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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08. 21. 수요일

물뚝심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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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 생각해보자. 난생 처음 인터넷을 연결하고 포털 사이트의 기사에 달린 수많은 댓글을 볼 때의 심정을 말이다. 물론 피씨통신이나 뉴스 그룹 같은 골동품적 가치가 있는 시대부터 글 쓰고 댓글 달고 하던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어찌되었거나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갑론을박 하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모니터 앞에 앉아 지켜보던 그 경이로움을 되살려 보자는 것이다.


그 중 몇몇은 용기를 내어 자신의 소신을 담아 글을 써서 그 피 튀기는 갑론을박의 소용돌이에 뛰어들어 보기도 한다. 그렇게 첫 글을 올려 놓고 어떤 댓글이 달리는지 지켜보는 그 조마조마한 스릴이라니...


그러다가 단순히 댓글 놀이를 하는 즐거움 이외에도 자신의 글이 사회적인 파급력을 가져올 수도 있다는 점을 깨닫고는 감동에 젖기도 한다. 이런 감상들이 사회적인 현상으로 확대되면서 우리 사회를 한 번 뒤흔들었던 사건이 있었다. 바로 2000년대 초반의 노사모 현상이다.

 

인터넷 여론이 세상을 바꾸다

정치적인 수준을 논하지는 말자. 87년을 겪었던 사람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는 이 사회의 후진성에 진절머리를 내며, 사회적 부조리에 대해 십 년이 넘게 쌓아온 울분을 터트리던 그 시점에 그 집단적인 울분의 폭발이 우리 사회의 최고 권력을 바꾸었다는 사실만을 얘기하자는 것이다.


그런 사회적인 현상을 지켜보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느꼈을 것이다.


'이게 장난이 아니구나...'


맞다. 장난이 아니다. 내가 아무리 목청을 높여 내 주변의 사람들에게 역사와 정치에 대해 열변을 토한다 해도 많아야 너댓 명이 듣는 둥 마는 둥 할 뿐이다. 하지만 인터넷은 그런 시장통의 장삼이사들에게 몇 천, 몇 만, 경우에 따라 수십 만, 수백 만의 청중을 데려다 주었다.


그런 개인들의 순수한 감성의 토로, 다듬어지지 않은 정치 사회에 대한 소견들이 널리 퍼지기 시작하면서 사회적 여론을 형성하는 것이 급기야 아주 일반적인 일로 자리를 잡게 된 것이다. 어쩌면 이것은 21세기 들어 대한민국 사회에 벌어진 가장 큰 혁명적인 변화가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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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우리 사회는 그런 혁명적인 변화에 적응을 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그 적응의 방향이 항상 옳지만은 않았다는 것이다. 갑작스럽게 개인들에게 주어진 그 엄청난 권력, 여론을 형성하고 주도할 수 있다는 생각은 기존의 사회적 권력을 독점하고 있던 계층에게는 매우 불온하고 위험한 것으로 보일 수 밖에 없다.


또한 그렇게 자생적으로 퍼져 나가는 대부분의 의견들은 현 권력층의 문제점에 대한 것과 이로 인해 피해를 본 사람들의 목소리, 나아가 이를 어떻게 고쳐야 하는가에 대한 이야기들이었던 것이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만족하며 사는 사람들은 할 얘기가 없다. 억울하게 피해를 보고 부조리를 겪어 본 사람들이 하소연할 거리 또한 많은 것이다.


그러니 당연히 현존하는 권력층에게는 이러한 목소리들이 매우 불편했고, 그 목소리들이 권력의 안정성을 저해한다고 '판단'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어찌보면 지극히 당연한 수순이며 결론이다.


그렇게 자생적으로 인터넷 상에 울려 퍼지는 개인의 목소리에 힘입어 정권을 획득한 참여정부였기 때문에 그것의 실체와 의미를 아직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했으면서도 참여정부는 이런 목소리들에 대해 우려하고 관심을 갖고 있었다. 공무원들에게는 인터넷 여론에 신경을 써서 해명할 일은 해명하고, 사과할 일은 사과하라는 정권차원의 독려가 이어지기도 했다. 심지어 대통령 본인이 직접 실명으로 특정 게시물에 댓글을 다는 일까지 있었다.


반대로 이런 인터넷의 여론 형성 기능으로 인해 정권을 빼앗긴 세력들은 이 문제를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가에 대해 고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은 지극히 인간적인 해법을 찾아냈다.

