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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돌베개

2013-08-14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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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08. 14. 수요일

둥둥님












<돌베개> 연재 공지



안녕하세요. 딴지 독자 여러분. 둥둥님 입니다.


얼마 전 <오늘의 유머>에 <돌베개> 읽기 운동 1탄을 올렸는데 많은 유저들의 호응을 받아 베오베 게시판에 등록되었습니다. 연재를 이어나갈 계획을 세우던 중, '오유'도 좋은 사이트 이지만 자칭 민족정론지인 <딴지일보>에 연재하는 것이 여러모로 서로에게 도움이 될 것 같다고 판단하였습니다.


또한 장준하 기념사업회의 이준영 국장님께서도 여러 가지 자료협조와 조언을 해 주셨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이 연재를 결심한 이유는 장준하 선생님의 발자취에 대해 많은 젊은이들이 잘 모르는 현실 때문입니다. 한 사람이라도 더 <돌베개>를 읽었으면 하는 마음. 그저 그 바람으로만 시작한 일 입니다. 시사에 관심 깨나 있었던 저조차도 장준하라는 이름을 '나꼼수'에서 처음 들었으니까요. 아마 <딴지일보>를 자주 보는 분들 중에서도 <돌베개>를 읽어보신 분은 소수일 것으로 예상합니다. 참된 보수주의자의 모범이자 민주주의를 위해 일생을 바치신 장준하 선생님이 이렇게 잊혀져 가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었습니다. 그를 기억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믿습니다.


앞으로 2주에 한 번씩 업데이트할 예정이며, 돌베개 12개 챕터를 그대로 따라가는 총 12부 연재물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꾸벅.

 



프롤로그


딴지일보 독자 여러분 안녕?


난 얼마 전 장준하 선생의 자서전 <돌베개>를 읽고 멘붕한 1人이야. 난 장준하 선생을 '나꼼수'를 통해 처음 알았어. 하지만 그의 의문사는... 친일잔당의 악행 중 일부일 뿐인... 이거 참 비유가 좀 이상하긴 한데, 수많은 뷔페 메뉴 중 하나인 것처럼 말이야. 내 머릿속에서 장준하 선생의 자리는 딱 그만큼이었지.


그나마도 나꼼수만 반짝 듣고 잊어버렸어요. 워낙 우리 가카가 폭풍간지 매력쾌남이다 보니 눈을 뗄 수가 있어야 말이지. <그것이 알고싶다>가 작년 방송에서 선생의 의문사를 다뤘다는 사실조차 얼마 전에야 알았어. 그저 장준하 하면 떠오르는 것은 그놈의 '의문사'라는 단어와 예의 그 머리뼈 사진뿐. 그가 누구였는지, 어떤 삶을 살았는지에 대해서는 하나도 모른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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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시내에 있는 서점에 갔어. 백범 김구 선생에 대한 책을 찾던 중 내 눈에 스친 바로 이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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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시청에서 장준하 선생님의 겨례장이 치뤄지는 때여서 '어떤 사람이길래 시청 앞에서 장례를 여는지' 궁금했어. 시사에 관심 있는 딴지스들이라면 돌베개라는 단어가 익숙할거야. 양질의 인문사회과학 서적을 펴내는 '돌베개 출판사'는 들어 봤을걸?


아래 책들, 어디서 많이 봤지? ^^ 특히나 유시민 오빠야를 사랑하는 내게, 돌베개 출판사는 잊지 못할 이름이지. 한 그릇의 파스타 보다 한 권의 책을 선택하게 해준 유시민에게 감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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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읽는 돌베개>의 표지를 보니, '어...? 그 돌베개가 이 돌베개인가...?' 하는 생각이 스치더라고. 맞아. 그 돌베개가 이 돌베개야. 돌베개 출판사는 이해찬 옹이 세운 출판사인데(지금은 대표자리에서 물러난 것 같아) 소싯적에 완전 감명 깊게 읽은 책 1위가 장준하 선생의 자서전 <돌베개>였던 거지. 그래서 그가 세운 출판사 이름도 돌베개라는 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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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딩 때 이를 부득부득 갈며 이름을 외운 첫 정치인.


근데 이 책이 겉표지가 심하게 구김이 가 있는 게, 파본이네? 누군가 이 책을 일부러 찾아 왔더라도, 불량이면 안 살 거 아냐. 그러면 반품될 테고. 난 대형서점에서 책 보고 인터넷으로 주문하는 사람이지만... -.-


괜히 오기가 생기더라고. 그리고 몇 장 읽어봤는데 어라? 재미있는 거야. 그래서 정가를 모두 치르고 구입했지. 집에 오면서 읽었는데... 헐... 흡입력, 긴장감, 스토리 모두 쩔어!!! 웬만한 영화 뺨친다. 진짜.


