 정계 및 다이아몬드 수저들의 넘치는 이익을 빼앗아 국가 발전에 사용하는 조치를 과감하게 실시했어. 듣기만 해도 속은 후련하지만 어째 오기의 목숨이 위태로워 보이지? 오기의 개혁 드라이브는 2년 동안 이어졌어.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단 하나! 그를 전폭적으로 지지하던 초나라의 도왕이 건재했기 때문이야.

 

그러던 어느 날, 오기의 최대 스폰서 도왕이 그만 세상을 떠나고 말았어. 오기는 기득권 세력들이 가장 먼저 자기를 죽이러 올 것이라고 예상하고 왕의 시신이 있는 궁으로 향했어.

 

‘내 인생 마지막 병법이다. 나는 오늘 죽겠지만 나를 죽이러 온 너희들도 결코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

 

“내 오기 이놈의 머리통에 직접 화살을 쏠 것이요. 어디 감히 근본도 없는 놈이.”

 

“그럽시다. 군사들을 동원하면 성에 차지 않아요. 우리 손으로 직접 해결합시다. 그동안 당한 화풀이는 직접 하고 싶소. 다들 화살 하나씩 챙기셨지요? 병사들이 이미 오기 주위를 포위하고 있으니 마음 놓고 양궁 한 판 합시다.”

 

분노에 차 오기를 직접 죽이러 온 기득권 세력들은 오기가 썩소를 지으며 자신들을 노려보자 눈이 완전히 뒤집혀 화살을 마구 날렸어. 그 순간 오기는 왕의 시체로 몸을 날렸고, 수많은 화살들은 오기뿐만 아니라 왕의 시신에도 꽂혔어. 아무리 귀족들이라도 왕의 시신에 화살을 쏜 자는 죽음을 면할 수 없었어. 마지막까지 천재 병법가다운 기지를 발휘하고 죽음을 맞이한 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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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인생을 돌아보며 불쌍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나뿐인 건가? 미련한 사람. 행복은 멀리 있지 않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