 

인터넷 여론 조작의 심리

다시 개인의 입장으로 돌아가 보자. 내가 기껏 공들여 써 올린 글에 난데없는 악플만 줄줄이 달릴 때의 그 기분을 느껴 보자는 것이다. 내가 고의로 어그로를 끈 것도 아니고 그저 나름의 소신을 밝혔는데, 내용과 상관도 없는 악플만 줄줄 달릴 때 느껴지는 그 참담함은 안 겪어 본 사람은 이해하기 힘든 수준의 고통이다.


그 순간 머리에 떠오르는 것은 이 상황을 반전시킬 방법이 무엇일까 하는 것이다. 내 선의를 이해해줄 우군이 필요한 것이다. 그런 우군이 없으면 만들면 된다. 결국 나는 인터넷의 익명성을 믿고 또 다른 게정을 만들어 내어 마치 다른 사람인 양 나 자신을 옹호하는 조작 댓글을 달게 된다. 최소한 그러고 싶은 욕망을 느끼게 된다.


- 뭐 이런 쓰레기 같은 글이 다 있어.

- 쓰레기라니 말이 심하시군요. 글쓴이는 나름대로 진지한 주장을 하고 있는데, 님이야 말로 쓰레기 댓글 그만 달고 꺼지시죠.


이런 식으로 말이다. 더 규모를 확대해 보자. 엄청난 다수가 모이는 포털 같은 곳에서 시사 이슈를 가지고 논쟁이 붙을 때, 사실상 주장의 논리적 정합성이나 사회적 올바름을 가지고 승패가 갈리는 경우는 별로 없다. 구경꾼들의 패갈림과 그렇게 갈린 패들이 어느 쪽 숫자가 많은가 하는 머릿수 싸움으로 승패가 갈리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 그것도 정확한 카운트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시스템을 만든 측에서 제공하는 추천수나 점수, 혹은 댓글에 대한 찬반 표시로 뽑히는 베스트 댓글 같은 것들의 내용이 여론을 주도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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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적으로 머릿수가 밀리는 쪽은 우물에 침을 뱉고 다른 사이트로 떠나게 된다. 이 사이트는 종북좌빨들이 장악한 종북 사이트라고 결정해 버리고 떠나는 것이다. 이 사이트가 민주화 되어 버렸다는 식으로 말이다. 그렇게 맘이 통하는 사람들끼리 모여 다른 사이트를 만들어서 놀기도 하고, 그러다가 가끔 특정한 게시물에 집중적으로 찬반 표시 등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산업화시켰다고 자랑하기도 한다.


옳건 그르건 이런 식의 집단 행동이 일반적으로 자리를 잡게 된다. 이거, 어느 한 쪽에서만 하는 행동이 아니다. 네이버가 알바들에게 장악되었다거나, 링크 퍼날라 놓고 우리의 힘을 보여줍시다~ 라고 외친다거나 하는 행동은 아주 보편적으로 양 측에서 모두 발견된다.


아주 유치한 머릿수 싸움이지만, 관중들에게는 분명히 영향이 있다. 아무 관심도 없고, 중립적인 위치에 서 있던 사람들도 흔히 이런 싸움을 구경하게 되고, 구경하면서 핵심이 되는 주제의 옳고 그름 보다는 양 쪽 진영의 힘 겨루기를 지켜 보면서 아, 이 사안에 대해서는 저 쪽이 더 우세한 모양이다. 뭐 이런 식의 정세 판단을 하게 된다.


이거... 그냥 할 일 없는 폐인들의 놀이일 뿐일까? 비뚤어진 심성의 악플러들이 하는 하등 쓸모 없는 짓거리이기만 할까? 그렇게 보기에는 이 소소한 싸움들의 주제가 너무나 무거운 주제들이고, 그 싸움의 승패가 주는 영향은 사회적으로 의미가 너무 크다.


지역감정이나 국가 차원의 복지정책, 현안으로 떠오른 총선이나 대선에 대한 의견, 일자리 정책의 방향, 주택 정책, 우리 사회의 미래를 결정할 모든 논의들이 이런 식으로 머릿수 싸움의 소용돌이에 쓸어 담겨진다. 그리고 그 논쟁의 승패가 기껏 악플러들의 패거리 놀음에 함몰되어 버리는 것이다.

