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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02. 06. 목요일

정치부장 물뚝심송







민경욱 청와대 신임 대변인의 취임을 축하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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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정치는 어떤 사람이 하는 것이 좋을까?


이 질문은 어떤 관점에서는 매우 무의미하다. 정치라는 것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사회 공동체에서 벌어지는 모든 문제에 관여하는 ‘의사결정의 과정이기 때문에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모든 종류의 전문성이 다 필요한 행위다. 따라서 정치활동에 어떤 전문성이 필요한가 하는 질문은 변호사는 어떤 사람이 해야 하는가, 판사는 어떤 사람이 해야 하는가 등의 질문과 유사해진다. 그래서 답은 우리 사회의 모든 분야에 대해 어느 정도는 이해를 하고 있는 사람이 해야 한다는 것이 될 수 밖에 없다.


공교롭게도 실제 우리 사회에서 정치를 하고 있는 사람들의 전문 분야를 따져보면 법조계 출신이 가장 많기도 하다. 그 결과 법조계와 정계에 공통적인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 이 사회에 대해, 시장 바닥 장삼이사들의 삶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면서 공부만 잘 해가지고 고시 패스한 모범생들이 법조계도 주름잡고 정계도 주름잡고 있다는, 그 문제 말이다.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 법조계에서도 그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로스쿨 제도를 도입해서, 학부에서 일단 일반적인 전공을 하고, 그 다음에 로스쿨 과정에 들어오는, 즉 사회적으로 광범위한 이해도를 가진 사람들을 법조계에 공급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는 중이다. 비록 그 성과가 잘 나오고 있다고 보기는 힘들지만, 법대에 진학해 골방에서 육법전서 달달 외우던 세상 물정 모르는 샌님들이 법조계에 가득한 것보다는 나을 것이라는 작은 희망을 가져 볼 수도 있겠다.


정계도 마찬가지다. 다양한 전문성을 가진 사람들이 정계에 공급되어야 한다. 어떤 면에서는 사회에 나온 이래 내내 정당활동만 하던 정치인들보다 각 분야에서 나름대로의 전문성을 가지고 활동하던 사람들이 인생의 제2막을 시작하면서 정계로 유입되는 것도 바람직하다. 사실 이런 인적자원을 공급하기 위해 비례대표 제도가 마련되어 있기도 한 것이다. 비례대표 제도가 정치적 거래로만 끝나지 말고 제대로 활용된다면, 경제, 의료, 역사, 과학, 각종 공학, 환경, 문화계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정계로 유입될 수 있는 창구 역할을 하게 될 수도 있다.


물론 정치계에 공급되면 별로 안 좋은 직업군도 있다. 대표적으로 군인들인데, 이들은 민주적인 의사결정과정에 대한 훈련이 전혀 되어있지 않고 오히려 그런 절차 자체를 비효율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태생적으로 독재를 선호하게 되는 경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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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군사 전문가들은 어디까지나 전문적인 지식을 제공하는 조언자로 역할을 해야지 직접적인 결정권을 가지는 자리에 올라서는 것은 곤란하다. 물론 개별적으로 자신의 출신을 넘어 민주적인 소양이 풍부한 사람들도 존재할 수는 있겠지만 말이다.


이렇게 다양한 분야의 전문성을 가진 인물들이 정계로 유입되어야 한다는 대전제를 놓고 봤을 때, 언론인들의 경우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언론인 출신 정치인들


우리 정계에 법조계 출신 다음으로 많은 직업군이 바로 언론인 출신들이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법조계 출신과 언론계 출신은 정계의 두 축을 이루는 핵심 구성원들이 된다. 그만큼 언론인 출신 정치인들이 많다는 얘기이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법조계 출신들이 가진 장점이라면 법 체계에 대한 이해를 들 수 있다.


정치인들이 활동하게 될 주 무대인 국회가 바로 입법기관이다. 법을 만드는 기관이니 법조계 출신들이 가지는 장점은 생각보다 더 크다. 국회 소위원회들 중에서도 법사위가 가장 대접을 받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들은 정치인으로서의 실무적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봐도 된다.


