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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차 토론회를 관전했던 인지니어스님은 기사(링크)를 이렇게 마무리 지었다. 



'다음 번에는 치고 빠질 줄 아는 사회자의 개입을 희망해본다. 사회자의 적절한 개입은 시청자들이 양질의 토론을 들을 권리를 대신 지켜줄 수 있다. 암유발 억제 효과는 덤이다. 색깔을 너무나 좋아하는 후보들에게 마취총을 쏠 순 없더라도 당장 제지할 수 있는 그런 사회자.'

 


모두의 바람대로 손석희 앵커가 진행을 맡았고, 적재적소에 개입했다. 박명수처럼 룰 이해를 못해 "클났네"라고 말하는 홍준x를 조련하고, 정책 검증 시간에 후보 검증을 하는 홍x표를 살살 달래며 산으로 갈뻔한 토론회를 제 길로 이끌었다. 무의미한 스탠딩 토론을 원탁으로 바꿔 분위기를 전환한 것도 좋은 선택이었다. 역시 발암엔 손석희다.

 

 

1. 인물평

 

안철수

 

'이번 대선은 결국 문재인 대 안철수의 대결이다'라며, 지지율이 안 나오던 시기에도 자신감을 잃지 않았던 안철수는 양강 구도를 만드는 데까진 성공했다. 아마 TV토론에서 대역전극을 완성하고 싶었을 텐데, 토론만 하면 지지율이 빠져 부담이 심했을 것이다. 특히  '갑철수 드립'의 여파를 의식해서인지, 토론에 임하는 자세를 이렇게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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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중요한 대한민국 미래를 이야기할 순간에 과거 이야기만 했습니다. 저부터 책임감을 느낍니다. 오늘 토론부터 미래를 이야기할 수 있도록 저부터 노력하겠습니다."

 

각오를 단단히 한 만큼 이번 토론에서는 정책에 집중했다. 안보 이슈에 미세먼지를 등판시킨 것이나, 주도권 토론에서 차분히 벤쳐기업과 경제 이야기를 한 것은 좋은 선택이었다. 덕분에 빨갱이 색을 칠하지 못해 안달이던 안보 토론에서 유승민과 훈훈한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다.

 

"미세먼지도 외교 안보 이슈로 접근하고 있습니다. 이제부터는 환경이슈도 세 번째 큰 축으로 정상회담을 해야 한다고 보는데요. "

"좋으신 말씀입니다."

  

문재인에게 창조센터 관련 질문을 한다거나, 홍준표에게 질문하며 영화 산업의 현실을 짚거나, 심상정과 토론하며 특유의 '4무새', 4차 산업혁명의 전문가는 자신임을 강조하는 발언들을 이끌어간 것은 꽤 나아진 모습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차근차근 쌓아 올린 점수가 깡통이 되어버렸다. 주도권 토론 중 유승민에게 제대로 되치기를 당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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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부담 중복지' 말씀하셨습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유 후보님 생각과 당의 생각이 다른 것 같습니다. 정책적인 부분들 당과 공조해서 한목소리를 내셔야 할 것 아닙니까"


"안 후보님이 그렇게 말씀하실 게 아니죠. 안 후보님은 사드 반대하다가 찬성으로 돌아섰는데 아직도 국민의당은 계속 반대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건 제가 드리는 말씀에 대한 답이 아닙니다."

 

토론이 거듭될수록 표만 깎아 먹던 안철수가 주도권 토론에서 정책에 집중한 것은 좋은 선택이었으나, 왜 유승민에게 '정당' 질문을 꺼냈을까. 사드 문제로 역공을 당한 것은 꽤 아픈 실점이었다. 축덕계에서 '점유율만 높고 골은 못 넣으며 오히려 역습당하는' 현상을 놀릴 때 "한잔해"라고 하는데, 이 장면은 술은 안 먹겠지만 냉수라도 한잔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자신감이 없어 보인다는 지적을 받던 자세는 좀 나아졌지만, 토론 말미에 문재인의 '사드 배치 당론 철회' 질문을 받자, 이런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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꼼지락꼼지락

 

별 의미 없어 보이는 손동작이지만, 부정적인 이미지가 씌워진 사람은 이런 제스쳐도 실제로 그가 담담했든 아니든 간에 불안감의 표출로 판단한다. 해당 토론 내용은 차치하고, 본인이 노력해서 '누굽니꽈아아아아' 라고 바꾼 만큼, 토론에서 쓰는 제스쳐도 좀 더 자신감 있게 바꾸는 것이 낫겠다고 권유 드린다. 뭐, 이제 얼마 남지도 않았지만.