 

개입의 시작

그렇다면 의문을 한가지 가져보자. 인터넷 상에서 벌어지는 이런 소소한 싸움들에 실질적으로 개입하고 싶어하는 현존하는 '힘'을 가진 집단은 등장하지 않았을까? 몇 개월 전까지만 해도 아무도 이런 질문에 답을 제시하지 못했다.


그러나 오늘날, 이 문제에 대한 답이 만천하에 공개되어 버렸다. 이명박 정권은 자신들이 가진 힘을 이용해 조직적이고 집단적으로, 일사불란한 체계를 가지고 이 인터넷 공간에서 벌어지는 패싸움 놀이에 개입했다. 첨단 기술로 무장하고 전문가들을 동원해서 말이다.


참여정부 시절, 정권을 홍보하고 정책을 옹호하기 위한 일들은 국정홍보처의 관할 업무였다. 이 때 이미 국정원은 자신들이 이 업무에 관해 비밀리에 할 수 있는 일이 있음을 깨닫고 있었다. 국가 최고의 정보기관으로 국가 안보를 위해 지원되는 각종 인적, 기술적, 재정적 자산을 가지고 있던 국정원이 FTA 문제로 지지자들에게조차 비난을 받고 있던 참여정부를 돕기 위해 제안을 한 것이다.


우리가 인터넷 여론을 좀 건드릴 수 있을 것 같은데 해도 되겠냐고 말이다. 당시 국정홍보처장이었던 김창호씨는 이에 대해 단호하게 거절을 했고, 대통령에게 사후보고를 하게 된다. 대통령 역시 국정원이 그런 일을 하면 절대 안 된다고, 거절을 한 것은 잘 한 조치였다고 사후에 인정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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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기사-경향신문>


당시 국정원의 판단은 무엇이었을까? 수많은 네티즌들이 편 갈라 싸우는 그 악다구니의 현장을 자신들이 어떤 식으로든 건드릴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을까? 역시나 인터넷의 익명성과 얼마든지 만들어 낼 수 있는 가상의 인격들을 믿은 것이다. 머릿수는 얼마든지 만들어 낼 수 있다. 그냥 계정만 만들면 된다. 그거 자동화 할 수 있는 툴도 얼마든지 있다.


가상의 네티즌을 만들어 머릿수 싸움이 벌어지는 현장에 개입해서 정권의 이익에 걸맞는 쪽이 이기도록 조작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게 얼마나 효율적인 일인가를 설명하고, 자신들이 그 업무를 가져감으로써 조직의 존재감을 보여주고, 예산 지원을 받고 발언권을 획득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가뜩이나 대통령 독대권까지도 박탈당한 국정원의 입장에서 조직의 미래에 대한 불안감도 분명히 한 몫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분명히 옳지 않은 일이다. 정권은, 즉 행정부는 국민들이 준 예산을 받아 국가를 운영하라고 있는 것이며, 이들은 언제나 국민과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에 의해 감시를 받아야 하는 위치이다. 그런데 그 예산 중의 일부를 떼어내서 국민들을 속여가며 여론을 호도하는 방식으로 자신들의 정당성을 강변하는 권리를 위임 받은 적은 없다. 이것은 필수적인 홍보업무가 아니라 국민을 속이는 행위이며, 더 크게 말해서 자신의 고용주를 속이는 피고용인들의 사기술이다.


하지만 참여정부가 임기를 마치고 이명박 정부로 정권이 넘어가자 이 일은 실제로 구현되었다.

 

본격적인 활동 개시

그들은 집권하자마자 국정홍보처를 폐지한다. 기존의 언론과 수시로 각을 세우던 국정홍보처를 없애는 것은 명분도 있는 일이었다. 정당한 방법으로 정권이 집행하는 정책을 알리고 홍보하던 국정홍보처를 폐지한 것은 그렇게 비효율적이고 솔직한 방법을 쓰지 않겠다는 뜻일 수도 있겠다. 그런 후진적인 방법을 쓰지 않더라도 자신들은 첨단 기술을 이용한 훨씬 더 효율적인 방법으로 여론을 이끌 수 있다는 자신감의 발로였을 것이다.


바로 그 업무를 국정원이 가져가 버린 것이다. 이명박의 충성스러운 직계였던 원세훈은 그런 업무를 하라는 명을 받고 국정원장으로 부임하게 되고, 조직을 개편하기 시작한다.


