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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08. 21. 수요일

이작가





 

 





2. 집중 독촉 시간

 

와이캐피탈의 사무실은 하루 종일 시끄러웠다. 독촉장을 인쇄하고 복사하는 프린터와 복사기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채무 관련 서류를 출력하기 위해서 네 대의 프린터를 가동하며 하루에 1만장 이상을 출력했고, 업무시간이 끝나고도 인쇄물 출력을 걸어 놓고 퇴근하는 날이 많았다. 철수는 와이캐피탈에서 근무한 뒤로 프린터에 A4 용지가 남아있는지 수시로 확인하는 버릇이 생겼다. 철수는 종종 사무용 프린터가 갑자기 멈춰버리는 상상을 했다. 인쇄가 중단되어 업무가 마비되면 철수는 넥타이를 풀어헤치고 프린터를 수리할 것이다. 컴맹에 가까운 사장은 철수를 독촉할 테고 여직원들은 철수가 하는 일을 구경하며 신기해하겠지. 그러나 사무실의 고성능 프린터는 아직 고장 난 적이 없었다. 철컹철컹 요란한 소리를 내며 날마다 씩씩하게 돌아갔다.

 

 

전화기에서 나는 소리도 끊이지 않았다. 전화벨이 울리는 소리와 통화하는 목소리가 계속되는 점은 여느 사무실과 다를 바 없었다. 여기에는 그에 더해 음악소리가 넘쳐났다. 스피커폰을 통해 휴대전화 통화연결음이 울려 퍼지는 것이었다. 이곳에서는 오랜 기간 연체된 부실채권을 취급했기 때문에 채무자가 추심원의 전화를 피하는 경우가 많았다. 추심원은 채무자와 연락이 닿기를 기다리는 동안 휴대전화 통화연결음으로 지정된 음악소리를 하염없이 듣는 수밖에 없었다. 철수는 수 백 통의 전화 통화연결음을 들으며 다운로드 1위의 인기가요가 무엇인지 확인할 수 있었다. 조용필의 <바운스>와 싸이의 <젠틀맨>이 인기를 다투었다. 벚꽃이 시들어버린 계절이라 봄철 내내 울리던 버스커버스커의 <벚꽃엔딩>은 끝난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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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운스 바운스 두근대 들릴까 겁나’ 철수는 전화기에서 연달아 나오는 노래를 흥얼거리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매일 아침 한 시간 동안은 집중 독촉 시간으로 입금을 약속한 채무자를 확인하고 송금을 독려하는 일을 했다. 그 날의 실적을 판가름하는 중요한 일과였기 때문에 추심원들은 모두 다 의자에서 엉덩이를 떼지 못하고 자리에 붙어 앉아 집요하게 전화를 돌렸다. 이 시간에는 아주 작은 실수라도 피해야 했다. 배가 고파서 몰래 김밥을 집어 먹다가 해고당한 사람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적도 있었다. 철수는 조용필의 신곡을 소리 내지 않고 입 속으로만 따라 불렀다. ‘유 메이크 미 바운스~’

 

 

철수가 담당한 채무자 중에 처음으로 전화를 받은 이는 유흥업소에서 일하는 20대 아가씨였다. 밤에 일하는 아가씨들은 보통 아침에 잠들어 있기 때문에 오전에는 부재중전화 기록을 남겨두고 오후에 따로 연락을 하곤 했다. 이른 시간에 전화를 받을 거라 기대하지 않았는데 통화연결음이 몇 소절 지나가기 전에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서 철수는 내심 놀랐다. 여자는 대부회사의 전화번호를 저장해둔 모양이었다. 전화가 연결되자마자 누구인지 묻지도 않고 곧장 자기의 입장을 설명했다.

 

 

“저기요, 제가요, 이번 달엔 초이스가 정말 안 돼서어... 진짜로 돈이 없어요. 다음 달에는 안 늦을게요. 꼭 맞춰서 입금할게요.”

 

 

술이 덜 깬 채 비몽사몽 하는 목소리였다. 철수는 유흥업소에 가 본 적이 없었고 초이스를 해본 적도 없었지만 아가씨가 초이스 된다는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는 알고 있었다. 매일 밤 늦게까지 업소에서 초이스를 기다려도 운이 없어 아무도 불러주지 않으면 수입이 없는 것이다.

