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12.7.월
앞으로 시도때도 엄씨, 본지 발행주기에 상관엄씨 문제만 발견되면 튀어나와 좃선벼룩의 농썰을 히떡 디비볼까 한다. 그럼 오늘은 그 둘째 편으로 좃선삐라 12월호에 실린 조깟제의 기사. 조깟제... 아니 그를 흠모했던 것에 대한 예우로 그의 필명을 불러주자. 본 우원에게는 아렷한 옛 기억으로 남아있는, 그리운 이름이다. 80년대 중후반 그의 명저 <사형수 오휘웅 이야기>나 <고문과 조작의 기술자들>을 밤새워 읽으며 감동받던 한 고등학생이 있었으니, 바로 본 우원이었다. 사회의 어두운 곳, 소외받은 곳에 향하던 조갑제의 따뜻한 마음과 날카로운 분노는 본 우원을 감동시켰고, 나도 언젠가는 조갑제같은 훌륭한 글쟁이가 되리라는 꿈에 젖기도 했다. 적어도 본 우원에게 조갑제는 글쟁이가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영광을 가져간 사람이다. 청소년기의 가치관은 매우 중요한가보다. 조갑제 덕택에 본 우원은 아직도 사형반대론자이며, 누가 사형선고를 받았다 하면 조갑제가 맨 먼저 머리속에 떠오르니 말이다. 본 우원은 조갑제를 좋아한다. 그래서 아무런 가책(?) 없이 마음껏 그를 씹을 수 있다. 좃선삐라 12월호 맨 앞에 나오는 그의 "편지"를 발기발기 찢어본다. 바콩, 주사파, 친북 잠시 바콩을 되돌아보자. 94년 여름의 공안정국은 우리 사회에서 대대손손 논의되어야 할 사회병리적 현상이었다. 북한을 인정하지도 않는 사노맹이 김정일의 지령을 받아 주사파를 조종한다는, 말도 안되고 증거도 없는 일방적 주장에 근거해서 온 사회가 한바탕 열병을 앓았다. 바콩을 비판하면 학생 눈치나 보는 비겁한 지식인이 되었고, 증거를 요구하라는 건 친북옹호 세력이라는 증거가 되었다 (그 한 예로... <증거요구는 망발> - 양호민, 94.7.26. 좃선일보 시론). 바콩이 증거를 들이대지 못해 난관에 처하자 대학교수라는 자들이 바콩을 "지지"하는 성명을 발표하고 나섰다. 지지할 게 따로 있지, 증거가 있냐 없냐 하는 사실관계를 지지하고 말고 하나? 바콩이 출마라도 했나? "용기있는 지식인" 바콩은 이후 계속된 발언으로 기천만원을 물어줘야 하게 되었고, 그때 재수없게 걸린 경상대의 소위 "좌경학자"들은 재판에서 승소했다. 우리가 익히 잘 아는 바이다. 그때 좃선일보는 사설에서 뭐라 했는지 살펴보자.
94년 7월 20일자 사설의 장엄한 대미부분이다. 즉, 참다운 진보는 친북에 있지 않고 자유민주주의의 심화에 있음을 좃선은 준엄히 설파하고 있다. 그로부터 4년후. 非 친북적 진보 지식인 최장집이 등장했다 (이제서야 공직을 맡았다). 무조건 친북으로 덮어씌우면 장땡이라고 생각했을 좃선일보가 이 새로운 사태에 얼마나 말이 헷갈리는지 보자. 그람시주의자 최장집이 친북이라고 몰아붙이는 건, 사자와 펭귄이 결혼했다는 것만큼이나 말이 안된다. 그람시와 그의 유령 물론 조갑제의 글 속에 최장집이라는 이름은 한 번도 안 나오지만 그 다음부터 온통 필자들이 "최장집=그람시=좌익혁명가"라는 도식을 성립시키려고 애쓰고 있으니, 이 글도 그 시리즈의 1번타자 격이다. 야구에서 1번타자라면 가장 정교한 타자다. "한방"은 없어도 쉽게 삼진은 당하지 않는다. 과연 얼마나 정교한지 보자.
