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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서민 청년 구난 위원회에서는) 무슨 일을 할겁니까?
홍: 좌파들이나 민주당에서 이야기하는 그런 복지정책이 아니고, 저는 일률적이고 보편적 복지는 공산주의 배급제도라고 생각합니다. 가난하고 힘들고 못 살고 하는 서민 청년들에게만 복지를 집중하겠습니다.
문: 가난하고 힘든 청년들에게 청년 수당지급할겁니까?
홍: 청년 수당이 아이고 일자릴 만들어주겠습니다.
문: 청년 구직수당을 지급할겁니까?
홍: 그거는 민주당이나.. 하는 청년한테 푼돈 쥐여 주는 그런 정책입니다.


- 2017년 4월 13일 SBS 대통령 후보자 토론회 초청 토론



푼돈, 많지 아니한 몇 푼의 돈. 

오늘도 그것으로 연명 중이다. 나는 취업 준비생이다. 


방송국 PD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듣던대로 쉬운 길이 아니었다. 호구지책으로 대학에서 계약직 행정일을 했지만, 시험에 두 번 낙방하고 보니 2년의 근무 계약기간이 종료된 지 벌써 일 년이 다 되어가더라. 퇴직하고 3개월 동안 나라에서 푼돈을 받았다. 한 달 실업수당 868,320 원. 일률적이고 보편적인 공산주의 배급 덕분에 오늘도 열심히 취업을 준비하고 있다.


취업을 준비하는 데에는 생각보다 적지 않은 돈이 들어간다. 무릇 언론고시생이라면 하나쯤은 구독해야 할 일간지 구독료 만 오천 원, 방송 프로그램 모니터링을 위한 지상파·케이블 VOD 구독료 2만 원, 주 2회 만나 공부하는 취업스터디룸 이용료 3만 2천 원. 스터디 중 같이 돌려서 봐야 할 자료 복사 비용 5천 원. 교통비까지 더하면 시험 준비에만 약 월 8만 원 정도가 필요하다. 뿐인가. 방송사 입사 기본 자격인 토익과 KBS 한국어능력시험 응시료 각각 4만 4천 5백 원과 2만 7천 원. 영어 스피킹 시험은 7~8만 원 정도 한다. 점수가 잘 나오지 않으면 또 봐야 하니 OMR 카드에 마킹할 때마다 손이 바들바들 떨린다. 쌩돈 날릴까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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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대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자수성가한 홍준표 후보의 청년 시절보다야 아무래도 나의 현재가 조금 나을 것이다. 밥은 굶지 않는다. 심지어 가끔은 너무 먹고 싶은 음식이 생각나면 큰맘 먹고 5000 원보다 비싼 걸 사 먹기도 한다. 한 달에 한 번은 조조영화로 답답하고 초조한 마음을 달랜다. 가지고 싶은 책은 도서관에서 빌리지 않고 중고서점에서 사서 보기도 한다. 하고 싶은 것을 다하고 살지는 못하지만, 나의 최소한의 욕구와 인간다움을 포기하지 않으려 한다. 실업급여는 그럴 때 엄청나게 고마운 존재다. 큰 힘이 된다. 적어도 만료된 토익 응시료를 부모님께 타 써야 하는 자괴감은 면하게 해준다.
 
훙준표 후보가 내가 받는 실업급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다. 집이 가난해 초등학교를 5번이나 전학 다니고, 보리밥도 싸오지 못해 수돗물로 배를 채우던 그가 나의 평범한 성장기와 취업 분투기에 어느 정도 연민을 가질지 궁금하다. 홍준표 후보가 대통령인 사회에서는 그가 얼마나 나의 가난에 공감해주는가에 따라 내가 받는 실업급여는 공산주의적 배급제도가 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물론 나의 실업급여는 짧은 계약직 근무 동안 납부한 고용보험 덕이다. 무상급식이나 청년 수당 같은 기본소득과는 성격이 다르다. 바꿔 말하면 취업전선에 같이 서있는 많은 취준생들은 그 ‘푼돈’ 조차 받지 못한다는 말이다. 그 말은 즉, 먹고 싶은 음식이 생각 나도 편의점 도시락으로 허기를 달래야 하고 영어시험을 치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는 청년들이 오늘도 도처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눈이 높아서 대기업에 목매는 게 아니다
 
주말, 취준생인 대학 동기와 관악산에 올랐다. 취준생에게 등산만큼 좋은 운동도 없다. 체력도 기르고 멋진 풍경을 보며 스트레스도 풀고 무엇보다 돈이 안 든다. 등산로 초입부터 그간의 취업 전적을 정신없이 풀어놓는다. 그는 지난주 모 중소기업에 면접을 보고 왔다.
 

“면접관이 오히려 하소연하더라고. 갈수록 지원자 수가 줄어서 사람 뽑기가 힘들다고.”