 

 

철수는 인력시장에서 초조하게 일자리를 기다렸던 시절을 떠올렸다. 새벽 5시부터 사무소에 나가 있어도 불경기에 일거리를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키가 작고 마른데다 아무 기술도 없는 철수는 노가다판에서 잉여인력이었다. 6시가 넘으면 대부분의 일꾼들은 작업장을 찾아 떠나갔다. 하지만 철수는 인력사무소의 삐걱대는 벤치에 앉아 더러운 작업화 머리를 들여다보며 차갑게 식은 자판기 커피를 쥐고서 마냥 기다려야 했다. 7시가 넘어도 일을 시작하지 못할까 두려워 하루 일거리가 아니라 반나절 일거리라도 주어지면 따라나섰다. 기술이 없는 단순노동자는 하루에 7~8만원 정도를 받았는데 반나절은 임금도 절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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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을 파는 일의 고됨과 팔리지 않는 자의 비참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철수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여자를 위로했다.

 

 

“알겠습니다. 다음 달에는 초이스 많이 받으세요.”

 

 

잠시 침묵이 흐른 뒤 수화기 저편의 여자가 느린 목소리로 말했다.

 

 

“고마워요. 오빠아... 미안해요.”

 

 

여자의 말은 이 달의 상환을 넘어가기 위한 임시방편이 아니었다. 진심이 담긴 사과의 말을 들으며 철수는 불편한 기분이 들었다. 철수는 빚을 진 사람들이 죄를 지은 사람 같이 미안해하는 기색을 드러낼 때마다 복잡한 생각에 사로잡혔다. 채무를 받아내기 위해서는 채무자의 상환계획에 따라 이자를 탕감해 주거나 원금을 감면해 주는 등의 조정과정을 거치는데 그 과정을 교섭이라고 한다. 교섭을 할 때 채무자들은 추심원을 채권자와 동일시하곤 했다. 상황이 이러저러해 빚을 제 때 못 갚아서 미안하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철수는 반대로 이렇게 말해주고 싶었다.

 

 


‘저한테 미안해하실 필요 없어요. 제 돈 안 갚는 것 아니잖아요. 저도 그냥 월급 받는 직장인이에요.’

 


 

채무자가 연체를 하지 않았다면 채권추심원 같은 일자리는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철수는 생각했다. 따지고 보면 채무자와 추심원은 일종의 공생관계가 아닌가? 하지만 채권추심원이 이렇게 말했다간 당장 해고를 당한대도 아무 할 말이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곳에서 오래 일한 추심원 중에 철수 같이 생각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을 것 같았다. 고용된 임금노동자로서 회사의 이익과 자기의 이익을 분리하기란 쉽지 않은 법이다. 게다가 성과급을 생각하면 한 푼이라도 더 받아내야 하는데 빚 진 사람의 죄책감을 자극하는 편이 일하기 쉽기도 했다.

 

 

와이캐피탈에서는 소재지와 연락처가 파악된 채무자에게 입금을 독촉하기 위해 한 달에 여섯 번 최고장(독촉장)을 우편물로 발송했다. 독촉전화는 하루에 열 번까지 가능하다는 내규가 있었다. 그러나 채권추심원이 이 규칙을 반드시 준수하는 것은 아니었다. 보통은 한두 번 전화를 해서 받지 않으면 다음 통화로 넘어가지만, 채무자가 상환을 약속해 놓고 일부러 전화를 피하는 기색이 느껴지면 추심원도 화가 나는 것이다.

