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물 간 주요 이슈들의 핵심을 날카롭게 비껴 가 겉핥기식으로 대충 들여다보는 <시사변두리-이슈VS.이빨>, 10월 첫째 주 이슈들을 살펴보자.
심재철에게 ‘회군’이란
자유한국당 심재철 의원의 연이은 정부 비공개·미인가 예산 지출내역 폭로가 가관이다.
심재철 의원은 기획재정부 산하 한국재정정보원이 운영하는 디지털예산회계시스템(디브레인)에 접속해 190여 차례, 약 47만여 건의 미인가 정부예산 자료를 다운받아 이를 바탕으로 청와대 업무추진비 사용 내역 등의 폭로를 이어가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심 의원실의 자료 접근 과정이 불법이라고 판단, 검찰에 고발 조치했고 검찰은 지난 21일 심 의원의 의원실과 보좌진 3인의 주거지 등을 압수수색하여 분석 작업에 들어갔다. 이에 대해 자유한국당은 "문재인 정부의 야당 탄압과 국정감사 무력화 시도가 도를 넘고 있다"며 대검찰청을 항의 방문하는 등 규탄에 나섰다.
심 의원 측은 “백스페이스를 눌렀더니 자료가 열렸다”고 주장한다. 홍해냐? 지팡이를 꽂았더니 쫙쫙 갈라지게? 뭐, 사람이 살다보면 별일을 다 겪기 마련이다. 로또 1등 당첨이 8백만 분의 1이라고 하지 않는가. 이 땅에선 매주 그런 기적이 버젓이 일어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아무 생각 없이 백스페이스를 눌렀더니 막 미인가 자료가 벌컥 벌컥 열리고 그럴 수 있는 거다.
심재철 의원의 미인가 자료 입수와 폭로는 불법인가, 국민의 알 권리인가. 관심 없다. 불법이라면 사법부가 판단하여 적절한 처벌을 할 일이다. 내 개인적 의견을 묻는다면, ‘알 권리’에 해당한다고 본다. 그건 말미에 거론키로 하고. 여튼,
그럼 폭로 내용을 함 디비 보자.
청와대 직원들이 수당을 부정 수령했단다. 규정상, 업무와 관련된 회의엔 수당을 받을 수 없는데 회당 10만 원에서 25만 원씩 받은 결과, 많게는 수백만 원씩 부정 수령했다면서 명단까지 실명으로 공개했다. 청와대의 반박이 압권이다. 문재인 정부는 궐위 선거를 통해 당선된 바, 인수위 과정 없이 당선 즉시 취임했으므로 청와대 보좌진 정식 임명 전까지 민간인 신분으로 회의에 참석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인두껍을 썼으면 ‘염치’라는 게 있어야 하는 거 아니냐? 누구들 때문에 그 사달이 나서 대통령 당선인이 인수위도 없이 허겁지겁 국정을 꾸려가게 됐는데, 일말의 민망함도 없이 적반하장도 이런 적반하장이 있을 수가 있느냔 말이다.
싸우나 출입은 또 어떤가. 만약 청와대가 싸우나 비용으로 육백육십억 원을 지출했다면 온 국민이 경악했겠으나, 육만육천 원 썼다고 충격에 빠질 국민, 단언컨대, 없다. 하물며 싸우나를 이용한 사람들이 평창올림픽 때 강추위에 고생한 군인과 경찰들이란다. 두당 오천오백 원. 이건 충격적일 만치 명백한 미담이다. 심재철은 지금 대체 무슨 짓을 하고 있는가.
국가 주요 재난 당일과 심야, 주말, 고급, 술집 등등 들이미는 모든 의혹과 폭로마다 청와대는 "11월 20일 23시 25분 종로구 소재, 기타일반음식점, '블루○○(현재 폐업)"이라며 "금액 4만 2000원 결제, 사유는 정부예산안 민생 관련 시급성 쟁점 설명 후 관계자 2명 식사, 23시 이후 사용 사유서 징수 완료", 이런 식으로 편철된 영수증과 내용, 당시 업무 상황을 상세히 밝히며 심재철 얼굴에 건 바이 건으로 똥을 처바르고 있다. 옆에서 보는 사람이 다 애처로워 눈가가 촉촉해질 지경.
