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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규의 소설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그건 <치기 힘든 공은 치지 않고, 잡지 않은 공은 잡지 않는다>야. 그것이 바로 삼미가 완성한 <자신의 야구>지. 우승을 목표로 한 다른 팀들로선 절대 완성할 수 없는-끊임없고 부단한 <야구를 통한 자기 수양>의 결과야.



만년 꼴지를 기록하던 삼미 슈퍼스타즈의 야구를 설명하는 대목이다. 박민규는 삼미가 경쟁에서 비껴선 ‘자신의 야구'를 선보였다며 찬양을 아끼지 않았다. 나는, 어제 있었던 군소 후보들의 대선 TV토론이 삼미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삼미가 세간의 혹평에도 자신의 야구를 펼쳤듯, 세간의 무관심에도 각 후보들이 ‘자신의 대선'을 치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라고 앞부분을 써놓고 목욕재계 후 경건한 마음으로 토론회를 기다리다, TV토론회가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의 대선이고 어쩌고 쓴 부분을 다 지워버릴까.. 고민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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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대선'도 적당히 해야 자신의 대선이지, 이건 그냥 개ssang마이웨이였던 것이다.


아니, 애초에 ‘자신의 대선' 정도에 이 비범한 인물들을 가두려 했던 것이 무리였을지도 모른다. 3억이나 내고 대선에 출마하신 분들을 너무 나이브하게 판단했던 거다.


그들은 지지율 좀 나온다고 우쭐대며 타 후보 네거티브나 하는 치들과 달랐다. 케케묵은 토론을 벌이지도 않았다. 토론 자체를 안 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저 묵묵하게 자신을 홍보했다. 심지어 자기 얘기에 열중한 나머지 토론회라는 걸 잊은 듯 보이기도 했다. 이건 토론회 레베루를 뛰어넘는 것이었다. 


각 후보에게 주어진 시간은 10분. 10분 내에 안보, 정치, 경제 등을 논하고 자유토론까지 하라고 했으니, 애초에 룰이 가혹한 면이 없지 않았다. 범인 같았으면 시간을 배분해서 사용했겠지만, 이분들께선 시원하게 토론을 날려버리셨다. 대부분의 후보가 10분 남짓한 시간을 자기 홍보에 집중하고 나니, 막상 토론할 때에 남은 시간은 1분 정도. 상황이 그러하니, 심지어는 질문을 하는 후보가 조금 이상해 보이는가 하면, 질문을 하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어? 지...질문이야?' 라는 표정으로 낯설게 말을 주고 받았다.


해서 결론부터 짓자면, 무려 9명이나 되는 범상치 않은 인물을 다루기에는 토론회의 형식도 시간도 적절치 않았다. 요약하자면 시간낭ㅂ...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왕 시간 버려 토론회 본 김에 후보들 간략한 소개와 토론회에서 나름의 매력이 빛난 순간을 모으으으으으고 모아 봤다. 후보가 9명이나 되는 바람에 그냥 나열하기엔 벅차서, 나름대로 5가지 파(派)로 후보를 분류해 정리했다.

 


낭독파


오영국(경제애국당)

재산: 38억 7천

전과: 폭처법 징역 1년 6월 집유 3년, 폭처법 징역 1년 집유 2년, 사기 벌금 500만 원

주요 공약: 1300만 일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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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헿


범상치 않은 드레스 코드로 이목을 집중시켰다. 특히 넥타이의 현란함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아무도 몰랐겠지만, 선거공보에선 같은 패턴의 초록 넥타이를, 오늘은 빨간 넥타이를 선택했다. 토론회 내내 원고를 보면서 읽느라, 유권자에게 아이컨택을 허락하지 않았다. 캠프에서(있겠지?) 유권자와의 밀당을 의도한 것이라면 인정. 하는 말과 선거공보가 90% 이상의 싱크로율을 자랑하는 것으로 보아 공보를 그대로 읽은 건 아닐까.. 하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개인적으로는 선거공보를 보고 가장 기대했던 후보였으나 자유토론에서 단 하나의 질문을 하지도 받지도 않았다. 해서 그의 토론 실력은 암흑 속에 감춰져 있다. 시각자료를 만들어 오는 준비성을 보여줬으나 자료만 들고 있고 시간이 남았음에도 말은 하지 않았다는 게 함정(정말 가만히 들고만 있었다). 일자리 1300만 개를 만들겠다고 했는데, 2017년 기준 우리나라의 실업자는 114만 명. 실업자보다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들어 완전고용을 하겠다는 호방한 공약을 냈다. 여러모로 미스테리한 후보다. 


 

종북파


조원진(새누리당)

재산: 5억 6천

전과: 교통사고처리특례법, 도로교통법위반(벌금 150만 원)

주요 공약: 대통령탄핵 주동자 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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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북좌파가 대통령을 엮어서..."