 
언론사 입사시험만 기웃거린 나보다 취업시장 사정에 더 밝은 그에게 왜 그러는지 물었다. 콧방귀와 답이 함께 돌아왔다.
 

“돈을 너무 적게 주니까. 답이 안 나오잖아. ”

 
지지난 주 봤던 대기업 신입사원 면접 이야기도 이어진다.
 

“내가 나이가 제일 많을 줄 알았는데(89년생) 내가 두 번째로 어렸어. 대기실에서 이야기해보니까 다들 어디 다니다가 왔더라고. 말만 신입 공채 지 요즘은 경력 공채나 마찬가지더라” 

 
대학에서 일하던 작년, 교수와 식사 때 나눈 대화가 불현 듯 오버랩 된다.
 

“요즘 젊은 사람들이 말이야. 눈만 높아서 큰일이야. 돈 많이 주고 편한 직장만 가려고들 하니까 취업들을 못하지. 어디든 가서 성장할 생각을 해야지. 패기가 없어.”


등산로가 본격적으로 가팔라지기 시작할 때 마음이 복잡해졌는지 친구가 말을 툭 내뱉는다.
 

“돈도 돈이지만 사실 무서운 거야. 다니다가 회사가 문 닫으면 어떡해. 나이 먹고 이직도 힘들 거 같고. 이왕이면 한 살 이라도 젊을 때 어떻게 해서든 더 많이 주는 데를 노리던지, 이도 저도 아니면 몸이라도 편한 공무원 시험으로 넘어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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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후보가 25일 중소기업에 취업한 청년에게 2년 동안 1200만 원을 지원해 대‧중소기업 간 임금격차를 해소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친구에게 그 공약이 어떠냐고 물었다. 크게 와 닿지 않는다고 했다. 2년 후는 어떻게 할 것이냐는 것이다. 2년 후에는 다시 현실성 없는 낮은 임금과 불안한 고용으로 돌아가지 않겠냐고 했다.

 

“나는 솔직히 먹고살기만 해도 좋겠어. 알잖아 우리 문송한거.(‘문과여서 죄송합니다.’의 줄임말로 인문계열 전공자들의 힘든 취업 상황을 나타낸다.) 문과생 받아주는 중소기업 연봉으로는 독립해서 혼자 원룸에도 못 살겠더라고.”

 
그는 확실히 미래를 두려워하고 있었다. 
 


창업하는 소리 하네 

등산을 마치고 또 다른 대학 동기 친구에게 술을 얻어먹으러 갔다. 어릴 때부터 우리 동기 중에 가장 ‘난 놈’인 친구는 학부시절부터 강의실보다는 바깥세상을 궁금해했다. 안 해본 걸 찾는 게 더 쉬운 화려한 아르바이트 경력과 사회경험을 바탕으로 군에서 제대한 직후에 창업했다. 핸드폰 매장으로 재미를 보다가 단통법이 시장을 덮칠 때쯤 간신히 온라인으로 몸을 피해 핸드폰 액세서리를 제작 판매하고 있다. 산에서부터 가져온 취업과 대선공약 주제는 술자리에서도 계속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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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정이 노동자 편인 거 좋아. 이해해. 나도 아르바이트 안 해본 것도 아니고. 근데 당장 최저임금 만 원 되면 나 알바생들 못써.”

 
잘 익은 껍데기 한점을 우물거리며 젊은 사장이 말했다. 
 

“우리 회사에 지금 제품 검수 아르바이트하는 애들이 두 명 있어. 한 명은 제시간에 와서 100개를 보고가. 그런데 한 녀석은 늦게 출근해서는 기분 좋을 때 70개 보고 어쩔 때는 30개도 채 못하고 집에 가. 주의는 주지만 일 못한다고 자를 수는 없잖아. 나로서는 지급 시급에 맞춰서 그런 고용 리스크를 감수하고 있는데 비용이 갑자기 상승하면 답이 없지.” 

 
그는 소주 한 잔을 입에 털어 넣고 쓴 얼굴을 지었다.
 

“명함만 사장이지. 뭘 시작해도 어느 정도 안정되기 전까진 매일 불안해서 잠도 못 자. 재투자, 재고투자에 돈이 하염없이 들어가거든. 지금 애들 시급 만 원 챙겨주면 내가 알바생들보다 나은 게 없어. 애들 내보내고 내가 잠 안 자고 해야지. 시부럴.” 

 
그러고 보니 대학시절 생기와 똘기가 가득했던 그의 얼굴빛이 오랜만에 다시 보니 불판 위 타서 뒹구는 껍데기 색이랑 비슷했다. 술값을 나눠 내자고 할까. 눈치가 보였다. 






근육병아리


편집 : 딴지일보 인지니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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