 

 

추심원이 짜증이 나서 애꿎은 전화기에 분풀이를 해대는 일은 드물지 않았다. 경력자들이야 소득 없는 일에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지만 나이가 어린 신입 직원들은 전화를 받지 않는 채무자에 대한 분노를 누르지 못하고 전화를 수 십 통 걸기도 했다. ‘내가 돈은 못 받아도 이 새끼 빳데리는 엔꼬 낸다.’ 라는 마음이다. 이렇게 괜한 투지에 불타서 전화를 해대는 일을 내부에서는 ‘러쉬한다’고 표현했다. 한 채무자에게 하루에 10회 이상 전화하지 말라는 사규를 지키지 않아도 특별히 문책을 당하지는 않았다. 기껏해야 사장의 잔소리를 듣는데 크게 나무라는 것도 아니고 ‘씹새끼 아침부터 러쉬하고 지랄이네.’ 하는 정도의 말로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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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도한 독촉전화는 대부회사의 일상업무이지만 채무자 입장에서는 일상생활을 해 나갈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일이다. 독촉전화 문제가 불거지자 금융감독원(금감원)은 2013년 7월에 채권추심 독촉전화 횟수를 제한하는 내용이 담긴 ‘채권추심업무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금감원이 제시한 독촉전화 횟수는 1일 3회 이내, 그러나 이 횟수를 강제할 수 있는 법안은 없고 업계에서 자율적으로 내규를 정해 반영하도록 권장하고 있다. 그러나 과연 강제성 없는 가이드라인이 실효를 발휘할 수 있을까?


 

철수는 당일 입금 약속자 명단에서 유흥업소 아가씨의 이름에 줄을 그었다. 첫 통화부터 실적이 없으니 불안해졌다. 주위 동료들을 살펴보았다. 수화기를 붙잡고 교섭을 하거나 으름장을 놓는 사람도 몇 명 있었지만 대부분은 스피커폰을 노려보며 채무자가 전화 받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전반적으로 표정이 밝지 않았다. 철수는 부지런히 다음 전화를 찾아 번호를 눌렀다. 이번에도 유흥업소에서 일하는 아가씨였고 통화연결음도 바운스 바운스, 두근거렸다. 철수는 아가씨가 전화를 받아주기를 간절히 바랐다. 교섭을 해서 이자를 어느 정도 감면받고 상환계획을 세울 수 있다면 좋을 텐데. 하지만 노래가 끝나도록 아가씨는 전화를 받지 않았고 철수는 미련 없이 전화를 끊었다.

 

 

철수가 다음으로 전화를 건 사람은 폐지 줍는 할머니였다. 철수는 할머니와 긴 통화를 여러 번 해서 사정을 잘 알고 있었다. 할머니는 어렵게 살았지만 평생 남의 돈을 빌려 써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아들과 며느리는 연락이 끊긴 지 오래였고 하나 뿐인 손자를 고생해서 키웠는데 그 손자가 빚을 지고 잠적하는 바람에 손자의 채무를 대신 갚아 나가고 있었다. 할머니는 핸드폰이 없어서 처음에 연락하기가 쉽지 않았다. 철수는 매 달 1일이 되면 할머니가 폐지를 납품하는 고물상으로 전화를 걸었다. 연락을 하게 되면서 할머니는 으레 고물상에서 전화가 오기를 기다렸다. 통화연결음이 울리자마자 바로 연결이 되었다.

 

 

“임ㅇㅇ 할머니 계십니까?”


“으응. 그렇잖아도 오늘 아침에 농협 가서 문 열자마자 입금했어요.”


“예. 늘 감사합니다.”


“혹시 우리 애 연락은 없었어요?”


“소식이 없네요.”


“그래... 다음 달에 또 전화 줘요.”


“네. 할머니 건강하세요.”

 

 

할머니가 손자의 빚을 대신 갚아가는 이유는 혹이라도 손자와 연락이 닿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할머니는 기다리고 있었다. 손자의 빚을 조금씩 갚아 나가다 보면, 그래서 언젠가 채무관계가 사라지면, 마침내 손자가 돌아오지 않을까 희망을 걸어보고 있었다. 철수는 할머니에게 사실을 알렸다. ‘한 달에 10만원씩 평생 갚으셔도 이자도 다 못 갚으실 거예요.’ 사무실에서 다른 사람들이 듣기에는 일시불로 채무를 완납하라고 권유하는 듯 들렸을 것이다. 하지만 철수의 본심은 집 나간 손자의 빚을 대신 갚는다고 애 쓰지 말고 포기하시라고, 아니면 차라리 이 돈을 따로 모아 두었다가 목돈을 만들어 교섭을 해보라고 권유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대 놓고 진심을 말할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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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수는 고물상 주인에게 할머니가 얼마 정도를 버는지 물어보았던 적이 있었다. 채무자의 변제능력을 확인하기 위한 질문이었다. 고물상 주인은 종일 폐지를 주우면 보통 만 원에서 이만 원 남짓한 수입이 되지만 임 할머니는 기력이 좋지 않아 대개 만 원이 채 되지 않는 돈을 받아간다고 했다. 정부지원 보조금과 폐지 판 돈을 합해봐야 생활하기도 빠듯할 것이 분명했다. 그 다음에 할머니와 통화연결이 되었을 때 철수는 할머니에게 원금 분납이라는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했다. 일시불로 납부할 때는 원금을 일부 깎아주는 경우도 있었지만 이자를 탕감하고 원금만 분납해서 회수하는 경우는 없었다. 이 교섭을 마치고서 철수는 사장에게 심하게 욕을 먹었지만 당당하게 말했다.

