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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02. 12. 수요일

독투불패 외톨이








딴지 하면 지금은 거의 정사와 음모가 가득한 야리꾸리한 곳이지만, 그래도 너거뜰 중에 아직꺼정 게임 패드를 똘똘이 비비듯이 붙들고 앉아 있는 넘들이 있을 거다. 아니면 스마트폰이니 태블릿이니 하는 기기 화면을 능숙한 손꾸락 돌리기로 애무한다든지...


근데 “씨바, 왜 외산 게임은 하나같이 오역에 발번역이 많냐!!”하면서, 졸라 달아오른 기분이 비아그라 안 맞은 철수마냥 푹 고꾸라지는 경험을 하신 넘들이 한둘이 아닐 거다. 그래서 왜 그런 조지 18세 같은 일이 벌어지는지 알려주려고(마침 시간도 남아돌아서) 친히 가입까지 해서 싸 재끼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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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lo there! Mighty fine morning! if you ask me, I'm Waldo."



썰자로 말할 것 같으면 지금 번역으로 밥 먹고 살아가는 현역 번역'자' 되시겠다. 번역'가'라고 소개하기에는 직업 자체가 앵벌이 같고 뭔가 일가를 이룬 것도 아니기에 그냥 '자'로 해 두니 그냥 알아잡수시도록. 원래 게임판에서 게임 만든다고 알짱대다가 대충 2008년 즈음에 이쪽으로 넘어와서 아직꺼정 붙들고 앉아 있다.


각설하고, 왜 외산 게임에 오역과 발번역이 난무하는가? 왜라고 생각하냐. 외국어 실력이 딸려서? 게임을 좆도 모르는 것들이 번역해서? 직업에 대한 소명의식이 부족해서?


글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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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우에 따라서는 다 해당할 수도 있을 거다. 잘 생각해 봐라. 씨바 아마추어 번역 그룹이 돈도 안 받고 능력 봉사해서 내놓은 게임 번역은 퀄리티가 조또 우주를 날라댕기는 UFO 궁둥이를 찌를 정도로 높은데, 왜 '상품'으로 팔아먹겠다고 해쌌는 정식판의 번역이 이토록 개판 오분 전인 것일까?


업계 경험이 깊은 털속 옹달샘이 마르고 닳도록 길지는 않지만, 그래도 업계 경험자로서 단언컨대 이건 그냥 '구조 문제'가 크다. 난 게으르고 능력 없는 앵벌이 같은 넘이지만, 대체로 번역 쪽에 종사하는 사람들 '출발어(소스, 주로 외국어)' 능력 출중하다. 당연히 '도착어(타겟, 이 경우에는 주로 한국어)' 능력도 나쁘지 않고. 류시화나 다른 사람덜처럼 전업 작가 해 먹을 정도로 한국어 능력이 뛰어나진 않겠지만, 아무튼 상업 콘텐츠를 맡을 정도로 조어력도 갖췄도 훈련도 된 상태라는 소리다.


이런 사람들한테서 나오는 결과물이 '고작 그 정도'라는 것은 단순히 '씨발, 돈 받아 처먹고 똥 싸는 번역자 탓'으로 돌리는 건 졸라 단순한 사고 되시겠다는 거다. 자, 그래서 나는 지금부터 업계를 까발리고 내부 고발자가 되겠다는 건가?... 그건 아니쥐. 나도 밥은 먹고 살아야 하니까. 스노든 같은 사람을 훌륭하다고 생각하지만, 난 그냥 한낱 볍신 같은 소시민이니까. 그냥 왜 번역이 이모양 이꼴인지 너거뜰이 좀만 이해해주면 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변명'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업계 사정이 이러하니 기분이 영희 남친 같아도 참고 소비하라는 거 절대 아니다. 요즘 게임이라는 콘텐츠를 아주 나라에서 뭉개주시는데, 사실 게임 자체가 여전히 인식은 서브컬쳐고 일반적으로 (상대적으로) 중시되지 않다 보니, 또 소비층의 연령대가 비교적 낮다 보니 게임 콘텐츠의 번역 품질은 사회적 이슈가 잘 안 된다. 사견이지만 품질 높은 콘텐츠를 원한다면, 일전에 잡스 자서전에 대한 오역 공방 수준의 화젯거리는 되어야 한다고 본다. 그래야 업계가 조금 정신을 차리고 번역에 힘을 실을 테니까...


아무튼 전설이 졸라 길어서 미안하다. 이제 본론 들어가니 안심해라.