원래 참여정부 시절 2005년경에 북한의 인터넷 활동을 감시하라고 창설된 국정원 심리전단이 대폭 강화된 것이다. 단장 휘하 4개 팀으로 확장된다. 한 팀은 기획 업무를 담당하고 나머지 3개 팀은 각각 4개 파트를 거느리고 인터넷 여론 조작의 업무를 개시하게 된 것이다. 즉, 12개 파트의 댓글 부대가 탄생한다. 이게 2009년의 개편이다.


이들 중 한 팀은 네이버 등 대형 포털 사이트를 담당, 또 한 팀은 오늘의 유머 등 중소 커뮤니티 사이트를 담당, 나머지 한 팀은 급작스럽게 유행을 하면서 인터넷 트렌드를 이끌고 있던 SNS 담당으로 구성이 된다.


아주 본격적으로 각 잡고 덤비기 시작한 것이다. 정권에 우호적인 사이트에는 지원을 한다. 회원들을 불러다가 강연도 하고 선물도 주고 책도 주고, 그저 나는 인터넷에서 글 좀 쓰고 댓글 좀 달고 했을 뿐인데 삼엄한 정부 기관에서 버스 대절해서 태워 가고 태워 오고 먹을 것도 주고 선물도 주는 그런 경험은 개인들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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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온갖 소프트웨어를 동원해서 인터넷 분신술을 시전한다. 인터넷 상에서 사람들이 모이는 곳은 다 검토하고, 가상의 인격, 즉 가짜 계정을 만들어 정권에 유리한 의견을 마구 올린다. 너무 글만 올리면 티가 나니까, 가상의 계정들은 주로 점수를 주거나 찬반을 표하는 데 사용한다. 정권에 불리한 글들이 마빡에 노출되는 것을 막는데에는 이 찬반 표시가 꽤나 효과적으로 작용한다. 이렇게 흐름을 잡아주면 실제로 정부를 옹호하고자 하는 진짜 인격들, 진짜 계정들까지도 자신과 같은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더 많은 줄 알고 용기백배해서 설치게 되기 마련이다. 물론 자동화 된 툴들이 있으니 전문적인 지식이 있는 직원들 몇몇이 담당하게 되면 수천 명, 수만 명이 움직이는 효과를 낼 수도 있다.


돈과 사람이 투입되면 개인이 못하는 일을 할 수가 있다. 그것도 국가 권력의 지원을 받는 공공기관이 한다면, 이 조그만 사회에서 자생적으로 움직이는 인터넷 여론 같은 것들은 얼마든지 왜곡시켜 버릴 수 있다.


감히 선언한다.

나에게 백 명의 전문가와 이들에게 줄 충분한 돈과 고성능 피씨와 첨단 스마트폰, 그리고 초고속 인터넷 망을 주시라. 그러면 나는 이 사회를 구성원의 95%가 사민주의를 지지하는 진보적인 국가로 만들 자신이 있다. 최소한 그렇게 보이게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근본적으로 해서는 안 되는 일, 옳지 않은 일이다. 단순히 여론을 '선도'하는 것이 무슨 문제냐고? 정확히 표현하자. 그것은 선도가 아니라 사람들을 '속이는 행위'이다.


참여정부도 공무원에게 댓글을 달라고 권장했으니 마찬가지라고? 개소리 하지 말자. 공무원이 자신의 신분을 밝히고 자신이 담당한 업무에 대해 정당하게 해명을 하는 것과 신분을 속이고, 아니 가짜 계정을 수도 없이 만들어서 여론을 속이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일이다. 되도 않는 물타기는 사절이다.

 

꼬리가 길면 밟힌다

이명박의 임기 내내 국정원은 열과 성을 다해 자신들에게 주어진 임무를 수행했다. 4대강 사업을 칭송하고, 4대강 사업을 반대하는 의견들을 사람들이 잘 볼 수 있는 위치에 노출되지 않도록 끌어 내렸다. 정권이 원하지 않는 일들을 하는 박원순 서울 시장의 업무 수행을 비난하고, 서울시에서 벌어지는 좋은 일들은 성공적으로 숨겨 버렸다. 정부의 정책을 홍보하고 반대 여론을 잠재우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이렇게 말하니까 업무를 되게 잘 한 것 같다.