그런데 읽고 난 후 보니까 원래 <돌베개>를 상당히 축약한 청소년용 버전이었더라고. 오리지날을 안 읽을 수가 없어. 딴지스 여러분들도 그냥 처음부터 오리지날로 봐. 그리고 오리지날이 훨씬 더 탄탄하고 재미있어. ^^ 오리지날 <돌베개>엔 청소년 버전에는 없는 '19금 에피소드'도 있다네. 21세기를 살고 있는 젊은 내가 보기에도 뜨아아아아!!!!!!한...ㅋㅋㅋ +ㅁ+ 역시 젊은이들이란... 쿨럭쿨럭...


조금 두꺼운 책이긴 하지만 장준하 선생님의 쩌는 필력, 스토리가 주는 긴장감과 스릴 덕분에 한 장 한 장 빠져들면서 넘기게 돼. 그리고 장준하 선생의 문학적이고 시적인 세련된 묘사와 표현들도 이 책이 주는 또 다른 묘미지. ^ㅁ^ 아아. 오라버니 완전 멋지심.


손에 땀을 쥐게 하다가도 영락 없는 젊은 청년인 장준하의 모습에 피식피식 웃다가, 또 울다가, 말랑말랑 했다가 또 스릴러로 급 전개... 롤러코스터를 탄 건지 책을 읽은 건지. 정말 백문이 불여일견. 강추 강추 또 강추. 책을 읽다보면 장준하 일행과 함께 중원을 묵묵히 걷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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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내가 이 글을 쓰는 목적은 단 한 명이라도 <돌베개>를 읽는 사람이 많아졌으면 해서야. 친일잔당들이 역사에서 지워버린 그를 기억하고자. 그들은 완벽하게 성공했어. 사람들에게 장준하라는 이름은 빛 바래고 쪼개진 해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게 되었으니까 말이야. 당장 가까운 내 친구들만 해도 장준하 선생이 누군지 아는 애가 단 한 명도 없었다.


<돌베개>를 다 읽고 난 후, 내가 느낀 감정은 '분노'였어. 왜 나는 이 분을 교과서에서 볼 수 없었던 걸까? 왜 장준하 선생은 역사에서 완벽하게 버림 받은 걸까????


그리고 난 선생님께 너무나도 죄송스러웠어. 이제야 그 분을 알게 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너무도 죄송스러워서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어. 가슴을 쥐어 뜯는 고통. '학교에서 안 가르쳐줘서 몰랐어요.'라고 변명하기조차 부끄러워서 얼굴이 시뻘개졌어.


정말 뭐라도 하지 않으면 미칠 것 같아서, 이 글을 쓴다.


이 글은 나에겐 ‘힐링’과도 같은 그런 성격의 글이야. 그 분을 제발 기억해 줘... 25살의 젊은 청년 장준하, 그 모습으로 간직해 줬으면 해. 우리 가슴 속에 남은 그는 누구도 다시는 해할 수 없어...


You are safe in my he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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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년. 만약 길을 걷는 그를 마주쳤다면 어떤 모습이었을까. 

만다리나덕 가방과 폴스미스가 잘 어울릴 것 같다.



1부. 탈출


선생의 자서전인 <돌베개>는 1944년 7월 7일, 중국 서주(쉬저우)의 쓰카다 부대를 탈출하는 순간부터 시작해. 그리고 광복 후 김구 선생님과 귀국하기까지 약 2년 간 일만 다룬 내용이야.


장준하 선생은 그 2년 간 7권의 일기를 썼다고 해. 그 일기를 보고 기억을 되짚어 <돌베개>를 집필하신 것 같아. 그 전에 있었던 이야기를 잠깐 설명하자면, 장준하는(존칭 앞으로 생략) 일본 유학 중 학도병에 자원해. 가끔씩 수꼴들이 다카키 마사오나 장준하나 자원 입대 했다고, 그러니까 마사오욕 하지 말라고 썰을 푸는데, 정말 싸닥션을 날리고 싶다.^_^


장준하가 학도병에 자원하게 된 배경을 설명하도록 할게. 당시 장준하의 부친은 기독교 목사로, 신사참배 반대운동에 앞장서다가 일제의 감시를 받게 된 상태였지. 그리고 장준하는 동경으로 유학 오기 전에 소학교에서 교사생활을 3년 간 했는데, 그 때 하숙집 아주머니와 매우 정이 들었어.


하숙집 아주머니의 남편은 독립운동을 하다가 중국으로 도망친 상태였고, 그 하숙집 아주머니의 딸은 장준하의 제자이기도 했어. 장준하는 일본으로 유학을 가서도 하숙집 아주머니에게 자주 안부 편지를 보냈다고 해. 글을 모르는 어머니 대신 딸이 답장을 썼지. 그렇게 두 사람 사이에 편지가 오갔어.


그러던 어느 날, 어린 제자에게서 슬프고 충격적인 편지가 왔어. 바로, 자기가 정신대 위안부로 끌려가게 될 것 같다는 내용인 거야. 사정인 즉, 그 동안 하숙집 아주머니는 장준하가 내주는 하숙비로 생계를 꾸려갔는데 장준하 다음에 받을 하숙생이 없었던 거야.