 

 

"그 손자놈 죽었는지 살았는지 확인도 안 되는데 할머니한테 원금이라도 회수하면 다행 아닙니까? 할머니가 배 째라고 돌아서면 그나마도 못 받잖아요."

 

 

지난달에 철수가 맡았던 채무자 중에는 무속인이 있었다. 철수가 채권을 넘겨받기 전에 담당했던 추심원이 사내 전산망 와이어넷에 남겨놓은 교섭이력을 보면 ‘무속인이라 핸드폰 전화번호 없음. 주소 실거주지 아님. 남양주에 신당이 있다고 함. 매 달 1일 10만원 입금 약속.’이라고 적혀 있었다. 철수는 이 사람과 통화를 해보려고 몇 번이나 시도했다. 하지만 아무리 추적해도 실제 연락처를 알아낼 방법이 없었다. 가끔 하루 이틀 늦어진 적은 있지만 매 달 약속한 금액을 꼬박꼬박 입금해오고 있으니 추심원 입장에서는 따로 시간을 내어 추적을 하거나 교섭을 해 볼 명분이 없었다. 그렇지만 이 채무자도 이대로라면 이자도 갚지 못한 채 시간을 보내게 될 것이 분명해 철수는 내심 안타까웠다.

 

 

철수는 빚 독촉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채권추심원을 상대할 때는 무작정 전화를 피하지 말고 일단 받아 보라고. 추심원도 사람인지라 마음이 흔들리면 채권자 측보다 채무자 측의 입장을 고려해서 교섭을 진행하기도 했다. 반대로 채무자의 태도에 따라 어떻게든 채무자를 괴롭힐 방법을 찾아내는 경우도 있다. 전화로 러쉬해서 핸드폰 배터리를 바닥내는 정도의 일이라도 말이다. 그리고 계속해서 추심원의 연락을 회피하면 또 다시 악성채권으로 분류해서 다른 추심회사로 매각해 버리는데, 먹이사슬에서 더 낮은 곳에 있는 채권추심업자들은 소위 해결사에 가까운 부류라 채무자에게 더 심각한 일이 생길 가능성이 높았다.

 

 

물론 추심원의 전화를 받는 일은 고통스러운 경험이다. 직접 대면하지 않고 전화상으로도 채무자의 감정이 상하도록 괴롭히는 추심원들이 많았다. 하지만 반대로 채무자가 추심원을 도발해서 더 심한 말을 하도록 유도한 뒤 그 내용을 녹음해서 채무관계를 해결하는 경우도 있었다. 금감원에 채권추심원이 채무자에게 욕설을 하거나 신변을 위협하는 이야기를 했다는 신고가 들어가면 일단 추심업체 쪽에서는 사건을 무마하기 위해 꼬리를 내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결국 채권추심은 채무자와 추심원의 기 싸움이라고 할 수도 있다.

 

 

철수가 할머니와 통화를 마쳤을 때, 사무실에 장재완의 성난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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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님. 고객님이 그러니까 가난한 거예요. 그러니까 돈을 못 갚는 거야. 무슨 비가 와서 일이 없어? 나가면 다 일이 있지. 일 안 하고 술 먹고 그러다 빚은 언제 갚아? 고객님이 그렇게 사니까 평생 빚을 못 갚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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