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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베 손가락 조각상

출처 - <세계일보>

 

2016년 5월 30일, 홍익대학교가 발칵 뒤집어졌다. 학교 정문 옆에 일베 손가락 마크를 형상화한 조형물이 뙇! 하고 생긴 것이다.

 

일베 손가락 마크란 일베의 초성인 'ㅇㅂ'를 손가락으로 표현한 것으로 일부 일베 회원들이 인증사진에서 사용한 이후 일베의 상징처럼 됐다. 가운데 손가락, 주먹 감자와 달리 일베 손가락 마크 자체는 욕설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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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베 손가락 마크

출처 - 일베

 

문제의 조형물은 홍익대학교 조소과 4학년 홍 씨가 '환경조각연구'란 조소과 수업의 일환으로 <환경조각연구 야외조각전>에 출품한 석고상이다.

 

작품 제목은 <어디에나 있고, 아무데도 없다>인데 회원 수가 200만 명이 넘는 대형 커뮤니티임에도 공개적으로 일베를 하는 사람들은 극소수인 것을 뜻하는 '일베는 어디에나 있고, 아무데도 없다'에서 따온 것이다.

 

조각상을 본 홍대생들은 '학교 가기 창피하다', '미대의 수치'라고 비난했고 철거를 요구하기도 했다. 하지만 조각상 자체는 일베를 상징하는 손가락일 뿐, 모욕적이지도, 잔인하지도, 외설적이지도 않아 철거할 명분이 없다.

 

일제의 욱일승천기나 나치 독일의 하켄크로이츠에 빗대는 열사들도 있지만 일베는 범죄단체도, 이적단체도 아닌다. 병신들일 뿐. 과거 같은 전시회에서 자위행위 하는 남자의 조각상...도 전시된 적이 있는데 손가락이 뭐라고 철거하겠나.

 

물론, 일베 손가락이 하필 학교 정문에 있어 기분 드러운 건 이해한다. 반면, 일베 열사들은 어리둥절해 하면서도 '애국보수 홍대', '홍베대', '홍서연고'라고 추켜세웠다.

 

조각상에는 작가를 비난하는 포스트잇 쪽지들과 화장실 표지판 등이 붙었으나 '작품 의도를 들어 봐야 한다'는 쪽지들도 있었다.

 

여기까지는 작품에 대한 평가이므로 용인되는 범위지만 문제는 일부 열사들이 조각상에 음료수를 뿌리고 계란을 투척했다는 것이다. 강남역 묻지마 살인 사건 피해자를 추모하는 쪽지들을 훼손한 베충이들이 생각난다.

 

홍익대 총학생회는 성명서를 통해 '일베는 그동안 지역·성차별, 정치적 편향성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분노와 불쾌감을 불러일으켰다'면서 '학교 정문에 일베 조각상을 설치해 홍대 구성원들의 명예를 훼손할 수 있다'라며 홍 씨에게 작품 의도를 설명해 줄 것을 요구했다.

 

이에 대해 홍 씨는 '일베에 대한 옹호나 비판을 위한 작품이 아니다'면서 '일베는 실재하지만 그 실체는 보이지 않는다. 가상의 공동체 같은 것인데 보고 만질 수 있는 실체로 만들어보고 싶었다'고 해명했다. 그녀는 '작품에 부정적인 반응을 예상했었다'면서도 '작품을 훼손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책임을 져야 한다. 작품을 철거할 생각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날 밤, 홍대생 두 명이 조각상 밑부분을 파손시킨 데 이어 힙합 가수 랩퍼 성큰이 새벽 2시 홍대를 찾아 조각상을 야구 방망이로 부수고 밀어서 박살 낸 다음 '랩퍼성큰이 부쉈다'란 쪽지를 남겼다.

 

홍대 일베손가락 훼손 당시 영상

 

조각상이 부숴진 자리에는 '너에겐 예술과 표현이 우리에겐 폭력임을 알기를. 예술과 표현의 자유는 절대적인 권리가 아님을'이란 쪽지가 발견됐다. 즉, 니가 가진 표현의 자유는 나님을 불쾌하게 해서는 안 된다. 랩퍼 성큰과 홍대생 2명은 재물손괴 혐의로 불구속입건됐다.

 

랩퍼 성큰은 "작품을 부숴서 '일베 회원들은 온라인에서는 멋있고 센 척하지만 현실에서는 부서지고 망가진 사람들'이란 뜻으로 작품을 바꿔보고 싶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작품을 훼손한 행위가 잘못된 것은 맞다'면서 '그 부분에 대해선 사과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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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살난 일베 손가락 조각상

출처 - <오마이뉴스>

 

문제는 그가 박살 낸 조각상이 조소과 졸업요건 중 하나인 전시회 출품작이라는 것이다. 랩퍼라면 랩으로 조져야지 새벽에 찌질하게 뭔 짓이여.

 

조각상을 만든 학생은 '일베를 실체로 보여줌으로써 이에 대한 논란과 논쟁이 벌어지는 것이 저의 의도였다'면서 알파고냐 '작품을 훼손하는 행위가 일베가 하는 것과 다른 점이 무엇인가'라고 꼬집었다.

 

홍 씨가 일베충인지, 관종인지, 중2병인지, 아니면 그녀의 주장대로 일베를 실체로 만들어 보고 싶었는지는 알 길이 없지만 한 가지 잊고 있던 사실을 상기시켜 줬다.

 

표현의 자유란 내가 원하는 것을 표현할 수 있는 자유일 뿐만 아니라 내가 불편한 것을 남이 표현할 수 있는 자유이기도 하다는 걸 말이다.







문화병론가 고성궈

블로그 : gosunggo.com 


편집: 딴지일보 coco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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