물론 맘 먹으면 구할 수 있긴 하지만 딸 셋이 커가고 있었기 때문에, 주위의 수군거림을 받지 않을 만한 마땅한 하숙생을 찾기란 쉽지 않았어.


결국 생활은 점점 어려워졌고, 하숙집 아주머니의 딸은 기껏 어렵게 진학한 상급학교를 그만둘 수 밖에 없었어. 그런데 학교를 그만두자마자 일제의 마수가 기다렸다는 듯 뻗친 거지. 아빠는 독립운동 하다가 쫒겨간 도망자, 엄마는 과부나 마찬가지. 가난으로 인한 학교 중퇴. 든든한 보호자가 없는 젊은 여성은 예나 지금이나 탐나는 먹이감이지. 휴...


<돌베개>에는 편지의 자세한 사항이 나와 있지 않지만, 내가 찾아본 자료를 종합하면 대략 이런 내용이었던 것 같아.


“선생님. 가정형편이 너무 어려워져서 학교를 그만두었어요. 선생님이 등록금을 내주신 덕분에 상급학교에 진학하게 되어서 너무나도 기뻤었는데... 죄송해요... 그런데 어떻하죠 선생님? 집에 일제 관리들이 와서, 아빠가 일본제국에 지은 죄를 대신 속죄하는 의미로 저를 정신대에 보내래요. 정신대가 어떤 건지에 대해 소문이 파다해요... 너무나도 무섭고 두려워요...”


장준하는 편지를 받고 나서 결심하지. 제자와 결혼한 후 학도병에 입대하기로. 아무리 악랄한 일제라도 유부녀는 끌고 가지 않았거든. 그리고 실상 학도병이라는 거 자체가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었어. 자원하지 않으면 부모, 형제가 직장에서 쫓겨나게 된다거나, 가족과 친인척들이 세무조사를 당한다거나 하는 불이익이 수두룩빽빽 했었기 때문에 사실상 강제였지. 게다가 장준하의 부친 역시 반일 전력이 있는 인사라, 집안에 어떤 불행이 닥칠지 모르는 위태한 상황이었던 거야.


일제는 처음엔 조선 대학생들을 학도병으로 징집하는 걸 꺼려했지만 전세가 불리해질 수록 찬 밥, 더운 밥 가릴 신세가 못 되었다고 해. 학도병 징집 소식에 열 받은 대학생들이 차라리 감옥에 가겠다며(전과자는 징집 대상에서 제외되기 때문) 경찰서를 습격, 순사들을 늘씬하게 쥐어패고 온갖 기물을 때려부숴도 사법처리를 받지 않을 정도였어. 온갖 방법을 동원해도 소용이 없으니... 그냥 겉 모양새나마 자원하는 수밖에...


장준하의 비서였던 故박경수님의 저서 <장준하-민족주의자의 길>에 서술된, 편지를 받은 날의 상황을 옮겨 볼게. 장준하와 정주의 교사로 있으면서 하숙생활도 같이 하다가 함께 동경 유학을 떠났던 김용묵의 증언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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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왕. 셋다 훈남이네 >.<


어스름한 저녁, 장형이 요쯔야(신주쿠 인근) 비탈길을 산책하자고 했다. 장형이 내게 뭔가 할 말이 있다는 것이다. 한참을 둘이는 침묵으로 걸었다. 오랜 침묵 끝에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고국에 있는 애제자 로자(세례명/김희숙)의 신상 문제였다... 그날 낮에 로자의 편지를 받은 것이었다...


“나는 귀국하는대로 로자를 먼저 안정시켜 놓고 일군(日軍)에 가야겠네”


말귀를 알아들은 김용묵은 어안이 벙벙하여 잠시 그저 침묵을 지켰을 뿐이었다.


김용묵이 알기에 그 동안 장준하를 연모하여 짝사랑하는 여자들이 많았다. 그 중 일본 아오야마 대학의 신모 양, 정주의 조모 양, 역시 정주 명문가의 딸 김모 양 등의 얼굴이 김용묵의 망막에 어른거리며 스쳐 지나갔다. 장준하가 결혼을 한다면 그 세 여자 중 하나일 줄 알았지 로자일 줄은 상상도 못했던 것이다.

<박경수 저, 장준하-민족주의자의 길 中>


아오야마 학원은 내가 알기로 지금도 부유층 자제들이 엘리트 코스로 다니는 명문학교야. 학비도 학비지만 그 당시에는 하녀와 가까운 친척 아주머니가 따라가는 경우가 많았지. 게다가 그들만 쓰며 기거하는 집도 있어야겠지? 일제시대 때 딸을 일본 유학 보냈을 정도면 어느 정도의 재력이었는지 대략 상상이 가지?