유승민

 

1차 토론 때, 매너 있고 날카로운 질문들로 호평을 받았던 유승민은 이번 토론에서 당 내외에서 받는 압박이 상당하다는 것이 느껴질 정도로 '강한 후보' 전략에 올렸다. 특히 문재인과의 강한 대립각을 세우며 공세를 폈는데, 유승민이 나오는 토론을 볼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역시 영리하달까. 단적인 장면은, 이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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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에 정책 본부장과 토론하라'라는 말씀은 취소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그게 무슨 태도입니까?"

"'줄푸세' 공약 만든 분 지금 문 캠프에 계십니다"

 

문재인이 "정책 본부장과 토론하시는 게 좋겠습니다."라는 말을 하자, 과감하게 1분 찬스를 쓰고 이를 비판했다. 유승민은 스스로 정책 전문가라는 이미지를 굳히기 위해, 각 후보의 공약의 방향성은 동의하면서도 세부적인 계획, 특히 재정조달계획에 대한 질문을 토론 때마다 꾸준히 해왔는데 이번 토론에서는 집요하게 문재인의 일자리 공약을 비판했다. 스스로 계산을 직접 해봤다는 말까지 덧붙여가며.


필자는 꽤 오래전부터 문재인의 답변이 가끔 핀트가 어긋나있다는 느낌을 받곤 했는데, 그것이 전략적인 선택인지 아니면 진짜로 못 잡은 것인지는 잘 알 수 없으나, 재원 조달 계획에 대한 답변은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할 필요가 있었다. 문재인은 지난 토론에서 답변을 쭉 해왔다는 이유로 "정책 본부장과 토론하시는 게 좋겠습니다."라고 답변했지만, 썩 좋지 않은 답변이었다. 기회를 놓치지 않은 유승민의 비판은, 날카로웠다.

 

이전 주적, 송민순 논란에서도 드러났듯 유승민은 정책 전문가 이미지를 확실히 구축하지만 즉각 효과가 나타나는 정치적인 공격도 영리하게 사용한다(물론 그것이 완벽한 팩트라고 보기는 어렵다 하더라도). 유승민은 문재인의 답변을 집요하게 파고들어, 정책에 대한 공격과 답변 태도를 동시에 공략한다. 이번 공격도 마찬가지. 유승민은 이 시작하자마자 던진 이 질문으로 판을 주도하며 스포트라이트를 끌고 왔다.

 

ㄱ 문제는 토론장을 벗어나면 이 효과가 사라진다는 점이다. 유승민 지지율은 본인이 아무리 훌륭하다 한들 극복할 수 없는 태생적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문재인은 지난 수년간 홀로 보수의 공격을 받아왔다는 것에 대한 지지자들의 부채감이 있기에, 지난 토론에서의 '청문회' 양상 등에서 보듯 공격을 받으면 받을수록 지지층이 결집하는 무서운 캐릭터이다.


많은 사람들이 유시민 작가와 유승민 의원의 이름을 헷갈리곤 하는데, 과거 유시민 작가의 "맞는 말만 하는데 싸가지가 없다"는 이미지가 유승민에게 점점 쌓여가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든다. 문재인을 공격하면 좋아할 보수는 홍준표가 꽉 잡고 있고, 정책을 강조하면 지지할 중도보수는 안철수가 선점한 상황, 유승민으로서는 참 카드가 없긴 하다. 어쩌겠나, 박근혜 라인 탄 본인 잘못이지. 다만, '문재인 정권'이 탄생한다면 토론에서 문재인에게 유효타를 꾸준히 날린 유승민의 정치적 영향력은 꽤 커질 것 같다. 그렇다면 다음 대선에서는 확실한 대권 후보가 될 수도. 물론, 당내와 본인의 지역구에서 불어오는 정치적 위기를 극복한다면 말이다.

