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기사 추천 기사 연재 기사 마빡 리스트




공영방송 KBS가 주최한 2차 대선후보 토론회(이후부턴 걍 2차 토론회로 퉁치겠다). 여기서 굳이 공영방송에 KBS를 붙인 것은 혹시나 KBS가 공영방송이었다는 사실을 잊으신 분이 있을까 상기시켜드리는 것이니 오해 없길 바라며 후끈하게 함 복기해보자.

 



총평

 

초등학교 학급 어린이 회의 정도의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듯, 이번 2차 토론회는 사실상 다자간 토론회라고 하기 보다는 문재인 인사청문회에 가까웠다. 적어도 본인 지지율의 두배 이상 되어 보이는 문재인의 질문 점유율은, 뜯어먹을 지지율을 가장 많이 가진 자로서는 감당해야 할 몫이겠다.

 

재미있는 점은 이미 여러 언론들이 최근 여론조사 동향을 발표하면서 문재인 대세론이 저물고 문재인 대 안철수의 양강구도가 굳어졌다고 보도하고 있는 와중에도 여전히 토론회만 놓고 보면 4인의 후보들이 대세 문재인을 꺾기 위해 달려드는 모양새가 유지되고 있다는 것. 어쩌다 그렇게 되었는지 각자의 사정은 각론에서 따져 보기로 하고, 암튼 2차 토론회의 한줄평은 이렇다. 



“문재인 청문회 

겸 

준표 스탠드(설마, 이거 때문에 토론회를 서서 한 것인가!!!)업 코미디”


 

문재인


201704170501111648859.jpg


 

문재인은 이러한 청문회 양상의 토론 구도를 굳이 마다할 이유가 없다. 다섯 명의 대선 후보가 나와 자유롭게 얘기하라고 판을 깔아줬는데 정작 대부분 질문은 '과연 문재인은 대선 후보로서 대통령이 될 만한 자질을 갖추고 있는가'로 채워졌으니 문재인을 지지하지 않는 유권자들조차 문재인의 당선 가능성을 가장 높게 점칠 수 밖에 없지 않겠나. 물론 다른 후보들이 문재인 후보 검증하겠다고 질문 공세를 한 건 아니다. 대선 후보 토론회에서 오가는 질문은 검증이 아니라 공격이란 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다. 그 공격이 너~~~~~~무 단조롭다. 사드, 북핵, 송민순 회고록 정도는 그냥 약속 대련 수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 조금만 더 하면 액션 영화 스턴트 배우 급으로 합을 맞출 수 있을 것 같다. 문재인과 그의 캠프가 바보 아닌 이상 방어 논리는 더욱 탄탄해질 게 뻔하다.


실제 토론 회차가 거듭할수록 문재인 후보는 비교적 여유를 찾아가는 모양새. 문이브닝하며 질문 공세를 이어 나가려는 안철수 후보를 향해 시크하게 ‘나 답변한 거다? 됐지?’를 시전하는 대목이 단적인 예라 할 수 있겠다. 집중 포화를 당하고는 있으나 주도권을 잃지는 않는 형국을 나름 잘 만들어 나갔다.

 

이쯤 되면 문재인이 조심해야 할 것은 단 하나. 물어뜯을 새로운 떡밥을 주지 않는 것이다. 나머지 후보들도 사실 이거 하나 바라보고 그렇게 지리한 공격을 전개하는 것이라 볼 수도 있겠다. 말실수 혹은 떡밥.

 

결과적으로 2차 토론에서는 단 하나의 떡밥이 등장했다. 북한이 주적이냐는 유승민의 질문에 대통령으로서 할 말이 아니라고 답한 부분. 답변의 옳고 그름을 떠나 보수 진영에서는 쾌재를 불렀을 떡밥이다. 과연 이 떡밥을 보수 후보와 언론이 어떻게 요리를 할지를 지켜보는 것이 토론 이후의 포인트라고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 4월 20일 새벽 1시 29분 현재 네이버 실시간 급상승 검색어 1위가 ‘주적’ 3위가 ‘문재인 주적’이다. 포인트 맞지? 그리고 과연 여론조사 2위 후보인 안철수 캠프는 어떤 스탠스를 취할 것인가.