너가 무슨 시지프스냐? 그만 좀 해! 문재인밖에 모르는 바보!
최순실의 태블릿에 단련된 국민이다. 이거 넘어서기 쉽지가 않다. 앵간한 스캔들로는 턱도 없다. 심재철이 조촐하다 못해, 보는 이가 다 안타까운 거대한 삽질을 하는 이유는 대체 뭘까?
‘국정감사’ 기간은 국회의원들에게 ‘대목’이다. 한 철 장사다. 언론의 한 귀퉁이라도 얼굴을 들이밀기 위해 국감 현장에서 불도 지르고 희귀한 동물도 갖다 놓고 온갖 아이디어를 총동원한다. “내가 이렇게 잘하고 있어요”라고 어필하기에 국감만 한 기회도 드물다. 그러기 위해 당연히 큰 거 ‘한 방’에 목을 맨다.
심 의원 측 주장대로, 백스페이스를 눌렀더니 미인가 자료에 접근할 수 있었다 치자. 그 직원은 얼마나 심장이 쿵쾅거렸을까. 월드컵에서 안정환이 골든 골을 넣었을 때와 비견할 만하지 않았을까. 당장 의원에게 보고했겠지. “이번 국감, 대박입니다요!” 그리고 다 같이 둘러앉아 들여다봤겠지. A 비서관이 외쳤다. “헉! 저...저게 뭐야?” B 비서관이 되물었다. “뭐 말야?” A 비서관은 떨리는 목소리로 절규하듯 외쳤다. “저... 저...저거 저거! 싸우나! 싸우나다!” B 비서관은 자신의 두 눈을 믿을 수 없었다. “뭐? 싸우나가 있어?!” 손이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태어나서 다녀 본 싸우나라고는 옛말로 이르자면 터키탕이었다.
보좌진들의 머릿 속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영화 ‘칼리큘라’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아니면 ‘옥보단’이었을까. 청와대 직원들이 거품 속에서 앳된 아가씨들과 알몸으로 나뒹굴며 바디를 타는 모습이 눈에 선했다. 뭐 눈엔 뭐만 보인다 했던가. 자고로,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다. 의원실의 모든 이들은 만세를 불렀다. 제 2의 태블릿이었다. 정권의 도덕성이 궤멸적 타격을 입고 무너지는 건 시간 문제다. 싸우나라니. 아아... 싸우나라니! 이후, 고구마 줄기 딸려 나오듯 미담들이 주루루 딸려 나올 줄은 상상도 하지 못한 채, 그들은 달뜬 맘을 달래려 여의도 근처 싸우나로 향했다. 아님 말고.
그럼 정부는 아무 잘못이 없을까? 아니다. 큰 잘못을 저질렀다. 위험하거나 조심해서 다뤄야 할 물품에 반드시 적용해야 할 ‘영·유아와 자유한국당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 보관 하십시오’라는, 가장 기본적인 안전수칙을 지키지 못했다. 어린 아기와 자유한국당은 기본적으로 똥,오줌을 못 가리며 뭐든 손에 걸리면 덮어놓고 입에 넣기부터 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만큼 조심해야 한다. 변명의 여지가 없는 인재다. 개탄스럽다.
이 타이밍구에서 앞선 질문을 다시 던져보자.
심재철은 왜 별 것도 아닌 걸 갖고 이 지랄 난리를 치는가?
