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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km, 서울에서 평양까지의 직선거리다. 서울에서 전주 가는 거리와 비슷하다. 그다지 먼 거리가 아님에도, 평양에 가는 건 개꿈이나 진배 없다. 서울과 평양 사이엔 넘을 수 없는 선이 있기 때문에. 

 

그런데 말이다, 절대 오지 않을 것 같은 평화가 다가오더니, 얼마 전까진 넘을 수 없었던 선을 당당하게 넘어간 사람이 늘어간다. 심지어 그것을 TV에서 생중계해준다! 평생 닫혀있을 것만 같았던 문들이 하나씩 열리기 시작한다.

 

90년대에 ‘서울에서 평양까지 택시로 2만 원’이란 노래가 풍미했다 카던데(지금이라면 기사님과 쇼부쳐도 최소 25만 원은 있어야 할 것 같지만), 머지 않아 진짜 평양행 택시를 탈 수 있는 날이 올 지도 모르겠다. 긍지 높은 물냉파로서 진짜 평양냉면을 맛보러 갈 수 있는 건가 하는 희망과 근본없는 ‘비냉파’ 반체제적 주장을 제압하고 싶다는 의지가 마구마구 샘솟는 가운데...

 

음, 근데 평양은 어떻게 갈 수 있을까? 내친 김에 알아봤다. 서울에서 평양 가는 지극히 현실적인 6가지 방법을 소개한다.

 

 

1. 하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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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의 김대중 대통령, 그리고 2018년의 문재인 대통령은 ‘서해직항로’로 평양에 갔다. 인천이나 김포, 성남공항에서 출발해, 황해도를 돌아, 평양순안국제공항에 도착하는 ‘ㄷ’자 루트. 2015년 방북했던 이희호 여사, 2018년 평양에서 열린 ‘봄이 온다’ 공연에 참여한 뮤지션들도 이 서해직항로를 이용했다. 뿐만 아니라 북한인사들이 남한을 방문할 때도 이 루트를 이용한다. 이렇게 가면 약 1시간 10분이 걸린다. 빙빙 돌아가기 때문에 김포에서 제주도 가는 시간과 비슷하다. 그럼 왜 돌아가냐고? 북한과 관련된 말은 거진 맞는 박지원 의원의 설명을 들어보자.

 

“2000년 6·15 당시 평양에서 김정일 위원장은 '전방의 군인들은 무기 발사를 무의식 중에 할 수 있습니다. 군 주둔지를 피해 공해상 영공을 이용, 평양 후방 지역으로 들어오면 안전이 보장돼 조금 돌아오시게 했습니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니까 북한의 전직 최고존엄이 인증한 안전루트 되시겠다.

 

사실 평양순안국제공항은 안 좋기로 유명했다. 콘크리트 활주로 관리는 엉망이었고, 시설은 빈약했다. 그러던 2012년, 김정은 위원장의 지시로 재건축에 들어갔고, 지금은 유리궁전 건물과 그럴싸한 활주로를 갖게 되었다. (안타까운 건 마감공사 중이던 2014년, 현장에 방문한 김 위원장으로부터 “세계적인 추세를 살리면서도 주체성, 민족성을 살리라고 했는데 그렇게 못했다.”며 졸라 갈굼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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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이 아무리 좋아졌다고 해도 단점은 있다. 입국심사다. 북한의 입국심사는 악명 높은 난이도를 자랑하는데, 특히 국제관계가 요동칠 때마다 난이도가 더더욱 증가한다. 2011년 일본 축구 대표팀은 입국심사에 무려 4시간이나 걸리는 기염을 토했다. 어쩌겠나,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라야 하는 것을.

 

북한의 입국심사 시스템을 미리 알아두는 팁이 필요할 것 같다. 다행히도 북한의 현실을 200% 반영한 시뮬레이터가 있다. 바로 갓-겜 <동무, 려권 내라우!>. 하늘길을 이용해 평양에 가려는 사람이라면 필히 한 번씩 플레이를 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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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 갓겜임ㅇㅇ

 

 

2. 땅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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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사진은 2007년 노무현 대통령이 파주 군사 분계선을 걸어서 넘는 장면이다. 노 대통령이 이용한 육로는 '경의선 육로'로, 2003년 개통된 이래 13년 간 141만 명의 사람과 85만 대의 차가 이용했다(개성공단이 본격적으로 가동된 이후 적극 이용되었다). 원래 남한 측만 사용하던 도로였지만, 평창올림픽에 참가한 북한예술단이 북측 최초로 경의선 육로를 이용했다.

 

'판문점 육로'도 있다. 1998년, 정주영 회장이 1001마리의 소 떼를 몰고 했던 고향방문으로 뚫린 육로다. 이 길은 제3차 남북정상회담 때 김정은 위원장이 벤츠를 타고 내려 온 길이며, '영 시원치 않다'고 말한 길이기도 하다. 당시 조선중앙티비 보도를 보면, 논밭이 펼쳐진 깡촌과 깡촌을 가로지르는 비좁은 도로, 그 위를 달리는 최신 벤츠의 기묘한 3중주를 감상할 수 있다.