 

 


안철수

 

201704170502091590534.jpg



1차 토론을 본 후 가졌던 가장 큰 의문이 있었다. 안철수는 무엇을 믿고 그렇게 주구장창 문재인과 일대일 끝장토론을 요청한 것인가. 2차 토론을 본 후 나름의 답을 얻었다.

 

안철수는 토론에 자신이 있었던 게 아니다. 안철수 후보와 그의 캠프가 이 글을 쓰는 나보다 사리판단 능력이 뛰어날 것이라 믿기에 자신들이 그걸 몰랐을 리도 없다고 생각한다. 안철수는 그저 양자 끝장토론을 통해 양강구도라는 그림을 더욱 확실하게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하나 더, 안철수가 확장하려는 외연의 방향이 보수 유권자들이기 때문. 문재인만 아니면 된다고 생각하는 보수 유권자들에게 그래도 문재인을 이길 가능성이 있는 후보는 안철수뿐이라는 것을 각인 시킨다는 측면에서, 혹은 문재인에 비해 상대적으로 자신이 보수 성향에 가깝다는 것을 증명한다는 측면에서 양자 토론으로 기대할 수 있는 이익은 뚜렷하다.


근데 의문은 왜 굳이 끝장 토론으로 하자 제안했냐는 건데, 50대 젊은 대통령을 강조하는 걸 보면 양자토론이 체력전으로 갈수록 이익 규모가 커질 것이라 보았기 때문일까.

 

허나 지금의 다자간 토론은 안철수에게 별 이득이 없다. 총평에서 말했듯 여론조사 결과는 양강 구도가 확립되는 것으로 나오지만 정작 토론이 되면 문재인이 질문을 싹쓸이 해간다. 1위의 몰락을 바라는 2위의 심정으로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으면 될 것 같지만 녹록하지가 않다. 문재인을 본인의 왼쪽에 놓고 오른쪽에 있는 유권자들을 공략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일대일에서나 가능한 것. 다자간 토론에서 안철수는 어중간한 샌드위치 신세를 면하기 힘들다. 그 와중에 나름의 선명성을 내보일 능력과 여력이 된다면 참 좋겠지만 현실은 문재인을 향하던 공격의 파편 질문이 간혹 본인에게 날아오면 거기에 대처하기도 버거운 형편. 졸지에 문재인 후보가 대신 답변하면서 안철수를 구해내는 웃지못할 상황마저 연출되고 마는 것이다.


안철수를 대통령으로 만들어줄 두 중심축이 호남 유권자와 보수 유권자라는 것에서부터 예견된 안철수의 다자간 토론회 고난사를 앞으로는 그가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 지켜보는 것이 포인트다.

 

 

유승민


201704170502341133449.jpg


 

유승민은 토론에 대한 강한 자신감을 가지고 있다. 그 자신감을 제법 잘 살려왔다. 실제로 토론을 주도하는 면모를 보여줌으로써 두 차례에 걸친 대선 후보 토론회에서 자타공인 프로토론러로 인정받았다. 근데 왜 아직도 지지율이 그모냥인가…


유승민의 선거 캐치프레이즈가 ‘보수의 새 희망’이기는 한데, 슬프게도 그는 늘 야권성향 유권자들에게만 보수의 새 희망이었다. 유승민 후보가 한때 집권여당 원내대표를 하면서 수인번호 503번과 대립각을 세우다가 핍박 받던 시절에도 그랬다. 대부분의 야당 지지자들은 반기문 당시 유엔사무총장을 제외할 경우, 가장 강력한 여당 경쟁자를 유승민으로 봤다. 하지만 정작 여당 내 차기 대선 후보군 가운데 유승민의 지지율은 별로 인상적이지 않았다.


작금의 대선판에서도 마찬가지. 보수정당을 지지하지 않는 유권자들은 오히려 유승민의 토론 능력과 콘텐츠를 높이 산다. 그리고 이 다음 대선에서는 강력한 경쟁자가 될 것이라고 예견한다. 다만, 지지할 생각이 없을 뿐이다. 하지만 보수 유권자들에게서 유승민은 여전히 배신자 프레임에 갇혀 있다. 중도 보수 성향 유권자들은 당선 가능성이 높은 안철수 후보를 향한다. 지지율이 바닥에 머무는 이유다.