멋있는 시작인 것 같지만 어째 좀 이상하다. 조갑제는 그람시 "유령"의 의미를 죽은자의 영혼(ghost)이나 허깨비(phantom), 혹은 심하게는 악령(demon) 같은 의미로 쓰고 싶어하는 것 같지만, 미안하게도 마르크스의 유령은 영어로는 spectre이다. 마르크스가 유령이라는 단어를 쓴 이유는, 각 국가의 기득권층이 막연하게 공포에 사로잡혀 있고 그들이 막는다 해도 결국 퍼져나갈 수 밖에 없다는 의미로, 그만큼 공산주의란 "필연적"이라는 뉘앙스를 전해주려 한 것이다. 나중에 말미에서 보겠지만 조갑제가 말하려는 바와 같은 "고리짝 사상", "현실 정합성 없는 이론" 이라는 뜻의 유령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 어쨌거나 좋다. 이건 어차피 은유적이고 문학적인 부분이니 그렇다 치자. 이 다음부터 약 6페이지... 세로쓰기와 한자의 벽을 넘은 6페이지는 길기도 하다... 에 걸쳐 그람시 사상에 대한 소개가 나와있다. 조갑제 같은 글빨이면 좀 재미있게 쓸 일이지, 보고싶어도 어려워서 볼 수가 없다. 특히 요런 문장을 만났을 때 나는 그만 책을 덮어버리고 싶었다.
씨바... 지금 뭐 강의하나? 표지에 나와있는 대로 <나라를 걱정하는 사람들>은 우국충정에서 기꺼이 강의를 들을지도 모르겠지만, 이런 말투를 보면 우국지사들이 끼리끼리 돌려읽는 전단같은 느낌도 든다. 달리 본지가 그들을 삐라라고 부르는 것이 아닌 게다. 본 우원이 그 삐라를 요약해 드리겠다.
나도 이제 조갑제의 어투를 흉내내자.
조갑제의 "편지" 아래는 8페이지 중 그람시 소개 부분을 뺀 뒷부분 나머지 약 2페이지 분량의 전문이다.
위에서 현혹 침투전파 장악 등과 같은 무서운 단어들을 좀 순화시켜 읽어보자. 조갑제는 마치 헤게모니 투쟁이 좌익 불순세력의 전유물인 것처럼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람시를 들먹이는 건 체제 전복을 노리는 빨갱이들의 행태라고 단정짓고 있다. 천만의 말씀이다. 한국 농담이 왜 창간되었나? 우익도 사상적으로 무장을 하자, 우익이여 총궐기하라, 뭐 이딴 구호들은 헤게모니 투쟁이 아니고 뭐란 말인가? 좃선삐라는 <나라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위안과 용기를 얻는 잡지>라고 한다. 자기들이 하는 건 건전한 것이고 남들이 하는 건 언론계에 <진지와 참호를 파고 침투>하는 것인가? 헤겔은 마르크스주의를 가능케 한 기반의 하나이지만, 헤겔주의자들은 극우부터 극좌까지 폭넓게 존재했다. 프랑스의 극우주의인 신우파운동(Nouvelle Droite mouvement)같은 데서도 공공연히 그람시를 들먹인다. 중요한 건 어느 사상가를 인용한다는 게 아니라 거기에서 무엇을 배우는가이다. 조갑제는 그것이 <반대한민국>이라고 할 것이다. 과연 그런지 보자.
이상한 논리다.
이 두 가지에서 그럼 결론은 이렇게 난다.