비록 장준하는 가난한 아이들이 다니는 소학교의 교사였을 뿐이었지만, 그 당시에도 워낙 유명인사라서 고향인 정주에서는 그를 모르는 사람이 없었지. 자세한 에피소드들이 궁금하다면 박경수 옹의 저서를 보자. ㅎㅎ 진정한 인간 불도저가 뭔지 한번 봐봐.


아무튼, 여러분 같으면 내로라하는 재산가 집 자제들 중 마음에 드는 사람을 골라서 결혼할 수 있는 처지인데 가난 때문에 학교를 중퇴한 사람과 결혼할 수 있을 것 같아?


김용묵이 얼떨떨해서 한참 동안 꿀 먹은 벙어리마냥 있었던 게 무리가 아니지.


다음날인가 그 다음날인가 장형은 귀국했다. 그가 귀국하여 폭탄선언 같이 터뜨린 이 혼사에 대한 양가의 반대, 주변 친척들의 놀라움 등으로 고향인 삭주와 정주 일대가 한동안 떠들썩 하였다는 것은 뒤에 들은 이야기였다.


그러나 장준하가 일단 작심한 일을 막을 사람은 없었다. 더구나 자기 몸을 던져 의를 행하는 일임에랴.

<박경수 저, 장준하-민족주의자의 길 中>


그리하여 몸을 던져 의를 행한 장준하는... 10년 연하의 신부를 맞이해(........음?).


김희숙은 스승이었던 장준하와 결혼하는 것이 부담스러웠는지 차라리 그냥 수녀가 되겠다고 했나봐. 하지만 장준하는 '수녀가 되어 신께 봉사하는 것도 좋지만, 한 집안의 며느리가 되어 시부모께 봉사하는 것 또한 의미가 있지 않겠냐'며 설득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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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 아니, 선생님이 결혼하자면 하는 거야~ 거절하고 그러는 거 아니야~♡


신랑 장준하 26세. 신부 김희숙 17세. 지금으로 치면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가르쳤던 꼬멩이하고 결혼한 거야.

그 17세 소녀는... 지금은 팔순이 넘은 할머니가 되었어. 그런데도 참 맑고 고우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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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되었건, 수꼴들이 떠들 듯이 장준하는 일본 학도병에 자원한 거 맞다. 그런데 말야, 천황폐하께 개와 말처럼 충성하겠다는 혈서를 써서 일본군사학교에 자원한 인간과 학도병 말단 병사였던 장준하 선생을 같은 사람으로 취급하지는 말아줘.


신방을 차린 지 10일 만에 장준하는 입대하게 돼. 각오했던 일이었겠지만 어린 아내를 두고 전쟁터로 떠나는 마음은 어땠을까. 장준하는 아내에게 그들만의 암호를 알려줘.


“나는 중국으로 가서 일본군을 탈출하여 독립운동을 할 거야. 충칭의 임시정부를 찾아 가려고 해. 주말마다 꼭 편지를 쓸게. 만약 편지 끝에 성경구절이 적혀있거든 내가 탈출한 것으로 알아.”


장준하는 평양에 있는 일본군 부대로 끌려가. 추운 겨울에 맨손으로 마구간 청소 일을 강요 당하다가 엄지손가락에 동상이 걸려버려. 맨손으로 말똥도 치웠다니, 똥독이 더욱 덧났던 게 아닌가 싶다.


동상치료를 하는데, 고름을 짜낸답시고 마취도 없이 일본인 군의관이 손가락을 난도질하는 바람에 그만 엄지손가락이 불구가 돼. 그 때 장준하는 비명소리 한 번 안 내며 치료를 참아냈는데, 그는 평생 그 엄지손가락을 훈장처럼 간직하지.


장준하의 예상대로, 평양 부대원 중 상당수가 중국파견을 가게 되었어. 그런데 장준하는 손에 붕대를 감고 있어서 파견자 명단에서 제외될 뻔해. 장준하는 장교에게 애걸하며 '손은 금방 나으니까 꼭 중국으로 보내달라'고 해. 간신히 허락을 받은 장준하는 기차에 실려 쉬저우(서주)로 향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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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저우(서주) 일본군 부대에서 있었던 에피소드를 하나 소개할게.


예나 지금이나 군대 짬밥은 맛이 없었나봐? 일본 군인들은 부대 밖으로 나가서 현지 요리집에서 밥을 사 먹고 들어오는 일이 잦았대. 그러다 보니 항상 배가 불러있어서 잔반이 남아 돌았지. 하지만 조선인 학도병들은 항상 형편 없고 턱없이 적은 양의 식사에 굶주리고 있었고.


일본 군인들은 그 남은 잔반을 조선인 학도병들에게 개먹이처럼 던져주면서 아귀다툼을 하는 조선 청년들을 구경거리 삼아 낄낄거렸어. 이 모습을 본 장준하는 눈이 뒤집혔지. 잠깐 설명을 하자면 학도병들은 대부분 일본으로 유학갔던 대학생들이었어. 일본의 젊은 군인들에겐 보기만 해도 짜증나는 졸라 재수 없는 새끼들이었겠지. 대학문턱은 나도 못 밟아봤는데!!