필리버스터 때 조포이로 이름을 날린 그가, 어느덧 대선후보 반열에 올랐다. 3선 의원씩이나 되는 탓인지 전체적으로 조금 무성의한 태도를 보여줬다. 군소후보 토론회는 체급이 맞지 않다고 판단했던 모양이다. 남재준과 함께 종북좌파, 강성노조 비판에 열을 올리면서 문재인과 안철수까지 비판하는 여유를 보여주기도 했다. 물론 3선 의원씩이나 했던 그가 토론회를 마냥 홀대한 건 아니다. 김선동 후보와 유일하게 논쟁이라는 걸 하며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긴장감이라는 걸 유발하는 업적을 남기었다.


: 지금 촛불집회에 주도세력들이 실질적으로 김일성 주체사상을 따르던 주사파, 그 다음에 대한민국을 무너트리겠다는 통진당 RO잔당세력들. 또 민주노총, 전교조, 종북자파세력들 280개 정도 되는 재야 친북 단체들. 이 사람들이 주도했단 말이에요.


: 합리적으로 하시죠. 우선 조원진 후보는 대법원에서 국정원이 그렇게 떠들었던 RO라고 하는 비밀조직이 실체가 없다고 대법원에서 명확하게 판결난 사실을 부정하고 계시는데 대법원의 판결을 부정하시면서 무슨 얘기를 하겠습니까.



남재준(통일한국당)

재산: 8억 9천

전과: 없음

주요 공약: 국회 해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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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을 지키겠습니다."


국정원장 출신의 그 남재준이 맞다. 평생을 조국과 민족에 헌신하며 '음지에서 일하며 양지를 지향'했던 탓인지 카메라 앞에서는 긴장한 티가 역력했다. 말을 더듬더듬하는가 하면 몇 초간 마가 뜨기도 했다. 하지만 그가 누군가. 박근혜 정부의 국정원장을 지내신 위인이 아니던가. 국회에 있는 종북좌파들이 오줌을 지릴만한 '국회 해산' 공약을 천명하시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요즘 젊은 남성들이 결혼을 잘 안 한다며, '국가 결혼 중매제'를 통해 출산율 문제를 해결하시겠다는 전 민족적 중매쟁이를 자처하시었다.


질의응답 시간은 조원진 후보와 종북 만담에 활용하며 선명성을 강조했다. 여담이지만 조원진 후보와는 안보적 정치적 입장이 99.95% 정도 일치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왜 단일화를 안 하는지는 모르겠다.

 


통일파


김민찬(무소속)

재산: 5억

전과: 없음

주요 공약: DMZ에 세계문화예술도시 건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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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DMZ가 말이죠.."


낭독파 오영국 후보가 없었다면 패셔니스타로 신스틸러로 선정되었을, 수염을 잘 가꾼 김민찬 후보다. 유일하게 무소속이다. DMZ에 세계문화예술도시 건립을 대표 공약으로 내걸었다. 예전에도 비슷한 공약을 하셨던 분이 계셨지..


평화통일뿐 아니라 북한의 남침 땅꿀에 상당히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전체시간 10분 중 1분 이상을 땅꿀에 몰입했다. 남재준에게 참모총장, 국정원장까지 하셨으니 땅꿀에 대해 잘 아느냐고 물었다가, 별로 신빙성이 없다고 쿠사리 먹었다.


: 북한은 땅꿀 파는 기술이 세계적인 수준인데요. 더군다나 북한에서 50년 동안 땅을 파고 들어왔으면 서울이 문제가 아니라 더 심하지 않을까요?


: 아니죠. 아무리 해도 중간에 산소를 공급해줘야 되고, 배수처리를 해야 되기 때문에 무한정 파고 들어가지 못합니다.


 

이경희(한국국민당)

재산: 65억 3천

전과: 공직선거법(벌금 1500만 원), 소음-진동규제법(벌금 300만 원), 업무방해(벌금 100만 원), 상해 (벌금 300만 원), 식품위생법-공중위생법(벌금 300만 원).

주요 공약: 셋째 자녀출산 24평, 넷째 33평, 다섯째 42평 아파트 무상임대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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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소)


미소가 아름다운 후보다. 자신의 꿈에 한 발 다가갔기 때문일까. 열일곱에 대통령의 꿈을 가졌다는 그는 토론 내내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그를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건 선거공보 때문이다. 다른 군소후보들이 1장짜리 공보물을 만들 때 그는 무려 16 페이지의 선거공보를 만들어 냈다. 심상정 유승민 보다 두꺼운 거다. 재력가의 면모. 흠흠.


빛나는 아파트 공약에도 그를 통일파로 넣은 이유는, 기깔나는 기조연설 때문이다. '통일이 되면~ 합니다. 그래서 통일이 답입니다.' 패턴으로 교육, 정치, 경제, 안보 등 모든 분야를 놀라운 운율감으로 설명했다. 전반적으로 충실하게 토론을 준비해온 느낌. 



양심파


윤홍식(홍익당)

재산: 5억 9천

전과: 없음

주요 공약: 양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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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을.."