 

 

심상정

 

국회에 입성한 이래 심상정은 '노동 전문가' 모습을 확실하게 보여왔다. 대본 없이 언제 어디서도 줄줄 읊을 수 있는 구체적인 수치들이 그렇다. 이번 토론에서도 그랬다.

 

"봉급 생활자 2천만 명 중에 천만 명이 평균 200만 원을 못 받고, 580만 자영업자 중에 30%가 매출이 380만 원이 안 됩니다. 농민들 암만 열심히 일해도 한 달 소득이 94만 원 밖에 안 됩니다." 

 

지난 '문재인 청문회' 토론 때 '심상정, 너마저 문재인을 까냐'라는 비판을 받은 심상정은, 이번 토론에서는 안철수와 대립각을 세웠다. 그렇다고 문재인을 비판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주타겟은 어디까지나 안철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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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안 후보님 공약을 보면, 기술, 산업만 있고 사람이 없어요."

"죄송하지만, 사장님 마인드에요"

 

안철수의 '자강안보' 공약에 '전작권 환수를 비롯, 근본적인 대안이 없다'고 비판하고, '규제프리존법'에 대해 비판하는 등 안철수에게 '경제 부분은 기업가 마인드이며, 국방 부분엔 거시적인 시야가 없다'는 공격을 펼쳤다. 하루 종일 '강성 귀족 노조'를 까대던 홍준표를 가뿐히 무시하고 안철수를 공격한 것은 애초에 홍준표에게선 거둬갈 표가 없으니 좋은 선택이었다. 

 

여기에, "동성애는 찬성이나 반대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는 발언으로 진보 진영의 색깔을 굳혔고, 문재인에게 '증세 대책이 없다'며 공격한 것까지, 팩트는 좀 다를 수 있지만 어쨌든, 이 판에서 거둬갈 수 있는 열매를 최대한 거뒀다고 본다. 심상정의 토론 전략은, '안철수를 공격하여 양강구도를 해소하고 문재인에게 간 심상정 표를 회수한다'와, '문재인을 공격하여 문재인에게 반신반의하는 진보 표를 가져온다.'로 굳어진 것 같은데, 앞으로도 이 전략을 계속 구사하는 게 좋겠다.

 

 

문재인

 

"홍준표 후보, 유승민 후보, 안철수 후보의 후보 단일화라는 말이 드디어 말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될 경우 그야말로 '적폐연대'라고 규정하고 싶습니다."

 

마무리 발언에서 했던 '적폐연대'에 대한 이야기는 이번 토론에서 문재인이 준비해온 카드였다. 토론의 하이라이트 장면으로 밤새 널리 퍼진 움짤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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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착...하..자.

 

"바른정당에서 3당의 후보 단일화 제안을 한 것으로 보고 있는데, 다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무슨 이유로 물으시는 건지 모르겠습니다마는, 저는 단일화 하지 않습니다. 문 후보님이 왜 그 문제에 관심이 많으신건지, 뭐 잘못될까 봐 그러십니까"


"그럴 일 없습니다. 선거 전에 연대는 없다고, 거짓말하지 않고 백 번도 넘게 말했습니다."


"아이~ 그런 걸 왜 물어요. 난 생각도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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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러심

 

"굳세어라 유승민!"

 

이 질문이 나올 것을 다들 예상했었는지 분주하게 펜을 잡는 후보들의 모습은 참 명짤이다. 단일화 돌직구는, 앞서 유승민에게 밀리며 감점됐던 점수를 다소 상쇄하는 효과가 있었다. 또 각 후보에게서 '안 한다'는 대답을 받아냄으로써, 만약 된다고 해도 명분 싸움에서 이득을 볼 수 있게 됐다. '적폐연대'라는 자극적인 단어를 마무리 발언에서 꺼내든 것도 타 후보들의 반론을 당장은 받지 않을 수 있기에 영리했다. 

