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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의 힘

 

나는 책을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그림책을 만든다. 온갖 실패를 거듭한 끝에 뭔가 한 줄기 서광을 찾은 듯 그림책을 만들겠다고 선언했을 때, 수많은 선배들이 말렸다. 책이 안 팔린다고. 먹고살기 힘들다고. 따뜻한 충고를 믿지 않았다. 다들 안 팔린다고만 하는데, 그렇다면 도대체 얼마나 안 팔리는지 직접 확인해보고 싶었다. 어쩌면 필자가 될성부른 엄청 푸르른 떡잎이라(제정신인가?) 견제구 들어오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했다. 물론, 지금은 어른 말을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는 옛말의 참뜻을 뼈에 새기는 중이다.

 

아시다시피 스마트폰으로 시작된 모바일 혁명은 사람들의 생활을 바꾸고 모든 산업의 구조를 바꾸어 놓았다. 책도 그 영향을 피하지 못했고 그만큼 출판 시장 상황은 좋지 않았다. 환경은 급변하는데, 그것을 감안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또 망하려니 눈앞이 캄캄했다. 오기가 났다. 돌이켜보면 출판시장이 언제 좋은 적 있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날씨가 좋으면 날씨가 좋아서, 날씨가 나쁘면 날씨가 나빠서, 경기가 좋으면 경기가 좋아서, 경기가 나쁘면 경기가 나빠서. 늘 책이 안 팔리는 이유는 수없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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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위를 돌아보면 시장 상황과 상관없이 성공하는 초능력자들은 늘 있다. 매우 트렌디한 아이템으로 셀럽(혹은 셀럽에 준하는) 저자와 계약하고 여기저기서 관심받고 소개되고 판매지수가 치솟아 베스트셀러에 오르고. 나로서는 언감생심 꿈도 못 꾸는 일이다. 신기한 것은 그래도 굶어죽지 않고 ‘#살아 있다.’ 아직까지는.

 

살아남을 수 있는 가장 큰 비결은 매출에 비해 씀씀이를 더 적게 유지하는 것이었다. 먹는 것은 하루 세 끼면 족하니까. 혹시라도 밥도 밥 나름이라고 생각하시는 분, ’어떻게 지내냐는 친구의 물음’에 그랜다이져로 대답하고 싶은 분은 책 말고 다른 거 하셔야 한다. 눈높이 대폭 낮춰서 밥 조금 먹고 빚 조금씩 갚으며 어쩌다 치킨 한 번 먹는 것을 호사로, 소박하고 청빈한 삶을 꿈꾸신다면, 그리고 바깥보다 안쪽을 채우는 것으로 삶의 의미를 찾고자 하신다면 책 만드는 일이 잘 맞을 수 있다.

 

책은 참 매력적인 제품이다. 이야기가 가진 매력은 책을 만드는 일을 꽤 낭만적인 일로 만들어 준다. 이렇게 일해도 되나 싶을 만큼 어느 날은 이야기만 생각하고 또 어느 날은 사람 만나 이야기만 나누면서 하루를 보내기도 하니까.

 

그런데 한 가지. 자신이 이야기와 생각을 좋아하는가 하는 점은 이 일을 평생 내 일로 삼기로 결정하기 전에 곰곰이 생각해볼 일이다. 과연 나는 이야기 듣기를 좋아하고 또 이야기 하기를 좋아하는지, 이야기를 통해 생각을 듣고 나누기를 좋아하는지, 그리고 그것을 진짜로 좋아하는지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볼 일이다.

 

일을 돈으로 바꿀 생각을 한다면 그 길이 너무 멀다. 이야기를 만드는 일 자체가 좋다면 그 길은 그다지 멀지 않다. 적어도 이야기를 좋아한다면 직접 책을 만들어 그것을 나누는 일에 재미를 느낄 것이니까 말이다. 일에 재미를 느끼는 것이야말로 몰입과 지속을 가능케하는 아주 중요한 원동력 아니겠는가.

 

글 밥 먹는 사람들

 

뭔가 제대로 해보자고 작가 학교를 다녀도 보았다.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은 아직은 작가가 아닌, 이제 막 글쓰기 공부를 시작하는 사람들이었다. 한 편으로는 이 사람들이 뭘 먹고 사는지, 먹고사니즘은 어쩌려고 여기에 이렇게 매달리는지 궁금했다. 그러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이것이 말로만 듣던 가난한 창작자의 열정인지 경의롭기도 했다. 등단하고 나서 소위 ‘잘나가는’ 작가가 되면 생활은 좀 달라질 수 있다. 하지만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인가.

 

생활인으로서의 의무랄까, 생활 수준에 대한 욕심이랄까 그런 것은 아예 장착하고 있지 않은 것인가 싶을 만큼 덤덤한 모습들이었다. 하도 궁금하여 잘나가는 작가가 되어계신 선생님께 물어본 적이 있다. ‘이 일을 하면 먹고사니즘은 어느 만큼 해결은 되는 것인지요?’ 하고. 그랬더니 선생님은 빙글 웃으며 ‘그저 좋아서 하는 것이지요.’하는 선문답스러운 대답을 해주실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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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그림책을 보는 어른, 그림책을 수집하는 매우 ‘바람직한 어른’들이 조금씩 늘어가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림책’이라는 장르가 아직 온전히 하나의 분야로 완전히 독립하지 못하고 있고 서점에서도 편의에 따라 0-3세, 4-7세 용의 어린이 책, 혹은 유아용 책의 일부로 분류를 정리하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인지 그림책은 ‘애들이나 보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그림책은 3세 이상의 어느 누구에게라도 적합한 콘텐츠라는 것을 다시 한번 강조 드린다.)