하지만 본질은, 국가 안보를 위한 정보 기관이 본격적으로 댓글 알바 대행기관으로 자리를 잡고 그 정예요원들의 능력을 가지고 임기 내내 사람들을 속여온, 사기를 쳐 왔다는 것이다. 이것만으로도 국정원은 스스로의 존재 가치를 진흙탕에 처박아 버린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이 이런짓을 공개적으로 하지 못하고 몰래 한 이유가 뭐겠는가. 정보 업무라서? 개소리 하지 말자. 그들 스스로도 이런 짓이 떳떳하지 못한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국정원에서 이런 짓을 하고 있다는 것이 알려지면 자신들이 한 짓이 도로아미타불이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몰래 숨어서 한 것이다. 정당성 없는 행위가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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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대단한 권법나셨다 그죠?


그런 짓 하느라고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 해도 모르고, 연평도에 포격이 떨어져도 모르고, 애먼 남의 나라 사람들 호텔방에 들어가 노트북 훔치다가 걸리고 그랬다. 지속적인 정보를 제공하는 휴민트(인간 정보원)들은 다 끊어지고, 어지간한 언론사보다 정보가 더 느려지는 참담한 꼴을 당했다.


본연의 업무를 버리고 정권의 입맛에 맞도록 여론 조작하는 댓글 알바질에 전문성을 발휘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결정적으로 꼬리가 밟히는 상황을 맞게 된다. 여론을 조작하는 것에 맛이 들린 이 친구들에게 여론의 조작이 가장 절실하게 필요해지는 국가적 이벤트가 다가온 것이다. 바로 총선과 대선.


정권은 언제나 연장되고 싶어하는 본성을 가지고 있다. 자신에게 우호적인 차기 정권이 들어서야 그 동안 저질렀던 자신들의 뻘짓이 노출되지 않고 처벌 받지 않게 된다는 현실적인 문제 이외에도, 이 사회를 바라보는 철학 자체가 야당을 빨갱이로 보는 것이었던 정권이 바로 이명박 정권이었다.


그들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총선과 대선에서 이길 필요가 있었다. 여기서 지면 모든 것이 무너진다는 절박감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할 수 있는 일은 뭐든지 다 해야 한다는 총동원령이 떨어진 것은 당연한 일이고, 국정원의 댓글질은 더욱 가열차게 진행되었을 것이다.


결국, 그나마 정권이 진행하는 정책을 홍보하는 것이라는 명분 앞에 무너지는 자존심에도 불구하고 참아 왔지만 이제 더 이상은 참지 못하겠다는 내부자들이 생겨난 것이다. 선거에까지 개입한다는 것은 국정원법은 물론 선거법에도 저촉되어 형사처벌이 따라오게 되는 문제라는 것 정도는 그 사람들이 더 잘 알고 있다.


결국 내부고발이 발생한다. 우리 사회에서는 내부고발을 감행하면 인생 조진다. 당연히 내부 고발자들은 자신의 안전, 국정원에서의 본인 인생이 끝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최소한의 보호방책 정도는 요구하게 된다. 바로 이점을 물고 늘어져서 매관매직이라는 둥 물타기가 벌어지기도 했다. 그것은 국정원이 한 짓의 본질과는 전혀 무관한 얘기일 뿐이다.


그 고발을 통해 야당은 국정원의 은밀한 활동을 인지했고, 그것을 공론화 시키기 위해 제3팀 5파트에 속한 여직원 김모씨를 추적했고, 대선 기간 중에 그 활동을 폭로해 버리게 된 것이다.


여기까지가 국정원 사건이다.

물론 그 이후, 국정원 출신 서울경찰청장 김용판에 의한 국정원 빰치게 파렴치한 사건 은폐 조작이 뒤이었으나, 그것까지는 이 글에서 다루지 않도록 하겠다. 대신 이 사건에 대한 검찰의 포괄적인 수사가 진행되었고, 이 글에서 묘사한 국정원의 행위들은 모두 검찰이 발표한 수사결과에 근거하고 있다는 점은 얘기해 둔다. 덧붙여 검찰은 지금 국정원이 트위터 상에서 운용했던 수많은 계정들에 대해 미국 법무부에 자료 제공을 요청했고 답신을 기다리는 중이라고 한다.

 

당신은 정권의 국회의원입니까? 대한민국 국회의원입니까?