 

솔직히 말하자. 문재인은 토론에 강한 사람이 아니다. 그래서 유승민, 심상정과의 토론에서 다소 고전해도, 안철수처럼 지지율이 확 떨어지지 않는 이유는 애초에 기대치가 꽤 낮다는 이유도 분명히 있다. 문재인을 지지하는 이유는 어차피 다른 요소들이기 때문에, 토론에서 어마어마한 삽질만 안 한다면 지지율이 크게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다구리를 맞았던 지난 토론회도 결과적으론 큰 피해를 입지 않은 것은 그런 이유라고 본다. 지난 수년간 하도 다굴을 당해서 맷집이 좋아진 거랄까.

 

주도권 토론에서 정권교체 프레임을 들고나오며 여러 후보에게 동시에 질문하는 것도 효과적이었다. 민주당 경선에서 이른바 '맏형 포지션'을 잡았던 것은 안정적인 전략이었다고 생각하는데, 이번 토론회에서 던졌던 동시 질문은 '디테일은 약하지만 큰 틀을 잡는 주도권은 잃지 않는' 이미지를 노렸을 것이다. 특히, 정권교체 프레임을 꺼내 들며 묘한 쓰리샷을 만들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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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술핵 배치를 주장하시는데, 미국도 반대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들여오겠다는 것입니까?"

 

왼쪽은 이명박 정부 시절 한나라당의 당 대표였고, 오른쪽은 박근혜 정부 시절 새누리당의 원내대표였다. 안보 문제로 지속적인 공격을 받았던 문재인은, 보수 정권의 대표 인사인 두 명을 한 앵글에 놓고 안보 이슈로 정면 승부를 걸었다. 질문을 받은 두 후보는 자신의 논리에 따라 답변했지만, 쓰리샷을 거둔 것만으로도 적확한 유효타였다.

 

 

홍준표

 

"아까 문 후보님이 민간이 일자리 창출에 실패했다고 했는데, 그게 다 강성 귀족 노조 때문입니다. 그 패악이 없어지지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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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들아 나를 본받아라. 삿대질은 자고로 이렇게 하는 거란다

 

 

필자는 홍준표가 진지하게 당선을 생각하는지 의문이다. 경남도지사도 사퇴런한 마당이고, 이제 정치 생명의 마지막인 순간에 1등을 노리는 전략이라곤 찾아보기가 힘들다. 신년토론의 전원책의 재림이 되지는 않을지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다소 온화한 태도를 보였지만, 그래도 룰 따윈 얽메이지 않는 박명수 롤을 수행하며 방청객의 웃음은 거의 혼자 캐리했다.

 

"둘이 통진당이었나 보네"

- 심상정, 손석희에게 농담하며

 

"그 반론으론 못 이겨요"

- 안랩의 포괄임금제를 지적하는 심상정에게 '경영에서 손 뗀 지 오래됐다'고 답하는 안철수에게 테클걸며

 

"실제로 내 경남지사를 할 때, 민주노총하고 3년을 싸웠어요. 내가 다 이겨봤어요." (마! 내가 느그 서장이랑 어? 다 해봤어)

- '강성 귀족 노조' 발언에 답하는 문재인에게

 

"소는 누가 키우나 그겁니까?"

- 문재인의 영입 농담을 사양하는 손석희에게 (2011년,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는 손석희에게 영입제안을 했다가 손석희의 소 드립으로 거절당한 바 있다.)

 

"JTBC가 제일 편안하게 해주네"

- 앉아서 토론하게 된 것을 흡족해하며

 

"나는 집에 가야겠어요. 졸려서 안 되겠어."

- 심상정이 밤샘토론을 제안하자

 

깨알 웃음을 유발하는 것까진 좋았는데, 동성애, 사형제, 강성노조, 노무현 공격 등을 이어가며 꿋꿋한 이념대결을 이어가는 자세는 이 양반은 그냥 자유한국당의 표만 받아도 든든한 걸까, 의심하게 한다. 지난 대선 때처럼 좌와 우의 한판 승부였다면야 뭐 괜찮은 전략일 수 있지만, 10%~15%로 추산되는 자유한국당 표의 최대치 이상을 기대하기에 어려운 발언들이다. 하긴, 이 양반이 언제 그렇게 복잡한 거 따졌었나,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냅둬야겠다.

