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들의 핵심을 날카롭게 비껴 가 겉핥기식으로 대충 들여다보기에 ‘제3차 남북 정상회담’ 같은 주요 핫이슈는 죽지않는돌고래 편집장이 다른 사람에게 맡길 거다. 한물 간 변두리 이슈만을 집중 탐구하는 <시사변두리-이슈VS.이빨>, 추석 밥상머리 이슈의 변두리를 장식할 씹을 거리를 찾아본다.
지나가던 돼지가 웃었다
지난 10일,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회 배현진 대변인이 논평 하나를 내놓았다.
“원전 포기한 정부가 급기야 삼겹살 구워 전기 쓰자고 합니다. 지나가던 돼지도 웃겠습니다.”
사건의 내막은 이러하다. 2010년 지식경제부가 '제2차 바이오중유 중장기 보급계획'을 발표한다. 바이오중유를 써서 발전기를 돌리자는 정책 방향이 그려진 거다. 여기서 바이오중유란, 소·돼지·닭고기 기름, 폐식용유 등 동·식물성 유지 같은 걸로 만든 발전용 연료를 말한다. 바이오중유는 미세먼지의 주범인 황산화물이 거의 배출되지 않으며 질소산화물은 중유 대비 39%, 미세먼지는 28%, 온실가스는 85% 저감되는 졸라 착한 연료라는 소문이 자자하다.
그리고 박근혜 정부 때인 2012년 신재생에너지 공급의무화제도(RPS)가 도입된다. RPS란, 500MW(메가와트)급 이상 발전 설비를 보유한 발전사업자에 대해 총 발전량 중 일정 비율을 신재생에너지로 공급하도록 의무화하는 제도이다. 그니까 발전사업자들이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아니, 씨바, 신재생에너지 공급 비율은 의무화해놓고 왜 신재생에너지 관련 연구 사업은 안 해? 그래서 산업통상자원부는 2014년부터 발전용 바이오중유 시범보급 사업과 함께 실증연구를 추진해왔으며 현재 시범 보급 중인 발전용 바이오중유를 법령상 석유 대체연료와 재생에너지로 명문화하고, 내년부터 전면 보급을 위해 ‘석유 및 석유대체연료 사업법 시행규칙’ 개정안을 입법예고한다고 10일 밝혔다.
그 와중에 산업통상자원부는 사람들 이목 좀 끌어보겠다고 삼겹살 기름으로 깨끗한 전기 만든다. 우왕~ 이란 식으로 표현했고, 매의 눈을 가진 배현진 대변인은 이를 놓치지 않았다.
“멀쩡한 원전들을 멈춰 세워도 전력 예비율과 공급에 전혀 문제없다더니, 이제 삼겹살 기름까지 써야 하는 상황은 아닌지 우려됩니다. 정부가 사용하겠다는 삼겹살 기름 등 바이오중유를 이용한 발전은 지난해 신재생에너지 총발전량의 고작 4.4% 수준입니다.
게다가 삼겹살 기름이 미세먼지 저감효과가 크다는 대대적인 홍보가 어리둥절합니다. 불과 1년 여 전, 삼겹살구이가 미세먼지의 주범으로 꼽히지 않았습니까. 친환경에 대한 가상한 노력을 폄훼할 의도는 전혀 없습니다. 그러나 우선 시급한 일은 블랙아웃 걱정 없이 전기를 사용할 수 있는 안정된 전력 수급 대책입니다. 예보대로 올 겨울 혹독한 추위가 찾아온다면 전력수요 폭등은 자명한 일인데 정부는 도대체 무얼 하고 있습니까.”
그 준엄함에 옷깃이 여며지지 않는가. 자유한국당과 배현진 대변인의 나라 사랑, 국민 걱정이 행간 곳곳에 아주 그냥 막 질질 흘러넘치고 있다. ‘안정된 전력 수급 대책’,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따로 부연할 필요가 있을까.
아, 물론, 사소한 오류는 좀 있다. 상기 기술된 바, 우선, 바이오중유 발전 사업은 원전과는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리고 ‘미세먼지의 주범’이 하루 아침에 ‘친환경 신재생 에너지’로 탈바꿈되는 매직 또한 산업통상자원부 보도자료를 꼼꼼하게 읽어봤으면 쉽게 알 수 있는 정보였다.
뭐 이런 몇몇 사소한 오류들이야 무에 중요하겠는가. 올 여름 폭염 속에 진저리 치다가 올 겨울 혹한에 몸서리 칠 서민들의 고통이 눈에 선하다보니, 뇌보다 입이 조금 앞선 것 아니겠는가. 과연 그 누가 배현진의 서민 사랑에 손꾸락질 할 수 있으랴.