1. 번역은 우선순위가 낮다



아시는 거뜰은 아실 거고 모르시는 분덜은 모르시겠지만, 최소한 게임 콘텐츠에 있어서 게임 번역은 우선순위가 낮은 편이다. 오해를 안 했으면 좋겠는데, 우선순위가 낮다고 해서 구글 번역기로 돌린 수준의 것을 집어넣어도 된다고, 업계에서 생각하는 것은 아니라는 거다.


말인즉슨, 번역은 번역할 꺼리 즉, 소스가 나오지 않으면 이행할 수 없는 프로세스다. 즉, 시나리오건 UI건 혹은 시스템 메시지건 최종 확정본이 안 나오면 번역 고! 하기 어렵다는 소리다. 근데 더 이해가 안 가지? 응, 나도 게임 개발 업계를 거치기 전에는 그랬다. 그러니 자책 말아라.


일반적인 인식으로, 혹은 원칙적으로는 위에서 말한 시나리오니 뭐니 하는 것들이 게임 제작 공정의 전단계에 위치해야 하는 것 맞다. 그런데 실은 안 그래. 번역 중에도, 심지어는 릴리즈(편집자 주 : 게임 런칭, 정식발매 등을 의미한다.) 후에도 수정 들어가는 경우가 예사로 있다. 모든 회사가 이런 건 아니라고는 해도, 대체로 이러하다 보니 번역의 공정상 우선순위는 밀리기 마련이다. 그래서 게임 개발에 있어서 로컬라이즈(편집자 주 : 컴퓨터 관련 제품에는 미국이나 일본 것이 많고, 이들 나라의 제품들을 다른 나라에서 사용하려면 그 나라에 적합한 기능으로 수정하거나 추가해야 한다.)는 출시 후 로컬라이제이션이건 출시 전 로컬라이제이션이건 항상 공정의 끝 단계에 위치한다.


그런데 여기서 질문. 이 '공정의 끝 단계'인 로컬라이제이션에서 '번역'이 차지하는 시간은 얼마 정도 될까?


1년? 말도 안 되지.


6개월? 아마추어들이 조금씩 해서 그 정도 걸리긴 하니까 있음직해 보이지?


전혀, 네버다. 보통 영어 기준으로 할 때, 1만 단어에 길게는 5일, 짧게는 3일 정도 준다. “그럼 단어 수가 늘어나면 비례해서 늘어나겠네?”라고 생각하면 오산. 생각만큼 시간을 오래 안 준다. 왜냐면 전체 개발 일정에서 '본편의 완성도'에 들이는 수고만큼 밀린 시간을 로컬 공정에서 빼는 구조라 그렇다. 물론 로컬의 완성도가 무지무지무지무지 중요한 회사는 별도로 관리를 하기도 하지만(예를 들어 작고 부드러운 회사라든지), 대체로 로컬 때문에 릴리즈 일정이 밀려서는 안 되는 회사들이 태반이니까.


그러니 이리도 짧은 시간에 프로 번역사들은 번역을 마쳐야 한다. 여기서 일단 오역과 발번역의 가능성이 싹트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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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컨텍스트의 부재



아마추어 번역작들이 왜 품질이 높을까? 일단 애정을 들 수 있을 거다. 즐기지도 않는 작품을 심심해서 귀중한 시간 낭비해가며 번역하는 성자는 없을 테니까, 아마도. 물론 외국어 실력도 따르겠지.


그런데 말야. 재미있게도 정작 상품으로 나오는 '프로 번역'은 게임 자체가 제공이 안 되는 경우가 많아. 이건 회사마다 방침이 달라서 간단한 사내 테스트 버전을 주는 데도 있고 혹은 스샷이나 동영상을 찍어서 주는 데도 있다. 물론 릴리즈 안 된 풀버전을 제공하는 용자도 있지만 굉장히 드물고.


즉, 1번에서 언급한 '짧은 시간'에 게임도 안 해 본 상태에서 상상력만으로 번역을 해야 하는 거다.


웃기지 않냐? 책은 책이 최종 결과물이니까 당근 그 자체가 컨텍스트지. 그런데 게임은 시나리오로만 굴러가는 게 아니야. 화면이 있고 캐릭터나 상황이 제시되고 거기에 덧붙여서 글이나 메시지가 나오는 거라고. 영화 번역을 영화도 안 보고 한다고 상상해 봐라. 어떤 참상이 벌어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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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좋(?)게 되는 상황이다...