철학의 부재, 잘못된 철학의 존재

국정원에서 벌어졌던 일은 이렇게 발생한 것이다. 이렇게 보면 그들이 왜 자꾸 자신들이 한 행동이 대북 심리전 차원의 일이라고 강변을 하는지 이해가 간다. 원래 그 부서가 그 목적으로 만들어진 부서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끊임없이 우리가 하는 일은 대북 심리전이라고 자기 최면을 걸어왔을 것이다.


단순히 정부의 정책을 홍보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의 정책을 비난하고 사회 혼란을 유발해서 이 사회를 전복시키려는 불순세력과 싸우는 일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사실을 왜곡하고 여론을 호도한다는 부정적인 측면에 애써 눈을 감기 위해 스스로 마취제를 투입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마취제가 너무 강하다 보니, 정부 기관으로서 해서는 안 될 일까지 해 버린 것이다. 걸리지 않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있다 보니, 이런 일 정도는 해도 되겠지 하고 안도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부당하고 불법적인 행위에 대한 책임은 누군가가 져야 하는 법이다. 이 모든 문제에 대한 총체적인 책임은 다름 아닌 이명박에게 있는 것이다.


이명박은 모두가 알다시피 국가를 기업으로 간주했다. 기업은 태생적으로 부도덕한 존재라는 사실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기업은 도덕을 지키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이윤을 창출하기 위해 존재한다. 이익 앞에서는 현행법에만 걸리지 않는다면 어떤 짓도 허용된다. 심지어 현행법에 걸리더라도 처벌의 가치보다 더 큰 이윤이 발생한다면 얼마든지 수행한다.


그리고 그 일을 수행하는 방식은 저돌적일수록 더 환영을 받는다. 그런 환경 속에서 성장해온 사람이 바로 이명박 본인이다. 그에게는 정권에 도움이 되는 일인데도 알량한 도덕심으로 그런 일을 하지 않은 참여정부를 이해할 만한 철학이 없었다. 그에게 노무현은 그저 바보였고 무능의 화신으로 간주되었을 것이다. 자신은 달랐다. 필요한 일이라면 한다. 돈도 얼마 안 들고 할 수 있는 일인데 하지 말아야 할 이유를 이해할 철학이 없었다.


그게 법적으로 문제가 된다고? 법이라는 것은 얼마든지 타고 넘나들 수 있는 낮은 울타리일 뿐이며, 약자들이나 두려워하는 사회적 경계선일 뿐이다. 이게 바로 이명박이 가지고 있던 잘못된 철학이다.


사건이 터지자 경찰을 동원해 사안을 묻어 버리려는 시도를 감행한다. 그게 실패하자 원세훈을 그저 몇 억 정도 되는 비리 혐의로 기소해서 그 건으로 소나기를 피하고자 하는 술수를 부린다. 이런 행동은 이명박에게는 지극히 당연하고 합리적인 선택이 되는 것이다. 수지타산만을 따져 본다면 매우 효율적인 판단이고 합리적인 결정이 된다. 그러나 그 수지는 자신들만의 수지이며 국가적인 수지타산은 아니다. 이명박은 그런 국가적인 이해 관계에 대해서는 무지한 사람이거나 의도적으로 무시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문제는 그런 행동이 이 사회에 얼마나 큰 폐해를 가져오는가 하는 것인데, 이 피해는 이명박의 정체성을 알아보지 못하고 청와대의 키를 넘겨준 우리들에게 돌아올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비극적인 일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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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의 책임은?

그러면 박근혜에게는 아무런 책임이 없는 것이냐고? 그럴 리가 있나.

두 가지의 선택만이 남아 있다. 이명박이 원세훈을 시켜 이 모든 짓을 획책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면, 박근혜는 바보다.


그런 일이 진행되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것을 대선에 이용했다면(경찰의 부당한 수사결과 발표 문제는 분명히 알고 있었다는 혐의가 있다. 따라서 국정원의 선거개입 문제도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그게 뭔지 전혀 이해하지 못했을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단정하기 힘들다.) 사악한 악당이다. 언제나 벌어지는 선택의 시점이 또 다가왔다.


멍청한 바보인가, 사악한 악당인가.

남은 것은 이 두 가지 선택지 중의 하나일 뿐이다. 그 외의 선택지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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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게나 말입니다...




물뚝심송

트위터 : @murutuk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