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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이야기


정신병동.


간호사 옷을 입은 사람도 남자였다. 나 보고 자신이 보는 앞에서 옷을 다 벗으라고 했다. 옷을 다 벗으니, 어떤 옷을 꺼내서 나에게 입히는데 팔이 길고 그 남은 팔을 목 뒤로 묶어서 팔을 못 움직이게 하는 옷이었다.


“뭐 하는 거야!!” 라고 소리를 쳤고, 몸부림을 칠 수도 없는 날 침대도 없는 차가운 바닥에 찜질방에서나 보던 흑매트 같은 걸 깔고 몸을 옆으로 눕게 했다. 작은 종이컵에 파란색 알약이 2알 들어 있었고 난 그 약을 먹고 몸에 힘이 빠진 채 누워 있었다. 등 쪽은 대변을 보라고 뚫려 있는 건지, 냉기가 그 곳을 통해 몸에 들어왔다.


눈물은 멈추지 않았고 천천히 잠이 들기 시작했다.




차는 빠르게 사거리를 향해 달리고 있었고 난 운전자에게 소리쳤다.


“그냥 직진으로 가!!! 스탑하지 말고 밟어~”


나를 태운 차량은 아파트 단지 사이로 들어갔다. 우리가 들어온 입구 말고 다른 입구가 있는지 찾아보기 위해서 단지를 돌고 있었다. 뒤에서는 요란한 사이렌 소리가 계속 울리고 있었다. 다행히 다른 게이트를 찾아내어 운좋게 수비대의 차량을 따돌렸다. 담배를 다 피우고 차를 타고 시애틀 공항으로 향하려는 순간, 어떻게 알고 수비대는 우리 차를 둘러싸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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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이다. 꿈에서 마저 또 잡혔다. 잠깐 잘 때마다 알수 없는 꿈을 매일 꾸었던지라 놀랍지도 서글프지도 않았다. 눈이 쉽게 떠지지 않았다. 고개를 돌릴 힘도 없었다. 땀을 얼마나 많이 흘렸는지 매트리스위에서 얼굴이 미끄러질 정도였다.


“240, 정신이 들어?”


눈을 살짝 떠 보니, 어제 날 이곳에 넣었던 간호사가 날 들여다 보며 물어본다.


“ok, ok, I'm ok...”


고개를 끄덕이더니 포도당을 놓아줬다. 2일이 넘게 잤다고 한다. 자면서 내 행동을 보는 거라고 하는데 자고 일어나서의 행동을 더 본다고 했다. 찌뿌둥한 몸을 샤워로 대신하려고 자리에서 일어나니 몸이 휘청 거렸다.


샤워커튼도 없는 뚫려 있는 공간에서 샤워를 하고나니, 새 속옷과 새 죄수복이 놓여 있었고, 그 옆에는 작은 종이 위에 치킨 몇 조각과 빵이 있었다. 따뜻한 스프도 있었다. 배가 너무 고팠지만 누가 줬는지도 모르고, 그냥 먹기가 싫었다. 독방 문이 열리고 간호사는 자기가 아침에 출근할 때 사온거라며 배고플 테니 먹어두라고 했다.


“상태가 많이 좋은 것 같아서 간호 장교를 봐야 하지만, 주말이라서 월요일에 봐야 할 거야. 침대랑 가져다 줄게. 그리고 DVD 좋아해? 그것들 가져다 줄 테니까 푹 쉬었으면 해.”


수용소 침대가 싱글이라면, 정신병동 침대는 더블이다. 옆으로 누워 있어도 편했고 거꾸로 누워도 편하고. 버튼을 눌러서 높낮이가 조정되는 좋은 침대였다. 또한 이동식 DVD를 가져다 주었고, 내 방에 있는 짐들을 다 가져다 주었기 때문에 독방에 나 혼자서 내 과자들을 먹으면서 편한 침대에 누워 꿀 휴가를 보냈다.


인원점검도 없었으며 누워 있다고 뭐라 하지 않았다. 잘 때 누가 옆에 돌아다니지 않는다는 것. 어쨌든 난 환자였으니. 거기 누워 있는 동안은. 당연히 배식이 콩이 아닌 감자로 바뀌어서 나왔다. 간만에 혼자서 이런 저런 생각을 했다.


다시 돌아온 군의관의방.


나를 보자마자 잘 지냈냐고 물어본다. 난 애써 웃음을 보이며 기분 최고라고 말을 했다. 우울한 표정을 잘못 지었다가 다시 돌아갈 수도 있고... 내 앞에 있는 여자는 충분히 그렇게 할 수 있는 위치란 걸 알고 있었다.