게다가 로컬 경험이 짧은 회사들은 정말 말그대로 텍스트만 딸랑 던지는 데도 있다. 베테랑 회사들은 최소한 화자 정보를 주거나 텍스트를 ID로 관리해서 그 ID를 통해 최소한 해당 텍스트가 어떤 상황에서 나오는지 정도는 알 수 있게 해준다. 하지만 거기까지 잘 못해주는 회사가 훠어어어얼씬 더 많다. 그러니까 너거뜰이 번역자라고 했을 때, 이게 철수가 씨부리는 건지 영희가 씨부리는 건지 긴가민가한 상태에서 번역을 해야 한다는 거다.


물론 이런 것들을 보완하는 방법이 있긴 하다. 번역자가 적극적으로 자료를 요구하는 거지. 정형화된 자료가 되었건, 질문서가 되었건 확실하지 않은 점에 대해서는 질문을 해서 확인하고 넘어가야 한다. 이건 도착어가 어떤 언어든 마찬가지야. 나는 외국 업체와 주로 작업하는데, 요즘 추세가 알다시피 멀티랭기지 로컬라이제이션이다보니 수십 개 언어로 번역하는 경우가 많은데 다들 장난 아니야. 무슨 질문 경쟁 같다. ㄷㄷㄷ


근데 이런 것도 완벽하진 않아. 게다가 앞서 언급한 시간 제약도 있고. 결국 개발사나 에이전시는 여기서 나오는 문제를 QA 과정에서 수정하는 작업을 거치긴 하지만, 역시나 제한된 시간 때문에 모든 문제를 완벽히 수정할 수는 없어. 그리고 시간은 돈이니까. QA도 외주를 주는 경우가 많은데, 안에서 하건 밖에서 하건 당장 인건비가 들어가고, 거기서 랙이 걸리면 결국 출시가 늦어지니 100% 완벽한 수정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보면 된다.

(마소나 게임로프트, 블리자드는 이런 점에서는 정말 대단한 데긴 하다. 게임로프트, 블리자드는 번역 자체를 대부분 인하우스로 소화하니 정보 공개 면의 리스크가 적다. 마소는 정말 요즘 시쳇말로 '암 걸릴 정도'로 깐깐하게 QA를 진행한다.)





3. 하청 구조



앞서 언급한 게임로프트나 블리자드 등 몇 회사들은 번역을 자체적으로 소화해. 그래서 최소한 번역 품질은 무척 좋은 편이다. 혹은 자금력이 강하고 출시 제품의 라인업을 관장할 정도의 파워가 있는 곳들은 QA를 깐깐하게 한다. 근데, 이게 되는 곳들은 소수야.


아까도 말했지? 번역은 우선순위가 낮다고. 그리고 상시직으로 두기에는, 규모가 작은 회사 입장에서는 이만저만 부담이 아니야. 그러다 보니 하청을 주게 되지. 그래서 각종 게임 번역 '전문'을 자처하는 에이전시가 넘쳐나는 것이고. 근데 하나 더 가르쳐 줄까? 게임사 - 하청사 - 번역자로 이어지는 1차 하청 구조라면 그나마 나을 거야. 근데 도착어를 유능하게 다룰 수 있는 하청사는 대체로 게임사의 지역권에 없다? 아무리 인터넷 시대니 어쩌니 해도 그렇더라고.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재하청' 구조가 발생해.


이러면 무슨 문제가 발생할까? 먼저 안 그래도 짧은 시간이 더 짧아지겠지. 그리고 하청의 하청이다보니 커뮤니케이션에 걸리는 시간이 무척 길어져. 그래서 국내 에이전시(뿐만 아니라 어떤 도착어건 최종 하청사는 그런 경향이 있어.)는 아까 말한 '질문서'를 그다지 안 반겨. 번역사가 질문한 걸 그냥 던지나? 자체 검토 해야지. 그렇게 상위 하청으로 넘어간 게 또 그냥 개발사로 가나? 최소한의 검토는 해야할 거 아냐. 이러다 보니 시간 대비 효율이 떨어져서, 이런 경우에 번역사에게 돌아오는 답변은 대체로 이래.


"책임감을 갖고 알아서 해주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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봐, 컨텍스트니 뭐니 국밥에 말아먹게 생겼지? 씨바, 상상력이 딸려서 조또 모르겠는 걸 어떡해. 그러니 대충 의역하거나 직역하게 되는 거야. 잘된 의역, 즉 초월 번역은 해당 내용을 완전히 손에 쥐고 있을 때 나와. 근데 잘 모르면 인간이라는 게 일단 '안전빵'을 위해서 출발어 자체에 매달리게 되는 경향이 있어. 이걸 너거뜰은 '직역' 또는 '구글체'라고 하지.