보다 못해 나는 몇 친구들에게 말하여 잔반불식동맹까지 만들었다. 배고파 창자가 뒤틀리는 한이 있어도, 우리의 자존심만은 지켜야 하겠다는 생각에서였다.


한 때 우리나라 육군의 최고책임자였던 모 장군도 사실은 나와 같은 동료였다. 그러나 나는 그를 동료로 보기에 가슴이 아픈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 친구는 고참병이 먹다 남은 밥을 던져주면, 숫제 두 손을 밥 그릇에 넣어 먼저 밥 만을 움켜쥐고 돌아서서 그 더러운 밥을 먹곤 했다.


얼마나 배가 고파서 저러겠는가 해서 불쌍도 해보였지만, 그에게서 받은 한국인의 모욕감을 나는 지금도 참을 길이 없다.

<돌베개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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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지사장류 甲 오브 甲. 보라! 저 위풍당당한 늠름한 모습을


장준하는 실명을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박경수 옹은 저서 <장준하-민족주의자의 길>에서 그 인간이 장도영이었다고 가차 없이 밝히지. ㅋㅋㅋ 장도영은 다카키 마사오가 쿠테타를 일으킬 당시 육군참모총장이었는데, 쿠테타를 눈치채고도 묵인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인물이야.


사진은 5.16 쿠데타 며칠 후의 장도영과 다카키 마사오란다. 그러나 결국 몇 달 안 되어서 토사구팽. 이른바 쿠테타 바지사장. 결국 미국으로 도망갔다가 작년에 플로리다에서 사망했대. 장도영이 장준하하고 충돌한 건 그뿐 만이 아니었어.


한국인 학도병 탈영사고가 잦아지자, 우리들에 대한 눈초리는 사나워지고 생활은 편치 못했다. 장군이 된 그가 어느 날 우리 한인 초년병들 몇이 남아 있는 내무반 안에서 칼을 뽑아 들고 격한 어조로 소리를 질렀다. 그는 위협을 했다.


“…..이제 또 누가 도망치겠느냐?!”


아무도 그에게 대꾸를 하지 않았다.


탈출병이 생길수록 한국인들이 받는 대우와 감시가 악화되기 때문에 아마 그 스트레스를 못 이긴 그가 이렇게 위협을 한 것으로 해석을 해 보았지만, 그러나 동족 앞에서 칼을 뽑아 들고 “이제 또 도망가는 놈은 내가 찔러 죽일 테야!!”라고 호통을 치는 것은 나로서는 도저히 묵인할 수 없는 한계선을 넘은 행동이었다.

<돌베개 中>


장준하는 이런 동료들이 꼴 보기 싫어서라도 더욱 더 탈출에 대한 의지를 굳히게 돼. 탈출 계획을 생각하던 장준하는 탈출은 하되, 일본 제국에 적의를 품고 감행한 것이 아니라 일본인 지휘관들의 학대와 열악한 병영 생활을 도저히 감당하지 못해 저지른 나약함으로 연극을 꾸미기로 하지. 한국에 있는 가족들에게 조금이라도 피해가 덜 돌아 가게끔... 그러다가 어느 날 좋은 기회가 찾아와.


“고노, 기다나이 한또진노야로메!!” (이 더러운 반도 놈아!)


어느 일본인 고참이 장준하가 깨끗이 씻어 취사장에 반납하려는 밥통에 트집을 잡으며 욕설을 퍼부어. 장준하는 다시 수도로 가서 씻는 척하고 조용히 갖다 놓았는데 잔반불식동맹을 주도한 것 때문에 고참들에게 찍혀 있었나 봐. 그들로서는 조선 청년들이 쓰레기밥에 달라붙어 아귀다툼을 벌이는 모습이 아주 재미진 구경거리였을 텐데 장준하가 중간에 훼방을 놓았으니 벼르고 있었던 거겠지.


그 날 저녁 장준하는 내부반 반장인 우에다를 찾아가.


그는 내무일지를 쓰느라고 아직 잠자리에 들지 않고 있었다. 그가 권하는 대로 자리에 앉아 나는 미리 머릿속에 써놓고 온 대사를 심각한 표정 속에 또박또박 읊었다.


“저는 지금 탈출을 하려다 다시 마음을 돌려먹고 돌아왔습니다.”

 

“뭐라고????”


나는 이 날 저녁에 취사장에서 당한 이야기를 낱낱이 고해바친 다음, 이렇게 대사를 이어나갔다.


“…반장님. 반장님이나 내무반의 여러 고참병들은 너무나도 친절하였습니다. 그래서 나는 조금도 내가 조선 사람인 것을 의식하지 못했을 뿐더러 병영 생활이 즐거웠습니다. 그런데 오늘 뜻 밖의 모욕을 받으니, 충격이 컸습니다. 아아... 나는 일본인이 아니야... 이런 생각에 사로잡혀 멍하니 서 있었습니다. 나는 이곳이 싫어졌습니다. 그래서 탈출을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반장님에게 인간으로서의 죄를 짓는 것 같아 차마 탈출을 못하고 돌아온 것입니다... 용서해 주세요!!!”