 

경의선, 판문점 육로의 종착지는 개성이다. 개성에서부턴 평양-개성 고속도로를 이용해 평양까지 갈 수 있다. 문제는 '쭈욱' 밟고 싶어도 노면이 엉망이라 그럴 수 없단다. 경부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1m마다 땜빵을 쳐놓은 구간을 볼 수 있는데, 그것보다 더 심각한 모양인지, 가끔 큰 맘 먹고 북한에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에게서 볼멘소리가 나온다 카더라. 다행인 건 이번 남북정상회담에서 평양-개성 고속도로를 개선하기로 합의했고 개성-문산을 잇는 고속도로도 짓기로 계획을 잡은 것 같다. 총연장 150km짜리 도로에 커브라고는 단 두 번이라니, 나의 모닝이도 나름 씽씽 달릴 수 있을 것 같다.

 

참, 이 긴 도로에 휴게소라고는 '은정 휴게소' 딸랑 하나 있다고 하니(가판대 놓고 상품을 파는 걸 보면 상시운영까진 아닌 것 같다), 급한 일은 출발 전에 해결하는 게 좋겠다. 운전 중에 급똥각이 잡힐 경우 인생에 남을 흑역사가 생길 수 있다... 심지어 주유소는 출발지인 개성공단에 딸랑 하나 있으니, 덮어놓고 밟다보면 미아될 수 있다. 여러모로 개선이 시급해보인다.

 

평양 가는 육로 여행 시뮬레이터로 백괴게임의 ‘평양개성고속도로 게임(링크)'이 있으니, 미리미리 익혀두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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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개성 고속도로 사진. 아무래도 옛날 사진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 멀리에 고속도로에 있어선 안 될 풍경이 보일 리가 없다...

 

 

3. 바닷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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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동도에서 바라본 북한

 

하늘도 땅도 여의치 않다면? 바다가 있다. 실향민의 땅 강화도 교동도에서 북한의 황해도 연백군 사이는 고작 2km 남짓. 엄청 가깝다.

 

우리는 대한해협을 헤엄쳐서 건넌 조오련의 나라가 아니던가. 2km 정도야 보통 사람도 조금만 심신을 단련하면 건너갈 수 있을 것이다. 당장 급해서 단련할 시간이 없다고 해도 괜찮다. 2015년에 빈 페트병을 튜브 삼아 월북을 시도했던 사례가 있다. 잡히긴 했지만 조금 개량한다면 충분히 가능성 있다. ㅇㅈ? ㅇㅇㅈ

 

아무튼 엄청 가깝다보니 남파/북파 공작원이 뻔질나게 이용했다고 한다. 지금은 섬 전체가 통제구역으로 지정되어 살벌한 철조망에 둘러쌓여 있다. 그럼에도 2013년 교동도를 통해 '민간인 신분'의 40대 북한 남성이 귀순한 적이 있으니, 정신을 또렷이 집중해서 잘 찾아보면 삼엄한 국군과 북한군에게서 빈틈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교동도 루트의 단점은 북한까지 가는 건 그리 어렵지 않으나, 평양까지 속절없이 뚜벅이가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행군이 가장 즐거웠던 사람이 아니라면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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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왕이면 편하게 여객선을 타고 평양에 가는 쪽이 다소 가오는 상하더라도 나을 것 같다. 라고 해서 나온 게 두 번째 안, 서해평화수역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제안하고 문재인 대통령이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으로, 인천에서 여객선을 타면 북한 남포에 도착한다. 거기서부터 평양과 남포를 잇는 ‘청년영웅도로’를 달리면 평양에 갈 수 있다.

 

두 번째 안이 현실화 된다면, 남북의 해군이 서로에게 겨누고 있던 포구를 거두고 중국의 불법조업 어선을 경비하는데 집중할 테니, 우리는 여객선 객실에서 편하게 평양가고 어민들은 편하게 조업할 수 있다. 이거 참 일석이조가 아니라 할 수 없다.

 

 

4. 둘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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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돈 내고 트래킹 하는 시대가 아니던가. 반세기 동안 보존된 비무장지대의 아름다움을 보며 평양까지 가는 방법도 추천할 만 하다.

 

트래킹 루트엔 최단 루트와 다소 돌아가는 루트가 있는데, 최단 루트는 임진강을 거꾸로 거슬러 오르는, 이른바 ‘연어루트’다. 다만 추천하지는 않는다. 2013년 스티로폼을 들고 강을 건너던, 지금도 정체가 기묘한 남성이 해병대의 소환에 불응해 사살당한 적이 있기 때무네...