암튼 유승민은 확실히 토론회 판을 기회의 땅으로 여긴 듯 하다. 문재인을 제외하고는 모든 후보가 질문의 화살을 문재인에게 날리고 있으니 유승민도 예외는 아니었다만 유승민에게는 또 자기 나름의 사정이 있다.


유승민이 스스로의 현실적인 당선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가 나보다는 훨씬 뛰어난 사리판단 능력을 가졌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번 대선에서 가져야할 현실적인 목표는 단 하나. 이번 선거를 통해 자신의 캐치프레이즈 그대로 보수의 새 희망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유승민은 가진 화살의 대부분을 문재인에게 날릴 것이 아니라 홍준표에게 날렸어야 할 것인데 대체 왜그래쓰까. 보수의 새 희망이 되고자 하는 유승민에게 있어 토론회에서 홍준표를 까는 것은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는 데에 별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죽으나 사나 유승민을 보수의 새 희망으로 실제 만들어줄 사람들은 보수성향의 유권자다.


그 가운데 자유한국당을 지지하는 유권자들 앞에서 박근혜 정부의 실패를 도운 세력이라는 프레임으로 홍준표와 자유한국당을 공격하는 것은, 결국 배신자 프레임을 더욱 강화하는 결과를 낳고 만다. 그렇다고 자유한국당을 지지하지 않는 중도 보수 성향의 유권자들에게 마음을 얻을 수 있을까? 오히려 '어차피 당신도 박근혜 정권 탄생에 기여하지 않았느냐'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래서 유승민은 홍준표가 자신을 건드리지 않는 한 대부분의 시간을 문재인 공격에 소비한다. 그러다 가끔 안철수도 까는 거고. 직접적으로 홍준표를 건드리는 것보다는 야권 주자를 공격함으로써 자신의 선명성을 강화하는 쪽이 낫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근데, 여전히 지지율은 그대로일 것만 같은 느낌적 느낌이 든다. 아마도 본인 스스로가 배신자 프레임 앞에서 움츠러들고, 스스로의 영역을 TK 지역에 고립시키는 한 계속 그럴 것 같은 느낌이다. 똑똑해 보이기는 하는데 마음이 잘 안가는 캐릭터는 원래 진보 진영에 많았는데, 잘못하면 보수 정치인 유승민이 그걸 해낼 수도 있겠다.

 


심상정


201704170502481955542.jpg


 

2차 토론회의 공식 모두까기 인형. 진보 정당 후보답게 당연히 보수 정당 후보 둘을 까면서 중도 성향 유권자들을 공략하려는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도 거침없이 깠다. 때로는 네 명을 한 방에 까는 퍼포먼스까지 선보였다.


전반적으로는 심상정도 문재인을 향한 질문 공세에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심상정 후보와 정의당 입장에선 문재인 후보가 지지율 1위이기 때문에 파이가 크다는 이유도 있었겠지만 자신들이 서 있는 바로 오른편에 문재인이 있기 때문에 지지자 공략 가능성이 더 커 보인 이유도 있었을 거다. 문 후보 지지자들은 그 점 때문에 심상정 후보가 많이 미웠을 수 있겠다. 허나 문재인에 대한 보수 후보들의 사상 검증 국면에서 한방에 판세를 정리한 것 또한 심상정이었다. 앞으로도 문재인 청문회 식 토론 구도가 이어진다면 심상정 후보는 문재인을 아프게 찌르면서도 그나마 있어줘서 다행인 역할을 본의 아니게 해낼 가능성이 매우 높다.


덧붙여 스탠드업 코미디를 펼치는 홍준표 후보의 폭주를 제어하는 사실상 컨트롤 타워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안 그래도 안습이라는 평가가 많은 이번 대선 후보 토론회에서 더 큰 참사가 일어나는 것을 막았으니 그 공이 매우 크다. 유승민처럼 그렇다고 딱히 지지율이 막 오를 것 같지는 않다.

