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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남편은 피아노 조율사이다. 내가 집에서 아이들을 돌보고 있기 때문에 남편이 피아노 조율을 하고 중고 피아노를 판 돈으로 아이들을 먹이고, 입히고, 살고 있는 집을 은행에서 조금씩 구제해주고 있다.

 

언젠가 남편에게 같이 일하는 사람이 물었단다.


“왜 그렇게 죽을동 살동 열심히 해?”


그런 말이 나올 수 있다. 왠만한 절대 음감이 아니면 피아노 조율을 제대로 했는지 안 했는지 모르는 사람도 많고, 조금 덜 신경 써도 피아노 상태가 괜찮으면 넘어가는 그냥 티가 나지 않는 경우도 많으니 그런 말이 나올 수도 있을 것 같다.

 

그 말을 들은 남편은 이렇게 대답했단다.


“이걸로 처자식을 먹이는데 어디 가서 욕먹지 않게 열심히 해야지.”

 

절대음감을 타고나지도 않았고, 손이 보이지 않을 만큼의 손재주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꼼꼼한 성격과 노력으로 세 아이와 부인을 먹이기 위해 열심히 노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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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마음으로 일하는 남편도 욕먹을 때가 있다.

 

피아노 조율이라는 것이 택시요금처럼 기본요금에다 조율을 제대로 하지 않고 방치한 기간이나 많이 친정도, 피아노가 있는 곳의 습도나 온도 등에 따라 손을 많이 대거나 부품을 갈아야 하는 정도에 따라 가격이 올라가는데, 문제는 여기서 생긴다.

 

처음에 기본요금으로만 알고 있다가 일을 끝내고 돈이 더 나왔다고 더 달라고 하면 고객도 당황스러울 테니 남편은 일단 견적을 보고 추가 비용을 이야기하고, 그 항복들을 조목조목 일러준 다음, 그래도 기본조율만 해도 자신은 상관없는데 가까운 시일 내에 문제가 또 생길 수 있다고 일러주어 소비자의 선택을 기다린다.

 

남편의 말에 수궁하고 추가 비용을 내는 사람도 있고, 당장 돈이 아깝거나 형편이 안 되어 그냥 기본 조율만 받는 사람도 있다. 피아노 조율에 대해 잘 모른다고 가정하면, 나도 내 아이가 피아노 전공을 할 것도 아니고, 그 소리가 그 소리 같은데 굳이 돈 많이 쓸 필요 있을까 싶어 기본요금만 내고 기본 조율만 받을 가능성이 큰 사람 중의 하나다. 그것을 탓할 일은 아니다. 정말로 형편이 어려워서 돈 한 푼이라도 아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추가비용을 깨끗이 포기하는 대신 피아노의 질을 낮추는 선택을 하기에 이 역시도 별문제가 되지 않는다.

 

문제는 추가비용이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서 온다. 이런 사람들에는 두 가지 경우가 있다. 첫째는 제대로 된 서비스는 받고 싶은데 돈은 아까우니 어떻게든 비용을 줄여보려는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은 남편이 하는 말들을 이해하고, 그 논리들에도 수궁한다. 그래서 남편이 제공하는 제대로 된 서비스를 받고 싶어도 한다. 하지만 그 대가를 지불하고 싶어 하지는 않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이들은 집안 형편이 어렵다, 다음에도 부를 테니 이번에는 깎아 달라, 지인을 소개해 줄 테니 자신은 깎아 달라는 등의 다양한 핑계를 대면서 비용을 깎는다. 그러다 안 되면 일단 추가 비용을 지불하고는 우기 가족이 저녁 식탁에 둘러앉을 때쯤이거나 티타임을 가질 때쯤 전화가 와서는 생각해보니 부당했다며 욕을 하거나 남편을 동원해 대신 욕을 시킨다. 그렇게 야박해서 밥 못 먹고 산다, 다시는 너에게 조율시키지 않겠다 등등이다.

 

두 번째 경우는 추가비용 자체를 사기라고 보는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은 남편의 말에 일단 의심부터 하고 본다. 자기가 얼마나 똑똑한 사람들인데 그따위 말에 속을까 보냐 싶어 무조건 의심부터 하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어떤 논리라는 게 있기보다는 공중파 뉴스에서 보일러 수리공이 부품 하나 갈고도 비용을 뻥튀기해서 받았다거나, 인터넷에 보니 이런 경우는 조심하라거나 하는 정보들에 기대고 있다. 실제로 남편이 견적을 불러주면 그 자리에서 인터넷 검색을 해서는 다른 조율사는 무조건 기본비용만 받는다고 나와 있다며 사기 치지 말라고 윽박지르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남편은 여러 사정으로 기본 조율비만 받고 해주는 조율사도 있지만 자기는 정당한 대가를 받고 싶다고 하면 다시 사기꾼으로 몰아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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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워낙 험하고 피아노 조율이라는 일이 보통 사람이 들여다보면 제대로 하고 있는 일인지, 갈아야 할 부품을 가는 것인지, 그 가격이 정말로 적당한 것인지 모르는 전문적인 일이라 일반 소비자는 일단 의심할 수밖에 없으니 너무 마음 상하지 말라고, 우리도 제품 AS를 부를 때 요모조모 따져보지 않느냐며 남편을 위로해 보지만 일단 사기꾼으로 찍어놓고 덤비면 자존심이 몹시 상할 것이다.