<돌베개 中>


감동의 쓰나미에 휩쓸린 우에다는 장준하의 두 손을 덥썩 잡고, '아리가토오!! 아리가토오!!' 를 외치지. 다음날, 그 고참병은 모두가 보는 앞에서 매를 맞은 뒤 3일 간 영창행 신세가 돼. ㅎㅎㅎㅎㅎ


그 사건 이후, 그 동안 발생했던 학도병 탈출사건도 어느 정도 이유 있는 해석으로 기울어지지.


그런데, 어느 날 한국인 학도병들에게 같은 서주(쉬저우) 내의 쓰카다 부대로 이동하라는 지시가 내려져. 쓰카다 부대는 학도병 탈출사고가 단 1건 만 있는 철통보안의 부대로, 잇따르는 탈영병을 막고자 내린 조치였어. 탈출자 한 명조차도 부대 안에서 도망친 게 아니고 파견지에서 도망 갔을 만큼 보안이 철저한 곳이었어.(이 탈출병, 잘 기억해두자^^) 장준하로서는 공든탑이 무너지는 순간이었지.


쓰카다 부대에서는 전투훈련을 쉴 새 없이 혹독하게 시켰어. 뭣을 생각하고 모의할 시간적, 정신적 여유를 주지 않겠다는 거였지. 하지만 그럴수록 장준하는 탈출에 대한 의지를 불태워. 휴식시간이면 오히려 교관 옆에 다가가서 현재의 적(중국군) 상황을 물어보며 그들의 분포현황을 캐내었지. 장준하는 동북방향 120리(47km)에 있는 중국군으로 목표지를 정해.


아내에게 편지를 썼다. 편지 끝에 로마서 9장 3절을 인용했다. 나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다'


나는 가만히 엽서를 내 뺨에 비벼대었다...

<돌베개 中> 


동족을 위해 자신의 멸망을 기꺼이 감내하겠다는 모세의 다짐을 인용한 거였지. 앞서 말했듯이 이 성경구절은 고향의 가족에게 자신의 탈출을 알리는 암호였어.


드디어 1944년 7월 7일.


장준하는 탈출을 감행해. 그날은 중일전쟁 7주년 기념일이었대. 아무리 전쟁 말기에 전세가 기울어져 있어도, 천황이 직접 하사하는 보급품은 풍족하고 호사스러웠지. 다들 술기운에 비틀거렸고 점호마저도 생략할 정도였다니까.


장준하는 목욕을 가는 척, 탈출용으로 꾸려두었던 보따리를 대야에 담아서 막사를 나와. 9시 15분까지 철조망 밖에 있는 느티나무에서 나머지 동료 3명(윤경빈,홍석훈,김영록)과 만나기로 했거든. 원래는 중국어를 할 줄 아는 백ㅇㅇ도 함께 하기로 했지만 막판에 겁을 먹고 그만...


나는 내가 보아둔 서쪽 구석으로 몸을 굽혀 달려갔다. 누가 지금 나를 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누가 지금 나를 따라오고 있을지도 모른다. 지금쯤 누가 주번사관에게 달려가고 있는 건 아닐까. 비상이 걸리는 찰나가 아닐까...


차디찬 철조망의 냉기가 등골까지 전달되었다. 철조망은 상상 보다 높았다. 왜 나는 이 짓을 하고 있는 것인가.


'따따따땅' 하고 총소리가 나의 심장을 뒤에서부터 뚫어오는 듯한 착각의 그 순간, 나의 몸이 훌쩍 기울어진 철조망 위로 굴렀다...

<돌베개 中>


장준하는 무사히 철조망을 넘었어. 그런데 철조망 바로 아래에 방어호가 파여져 있는거야. 만약 그리로 떨어졌으면 어딘가 부러져도 단단히 부러졌을 걸. 놀란 가슴을 쓸어 내린 장준하는 약속장소로 내달리지. 그는 선천적인 지병으로 심장이 좋지 않았어. 며칠 전 훈련을 받다가 졸도하는 일까지 있었지. 제발 내 몸이 이 순간을 버텨주기를 기도하며...


느티나무 아래에는 다행히 세 동료가 기다리고 있었어. 일행은 눈앞의 돌산을 기어서 넘기로 해. 한 시간 가량 정신 없이 짐승마냥 오르다가 산 중턱에서 겨우 한숨 돌려.


버리고 온 병영의 불빛이 내려다보였다. 시커먼 병영의 윤곽이, 파충류 물짐승처럼 음흉하게 우리를 손짓하는 듯 했다. 오싹 소름이 끼쳤다.