그러나 언론인들은 약간 다른 관점에서 봐야 한다. 언론인들이라면 주 전문분야가 대중의 여론을 읽고 그 여론에 영향력을 발휘하는 방법이다. 그 방법을 아는 사람들이 바로 언론인들이다. 정치라는 것이 대중과의 대화에서 시작된다는 점에서 보자면 언론인들 역시 정치에 대한 기본 소양을 갖추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언론인 출신들은 선거운동에 매우 유리한 전문성을 가지고 있다. 대중들에게 자신을 드러내야 하는 직업의 특성상 대중적인 인지도가 높은 경우가 많고, 또 언론인으로 활동하는 동안 대중들에게 자신의 주장을 전달할 수 있는 창구를 가지고 있고, 그런 전달과정을 전문적으로 운용할 줄 아는 직업군이기 때문이다. 그런 전문성은 정치인이 된 다음에 장점으로 발휘되기도 하지만 정치에 입문하는 과정에서 통과해야 되는 선거라는 관문, 즉 대중의 선택을 받는 과정에서도 매우 유용하게 작용을 한다. 일단 먹고 들어가는 셈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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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언론의 기능적 측면을 보자면 분명히 부정적인 면도 존재한다. 언론계에 종사하던 사람들은 언론인으로 활동하는 시간 내내 관찰자로 활동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들은 스스로 뭔가를 직접 결정하지 않는다. 사회가 돌아가는 모습을 관찰하고, 그 관찰한 내용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감시자의 역할을 할 뿐이지, 사회적 기능이 잘 돌아가도록 직접 결정하고 그 결정에 대한 책임을 지는 훈련은 거의 안되어 있다. 심지어 더 나쁜 경우는 뭔가 문제가 생겼을 때, 대중을 속일 수 있는 방법도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 바로 그 사람들이라는 거다. 사회적 문제를 숨기기 위해 여론을 호도하고자 할 때 그 적임자들은 바로 언론인 들이다.


이런 것들이 바로 언론인 출신 정치인들이 그렇게 많이 있고, 또 그들이 그렇게 활발하게 활동을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또 언론인 출신 정치인들이 결정적인 순간에 더 중요한 직책을 가지지 못하고 좌절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실제로 우리 정계에 언론인 출신 정치인들은 이루 다 언급하기도 힘들 정도로 넘쳐난다.


아주 오래 전에 사회적으로 엄청난 인기를 누리던 언론인이 하나 있었다. 리즈 시절의 손석희를 능가하고 남을 그 사람의 이름은 바로 봉두완이었다. 경복고, 연세대를 나온 뒤 미국 유학까지 다녀온 당시로는 보기 드문 학벌을 자랑하던 봉두완은 전두환이 통폐합시켜버리기 전까지 존재했던 동양방송에서 안녕하십니까, 봉두완입니다.”라는 논평 프로그램을 맡아 엄청난 대중적 인기를 누렸다. 그리고 동양방송이 통폐합되면서 사라지자 방송을 그만두고, 바로 자신의 직장이었던 동양방송을 없애버린 전두환에게 간택을 받아 당시 민정당의 대변인 직책을 수락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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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쾌하고 날카로운 비판의 칼을 휘둘러 여야를 막론하고 엄청난 대중적인 인기를 끌었던 그였지만 결국 권력의 선택을 받고 권력의 주변으로 날아간 결과 별다른 정치적인 업적도 없이 스물스물 사라져 버린 인물이 되고 말았다. 그에게 남은 것은 부질없는 권력욕에 자신의 명성을 팔아먹은 언론인이라는 오명뿐이었고 대중에게는 입바른 소리 잘하는 놈도 좋은 자리 가면 다 마찬가지라는 불신만을 남겨 놓았던 일로 기억한다.


물론 그런 케이스만 있는 것은 아니다. 언론인 출신들이 높은 인지도를 가지고 정치권에 진출해서 얼굴마담 역할만 하던 시대는 예전에 지나갔고, 그 뒤로는 실질적으로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경우도 많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역대 국회의장을 보면, 17대 국회의장 김원기, 임채정, 18대 국회의장 김형오가 모두 동아일보 출신이다. MBC 방송의 앵커출신 정동영은 비록 큰 차이로 낙선하기는 했지만, 야권을 대표하는 대선후보의 자리까지 올라갔었다. 같은 MBC의 사장 출신인 최문순은 지금 강원도지사의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과연 이 언론인 출신 정치인들이 현대사적 관점에서 한국 정치를 얼마나 발전시켰는지는 의문이 든다. 그들이 도대체 뭘 바꿨을까?