“문화적 차이로 널 그렇게 만들어서 미안해. 기분은 훨씬 좋아졌을 거야.”


“…….“


고개만 그냥 끄덕거렸다.


“나도 네게 직접적인 말은 못 하지만, 혹시 영사관에 전화해 봤어?”


“영사관?“


아, 그 생각을 못했다. 난 아직까지는 대한민국 국민이니까. 영사관에 전화를 해봐야 하는구나. 


의사는 영사관 전화번호를 주면서,


“혹시 수용소 안에서 너 괴롭히거나 그런 사람 있어?”


"아니 다들 잘해줘요..."


“그럼 방은 옮기지 않을게. 그냥 너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해 놓을게. 그리고 240, 좋은 소식 있기를 바래.“


난 다시 박스를 들고 원래 있던 수용소로 돌아와 또 다시 삐라를 외쳐대기 시작했다. 이상하게 집에 온 느낌이 들었다. 밀리앙은 어떻게 된 거냐면서 어디갔다 왔냐고. 걱정했다고 했다. 정신병동에 갔다 왔다는 말은 못하고 요며칠 배가 아파서 입원해 있었다고 그냥 둘러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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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자리는 원래 밀리앙 침대 바로 밑이었다. 근데 내가 없는 사이 다른사람이 이미 들어와 있었다. 그 사람은 무슨 병이 걸렸는지, 입원을 20일정도 하다가 전날 다시 돌아왔다고 했다. 그래서 난 1층에서 2층으로 자리를 옮길 수밖에 없었다. 1층에 있을 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밀리앙이랑 친해진 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급작스럽게 2층으로 오게 된 거다. 2층은 1층보다 2명 정도가 더 있었다. 하필이면 그 중에 터번을 쓴 친구가 하나 있었는데, 툭하면 애들이랑 시비붙고, 야한 얘기에 욕지거리를 엄청 해 대는 인도인이었다. 인디아들은 다른 죄수들과 잘 어울리지 않았다. 항상 자기들끼리 무리지어 다니고, 고기를 먹지 않는 애들이기 때문에 밥도 따로 배식받아서 자기들끼리 주욱 앉아 먹었다. 밖으로 산책을 나갈 때도 한번에 다 나갔다가 한번에 들어왔다. 인도 애들은 이상하리만큼 다른 사람들을 무시하는경향이 좀 심했다. 처음에는 나도 별 생각없이 친해졌다가 점점 멀어지기 시작했고 점점 맘에 안 들어지기 시작했다.


수용소는 청결상태를 중요시했다. 일주일에 한 번 청소 상태가 가장 깨끗한 섹터는 취침소등 후에 2시간정도 영화 시청을 하게 해주고 전원 햄버거 또는 과자 콜라 세트를 지급해 줬다. 청소 대회는 그만큼 큰 행사 중에 하나였다. 쓸고 닦고 털고 다시 닦고. 이번에는 농구코트까지 싹 다 닦기 시작했다. 역시 인도 애들은 청소를 하지 않고 도망을 다녔다.


요며칠전부터 인도 애들과 사이가 별로 좋지 않았다. 아침마다 틀어주는 CNN뉴스에는 북한도발에 관한 기사가 연이어 터졌으며, 그때부터 자꾸 나보고 노스 코리안! 노스코리안! 이러면서 놀리길래 쌍욕을 한번 퍼부어 준 적이 있다. 난 키가 좀 큰 편에다가 쌍커풀 눈이지만 째려보면 무섭단 소리를 가끔 듣는다. 안 그래도 멘탈이 좋지 않은 상황인데 쪼금만 불쾌하게 굴면 난 그들을 째려보기 시작했다. 하나 걸려라 하는표정으로.


나도 팔 다리를 걷어 부치고 열심히 청소를 했다. 이미 한번 그 포상을 즐긴 적이 있었고, 그나마 우리 섹터는 남색옷(제일 착한 애들)이 제일 많은 구역이라서 모범섹터에 속해 있었다. 그만큼 청소 포상을 받은 적도 많다고 했다.


일은 터지고야 말았다. 청소 점검 시간이 돌아왔고, 우린 수용소 청소상태를 확인하러 온 교도관들에게 함성을 질러주었다.


“와~!!! 야!!!!!”


교도관들에게 점수 좀 후하게 달라는 얘기였다.