<돌베개 中>


막상 산을 내려가고 나니, 운하가 그들의 앞을 가로막고 있지 뭐야. 헤엄에 비교적 익숙한 윤경빈(당시 25세)이 앞장서서 일행을 이끌었어. 참고로, 윤경빈 옹은 김대중 전 대통령과 사돈이야.^^ 김홍일씨의 장인이지. 현재 살아계셔. 김구 선생님의 경호실장을 지내기도 하셨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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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주병인 장준하는 동료들의 도움으로 무사히 운하를 건너. 그런데 운하를 건너면서 그만 방향을 잃어버렸지 뭐야. 헤엄에 정신이 팔려서 비스듬히 건넜나봐.


나침반을 보려고 했지만 성냥이 물에 쫄딱 젖어서 불이 켜지질 않지 뭐야... 설상가상으로 밤하늘에 구름도 잔뜩 끼어있어서 북극성을 찾기도 힘들었다고 해. 할 수 없이 가끔씩 구름 사이로 보일 듯 말듯한 북극성을 참고해서 길을 달려. 어스름한 새벽이 오긴 했지만 안개가 자욱해서 방향을 짐작할 수가 없었지.


결국 날이 밝고, 일행은 밭에 몸을 숨기고 잠에 골아 떨어져버려. 얼마나 지났을까. 장준하는 뜨거운 햇살에 잠에서 깨어나. 그런데, 귓가에 자동차 소리가 들리는 거야!!!! 아니나 다를까. 일본군들이 중국 주민들을 닥달해서 탈출병들을 찾고 있는 거였어. 다행히 중국 농민이 건성으로 넘겼는지, 보고도 못 본 척 했는지 코앞에서 무사히 넘어갔어.


일행은 당장 길을 떠나느냐 마느냐 의논하다가 결국 해가 질 때까지 은신해 있기로 해. 그런데 해가 중천에 떠오르면서 헬게이트가 열렸어.


타는 것은 목뿐 만이 아니었다. 그것은 가공할 만한 더위였다. 우리를 가려주었던 조 포기들은 차츰 말라 비틀어졌고, 살갗에 닿는 직사광선은 그대로 불덩어리였다. 온몸이 지글지글 타오르는듯 했다.


우리는 군복을 벗어 던지고 홀랑 알몸이 되어 조금이라도 축축한 곳을 찾아 다니며 마치 지렁이들처럼 엎드렸다 누웠다 하며 시간을 보냈다.

<돌베개 中>


드디어 해가 지고, 일행은 다시 옷을 주워 입고 길을 떠나. 천 근 같이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며 얼마나 갔을까. 일행 중 홍석훈이 픽 쓰러져 버려. 세 명이 달려들어 한참 동안 몸을 흔들고 주무른 후에야 간신히 정신을 차렸어. 홍석훈은 자신은 더 이상 못 가겠으니 너희라도 떠나라고 들릴 듯 말 듯하게 중얼거렸지만... 일행은 그를 도저히 버리고 갈 수 없어서, 부축하여 질질 끌다시피 하며 다시 길을 떠났어.


한 번도 뵌 일이 없는 홍 동지 부모들의 가엾은 환상이 어두운 중국의 하늘 아래서 오히려 우리를 달래주는 듯했다. 그 환상은 곧 나의 부모의 환상과 겹쳤다. 슬픈 일이 아니고, 온몸이 달아오르도록 매운 일이었다. 끊어진 대화는 내 입 속에서 그대로 거품이 되고 말았다. 사나운 비바람이라도 쏟아져 이 매마른 가슴들을 적시어주면 그 속에 엉엉 통곡이라도 하고 싶었다...

<돌베개 中> 


장준하와 윤경빈은 근처 원두막에서 참외를 서리해 와서 홍석훈에게 먹이지. 다행히 홍석훈은 기운을 차려주었어. 그런데 일행이 기운을 차린 후 보니 참외가 아니고 덜 익은 새끼수박이었대. 하도 배가 고프고 갈증에 시달려서 맛도 못 느끼게 된 지경이었던 거야. 얼마나 걸었을까. 홍석훈이 다시 쓰러져. 마치 전염되듯이 일행 모두가 지쳐서 주저앉아버렸어.


“......쉬어 가기로 하자...”


“에라, 모르겠다.”


근처 옥수수 밭으로 간신히 기어가서 몸을 숨기고 일행은 기절하듯 잠이 들어버렸어. 마치 다시는 못 일어날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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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탈출>을 이만 마칠게. 다음은 돌베개의 12개 목차 중 두 번째인 <불로하 강변의 애국가> 편이야. ^^



1부를 마치며


그를 잊지 말자. 저들이 역사를 가르쳐 주지 않고 우리를 망각의 늪에 빠뜨리고 있어. 우리들이 결코 잊어서는 안되는 분들을 역사책에서 지우고 있어. 그들은 성실하고 부지런한데다 돈과 시간까지 많아. 