 

 

홍준표

 

201704170501441578120.jpg


역시, 주인공은 마지막에 언급하는 게 옳다. 대선 후보 토론회에서 유일하게 토론을 하지 않은 후보가 홍준표다. 선거결과가 본인에게 유리하게 나온 것은 민심의 반영이라고 말하면서 자신에게 불리한 선거 결과가 나온 곳에 대해서는 ‘거긴 원래 야당이 쎈 뎁니다’라고 말하는 호방함. 다들 문재인 대세론을 경계하는 와중에도 자체 조사에서는 본인이 선두로 올라가고 있다고 주장하는 패기. 지지율 8%를 가지고 40%대 지지율을 가지고 있는 후보에게 대선 사퇴를 걸고 한판 뜨자고 제안하는 용맹함. 도대체 왜그래쓰까?


홍준표는 바보가 아니다. 그리고 홍준표는 뼛속까지 한나라당-새누리당-자유한국당 사람이다. 목표가 확실하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가장 확실하게 달성 가능한 루트를 찾아낸다면. 홍준표와 자유한국당의 장기 목표는 당연히 향후 보수의 재집권이고 개인으로서는 홍준표 자신이, 정당 입장에서는 자유한국당이 그 중심에 서는 것이다. 그리고 단기목표는 선거 비용을 전액보전 받는 15% 득표일 가능성이 높다. 결국 돈이다.


홍준표는 이미 지난달부터 바른 정당의 자존심을 팍팍 긁어가면서 엄포를 놓았다. 4월 16일까지는 돌아오라고. 집 나간 자식 부르듯이. 자유한국당 소속 다른 의원은 라디오 인터뷰에서 바른정당이 대선 완주를 강행할 경우 결국 득표율 미달로 선거 비용을 보전 받지 못해 파산하게 될 것이라는 저주를 쏟아냈다. 왜 그래쓰까?


결국 돈이다. 그나마 바른정당은 초긴축으로 선거를 치르겠다고 하고 있지만 자유한국당은 그렇지 않다. 여전히 예전처럼 선거 유세차량도 팍팍 돌리고 네이버 메인 광고도 때리고 인력도 빵빵하게 운용하고 있는 중이다. 선거 비용 보전 기준인 득표율 15%를 위해서라도 더욱 아낌없이 써야하는 마당, 그러다 15%를 넘지 못하면 선거 비용의 반이 날아가고 10%를 넘지 못하면 다 날아갈 판이다. 당장 돈도 돈이지만 그 정도 득표율로는 보수 1당으로써의 존립 자체가 위태로워질 것이다. 그래서 홍준표는 반드시 득표율 15%를 넘어야한다. 판세가 뒤집어지고 있으니 걱정 말고 내게 표를 달라는 허세는 딱 그만큼의 절박함이다.


2차 토론회마저 홍준표 스탠드업 코미디의 장으로 만들어버린 이유 또한 여기에 있다. 예전 새누리당은 최소 30%를 콘크리트 지지율로 봤다. 15%는 딱 그 절반이다. 콘크리트 중 콘크리트. 그들의 마음을 얻을 만큼의 퍼포먼스. 그래서 홍준표는 그렇게도 당당하게 토론회를 홀로 개판으로 만들어버린다. 딱 15% 이상의 유권자만 만족시키면 되기 때문에.


홍준표를 바라보는 대선 토론회의 포인트는 그래서 15%. 홍준표 뿐 아니라 자유한국당의 미래가 여기에 달려 있다. 박근혜 정권 심판의 마무리 여부와 함께.



 

요약

 

문재인 후보는 공세를 방어하는 과정에서 주적 떡밥을 남김으로써 찜찜한 뒷맛을 남겼다. 안철수 후보는 1차 토론 때와 마찬가지로 양강 구도를 형성하는 후보다운 존재감을 발휘하지 못했다. 유승민 후보와 심상정 후보는 토론에서는 강렬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지만 정작 지지율이 미미하다는 게 문제다. 

 


maxresdefault.jpg



홍준표 후보는 축구 경기에서 혼자 씨름을 하면서 축구장에도 씨름을 보고 싶어하는 관중이 있을 수 있지 않느냐고 따졌다.

 

지켜보는 사람들은 지지 후보가 누구였든간에 더 큰 혼란에 빠졌다.

 

 




이방인

Profile
딴지일보 공식 계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