 

 

2. 격돌의 순간들

 

홍준표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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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0만 달러, 뇌물이니까 환수를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 당시에 중수부장이 이야기한 건데, 노무현 대통령께서 박연차에게 직접 전화해서 요구를 했다고 나와 있습니다."


"이보세요. 제가 그때 직접 입회했던 변호사입니다."

 

홍준표가 만약 문재인이 화내는 모습을 유도하기 위해 노무현을 꺼내 들었다면 일차적으론 성공이다. 문재인이 누군가? 노무현 대통령의 장례식에서 그 MB에게 머리를 숙이던 사람이다. 그런데, 참여정부와 노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진보 진영 내에서도 각기 다르지만, 적어도 노 대통령의 서거에 대해선 전반적으로 부채감이 있다. 홍준표는 금도를 넘었고, 문재인 지지자들은 분명 결집했을 것이다. 물론 홍준표를 지지하는 진영은 속 시원했겠지만, 그것이 무슨 이득이 있는가? 

 

 

진보세력 vs 유승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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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분의 (인권결의안) 기권 발언에 대해서는, 과연 인권을 중시하는 진보 정권의 자격이 있느냐, 심각한 의문이 듭니다."

 

유승민의 딜레마는, 그를 호의적으로 바라보는 쪽은 진보, 중도 진보인데, 그에게 표를 줄 사람들은 어디까지나 보수 쪽에 있다는 점이다. 유승민이 유도한 이 쓰리샷은 진보 세력과 분명한 대립각을 세우면서, "보수 유권자님들, 저 좌파 아님요 ㅠㅠ"라는 메시지를 던지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질문에 대해 심상정이 꽤 훌륭한 답변을 하는 바람에 효과가 반감됐다. 문재인의 '동성애 합법화는 찬성하지 않지만, 차별에는 반대한다'에 대한 유감을 표명함과 동시에, "무조건 북한인권결의안을 반대한다는 것이 아닌, 2007년 당시의 정세적 판단으로는 반대하는 것이 옳았다"는 답변을 하는 바람에, 문재인의 답변 또한 대신 하는 격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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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정의 답변을 듣고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유승민의 제스쳐는 보수 진영에 얼마나 어필이 됐을까.


이외에도 북한의 핵 개발 책임 소지를 놓고 문재인과 공방을 벌였는데, '안보 책임자'를 내세운 유승민의 전략이 홍준표와 안철수에게 나누어진 보수 표심을 잘 거둬올 수 있을지, 그건 두고 봐야겠다. 

 

 

안철수 VS 홍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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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표 찍으면 문재인 된다'는 박지원에게 '안철수 찍으면 박지원이 상왕 된다'로 받아친 홍준표. 이 두 세력의 대결도 볼만했다.

 

"헌법재판소 탄핵 판결에 대해 '잡범들 훈계하는 수준'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헌법에 대한 정면 도전 아닙니까"


"재판에 대한 비평은 자연스럽게 할 수 있습니다."

 

보수표를 가져와야만 하는 안철수는, 홍준표를 쳐다보지도 않았던 지난 토론과 달리 이번엔 얼굴을 가까이 맞대며 토론했다. 헌법재판소의 탄핵 판결을 주제로 꺼내든 안철수의 의도는, 탄핵을 지지한 80%의 민심을 향해 '나는 여전히 탄핵의 주역이다'라는 어필이었다고 본다. 나아가 '헌법에 대한 정면 도전'이란 워딩은 '헌정 질서'에 예민한 보수층을 좀 더 끌어오기 위한 발언이기도 했다.

 

하지만 보수표를 가져오기 위함이었다면 다른 질문이 더 낫지 않았을까 싶다. 아마 안철수를 찍고 싶어 하는 중도 보수가 가장 헷갈려하는 부분은 국민의당이 가진 북한에 대한 태도일 것이다. '이명박근혜 정권의 안보 실패'를 거론하며 정면으로 받아치는 문재인의 전략과는 달리 다소 애매한(본인은 아니라하지만 유권자가 보기엔 애매한) 태도를 감안한다면, 홍준표에 대한 공격은 논점 전환을 통한 공격 포인트 생성이었겠지만, 실패다.