안타깝지만 우리 스스로 깨어나야 해. 젊은이들이 장준하 선생에 대해 각성 한다는 건 다카키 마사오와 친일잔당들에게는 오금이 저릴 만큼 무섭고 끔찍한 일이야. 젠장!! 젠장!! 젠장!! 조낸 빡세게 지워놨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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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베게>를 읽으면 자연히 그의 일대기가 미칠 듯이 궁금해질거야. <돌베개>는 일본군 탈출에서 김구 선생님과 국내에 입국하기까지 딱 2년 간 만의 이야기를 다룬 거니까.

 

<장준하 평전>(김삼웅 저)과 <장준하, 민족주의자의 길>(박경수 저)가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장준하 평전>보다는 <민족주의자의 길>을 추천해 주고 싶어. 하지만 두 책의 내용이 겹치지 않는 부분도 상당하기 때문에 두 개 다 읽어보길 권해. 그리고 장준하의 일대기를 알고 나면 자연히 <장준하, 묻지 못한 진실>(고상만 저)에 손이 가지. 후우... 갑자기 빡친다. 오늘은 여기까지.


장준하 선생님의 <돌베개>에 대한 개인적인 평을 잠깐 하자면, 일반적인 '위인들의 자서전'하고는 그 성격이 매우 다르다는 것을 먼저 말하고 싶다.


보통 그런 류의 자서전이나 위인전은, '에헴~ 난 어렸을 때부터 이 만큼 잘났었지!' 혹은 '대의를 위한 일에 두려움 따윈 없었어'라는 식.


하지만 장준하 선생의 <돌베개>는 전혀 그렇지 않아. 담백하다고나 할까. 자신의 업적이나 경력을 홍보하고 과시하기 위해 쓴 책이 아니기 때문이지. 장준하가 돌베개 머리말에서 밝히듯, '젊은이들의 저항을 내 눈으로 확인한 대로 기록해야 하겠다는 사명감'으로 붓을 든 거니까.


어떨 땐 참 바보 같이 솔직하게 죄다 모조리 털어놓아서 가끔씩 당황스러울 지경이야. 그래서 우리와는 다른 차원의 사람인 것처럼 느껴지는 일반 위인전과는 달리 '사람 냄새'가 풍겨.


예를 들면, 일본군 병영의 철조망을 넘는 순간도 일반적인 정치인의 자서전 같으면 이렇게 서술하지 않았을까?


'조국을 위해 몸 바치겠다는 나의 숭고한 굳은 다짐은 3m 철조망 따위에 발목 잡힐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설사 이 철조망을 넘다가 일본군의 총탄이 등과 심장을 꿰뚫게 될지라도 두려움 따위는 내 마음 속에 단 한 조각도 남아있지 아니하였다. 오로지 조국 광복을 위한 강철과도 같은 빛나는 사명감 만이 나의 사지를 움직이게 하고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장준하 선생님은 이렇게 묘사하지.


누가 지금 나를 따라오고 있을지도 모른다. 지금쯤 누가 주번사관에게 달려가고 있는 건 아닐까. 비상이 걸리는 찰나가 아닐까... 차디찬 철조망의 냉기가 등골까지 전달되었다. 철조망은 상상 보다 높았다. 왜 나는 이 짓을 하고 있는 것인가. '따따따땅' 하고 총소리가 나의 심장을 뒤에서부터 뚫어오는 듯한 착각의 그 순간, 나의 몸이 훌쩍 기울어진 철조망 위로 굴렀다...


인물과의 갈등구조와 전개 또한 눈여겨 보아야 할 점이야. 장도영이 일본도를 한인 학도병들에게 휘두르며 위협하는 모습도 일반적인 위인전이라면 장도영이 마냥 쓰레기인 것처럼 묘사했겠지. 하지만 장준하는 그 와중에도 장도영이 겪었을 애로사항과 고민에 대해 인간적인 시선을 보내고 있어.


탈출병이 생길수록 한국인들이 받는 대우와 감시가 악화되기 때문에 아마 그 스트레스를 못 이긴 그가 이렇게 위협을 한 것으로 해석을 해 보았지만, 그러나 동족 앞에서 칼을 뽑아 들고 “이제 또 도망가는 놈은 내가 찔러 죽일 테야!!” 라고 호통을 치는 것은 나로서는 도저히 묵인할 수 없는 한계선을 넘은 행동이었다.


<돌베개>를 읽다 보면 이런 예시가 수도 없이 많아. 사람을 향한 그의 따뜻한 시선. 그러나 자신에게는 한 치의 그릇됨도 허락치 않는 강인함. 약자에겐 약하고 강자 앞에선 더 강해지는 사람. 당신은 그런 사람.


여러분. <돌베개>를 펼쳐 보세요. 마치 젊은 장준하의 몸에 잠시 기대었던 것처럼 그의 따뜻한 체온이, 그의 더운 숨결이 당신 곁에 머물 것입니다. 우리 그와 함께 김구 선생님이 계신 충칭으로 떠나 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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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시림국민한대> 








둥둥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