 

알고 보니 나는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절제된 언어로 응축된 그림책의 이야기는 짧은 만큼 시처럼, 단편 영화처럼 깊고 긴 여운을 더해준다. 그림은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이며 아름답다. 그림책의 매력을 알게 됐고 그래서 그림책을 만드는 시간이 즐겁고 행복하다. 다행스럽게도 뒤늦게나마 자신을 발견한 덕분에 일을 지속할 수 있게 되었고, 어렵게라도 먹고사는 것을 유지하고 있다.

 

책으로 먹고사는 법

 

업무가 온전히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일인지를 따져보는 것도 중요하다. 다시 말하면 창업자 본인이 멀티플레이어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실무형 창업자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업무분장과 조직력의 힘은 교과서에나 나오는 어느 정도 틀이 갖춰진 회사의 이야기이다.

 

이제 막 창업한 기업의 경우에는 비용도 인력도 모자라게 마련이다. 그러다 보니 예상치 못한 인력과 업무의 공백이 아주 자주 일어난다. 어느 날 갑자기 팀원이 퇴사를 할 수도, 외주 인력이 잠수해버릴 수도 있다. 공백이 메워지기 전엔 죽었다 깨나도 일이 진행되지 않는다. 새로운 인력을 바로바로 충원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런 일은 잘 일어나지 않는다. 시간의 손실은 가장 큰 손실이다. 이가 없으면 임플란트전에 잇몸으로라도 업무 공백을 메울 수 있게 순발력은 갖추자.

 

담당이 있어도 결국은 내 일이다. 창업자 본인도 모든 업무를 팔로우업하고 있어야 하고, 개발 중인 디자인 파일이든 회계파일이든 수시로 열어보고 검토할 수 있는 정도의 능력은 꼭 필요하다.

 

퇴사한 직원에게 전화해서 예전에 담당했던 일 물어보고 설명해달라고 ‘이번 한 번만’ 부탁하는 것만큼 모양 빠지는 일도 없다. 그러다 보면 그나마 남은 그 사람과의 인간관계, 백발백중 틀어진다. 그들도 다 자기 살기 바쁘다. 퇴사한 직원은 밥 사줄 때, 술 사줄 때만 연락하도록 하자.

 

출판사 인력의 직무는 대개 작가, 편집자, 디자이너, 그리고 영업자 정도로 나뉜다. 주변에는 같은 출판사 출신, 혹은 친구나 동료들과 함께 동업으로 시작한 곳들이 꽤 높은 빈도로 많았다.

 

다른 직종에서 커리어를 쌓은 분들, 예를 들면 편집자와 영업자가 개발과 영업을 각각 나누어 맡아서 진행하면 전문성도 높아지고 속도도 빨라지는 긍정적인 효과가 나타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시간이 좀 지나면 팀원들끼리 사이가 나빠지거나 결국 갈라서서 혼자가 되는 분들이 꽤 많았다. 다 각자의 사정이 있고 저마다의 생각이 다르기 때문이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정말 큰일이다.

 

회사 생활 내내 꿈꾸었던 이상적인 독립 사업자의 모습과 그에 비해 많이 초라한 현실의 모습에서 오는 괴리감. 그 차이가 왜 생겼는지 각자 진단이 다를 수밖에 없다. 진단이 다르니 대처 방안도 당연히 다르다. 사소한 의견 차이가 말다툼이 되고 감정이 상한다. 안 그래도 불안한 현실에 스트레스는 머리가 터질 지경인데 믿고 손잡았던 동료와 감정이 상하면 회복하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큰 회사 같으면 팀원들이 업무 공백을 어떻게든 메울 수 있겠지만 이런 경우에는 개인적으로는 멘붕, 회사는 존폐의 갈림길에 설정도로 큰 위기로 이어지곤 한다.

 

동업은 잘 되면 더없이 좋은데 잘 안되면 독이 되어버리는 양날의 검 같다. 파트너를 찾는 것은 열에 아홉은 홀로서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필자 역시 홀로서는 것이 두려웠다. 누구든 손잡아 줬으면 했고 누구에게든 의지하고 싶었다. 비슷한 처지의 친구들을 불러 모았고 그들과 지지고 볶았다. 싸우더라도 혼자는 아니고 싶었다. 하지만 이렇게 불안을 연결고리로 한 관계가 영원할 수는 없다. 목표도 생각도 가치관도 다르면, 결국 헤어지게 마련이다.

 

도망치고 미루어봐도 언젠가는 해야 할 숙제처럼 홀로 서야 할 시기가 결국 오고야 마는 것, 혼자되고 나서야 비로소 알았다. 아무리 친한 사이여도 여행 가서 안 싸우기 참 어렵다. 창업은 긴긴 마라톤이다. 바로 지금 마음 맞는 파트너가 있으면 좋겠지만, 꼭 한솥밥을 먹는 사람이 아니어도 나를 도와줄 사람도, 일을 나눌 방법도 많다.

 

내가 잘 되고 나면 그땐 언제든 누구든 함께 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 직업도 사람도 일도, 모두가 인연이라고 했다. 어리석었던 필자처럼 홀로서는 것이 두려워 파트너를 찾지는 마시길 바란다. 때가 되면 달이 기우는 것처럼 때가 되면 인연이 나타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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