일각에선 배현진 대변인의 전력에 대해 색안경을 끼고 보는 한심한 작태 또한 없지 않다. MBC 간판 뉴스데스크 최장수 앵커로서, 불의한 정권에 부역한 언론 적폐의 상징 아니냐고 힐난하기도 한다. 그러니 권력을 견제할 시간에 ‘비 오는 날엔 소시지빵’ 같은 뉴스나 전하고 자빠졌던 것 아니냔 얘기다. 허나, 눈 있는 자 보고, 귀 있는 자 들을진저. 배현진 대변인의 상기 논평에서 드러난 지적 수준으로 미뤄 짐작컨대, 권력 견제를, 일부러 안했겠니?
무식이 죄는 아니다. 딴 건 몰라도 그건 내가 잘 안다. 무식이 죄면 난 사형이겠다? 배현진 대변인의 나라 사랑, 겨레 사랑을 어엿비 녀겨 새로 기사 하나를 맹가노니, 사람마다 해여 수비 니겨 날로 쑤메 편안케 하고자 할 따라미니라.
따뜻하게 보듬어주잔 얘기다.
다시 만난 세금폭탄
지난 9월 13일 정부의 부동산 종합 대책이 발표되었다. 투기수요 근절과 실수요자 보호를 목적으로 한 주택시장 안정 대책이다. 주택담보대출 요건 강화, 임대사업자 혜택 축소, 종합부동산세 인상 등으로 요약할 수 있겠다. 종부세 최고세율을 현재의 2%에서 3.2%로 올렸다고 참여정부 수준을 넘어선다는 일각의 평가도 있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아니나 다를까. 참여정부 때 ‘세금폭탄론’으로 큰 재미를 본 자유한국당과 보수언론이 풍악을 울리기 시작했다. 자유한국당이 “징벌적 과세와 세금폭탄이라는 규제 일변도 정책”이라고 선창하자 <중앙일보>가 “세금폭탄 내세운 반쪽 부동산 대책 성공할까”라고 화음을 잡았고 <조선일보>는 “조정 대상지역 내 2주택자와 3주택 이상인 자는 세금폭탄을 피할 수 없게 된다”고 속사포 랩을 선보였으며 <매일경제>와 <한국경제>는 “고가 다주택 22만명에 종부세 폭탄”, “메가톤급 대출 규제와 세금폭탄을 동시에 쏟아내면”이라고 코러스를 넣었다.
소위 보수언론이란 것들은 대체 왜 부동산 관련 얘기만 나오면 저리 거품을 무는가. 2014년 현재 상위 1% 기업은 우리나라 기업 전체가 보유한 부동산의 76.2%를 소유하고 있다. 재벌이 벌어들이는 부동산 불로소득(매매차익 + 순임대소득)은 2015년 기준 113.4조 원에 달한다. 즉, 부동산은 우리나라 재벌의 물적 토대이자 힘의 원천이다. 족벌-재벌 언론을 포함, <한국경제> 같은 전경련의 걔들(오타 아님)이 조용하면 오히려 이상한 노릇인 거다.
그렇게 10여 년 전 유행가인 ‘세금폭탄론’을 다시 리메이크해서 화려하게 음반 차트 1위를 노렸으나, 음원 시장 반응이 영 시원찮다. 몇몇 애국 유튜버들이 직캠을 찍어서 역주행을 노리지만 글쎄다. 잘 될 거 같지는 않다.
그렇다면 9.13 대책은 과연 ‘세금폭탄’일까. 조목조목 따져보고 꼼꼼히 살펴보자.
자, 일테면 너에게 시가 18억짜리 집이 있다고 치자. 없냐? 씻고 자라.
9·13 대책으로 내년에 종부세가 오르는 사람은 22만 명이란다. 이 중 100만 원 이상 늘어나는 사람은 시가 24억 원 이상 주택을 보유한 2만5504명(2016년 과표 기준)이다. 대한민국 인구 5천 3백만 명 중 한 명인 너는, 저 22만 명에 포함되느냐. 미안하다. 형이 괜한 걸 물었다. 얼른 씻고 자라.
지금은 시대에 뒤쳐진 시시껄렁한 음악 취급 받는 팝발라드 ‘다시 만난 세금폭탄’이 어째서 10여 년 전엔 BTS 찜 쪄 먹을 정도로 12주 연속 빌보드 차트 1위를 차지하며 음원 시장을 모조리 휩쓸 수 있었을까. (해시태그에 BTS 넣을 요량으로 굳이 예를 들었음을 고백합니다)
그 당시엔 (좋게 말하면) ‘희망’이란 게 있었다. 탤런트 김정은이 빨간 색 잠바를 입고 새하얀 눈 속에서 “여러분, 부자 되세요~”라고 외친 게 2002년이다. 대박이 나고 싶다는 그 강렬한 열망 앞뒤 어디에도 ‘어떻게’는 없었다. 전 세계적으로 유동자금이 넘쳐났고 그 흐름은 부동산으로 몰렸다. 늘 그랬듯 자본은 투기에 나섰고 앗싸리 판을 막아보겠다며 노무현 정부는 2005년 8월 31일 “헌법보다 바꾸기 어려운 강력한 부동산 대책” 을 내놓았다.