민주노동당에 참여하여 대선에도 여러 차례 출마했던 권영길 역시 언론인 출신이다. 권영길은 서울신문 기자 출신이며 파리 특파원까지 지낸 전형적인 언론인이었다. 지금은 정의당에 몸을 담고 있던 노회찬 역시 매일노동뉴스라는 언론의 발행인이었으니 언론인 출신이다. 이들은 과연 무엇을 이루었을까?


그 밖에도 이계진, 전여옥, 한선교, 최구식, 박형준, 김효재, 고흥길, 심재철 등 이름만 대면 알만한 언론인 출신 정치인들은 지금 우리의 정치권을 어떻게 바꾸어 놓은 것일까? 오히려 언론인 출신들은 입만 살았지, 할 줄 아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오명만을 남겨 놓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니 그 이전에, 권력의 주변에 가기 전에는 뭔가 있는 것처럼 떠들더니, 정계에 들어가자 마자 기득권에 편입되어 못된 짓만 하고 있다는 평을 받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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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엔 문화부장, 오후엔 대변인


이 문장은 한국기자협회의 김고은 기자가 쓴 기사제목이기도 하다.


윤창중이 성추행 사건을 일으키고 물러나고 김행 전 대변인 마저 물러난 뒤 한 달이 넘게 공석이던 청와대 대변인 자리에 새로 발탁된 KBS 앵커 출신 문화부장 민경욱에 관련된 내용을 논평하면서 기자들이 지은 제목에는 많은 뜻이 함축되어 있다.


민경욱 신임 대변인이 청와대에 발탁되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던 날 오전까지도 민경욱은 KBS 내부의 편집회의에 문화부장의 자격으로 참가를 했었다고 한다. 이명박 정권 시절에 청와대 대변인을 했던 김은혜도 MBC 뉴스데스크의 앵커 출신이었다. 그러나 김은혜의 경우, 현직에서 물러난 뒤 8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뒤에 공직에 나선 것이니, 현직에 있다가 순식간에 자리를 옮긴 민경욱과는 좀 다른 상황이라고 봐야 하겠다.


기본적으로 언론인이 정치에 참여하는 것은 금지된 일도 아니고 악행도 아니다. 하지만, 언론인으로 활동하면서 얻은 유명세가 온전히 자신만의 것은 아니기 때문에 최소한 자신이 속해 있던 회사에 무형의 손해를 끼치지 않기 위한 노력은 했어야 한다. 더욱이 MBC와 달리 KBS는 공영방송이다. 그 공영방송의 얼굴인 9시 뉴스의 앵커 역할을 3년 가까이 하던 사람이 앵커를 그만두고 문화부장이라는 직책을 가지게 된지 몇 개월 되지도 않아서, 당일까지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급작스럽게 청와대 대변인으로 간다는 것은 직업윤리 위반이며, KBS 자체가 가지고 있는 윤리강령에도 분명히 위배되는 일이기도 하다.


KBS 윤리강령 제1 3항에는 “KBS인 중 TV 및 라디오의 시사프로그램 진행자, 그리고 정치관련 취재 및 제작담당자는 공영방송 KBS 이미지의 사적 활용을 막기 위해 해당 직무가 끝난 후 6개월 이내에는 정치활동을 하지 않는다는 조항이 명시적으로 적혀 있다. 선출직이 아니라서 괜찮다고? 구차한 변명일 뿐이다. 분명히 본인도 밝히기를 5일 전, 그러니까 설 연휴 전에 이미 통보를 받았다고 한다. 그러고 나서 당일까지도 오전 편집회의에 참가를 하면서까지도 그 사실을 숨긴 것은 도대체 무슨 의도였던 것일까?


본인 스스로도 이 절차가 올바르지 못한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지 않은가. 그리고 자신이 먼저 얘기를 꺼내기 전에 이 나라의 최고 권력기관인 청와대가 먼저 발표를 할 때까지 기다렸고, 청와대가 부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차출 당한다는 모양새를 갖추려는, 즉 권위에 업혀 가려는 심리를 드러낸 것이라는 해석 말고는 도대체 어떤 해석이 가능한지 모르겠다.