전자렌지 상태 아주 굿~ 바닥청소 상태, 치약으로 닦았으니 아주 굿~ 화장실, 털 하나 떨어진 것 없이 치약으로 스텡까지 빛을 내 버렸으니 아주 굿~ 어디 하나 청소를 안 한 곳이 없으니. 그때, 농구코트로 들어간 감독 교도관은 점수를 깍을 수밖에 없다며 그냥 돌아 나왔다.


“아, 뭐야... 우리 저거 하나 때문에 청소 탈락한거야? 1등 아냐?”


사람들이 웅성웅성 대기 시작했다. 감점을 당하게 된 이유가 다름이 아닌, 농구 코트의 발자국. 흙도 묻어 있었다. 인도 애들 중 한 녀석의 짓이 분명하다고 생각을 했다. 난 별의별 생각을 다 했다. 감독관들이 미안하단 말을 하고 나가자마자 인도 애들은 하나둘씩 식탁으로 앉기 위해 모였다.


난 씩씩 거리면서 터번이 있는 쪽으로 향해서 걸어갔다. 생각 같아서는 의자 밟고, 식탁 밟고 날아가려고 했지만...


“야! 니네 때문에 청소 햄버거 못 받았잖아! 인디아노 새끼들아 쒯”


이라고 말하자 마자,


“왓? 노스코리안, 햄버거 내가 사줄께. 참아 참아.”


순간 욱하는 마음에 난 그 무리를 향해서 돌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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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가 날 흔들어 깨웠다. 눈을 살짝 떠 보니. 간호사의 엉덩이가 눈 앞에서 왔다 갔다 했다.


'어? 여기 어디지?'


난 터번들에게 그대로 뛰어들었고. 그 중 한명의 터번을 머리끄뎅이 잡는 듯 풀어해쳐 내 목에 감고


“다 죽여버릴 거야~ 미친 터번들아. 니네 때문에!!!”


순간 오른쪽 눈에 주먹이 날아오는게 보였다. 격투기 경기를 보면, 상대편 선수에게 화려하게 쏘아올린 발차기 한 방이 턱 쪽에 제대로 착지를 하면 그대로 이쁜 표정을 지으며, 난 잘못한 게 없소 하며 두 팔을 덜덜 떠는 장면을 본적이 있을거다. 내가 그랬다. 주먹이 내 얼굴로 날아오는 것까지만 봤으니 나도 똑같이 그랬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아 유 오케이? 240?”


정신병원에 끌려 갔다가 나오면서 본 간호원이다.


“아까 너 싸워서 기절하고 여기에 실려왔어. 괜찮으면 일어나서 수용소로 돌아가도 좋아.”


옆쪽엔 밀리앙이 얼굴에 반창고를 붙이고 고개를 숙인 채 앉아 있었는데 표정이 좋지 않았다. 고개를 들어 날 쳐다 보더니 하얀 이빨을 보이며 얘기했다.


“240, 괜찮아? 아까 너 그렇게 맞고 난다음에 인도 애들이랑 싸움이 났어. 뭐 다친 사람들은 없지만 싸움 했던 사람 4명 정도? 다른 곳으로 끌려가고, 우리가 얘기 잘 해서 인도 애들이 시비 걸고 그냥 넌 맞았다라고 얘기가 끝났고.”


그당시 교도관도 내가 손금을 봐줬던 사람이었기 때문에 어느정도 친분이 있어서 그랬는지, 내가 잘못이 없을 거라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 정도로 인도 애들은 사건을 많이 일으키기로 소문이 나 있던 애들이었다. 그렇지만, 내가 2층으로 옮기고 나에게 제일 잘해준 친구도 잡혀 갔다는 얘길 들었다.


엘살바도르 출신의 친구였는데, 여기 들어오기 전 시애틀에 살았었고 음주운전을 하다가 잡혔다고 했다. 자동차 정비를 하는 친구였다. 나보다 나이가 조금 많았지만 금방 친해졌다. 루이스. 그 친구의 이름이다. 루이스는 이상하게도 나에게 잘해줬다. 2층으로 옮기자마자 자기가 수용소 세탁소에서 일한다면서 에이급 속옷을 2개, 양말, 티셔츠 같은 걸 챙겨 주었고, 아무나 안 준다는 수건도 새걸로 챙겨준적이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나도 아낌없이 창고를 개방해 나도 얻기 힘든 핫소스를 풀어버리니 어떻게 안 친해질 수가 있을까. 운동하는 걸 좋아하는 친구라서 나도 따라서 운동을 엄청 많이 하기도 했고 산책 나가서도 30분정도 주변을 뛰면서 얘기하는 것도 참 좋았다. 가족들이 전부다 시애틀에 있기 때문에 영어도 곧잘 했으며, 서로 많은 대화를 했던 것 같다.