앨범 ‘탄핵이라니까 2004’를 출시하고 본격적인 활동에 나섰다가 심하게 처망한 후 절치부심하던 (자한당 전신) ‘한나라당과 언론이들’은 이 시기에 새 타이틀 ‘세금폭탄이려오’ 로 화려한 부활을 알린다. 이유는 간단했다. 그 당시 한국인들 의식의 흐름은 이러했다. 난 (어떻게든) 대박이 나서 부자가 되고 싶다.-> 난 (어떻게든) 곧 부자가 되어야 한다.-> 난 (어떻게든) 곧 부자가 된다.->난 (어쨌든) 부자다. 이쯤 되면 미친 거다.
하지만, 이 집단 정신착란이 과연 오롯이 국민들 탓일까? 그 당시 언론들은 징그럽다고 할 정도로 앞다퉈 ‘세금폭탄론’을 쏟아냈다.
그저 쏟아내기만 했는가. 사람들은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경향이 있다. 일테면, ‘열쇠복제’라는 간판을 보고 ‘원조교제’라고 읽는다든지, ‘한강대교’를 보고 ‘항문성교’라고 읽는다든지 하는 현상 말이다. 인지심리학에선 이러한 현상을 ‘마사오 착시’라고 부른다. 아님 말고.
신문 헤드라인에 ‘극히 일부 부동산 다주택 소유주들, 세금폭탄 맞아’라고 써 있다 치자. 그럼 사람들 눈엔 ‘극히 일부 부동산 다주택 소유주들, 세금폭탄 맞아’라고 보이기 마련이다.
큼지막하게 세.금.폭.탄이라고 써 있으면 다르게 읽을 도리가 없다. 그것만 눈에 꽂힌다. 그 공포심은 곧이어 세금폭탄을 맞는 건 나와 내 가족, 부모형제가 된다는 착각이 들게 한다. 심지어 내가 내일 모레 그 ‘극히 일부’에 ‘곧’ 포함될 수도 있는 노릇 아닌가!
하지만 10여 년 후, 밑도 끝도 없이 덮어놓고 대박이 나고 싶다는, 곧 부자가 될 거라는, 달콤한 뽕도 약발을 다해 버렸다. 리메이크 곡 ‘다시 만난 세금폭탄’이 예상 외로 저조한 성적을 거두자 누군가는 노무현 정부를 거친 ‘학습효과’라 하던데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물론 그러한 이유도 없진 않겠으나 이명박근혜 10년을 거치며 우린 ‘생존’을 도모하는 지경에 이르렀기에, 10년 전 세금폭탄이 ‘내’ 얘기였다면, 오늘의 세금폭탄은 ‘남’ 얘기가 된 것이다. 이걸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9.13 대책 후 부동산 시장은 관망세로 돌아서며 진정되는 기미가 보이고 있다. 재래언론의 세금폭탄론도 예전만큼의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그럼 다 된 건가. 실은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다. 죽지도 않고 매 분기마다 찾아오는 각설이마냥 부동산 광풍은 늘상 돌아올 것이다.
부동산은 좀 들썩이면 안 되나? 안 된다. 사촌이 땅을 사서 배가 아픈 걸로 끝나면 차라리 해피한 거다. 우리나라에서 일부 재벌 혹은 계층이 부동산을 과도하게 틀어쥐고 얻는 불로소득은 필연적으로 특권을 낳고 계층 이동을 막으며 이는 우리 사회의 건전한 성장을 가로막고 기반을 위태롭게 한다. 당장 이해가 어려우면 그냥 외워라. 그게 더 빠르다.
그렇다면 어찌해야 하는가.
노태우 때 ‘토지공개념’이 도입되었다. 현행 6공화국 헌법에도 그 취지가 녹아 있다. 또한 토지공개념 3법이라고 불리는 '토지초과이득세', '택지소유상한제', '개발이익환수제'도 제정했더랬다. 허나 아뿔사, '토지초과이득세'는 헌법불합치, '택지소유상한제'는 위헌 판결을 받았다. 헌법재판소 재판관들이 다들 강남 부동산 부자들이어서 그런 판결을 내렸을까. 아니다. 헌법에 명시되어 있는 토지공개념이 너무 애매모호해서 벌어진 일이었다.
개헌 밖엔 답이 없다. 경제민주화의 일환으로 더 똑소리 나게 노골적으로 토지공개념을 헌법에 구현해내야 한다. 될까. 헌법보다 바꾸기 쉬운 선거법 개정조차도, 유권자의 뜻이 정상적으로 반영되도록 고치자는 지극히 상식적인 요구임에도, 국회의원 수 늘리는 걸 반대하는 국민여론이 앞서기 때문에 그 가능성이 바닥을 치는데, 권력 구조의 틀 자체를 바꾸는 작업인 개헌이, 과연 될까.
분위기 좋을 때, 타이밍 보고 함 밀어보자.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백두산 천지에서 같이 사진 찍는 날이 올 거란 거, 1년 전에 말했다면 다 비웃었을 거다.
사람 일,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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