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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일본의 진주만 공습은 한인들을 활용한 진공작전에 일대 변화를 가져오게 된다.

 

적의 적은 친구다. 게다가 친구가 우리보다 많은 분노를 가지고 있다면? 우리의 절친이 있다.”

 

1942 1 COI측(1편에서 말한 CIA의 전신. COI->OSS->CIA라는 흐름으로 기억하자)은 중국 전선을 통해 특수공작 비밀첩보활동 계획을 준비한다. 이때한국인 활용하겠다는 복안을 내놓게 된다. 연락 지휘체계가 걸렸는데, 가장 강력한 대안이 바로이승만이었다.

 

한인 저항세력의 구심점으로 이승만을 대체할 만한 대안은 없다.”

 

( 대목은 염두에 둬야 것이다. 한인들의 요구도 있었다는 대목이다. 일본과의 전쟁에 참전하겠다는 목소리가 미국 한인사회에서 꾸준히 제기되고 있었다. 문제는 한인들을 대표하는 인물을 누구로 정할지에 대한선택이었는데, 이승만의 화려한이력 한인 사회에서 차지하는 비중. 그리고 조직화된 세력은 COI 입장에서는 매력적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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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추 미국 교통정리가 끝나자 COI 중국으로 사절단을 파견하게 된다.

 

 

 

1.

 

1942 2 8 게일(Esson McDowell Gale) 대표로 사절단이 중국으로 건너간다. 이들의 목적은 간단한데, 한인들을 포섭하고, 이들의 조직을 확인한 후, 그들의작전 펼치기 위한 토대를 만드는 거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시도는 시작도 못해보고 실패했다. 당시 COI 시도는 시작 전부터 불안불안했는데,

 

한국인들을 활용한다고? 아마 장개석이 불편해 거야. 아니, 불편하다는 표현은 너무 순화한 같고, 그대로 말하자면... X 싫어할 거야.”

 

COI 등장에 가장 민감한 반응을 보인 COI 이전부터 정보자산을 관리하던 육군 군사정보국(MID)이었다. 전회에도 말했지만, 루즈벨트는 부처에 퍼져있던 정보조직체를 하나로 묶어보자는 취지였다.

 

그렇다면, COI 등장하기 전에 정보자산을 취득하고 분석하고 관리했던 조직체들 가장 힘이 강했던 곳이 어디였을까? 바로 육군 군사정보국이었다. 이들은 COI 등장하자마자상당히불편해 했다.

 

(지금도 미국의 정보 관계부처는 불편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미국의 정보 부처들은 하나의 사안에 대해 저마다의 논리와 증거를 가지고해석 해서 내놓고, 그걸 최고의사결정권자가 선택하는 방식이다. 그렇기에 서로 치열해 수밖에 없다)

 

COI 처음 한인들을 활용해 중국내 첩보 활동을 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자 육군 군사정보국은 난색을 표했다. 이건 기득권자의몽니 아니라객관적 사실 근간으로 조언이라 있었다. 육군 군사정보국(MID) 예하의 주중미군사사절단 단장 매그루더(John Magruder)준장은 대놓고 장개석이 허락하지 않을 거라 경고했었고, 이는 실제로 그렇게 됐다. 덤으로 부처에 있던정보관계 조직들이 슬슬 보이지 않는 태클을 걸었다(국무부나 합참에 있던 정보라인 사람들... 한국이나 미국이나 별반 다를 없다. 관료조직의 속성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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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우려질시 섞인 걱정 뒤로 하고 COI 야심차게 중국 땅에 발을 내딛었지만...

 

아니, 씨발 조선사람 데리고 한다고? 여긴 중국땅이야 중국땅!”

 

이승만? 이승만이 누군데? 조선인 대표하는 임시정부 라인 아냐? 우리가 임정 애들 아는데, 걔들 고생 X ! 근데 미국에서 탱자탱자 노는 이승만이를 붙인다고?”

 

광복군은 제끼는데? 내가 광복군을 아는데, 걔들도 고생 많이 ! 네들이 태평양 저쪽편에 있어서 아직 중국 돌아가는 상황을 모르나 본데, 여기선 임정이랑 광복군이 먹어줘.”

 

중국 반응은 듣보잡(?!) 이승만이 아니라 임시정부와 광복군쪽 라인과 연계하길 원했다. 당장 중국 땅에 미국 첩보조직, 그것도 중국인이 아니라 한인으로 구성된 첩보조직을 만든다는 것에 거부감을 가질 수밖에 없고(우리나라에 미국인들이 들어와서 일본인들로 구성된 첩보조직을 만든다고 해봐라 기분이 어떨까?), 그걸 허용한다 해도... 기왕이면 중국쪽과 계속 관계를 유지해 왔던(라인이 있던) 임시정부나 광복군 라인을 가지고 활동하길 원했던 중국이다.

 

중국 입장에선 당연한판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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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육군 군사정보국과 주중 미국 대사관에서는 COI 무모한 시도를 뜯어말렸다. 아니, 점잖게 충고했지만 COI 고집을 부렸고, 결국.

 

그래, 네들이 당해봐야 정신을 차리지. 그래 어디 하고 싶은대로 . 우리 COI 하고 싶은 해봐.”

 

라고 손을 놓게 된다. 문제는 당시 COI 이런첩보만을 고려해 한인들을 포섭하려 했던 아니란 거다. 신생조직이니 뭔가성과 보여야 한다는 조급함이 있었던 같다.

 

첩보 조직만 만들면 뭔가 심심하지 않아? 기껏 조직을 만들었는데...”