 

 

군 가산점, 사형제, 동성애, 월남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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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유공자 가산점에는 동의하고, 군 가산점에는 왜 동의하지 않습니까"


"다른 방식으로 보상하면 된다고 봅니다."


"동성애 반대하십니까"


"동성애 합법화에는 찬성하지 않지만, 모든 차별에는 반대합니다."


"문재인의 <운명>이란 책에 보면 '미국의 월남전 패배는 진실의 승리다' 이렇게 기록이 되어있어요."


"지난번에 '일심회' 때도 엉뚱한 주장 하셨죠?"


"사형제에는 반대하십니까"


"반대합니다."

 

홍준표는 박사모를 비롯한 극우가 아닌, 전반적인 보수층을 의식한 질문들은 다 문재인에게 던졌다. 이념 논쟁을 통해 샤이 보수층을 불러내려는, 또 안철수 쪽으로 가 있는 보수표를 불러오려는 전략이었다. 문재인의 <운명>을 근거로 한 공격은 의도적 오독이었다. 필자는 <운명>의 해당 부분을 읽을 때, 리영희의 <전환시대의 논리>가 전황을 승전으로 덮기 급급했던 당시 시대에 정확한 진실을 전했다는 뜻으로 이해했다.


또 홍준표는 사형제의 필요성을 언급하며 유영철, 강호순 등을 언급했다. 쫌 웃겼다. '돼지흥분제'를 이용해 범죄 모의를 하셨던 분이 저런 말을 하니.

 

 

3. 훈훈했던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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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노동시간 단축하는 공약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저는 (유 후보님 노동 관련 공약) 다 좋은 공약이라고 생각합니다."


"고맙습니다."


"그거 심상정 공약 벤치마킹했다는 얘기도 좀"


"아, 심 후보님도 상당히 동의를 하셨습니다."


"저도 칼퇴근법, 높이 평가합니다."


"두 분은(심상정, 문재인) 아직 발언권이 없습니다."

 

마지막에 숟가락 얹는 문재인과, 이를 막는 손석희도 깨알 재미.

 

유승민은 안철수의 공약에 구체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을 하기 위해 질문 던졌는데, 안철수는 이를 쿨하게 받아들였고 상대를 긍정했다. 안-유 콤비는 한두 차례를 제외하면 이렇게 훈훈한 장면을 연출했다. 만약 문재인의 단일화 질문이 없었다면, "어? 진짜 단일화하나?"라는 추측을 할 만큼 분위기가 싸바싸바했다. 

 

단일화는 뭐 그렇다 치고, '강성 노조' 무새가 되어버린 홍준표와는 달리, 다른 네 명의 후보가 노동시간 단축을 비롯, 전반적인 노동 현실 개혁에 대한 인식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은 참 다행스러운 점이다. 노동 시간 단축, 칼퇴근 등 각 후보가 공통적으로 내놓은 공약들이 현실화되기만 해도, 지금보다 꽤 살맛 나는 세상이 될 것이다. 제발 좀 이행했으면 한다.


 

지금까지의 토론들 가운데 그나마 가장 볼 만 했던 토론이었다. 국외자 투표가 시작된 가운데, 남은 두 번의 토론으로 지지율이 변동이 생길지 몹시 궁금해진다. 


5자 토론이라는 환경 탓에 서로의 이해가 맞물려 어떤 후보들은 시작부터 끝까지 싸우고, 어떤 후보들은 싸웠다가 훈훈했다가 하고, 또는 1:3의 상황이 만들어진다는 것 자체가 즐거운(누구는 뒷목 잡는) 관전 포인트이긴 하다. 역시, 토론은 언제나 옳다. 다음 토론도 스탠딩 토론 따위보다 이렇게 내실 있는 토론이 되었으면 한다.







빵꾼


편집 : 딴지일보 인지니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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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사 교양서를 쓰고 있는, 딴지가 배출한 또 하나의 잉여 작가
딴지의 조선사, 문화재, 불교, 축구 파트를 맡고 있슴다.
이 네 개 파트의 미래가 어둡다는 거지요.

『시시콜콜한 조선의 편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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