사회적으로도 이런 식의 일 처리는 부정적인 효과를 가져올 수 밖에 없다. 공영방송의 간판 프로그램에 나와 사회를 비판하고 정치를 비판하던 얼굴이 어느 날 갑자기 정권의 발탁을 받아 청와대의 입으로 자리를 옮긴다는 것은 앞으로 공영방송이 9시 뉴스에서 어떤 얘기를 전달하더라도, 대중들은 저것들은 또 어디로 가고 싶어서 저런 소릴 하나?”라는 뒤틀어진 불신의 반응을 가져오게 된다는 것이다. , 공영방송의 신뢰도가 추락하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KBS가 아직도 신뢰라는 것을 가지고 있는지는 의문이지만 말이다.


딴지일보의 문화부장 춘심애비님에게는 부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기를 빌 뿐이다.


이제 남은 질문은 도대체 무엇이 이런 모든 부작용들을 감수하면서까지 이렇게 무리한 인선을 그렇게 급하게 강행하도록 했는가 하는 질문 뿐이다.


 

도대체 왜 뽑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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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청와대의 인선은 여태껏 아무도 보지 못했던 매우 기괴한 방식으로 진행되어 왔다. 집권 초 인선 작업 자체를 제때 하지 못해서 내각 구성도 늦어지고, 그나마 뒤늦게 선정한 인물들 역시 하나 같이 엄청난 하자를 가진 인물들이어서 낙마도 많이 발생하고, 그렇게 어렵게 선택한 사람들 중에 진영 장관같이 엉뚱하게 그만두고 나가버리는 사람들까지 나오고, 하여간 총체적인 난맥상을 보여왔다.


그러면서도 무슨 엄청난 비밀이라도 되는 양, 인선 안을 발표하는 대변인조차 그 내용을 사전에 보지 못하고 기자들 앞에서 밀봉된 봉투를 열어 아카데미상 수상자 발표하듯이 발표하는 깜짝쇼를 연출하기도 했었다.


이 모든 해괴한 광경이 발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마디로 말해서 이 정부의 청와대, 박근혜 정권은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인선의 기준과는 상당히 다른 기준을 가지고 인선 작업을 수행하기 때문인 것이다.


합리적인 인선의 기준이라면, 해당 직책을 수행할 수 있는 전문성, 그 직책을 수행하는데 지탄을 받지 않을 수 있는 정도의 도덕성, 그리고 주변 인물들이 문제를 발생시킬 가능성은 없는가 하는 친인척을 포함한 인적 네트워크의 문제, 최종적으로 함께 일을 해 나갈 사람들과 가치관이 얼마나 잘 맞는가 하는 점 정도가 될 것이다인선작업을 주도적으로 수행하는 사람들은 이 기준을 가지고 후보자들을 고르고 필터링하여 인사권자가 최종적으로 선택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그러나 박근혜 정권의 인선 기준은 이와는 많이 다른 것으로 드러나고 말았다. 이 모든 기준은 모두 다 부수적인 조건들이 되어 버리고, 정권에 대한, 아니 박근혜 대통령 개인에 대한 충성도 여부로 모든 인선을 수행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윤창중 같은 문제적 인물이 청와대 대변인이라는 자리에 발탁되는 과정도 이를 입증하는 전형적인 사례였을 뿐이다. 전문성도 도덕성도 네트워크도 모두 낙제이지만, 박근혜에 대한 충성심은 병적으로 강했던 사람이 바로 윤창중이다. 그런 사람을 대변인으로 앉히고 미국 순방에까지 데리고 갔으니 문제가 안 생기면 더 이상한 그런 상황이었다.


민경욱의 경우도 이런 기준에 비추어 보면 모두 다 설명이 된다.


그가 KBS의 앵커로 활동을 하면서 9시 뉴스에 등장한 기사들을 살펴보시라. 이미 많은 사람들이 이런 분석을 다 마쳐 두었다. 유승민 의원실의 자료에 의하면 박근혜 대통령 취임 이후, 민경욱이 앵커직을 그만두던 10월까지 KBS 9시 뉴스에 박근혜 대통령 관련 기사가 등장한 것은 모두 133차례. 겨우 6개월 조금 넘는 기간 동안 벌어진 일이다. 그 중 29차례는 가장 중요한 첫 꼭지에 박근혜 대통령 관련 기사를 언급했다.