 

국토대장정을 하는 마음으로 다소 먼 거리를 돌아가는 루트는,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귀순의 전설로 남은 ‘2012년 북한군 노크 귀순 사건‘을 떠올려보자. 고압전류가 흐르는 철책 4개를 가뿐히 뛰어넘을 패기만 있다면 뚜벅이 평양길도 가능하다.

 

'2015년 북한군 숙박 귀순 사건'도 뚜벅이 루트에 한 가지 시사점을 더한다. 최첨단 장비와 삼엄한 경계로 무장한 통제지역에서 꿀잠을 자고 귀순한 북한군인처럼, 트래킹 하다가 피곤하면 비박을 하며 라면을 후루룩 말아 먹는 것도 꽤 즐거울 것 같다. 외로우면 고라니와 대화를 하고, 심심하면 멧돼지와 하이파이브를 하며 울창한 삼림을 걷는다. 참으로 스릴 넘친다.

 

짜릿함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비무장지대에는 지뢰가 빽빽하게 심어져있다. 이것을 요리조리 밟지 않고 통과해야 한다. 아마 유소년 시절부터 <지뢰찾기> 게임을 꾸준히 해온 사람이라면 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5. 지하길

 

육로로 가는 길은 필연적으로 비무장지대의 자연을 훼손할 수밖에 없다. DMZ의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평양에 가는 방법은 '땅굴' 뿐이다. 이 분야의 전문가이자 19대 대선후보였던 김민찬 씨의 주장을 들어보자.

 

“지상에 핵 위협이 있다면 지하에는 남침 땅굴의 위협이 도사리고 있다. 현재 서울·경기·인천 일원에 남침 땅굴이 들어와 있다고 민간인으로 구성된 남침 땅굴 탐사대 전문가들이 우려하고 있다. 정부는 민관군 합동 탐사대를 조직해 땅굴을 조사해야 한다.”

 

김민찬 씨가 전 국정원장 남재준과 키배를 벌이는 장면은 군소후보 토론회 최고의 명장면이었다. 그는 평양 가는 시대가 이렇게 빨리 올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땅굴안보국민연합에서 배포한 자료를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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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사당 지하에 있는 땅크를 하나 얻어 타고 지하길을 달리는 것도 꽤 색다를 것 같다. 혹자는 북한의 땅굴이 개성에서 출발해 태백산맥을 넘어 부산까지 이어져있다 카던데, 전국 어디서든 평양을 다이렉트로 갈 수 있다는 점은 앞서 소개한 모든 방법보다 메리트가 있다. 기갑병과 주특기를 가진 군필자라면 금방 북한 땅크도 운용할 수 있겠지.

 

 

6. 기찻길

 

2007년 5월 17일, 남북열차의 시험운행이 있었다. ‘철마는 달리고 싶다’라는 유명한 문구가 잠시나마 실현되는 순간이었다. 새마을호가 남방 한계선을 넘어오는 광경은 오묘한 기분에 젖게 했다. 얼마 전 남북의 정상이 도로와 경의선 철도의 현대화를 최우선 과제로 설정했으니, 기차타고 평양 가는 날이 곧 올 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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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측 통문을 통과해 북한으로 넘어가는 기차 (사진:경향신문)

 

북한은 철도개선 사업을 최우선으로 하고 있다. 최종목표는 최고시속 350KM의 경의선 고속철도 완성. 남한의 수색역에서 출발해 김포-판문점-개성-사리원-평양-신의주까지 간다. 이건 리얼루다가 그 누구도 가보지 못한 길이다.

 

문제는 북한의 철도환경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최악이라는 점이다. 괜히 전세계 철도덕후들에게 신비를 머금은 미지의 땅이자 살아있는 철도 박물관이라 불리는 것이 아니다. 2007년 공개한 영상에 일제시대 때의 증기기관차가 다니는 모습이 나오기도 했고, AP통신의 기자가 함경북도에서 찍은 아래의 사진을 봐도 상황이 좋지 않다는 걸 알 수 있다. 마치 1960년대 같은데 2014년에 찍은 사진이다. 군산 어딘가에 이런 모습을 간직한 관광지가 있다는데, 여긴 아직도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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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제현은 어떤 루트가 가장 마음에 드시나? 마음에 드는 루트대로 평양을 방문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드실 지도 모르겠다.

 

참고로 말씀드리면 현행 국가보안법상 방문증명서가 없으면 모두 사법처리가 된다고 한다. 이 글을 읽고 평양방문을 시도했다가 법적인 문제가 발생할 경우, 모든 책임은 내가 아닌 딴지일보의 코코아 기자에게 있음을 밝힌다.

 

 

 

 

 

Profile
조선사 교양서를 쓰고 있는, 딴지가 배출한 또 하나의 잉여 작가
딴지의 조선사, 문화재, 불교, 축구 파트를 맡고 있슴다.
이 네 개 파트의 미래가 어둡다는 거지요.

『시시콜콜한 조선의 편지들』
『시시콜콜한 조선의 일기들』
『시시콜콜 조선복지실록』
『시시콜콜 조선부동산실록』 신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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