 

그래도 아직은 내가 배가 부른 것인지 그런 남편에게 당부한다.


“그래도 당신의 노동을 덤핑처리 하지 말고 제값이나 그 근사치를 받아. 그곳 아니면 다른 곳에서 벌지 뭐.”


그러면서 다짐한다. 동네 아는 집에서 피아노 문의를 하거나 조율 문의를 해 오면 절대 싸게는 안 해주는 사람이니 싸게 할 거면 다른 곳을 알아보라고. 대신 최선을 다해 잘해줄 수는 있다고 말해야지! 이 마음이 전해지지 않을 것 같으면 아예 남편을 소개하지 말아야지!

 

단순한 클레임이 아니라 남편이 욕을 바가지로 먹는 두 경우의 공통점은 바로 타인이 내게 해 주는 노동의 가치를 제대로 처주지 못하기 때문에 생긴 일일 것이다. 당신의 일은 그다지 가치 있는 일도 아니고, 힘든 일도 아니니 이 정도 비용은 너무 과하다고 생각하고, 내가 낸 비용이 한 가정의 먹거리가 되고, 아이들 옷이 디고, 아이들 꿈을 키워주는 수단이라는 생각을 못 해서이다. 아니 안 하고 싶은지도 모른다. 내 아이 귀한 줄만 알고 남의 아이 귀한 줄 모르는 것처럼 나의 노동과 대가는 중요하고 타인의 노동은 깔보는 심보, 나는 이 정도는 받아도 될 만한 사람이고 당신은 하찮은 사람이니 그런 일을 하는 거야, 라는 심보도 있지 않을까?

 

다른 집에 가서 피아노 조율을 하고 온 남편이 내게 말한다.


“아이들이 거실에서 뒹굴어도 아무리 일하는 사람이지만 어른 손님이 왔는데도 눈도 깜짝 않고, 엄마도 인사 한번 시킬 생각 못 하니 남편이 하는 일을 존중할 줄 모르는 사람일 거야.”


그럴 수 있겠구나 싶다. 아무리 돈을 주지만 자기에게 무언가를 해 주러 온 사람을 내려다보고, 아이들에게도 그런 모습을 보인다면 나와 내 가정을 위해 노력하는 남편의 노동에 감사할 줄 모르고 그저 그 열매인 돈에만 감사할 가능성이 크지 않을까?

 

얼마 전에 일어났던 구의역 사고와 남양주 사고는 이런 타인의 노동에 대한 깎아내림의 연장선은 아닐까? 우리의 안전과 편리를 위해 일하고 받는, (그것도 터무니없이 덤핑처리 된 대가이건만) 노동의 대가로 피어나야 할 꿈이 있고, 일궈야 할 가정이 있었는데 이 모든 게 걸려 있는 노동에서 비용을 덤핑처리하고, 목숨을 덤핑처리하면서 생긴 사고가 구의역 사고이고, 남양주 사고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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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 계속 피아노 조율사일 것이고, 내 아이들도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커서 다른 이들을 위해 일하고, 그 대가를 받아 밥벌이를 할 것이다. 책상에 앉아 자판을 치든, 공구를 들고 공장에 있든 본질은 같다. 밥벌이를 위해 타인에게 무언가를 해 주고 대가를 받는 노동.

 

나는 내 남편이 당신의 노동을 제대로 평가받고 욕먹지 않았으면 좋겠고, 내 아이들도 커서 무슨 일을 하든 그런 대접을 받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혹시 내가 좀 손해 보는 일이 있을지라도 일단 모든 타인의 노동에 대해 무죄추정의 원칙 아래 비용을 따져 보려 노력하고, 우리 집에 오는 모든 이들에게 예의를 갖추려고 노력하고 있고, 아이들에게도 그렇게 가르친다.

 

여기서 조금 더 나아가 이런 내 바램들이 조금씩이나마 제도화되어 가는 것을 보고 싶다. 살다 보면 그런 날이 오려나?





고래엄마


편집: 딴지일보 coco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