 

첩보 조직이 어디가 어때서요?”

 

그거 잘해봐야 서류 쪼가리 왔다 갔다 하는 거잖아. 뭔가 화려하게...”

 

화려하게요?”

 

그래, 신문 1면에 나올 있는 걸로 말야.”

 

뭔가 때려부셔야겠네요?”

 

그렇지!”

 

COI 1941 1월부터 만지작거리던 올리비아계획(Scheme Olivia) 끄집어냈다. 올리비아 계획은 계획 자체만 보면 한국인들의 심장을 요동치게 하는웅장한작전이었다.

 

일단 중국 정부가 있는 중경에다 COI 본부를 세우는 거야.”

 

그리구요?”

 

본부를 중심으로 조선, 만주, 화북지역에서 정보수집과 동시에...”

 

폭파 같은?”

 

그렇지! 일단 화려하잖아! 뭔가 보여줄 있고!”

 

그럼 병력은 어디서?”

 

당연힌 한국인이지! 일단 생긴 거도 비슷하고, 우리 배신할 걱정도 없고... 결정적으로 미국인이 아니잖아? 죽더라도 우리한테는 타격 없어. 정말 우리 거라니까! 공짜로 우리에게 충성하는 열혈병사들을 확보하는 거잖아!”

 

좋네요. 얘들 잘하면 일본까지 넘어가서 사보타주 있겠는데요?”

 

? 그건 무슨 소리야?”

 

얘들 일왕한테 폭탄 던지고, 중국에서도 뭐더라? 도시락 던져서 일본놈들 여럿 작살냈잖아요. 얘들 하나는... 어휴...”

 

그렇지! 일본으로 보낼 수도 있구나!! 그래! 그럼 완전 죽여주겠다!!”

 

COI 한인들로 구성된 특수부대... 아니, 파괴공작원(saboteurs) 양성과 활용계획을 실행에 옮기게 된다(당시 상당한 기대를 했다).

 

 

 

3.

 

이렇게 해서 중국주둔 미군사령관이었던 스틸웰(Joseph Stilwell) 부대구성과 훈련에 관한 협상에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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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이라는데... 걔들 믿을만해?”

 

, 정말 괜찮다니까 그러네! 걔들 도시락 던지고, 일왕한테 수류탄 던진 몰라?”

 

“...우리가 중국인들 보면, 도망다니고, 뇌물 받아쳐먹고 그래서

 

믿어 보라니까 그러네.”

 

오케이 네들이 그렇게까지 말하니까 믿어볼게. 그럼... 훈련교관으론... 그래, 아이플러(Carl Eifler)라고 괜찮은 하나 있어. 이놈이 애들 굴리는데는 일가견이 있어.”

 

땡큐 머치!”

 

여기서 또다시 등장하는 이승만이다.

 

중국 찍고 한국 거쳐서 일본에 들어가 폭탄을 던진다고? 여기에 내가 빠질 없지!”

 

에이, 박사는 나이도 있고... 뒤에서 애들이나 챙겨주세요.”

 

, 내가 가겠다는 아니고... 장석윤이라고 내가 데리고 있는데, 녀석도 부대에 넣어주세요. 애초에 계획이 나올수 있는게 우리 한인들 덕분이지 않습니까? 우리가 이렇게 하자고 안했으면 생각도 했을텐데... 우리도 우리 사람 넣어야죠. 그래요?”

 

, 그럽시다.”

 

이렇게 해서 장석윤을 포함해 20명의 COI 1기생이 모였다. 이들은 1942 3월에 소집돼 4월말까지 훈련에 들어갔다. 그리고 5월말 아시아로 넘어가게 된다.

 

바로 101지대(Special Unit Detachment 101) 탄생이다. (이들의 미국 문서상 공식 명칭은 'Task Force 5405-A'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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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목에서 주목해 봐야 하는 짧은훈련기간이다. 소수인원, 특수부대, 폭파활동 등등의 단어만 보고 지금의특전사특공대 느낌이 나겠지만, 훈련기간만 보자면 이들은... 우리가 생각하는그것과는 거리가 있었다.

 

그리고 부대  한인들의 생각도 약간 달랐다. 이승만의 심복이었던 장석윤은 부대에 들어갈 이승만의 편지를 가지고 있었는데, 이걸 당시 중경에 있었던 임시정부에 전달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당시 임시정부와 미국에 있었던 이승만의 한국위원부를 연계시킬 계획이었다). 나아가 장석윤은 중경에 있는 한인 청년들을 규합해 조직, 훈련시켜 한반도로 침투, 일본을 상대로 게릴라 작전을 구상 중이었다.

 

 

 

4.

 

, 문제는 101지대의 원대한 꿈과 달리 현실은 묘한방향으로 진행됐다는 거다.

 

너네들 중국 들어와!”

 

일단 중국 정부가 싫어했고, COI 고깝게 바라보던 중미협조기구(SACOSino-American Cooperative Organization) 반대 등등으로 중국 땅에 발도 붙이게 됐다. 그럼 101지대는 했던 걸까?

 

기왕 다른데서 싸우지?”

 

?”

 

네들 일본군이랑 싸우러 온거지?”

 

? 예.

 

여기 일본군 널렸어. 아무데나 쏴도 일본군있어.”

 

... 그럼, 저희들은 어디서 싸울까요?”

 

, 버마.”

 

101지대는 COI 직할부대 신분으로 버마로 들어가 일본군과 싸우게 됐다.

 

 

 

다음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