한 걸음 더 나아가면,
지난 50년동안 들었던 똑같은 얘기에 불과하다. 87년에도 기득권 언론은 국민운동본부에 "일부 좌경세력"이 참여하고 있다고 하였으나 상황이 변하자 6.29가 위대한 국민의 선택이니, 민주주의의 진일보니 하며 침이 마르게 "국민의 역량"을 칭찬하기에 바빴다. "일부좌경세력"은 온데간데 없이... "일부 좌경세력"이라는 말은 황금 열쇠와도 같다. 아무리 정당한 운동이라도 "일부 좌경세력"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에 <반대한민국>이 되어버리곤 했다. 즉, 겉으로는 그람시주의니 하면서 뭔가 새로운 상황이 전개된 것처럼 호들갑을 떨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맨날 그 소리가 그 소리라는 것이다. 솔직히 말하자. 사회주의가 붕괴한지 10년이 다 되어가고 북한은 이미 실패한 체제가 된 상황에서, 어느 좌익 사상가가 주체사상이니 혁명투쟁이니 것들을 아직도 물고 늘어지는가? 그람시의 세례를 받은 프랑스, 독일의 좌파정당들이 정권을 잡아 국가를 뒤집어 엎었는가 ? 좃선이 말하는 바, 보수 우익이 말빨이 안 서는 건 세상이 변했는데도 50년전 그 소리를 여전히 반복하고 있기 때문이다. 똑같은 얘기라면, 차라리 변협을 빨갱이라해서 몇 억짜리 손배소송에 진 한국농담이 훨씬 순수해 보인다. 좃선이 자기네들이야말로 진짜 "우익"이라고 자처하는 건 건전 우익에 대한 모독이 아닐 수 없다.
마찬가지다. 이승만 정권의 기본세력이 친일지주여서 어쩌고 하는 소리는 일제를 증오하는 우익 "애국"지사들이면 할 수 있고, 한반도의 상황이 강대국의 입김에 따라 이리저리 휘둘렸다는 건 우익 정치학자도 얼마든지 할 수 있고, 반공을 들먹이며 기득권 합리화에만 급급한 좃선일보를 욕하는 건 수많은 자유민주주의 신봉자들도 할 수 있다. 누가 당신들보고 우익을 대표하라는 위임을 하였는가? 이런 다양한 목소리들이 힘을 얻는 것은 당연히 민주주의가 발전된 결과다. 자유민주주의의 신봉자라면 이런 현상을 오히려 반겨야지, 좌익 운운하며 부정하는 건 과연 누가 <애국적>인지를 의심하게 만든다. 위의 대목에서 제일 심각한 건 이런 목소리들이 < 대한민국을 경멸하고 부정하는 목소리>로 간주되는 데 있다. 너무나 신기하다. 당신들의 자유민주주의는 무엇인가? 당신들의 대한민국은 내가 생각하는 대한민국하고 너무나 틀린 것 같은데, 그건 도대체 무엇인가? 해답이 다음에 있다.
최장집이 대한민국을 증오, 저주했나? 한국전쟁의 시작은 김일성의 욕심이었지만 그 전개과정은 열강들의 국제전적 성격을 띠었다는 게 대한민국을 증오한 증거였나? 박정희 시대 경제개발이 힘없는 서민들의 희생과 피땀에서 이룩되었는데 폼이란 폼은 정치인과 재벌이 다 잡았다는 비판이 국가를 저주하는 건가? 그렇게 국가가 고마워서 좃선일보는 전두환이 단군이래 최대의 영도자라고 아부의 극치를 달렸는가? 전 문단에서 조갑제가 말한 것처럼 좃선일보식 우익이 대한민국을 지탱하는 게 아니고, 전체주의 봉건국가 북한에 맞서 우리를 지켜주는 건 민주주의적 이념이다. 민주주의는 건전한 "시민사회"에서 나온다. 바로 얼마 전까지 다원주의와 언론자유를 떠든 건 다름 아닌 좃선일보였다. 그런데 말빨이 딸리니까 이제와서 <우리는 아직 국가건설단계> 이며 <갈등보다는 통합>이 중요하단다. 좋다. 그렇다 치자. 그러면 좃선은 왜 그리 지역갈등을 조장하는데 열심히더냐? 왜 그렇게 옛날부터 빨간색 칠하기, 이념논쟁으로 사회분열을 부추기느냐? 앞에서는 <선진자본주의 단계>라서 그람시 식의 진지전이 먹혀든다고 걱정하더니, 여기서는 아직도 우리가 <국가건설단계>라고 왔다갔다 한다. 자기 모순이다. 만일 우리가 이미 선진사회라면 조갑제가 틀렸고, 아직 선진사회가 아니라면 아무리 좌익이 그람시 어쩌구 해봐야 틀린 이론이니까 좃선은 신경 쓸 것도 없다. 그리고 미안하지만 계층간의 공동선을 모색하는 건 선진자본주의로 갈수록 더 중요하다. 선진국일수록 민주주의가 중요한 건 그 때문이다. 좃선일보식 찍어누르기는 갈등을 조정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부추기는 것이다.