27년간 인문철학을 연구한 끝에 인간의 본질이 '양심'에 있다고 깨달은 윤홍식 후보다. 최근에는 유투브에 양심과 관련된 강의를 올렸다고 한다. 유튜브 강연을 많이 했던 탓인지 연설 중 갑자기 강의톤으로 다른 후보들을 가르치기도 했다.


토론회 내내 '양심'을 강조했는데, 어느 정도냐 하면, 정확하게 3분 동안 양심이라는 단어를 28번 말했다(...). 양심 안보, 양심 정치, 양심 국가... 그는 세상 모든 것을 양심으로 판단한다. 집에서는 양심 냉장고를 쓰겠지..? 양심이 있으면 고만 좀.. 


 

김선동(민중연합당)

재산: 1800만

전과: 정치자금법, 특수공부집행방해, 총포 도검 화약류 등 단속법, 특수국회회의장 소동(징역 8월 집유 1년)

주요 공약: 노동 존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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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한미 FT에 반대하며 국회에서 최류탄을 깠던 그 김선동 맞다. 그가 민중연합당의 대선 후보로 돌아왔다. 최초로 토론회 라인업이 공개됐을 때, 이 토론이 8:1 다구리 싸움이 될 줄 알았다. 물론 1은 김선동이다. 그러나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거의 유일하게 진보적 주장을 했던 그 역시 토론보다 자기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것에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했다. 조금 밋밋해서 아쉬웠달까.


통진당 해산은 최순실의 작품이며 정치적 탄압이다, 이석기는 석방돼야 한다는 이야기를 전면에 내놓고 했다. 아참, 2012년 이정희 이야기를 하며 다시 공중파에서 '다까기 마사오'가 울려 퍼지게 만들었다. 



해체파


장성민(국민대통합당)

재산: 16억 8천

전과: 명예훼손(벌금 150만 원)

주요 공약: 국회의원 감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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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나라가 위태롭습니다!"


얼마 전까지 TV 조선에서 '장성민의 시사탱크'를 진행했던 그 장성민 맞다. 방송 경험이 많은 덕에 카메라 앞에서 가장 자연스러웠다. 종편 출신답게 큰 목소리로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것에 능했으며, 가장 뛰어난 딜리버리를 보여줬다. 발음이 좋았다는 거지 내용이 좋았다는 건 아닙니다.


국회를 상당히 싫어하는 듯한데, 국회의원 절반 감축에 세비 절반, 면책특권 폐지, 국회의원 탄핵제도, 2년마다 중간평가 등 공약의 많은 부분을 국회를 까는 것에 집중하고 있다. 자유토론 시간엔 능숙하게 질문하고 답변을 받아내며 시사탱크를 보고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이재오(늘푸른한국당)

재산: 10억 9천

전과: 반공법(징역 1년 집유 2년 자격정지 1년), 국가보안법(징역 1년 집유 2년 자격정지 1년)

주요 공약: 개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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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개헌을 해야.."


개헌에 모든 것을 건 이재오다. 당선된 후 1년 만에 개헌을 끝내고 대통령직을 사임하겠다고 한다. 국회의원 수를 100명 줄이고 기초 선거를 폐지하겠다는 공약도 내걸었다. 왜? 선거비용이 아까우니까. 그렇게 아낀 돈으로 경제를 살리겠다고..


인지도도 높고 맏형이어서 그런지 가장 많은 질문을 받았다. 물론 공격이 아니라 '내 공약은 이건데, 어때?' 수준의 질문이라 특별히 까다로울 것 없었으나, 안정감 있게 답변해내며 5선 국회의원으로서의 내공을 선보였다.




이렇게 군소후보 토론회를 살펴봤다.


아무도 관심주지 않는 토론회를 관전하고 자료를 정리하며 날밤 까면서 바랬던 건 딱 한 가지였다. 누군가는 이 토론회를 통해 가슴을 훅 파고드는 후보를 만났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다. 


여러분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나는 자꾸만 안드로메다 같은 매력을 뽐내는 후보를 찾았다. 하지만 엄정한 기계적 중립을 단 한번도 포기한적 없었던 본지로서는 특정 후보에 힘을 실어줄 수 없어 안타깝게도 언급하지는 못할 뿐이다.


혹시나 주옥 같은 후보를 발견했다면, 선관위 사이트에서 자세한 정보를 찾아보자. (토론회 링크 공약 링크안드로메다를 만날 수 있다.


마무리하는 김에 아쉬운 점을 토로하지 않을 수 없다. 초청후보 토론회도 그랬지만, 이 토론회는 더더욱 시간이 부족함을 절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시간이 좀 더 있었다면 토론 혹은 개싸움하며 역량이 드러났을 텐데 마냥 밋밋한  토론회가 되어 아쉽다. 우리 마성의 매력을 뽐내는 후보의 실력도 볼 수 있고.. 


5년 뒤에 또 이렇게 하게 되거든, 반반으로 나누건 5시간을 주건 제대로 된 방법을 강구해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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