4. 도착어 이해가 딸리는 에이전시



내가 위에서 잠깐 언급했지? 저 멀리 유럽에 있는 개발사가 갑자기 떡! 하니 한국 에이전시에 직빵으로 연락하는 경우가 드물다고. 그러니까 잼나게도 한국어 번역이 한국 업체가 아니라 해외에서 벌어지는 경우가 허다해. 물론 게임로프트나 블리자드 같은 데는 예외야. 하지만 모든 개발사들이 걔들처럼 돈 많고 그런 건 아니잖아? 


그러다보니 '한국어'를 다루는 에이전시는 졸라게 많은데(심지어는 인도나 중동에도 있어.) 걔들이 과연 한국어를 이해할까? 내가 일본의 한 에이전시에서 일했을 때, 한국어를 다루는 직원은 내가 유일했고 게다가 '최초'였어. 즉, 그전까지는 모든 것을 하청 에이전시(한국에 위치한)나 프리랜서한테 맡겼다는 소리야. 번역은 물론 검토까지.


중간에서 핸들링하는 업체가 해당 언어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거나 전무한데 훌륭한 결과물이 나올 것 같아? 글쎄, 난 어렵다고 본다. 그냥 말그래도 '핸들링'만 하는 거지.



5. 임금



이제 마지막이야. 재미도 없는데 졸라 길지? 근데 이제 끝이니까 '야! 신 난다' 한번 외쳐주고.


아무튼, 마지막으로 언급하고 싶은 건 '돈'이야. 번역 자체는 '하청의 하청'이나 그 이상의 재하청 구조가 아니라면 아주 높지는 않지만 그럭저럭 시간을 들인만큼 받을 수는 있어. 하지만 번역보다 더 중요한 건 뭘까? 바로 '검증' 작업이지.


이상적으로는 검증 작업에 시간과 비용을 번역과 동등하게 들이는 게 맞다고 봐. 하지만 현실은 '늘 그렇듯' 좆망이지. 소위 '리뷰'나 '프루프리딩'이라 불리는 검증 공정은 번역 단가에 비해서 반도 안 쳐줘. 심할 경우는 1/3, 1/4일 때도 있고 시간당으로 칠 때도 있어.(내가 들인 만큼이 아니라 분량 대비 책정한 시간으로) 나는 돈 받는 이상으로 검증에 시간을 들이는 편이긴 하지만(당연한 거니까) 솔직히 검증 작업은 꺼려진다. 왜냐면 제대로 하려면 기실 번역보다 시간이 더 걸리거든. 무에서 하는 게 낫냐, 남이 싼 똥 치우는 게 낫냐 하는 인고의 출산 문제이긴 한데,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난 남이 싼 똥 치우는 게 너무 힘들더라. 때로는 재번역을 해야 할 경우도 있지만, 그런다고 보상을 더 해주는 것도 아니야. 재번역이 필요하다고 말해도 너무 시간 들이지 말라는 답이 대다수고.


그렇다고 이게 유명무실한 건 아니고, 소소한 오류는 이 단계에서 많이 잡히긴 하지만 이 또한 '완벽을 기하는' 데는 현실적인 여건상 무리가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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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며...



재차 말하지만, 이미 '프로 번역사'를 자처하는 이상 언어 자체에는 문제가 없다고 봐. 없어야 하는 게 맞고. 하지만 오역과 각종 발번역을, 그들이 하고 싶어서 하는 게 아니라는 것은 조금 이해해 주면 좋겠다.

위에서 말한 점들은 업계 자체가, 특히 개발사의 개선 노력이 필요한 부분인데 이런 식의 공정도 하루이틀에 생긴 게 아니라 그러면 업계를 바꾸면 되잖아식의 해법으로는 솔직히 안 돼.


게임 역시 '상업 콘텐츠'잖아? 그러니 그걸 즐기는 너거뜰이, 최소한 그 콘텐츠를 돈 주고 샀다면 마음에 들지 않는 번역에 대해서도 개발사에 항의할 필요는 있다고 본다. 지금도 '그저 한국어 번역 해주셨으니 감사'하는 넘들이 있는지,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지만 그러면 안 돼. 수많은 상업 번역 지망생들, 특히... 무려 아마추어에서는 홍길동마냥 날고 기는 무공을 펼치다가 상업에서 이런 구조 땜에 '인실좆'을 맛본 애들이 한둘이 아니야. 그러니 내가 쓴 글이 이해가 되었다면, 아무쪼록 번역사가 아니라 개발사에 보이콧을 하길 바란다.








독투불패 외톨이


편집 : 보리삼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