어이가 없다. 나도 국가가 고맙다. 부족하나마 전체주의에 신음하지 않고 조금씩이라도 민주주의를 성취해 가는 우리나라가 무진장 고맙다. 소위 사회지도층이(이거 웃기는 말이다) 말씀하시는데 이렇게 똥침을 찌를 수 있게 해 주는 국가가 고마워 죽을 지경이다. 박정희찬양론자이자 히틀러식 영웅사관 중독자인 조갑제와 이인화가 고마워하는 국가에는 별로 안 감사하지만 말이다. 이 문단은, 음모다. 이인화, 조갑제, 이런 비슷한 무리들만이 "국가"를 독점하겠다는 것이다. 좃선일보에 동조하지 않는 무리는 모조리 국가를 저주, 증오하는 인간들로 몰려는 저의가 있다.
마지막 부분이다. 나는 여기서 도대체 조갑제가 제 정신인지 묻고 싶다. 지금까지 조갑제는 3/4의 지면을 할애해서 그람시를 논했고, 나머지 1/4에서는 좌익의 그람시적 전략을 우려했다. 그런데 갑자기 웬놈의 19세기 타령인가? 스스로도 밝히고 있듯이 그람시는 20세기 사람이고, 그의 저서가 세상에 나와서 유명해진 건 20세기 후반이다. 혹시 그람시의 원조인 마르크스 할아버지가 19세기 사람이라 하는 모양인데, 그렇게 치면 자유민주주의란 건 그거보다 몇백년은 더 오래된 사상이다(앗 잠시 깜빡... 조갑제는 자유민주주의 같은 건 안 믿는다). 19세기라니? 조갑제는 무엇에 대해서 말하는지조차 헷갈리나보다. 하지만 여기서도 이런 "헷갈림"의 효과에 주목해야 한다. " 김정일 지령 어쩌구 하는 것의 증거를 대라 " 하자 나온 반응은 대학교수들의 " 나도 그렇게 믿는다 "는 성명과 " 안 믿으면 빨갱이 "라는 터무니없는 반응이었다. " 그럼 안 그렇다는 증거를 니가 먼저 대라 "는 말도 안되는 논리도 나왔다. 즉 바콩의 빨갱이 사냥은 그 대상이 모호했던 것이다. 여기서도 마찬가지다. 아마 조갑제가 이 글을 본다면 " 내가 얘기한 건 그런게 아니고 어딘가 숨어있는 골수 불순 좌경분자들이야 " 할지도 모른다. 앞에 나온 <일부 좌익>이 그 얘기다. 중요한 건 이렇게 비판의 대상을 흐림으로써 나타나는 "효과"다. 아무 생각없이 읽다보면 "음... 역시 좌익은 위험해. 좃선은 참 건전하고 위대하군" 할지도 모른다. 좃선의 전형적인 문법이다. <외제 유령의 속삭임> 운운도 그렇다. "한국적 민주주의"가 결국은 민주주의가 아니었다는 것을 우리는 너무나 똑똑히 보아왔다(그 시대에 정당성을 가졌느냐 하는 건 다른 문제다). 박정희 찬양론자인 조갑제가 한국적 가치(?)를 찬양하는 건 인정할 수 있지만, 사상검증이니 뭐니 하면서 남들에게도 그 가치를 덮어씌우려는 건 인정할 수 없다. 최장집이 아시아적 가치에 대한 비판글을 11월 30일 중앙일보에 썼는데, 아마도 조갑제의 이 말을 겨냥한 게 아닌가 싶다. 정리 정리해보자. 좃선일보는 비록 말로만이지만 친북적이지 않은 진보적 지식에 대해서는 그것이 민주주의의 심화라는 걸 인정했다. 그런데 최장집이라는 학자에 맞닥뜨리자 조갑제를 필두로 한 좃선일보의 논리는 이렇다.