우선, 심재철 의원은 80년 서울의 봄 때 소위 ‘서울역 회군’으로 역사에 화려히 데뷔한다. 서울대 총학회장이었던 심재철은 80년 5월 15일, 역사에 길이 남을 ‘쫄보’였다. 이후 쫄재철, 아니, 심재철은 MBC 기자로 활동하다가 방송사 최초로 노조도 설립하고 막 집행유예도 받고 막 막 쫄보의 길을 벗어나려고 막 발버둥을 치며 살다가 1995년 김영삼에 의해 신한국당으로 픽업되며 정치인의 길을 걷는다. 정치 인생 20여 년, 무려 국회부의장도 하고 5선 중진으로서 이제 그 징글징글했던 ‘쫄보’ 딱지가 좀 떨어지나 싶었는데 그 자리에 ‘싸우나’가 들어서게 생겼다. 그리하여 싸재철, 아니 심재철은 오늘도 예산 내역을 하루에 하나씩 세상에 던지며 힘겨운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그래, 처음엔 노다지를 캔 줄 알았다 치자고. 헌데 까봤더니 나오는 건 줄줄이 미담이야. 그럼 얼릉 발을 빼고 재빠르게 ‘회군’해야 하는 거 아니냐. 심지어 종특이잖냐. 하지만 그럴 수 없다. 생각해 보라. 80년 5월, 심재철이 내린 단 한번의 ‘선택’이 30년의 심재철을 규정했다. 그에겐 ‘회군’ 트라우마가 있는 것이다. 이제 역사적인 ‘회군’을 선택해야 할 일이 또 생겨 버렸다. 너라면 쉽게 되겠냐. 무리데스. “내 인생에 두 번 다시 ‘회군’이란 없다!” 그리하여 싸재철, 아니 심재철은 오늘도 피눈물을 흘리며 예산 내역을 하루에 하나씩 세상에 던지는 힘겨운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47만 건이니까 앞으로 대략 1,287년이 더 걸릴 예정이다. 숙연해지지 않을 수 없다.
이제 심재철의 ‘기이한’ 자폭적 행보가 좀 이해가 되는가. 이론의 여지가 없을 줄 안다. 하지만 그의 ‘자폭’이 세상에 던지는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으며 퇴색되어선 안 된다고 본다. 바로 업무추진비, 특수활동비 등의 ‘공적 비용’이라는 화두 말이다.
민주당 박범계 의원은 자신의 SNS에 “국회 부의장 2년 시절 받아 가신 6억 원이 특수활동비인가요? 업무추진비인가요? 그걸 지금 청와대에 들이대는 잣대로 스스로 검증할 의지는 없으신가요”라고 직격탄을 날렸고 심재철 의원은 청와대의 업무추진비와 자신이 국회부의장 시절 수령한 특수활동비는 성격이 다르다며 ‘청와대 업추비는 국민세금’, ‘특활비는 개인에 지급한 돈을 재량껏 쓰는 것’이라고 반박했다는데, 뭔 자다가 봉창을 두드려도 그리 황망히 두드리냐. 특활비는 어디 땅에서 솟아난 자금이냐. 특활비도 세금 아니냐는 반박에 “말실수”라는 민망한 리액션을 취했다.
또한 이 타이밍구에서, 딴지일보 게시판에 올라온 댓글들을 소개해 본다.
겨 묻은 개, 똥 묻은 개 이야기가 아니다. 그러는 너넨 깨끗한가, 라고 메신져를 공격하려는 것이 결코 아니다. 내가 앞서 심재철 의원의 행위는 ‘국민의 알 권리’라 여긴다고 밝힌 것과 같은 이유다. 심재철 의원, 공익을 위해 큰일 하신 거 맞다. 그런데 그 빌어먹을 ‘회군’ 트라우마 때문에 못 먹어도 고를 외치니 좀 많이 꼬이는 것뿐이다.
이제 각자의 자리에서, 모든 것을 제 자리로 돌려놓을 때가 되었다. 심재철 의원 스스로도 특활비 공개 용의가 있음을 밝혔다. 있는 그대로 밝히는 용기를 보인다면, 세상은 더 이상 심재철 의원에게 ‘쫄재철’이라느니, ‘싸재철’이라느니 하는 몹쓸 힐난을 거두고 용기의 첫 삽을 뜬 ‘삽재철’이라 부르며 칭송할 것이다. 거대한 삽질이 용기의 삽질로 거듭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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