뉴스 편성에 앵커가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지 않더라도, 자신의 얼굴을 걸고 전국민이 시청하는 공영방송의 메인 뉴스에서 이토록 애타게 박근혜의 이름을 부르던 앵커를 바라보던 청와대의 시선은 어떠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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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전에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되던 시점에도 자신이 취재한 다큐멘터리의 내용에 기반해 이명박에 대한 극도의 호의적인 반응을 미 대사관에 유출시켜 무려 위키리크스에 폭로된 미 대사관 발 비밀 전문에까지 자신의 이름을 올려 버렸던 위엄을 지닌 민경욱이 거의 매일(매일은 아닌가?), 하루 걸러 한 번씩 9시 뉴스에서 박근혜 대통령 관련 기사를 읽어주고 있던 이 모습은 청와대의 시선으로 보자면 엄청난 충성심을 간직한 충직한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겠냐는 말이다.


일단 그렇게 충성심 인증이 끝나면 이 정권에서는 앞뒤를 가리지 않는다. 한 달이 넘게 대변인 자리가 공석이었다는 점 역시 이번 인선의 의미를 웅변해 준다. 그만큼 충성심을 보유한 후보자가 없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무리 찾아도 그런 충성심을 가진 대상자가 없는 마당에 비록 지금도 문화부장이라는 직책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KBS 앵커까지 3년 가까이 했던 얼굴마담 민경욱이 레이더에 포착되자 마자, 바로 사인을 보낸 거다.


직책을 그만두고 6개월이 지나야 한다는 둥 하는 처벌 조항도 없는 거나 마찬가지인 윤리강령 따위는 검토의 대상도 안 된다. 그런 마당에 공영방송의 신뢰 하락 같은 사회적 부작용을 언급하는 스텝은 오히려 충성도를 의심받게 되고, 일하기 싫은 거냐는 질문을 유발할 뿐이다.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고, 민경욱은 극도의 번민속에 외로움이 있던 상황을 박차고 나와 청와대로 날아가 버렸다. 무려 5일씩이나 극도의 외로움 속에 번민을 느끼며 고생했던 민경욱씨의 멘탈이 하루 속히 치유되길 빈다. 멘탈이 있기는 한 지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할 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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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로 할 말이 없다. 보다 보다 처음 보는 기괴한 광경을 너무나 자주 접하게 되니, 이제는 말문이 막히려고 한다.


이런 식의 인사 처리는 밤의 세계를 지배하는 조폭들 사회에서나 볼 수 있다. 아니 그 동네에서도 아무리 충성심이 있어도 실무 능력, 즉 싸움 실력이나 배짱이나 사람들을 제압하는 카리스마나 이런 것들이 있지 않으면 보스의 직계로 선발되지 못한다. 살아남지 못할 것이며 조직을 위험에 빠트릴 것이라는 점을 잘 알기 때문이다. 조폭들도 그렇게 무식한 짓은 안 한다.


세계 무역규모 10위권의 대한민국의 살림살이를 꾸려가야 하는 청와대가 이런 조폭보다 못한 인선을 강행하고, 또 그런 인선이 아무런 여론의 지탄도 받지 않고 수행이 되며, 야당도 이에 대해 제대로 된 목소리 한 번 못 내는 이 사회, 도대체 이 사회는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어차피 대변인 자리 따위, 대통령이 내미는 어디서 작성되었는지도 알 수 없는 밀봉된 봉투나 들고 와서 기자들 앞에서 개봉해서 읽어주는 앵무새 역할만 하면 되기 때문에 아무 문제 없다고 생각하는 걸까?


실무를 감당할 만한 전문성, 대중의 기준에 걸맞는 도덕성, 문제적 행동의 가능성, 뭐 이런 인선의 조건들은 다 집어 치워 버리고, 오로지 충성심 하나가 선발 기준이 되어 버리는 고대사적 인선 기준을 가지고 인선을 하고, 이에 항의하는 모든 목소리를 묵살해 버리고, 여타 제반 사회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부정적인 효과는 모두 모른 척하고 강행해 버리는 이런 원초적 스타일의 통치는 내 식견이 짧아서 그런지 대한민국 현대 정치사에서 미처 구경한 적이 없다. 아마 내가 유년기를 보낸 유신 시대에는 이런 일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이런 식으로 위험한 일처리 방식을 고수하다가는 이 평화로운 공주님의 왕국이 어느 한 순간 내부로부터 붕괴될지도 몰라 극심한 염려가 된다. 밤에 잠이 안 올 지경이다.


제발 그런 일은 없어야 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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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부장 물뚝심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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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보리삼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