위의 2번과 3번항은 상호모순임은 위에서 지적했다. 1번항은 그들이 그토록 부르짖는 자유민주주의를 왜곡하는 것이다. 최장집은 기본적으로 시민사회론자다. 기명사미 개혁이 실패한 것도 시민사회가 성숙하지 못해서 일부 언론의 충동질에 온사회가 휩쓸려 다닌 것이라고 진단하고, 이 시대의 최우선 과제도 시민사회를 발전시키는 것이라 한다(본 우원의 말이 미심쩍으면 그 유명한 [한국민주주의의 조건과 전망]을 읽어보고 직접 판단하시기 바란다). 조갑제와 좃선일보는 <통합>이 중요하다면서 이 가치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이걸 단지 <좌익의 침투> 정도로밖에는 보지 않는다. 그러면서 자기들이 불리할때는 다원주의를 내세운다. 조갑제의 세계관은 <국가부정>이라는 한마디에 압축되어 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국민의 동의를 중요시하는 그람시 사상이 북한의 전체주의, 봉건주의를 찬양하는 건 택도 없는 얘기다. 그람시가 스탈린을 무지하게 싫어했듯이 말이다. 그런데 그는 이 둘을 교묘하게 연결시킨다. 어떻게? <국가부정>이라는 공통점을 지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이렇다.
(1)이 맞냐는 것조차 의문시되고, (2)도 민주주의에 대한 무시에서 나온다. 좋다. 그걸 다 떠나서도 이 논리가 과연 맞나? 이렇게 얘기하면 어떨까? 최장집도 김일성을 싫어한다. 조갑제도 싫어한다. 고로 최장집과 조갑제는 똑같다. 다르게 하자. 좃선일보는 김데중에 비판적이다. 말지도 김대중에 비판적이다. 따라서 좃선일보=말지다. 조갑제 부장, 기분 좋수? 이런 게 조갑제가 말하는 <한국인의 숨결>인가? 저런 엉터리 논리가 한국인의 숨결이라면 나는 한국인이 안 되고 말련다. 좃선일보는 언론으로서의 자격이 없다. 언론의 사명은 국민의 의사를 전하고 건전한 여론을 형성하는 데 있다. 그런데 민주사회의 다원적 가치조차 <국가부정>이라고 몰아붙이면서 자기들은 왜 국민적 합의인 개혁의 발목을 붙잡으려 하는가? 말도 안되는 논리로 국가정책 입안자에게 이념적 색깔을 뒤집어씌우는가? 그거 혹시 국가부정 아닌가? 아, 미안하다. 조갑제는 한반도의 평화정착을 반대하고 전쟁도 불사하는 강력한 공세로 북한을 궤멸시켜 흡수통일 하자는 것이 지론이고, 이에 도움이 안 되는 민주주의고 나발이고 하는 건 헛소리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는 걸 잠시 잊었다. 누가 고리짝 시대의 유령을 되살리려 하는가? 언제부터인가 조갑제가 황장엽의 팬이 되더니, 이제 공개적으로 <이런 것이야말로 주체의 사상>이란다. 말 잘했다. 조갑제식 반공이 주체사상의 봉건주의와 얼마나 잘 통하는지, 스스로 웅변으로 보여준다. (이 부분은 강준만의 인물과 사상 8권 보시기 바람) 이거 큰일이다. 대 좃선일보가 국가를 부정하다니. 이런 국가부정 세력이 우익을 대표한다고 나서고 있다. 우익은 다 죽었는가? 우익이여 일어나라!
- 좃선싸설까기 전문위원 겸 논설우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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