그 전에도 인도 애들이랑 은근 슬쩍 시비가 살짝 붙은 적이 있었는데, 그때 루이스가 "너네 240 건드리면 죽어!" 라면서 소리를 친 적도 한 번 있었다. 내가 맞으니까 그동안 참았던 게 터졌던 듯 했다. 내가 나가 떨어지자 마자 그 친구와 밀리앙 또 몇 명의 친구들이 덤볐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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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생각보다 그렇게 큰 싸움은 아니었고 금방 끝이 났다고 했다. 난 루이스가 아무런 일이 없이 돌아오기를 빌며 밀리앙과 함께 수용소로 돌아갔다. 문을 열고 수용소로 돌아가니, 인도 애들이 날 쳐다보면서 겁나 웃어댔다. “몽키 백~~ 몽키 백~~” 이라면서 손목을 흔들며 혀를 내민다. 얘길 더 들으니 우린 4명 정도만 잡혀 갔지만 인도 애들은 2명이란다.


2vs6으로 싸웠는데 우리가 졌다. 우리라고 표현하기도 좀 그렇지만... 그냥 나 혼자 맞아서 쓰러지고 끝났으면 상관이 없는데 생각지도 않게 싸움 잘하는 친구가 하나 있었다고 한다. 아니 어떻게 고기도 안 먹는 애들이 싸움을 잘해? 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격투기 선수였단다. 그나마 맷집이 좀 쎈 사람만 기절하지 않은 듯 했다. 내가 젤 오래 누워 있었고 개거품을 물어서 혼자 양호실로 실려간 거라고 했다.


안 그래도 재수없는 애들인데 앞으로 저 깐족거림을 어떻게 견뎌내나 생각하니 앞이 깜깜했다.


난 2층에서 둥지를 틀고 있었고 자리에 누우면 서로 발을 마주보고 한 명이 더 누워있었다. 내 발끝에 발을 대고 사는 인도 애였다. 나이도 20살 초반인데 수염을 배까지 기르고 눈썹은 또 얼마나 진한지, 양끝이 조금 올라간 용눈썹 이었다. 진짜 씻는 걸 얼마나 싫어하는지, 옆에 지나가기만 해도 냄새가 조금 났다. 그런 데다가 터번은 또 맨날 쓰고 다녀요. 축구도 겁나 열심히 땀 흘려 했다.


당연히 나랑 사이가 안 좋았지만 그렇게 얻어맞고 난 다음에는 더욱더 사이가 안 좋았다. 게다가 그 친구는 재판이 며칠 남지 않은 친구라서 매일 내 발 앞에서 “난 조금 있으면 나가는데~ 나가는데~ “ 하며 약올리는 것도 너무 짜증이 났다. 난 한국말로 “저리 안 꺼져 이XX끼야!!!” 하니 혀를 낼름 거리며 저쪽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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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저나 난 언제 나가나... 벌써 여기에 들어온 지도 시간이 꽤 지난 것 같은데.


“형 잘 지내? 어쩐지 연락이 안되서 형 잡힌 것 같드라. 형 어차피 나오기는 힘들 거고 한국으로 가는 걸로 알고 있어. 영사관에 전화하면 어떻게 된다 어떻게 된다 알려줄 거야.”


“응, 나 잘 지내지. 미안, 이제서야 전화번호 받아서 전화 한다.”


“괜찮아 형. 어차피 추방되는 거. 그냥 맘편히 잘 먹어. 먹는 거 진짜 잘 먹어야 해. 거기 과자랑 그런 거 잘 나오니까.”


“참, 브로커랑 한번 연락해 볼 수 있어? 안 그래도 너도 아는 사람이니까.”


예전에 브로커가 내가 아는 사람이랑 좀 친분이 있는 사람이 있다고 했던 그 동생이다.


“아, 내가 문자는 남겨 놨는데, 아직 연락이 없네. 몇번 더 해볼 테니까. 잘 지내고 있어.”


힘없이 전화를 끊고 맘이 다시 울컥 했다. 이젠 누구한테 전화 하면 안 되겠단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듣는 얘기마다 추방이다. 왜 미국에 살려고 하냐, 내가 너 옥수발 해야하냐, 이런 얘기만 들리니 한없이 작아지기 시작했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난 미안해란 소리 밖에 할 수가 없었다. 전화를 끊고나면 안 그래도 복잡한 머릿속을 그 말소리가 가득 채웠다.


아 참, 영사관. 영사관에 전화해 봐야지. 전화기 위에 한국 국기가 그려져 있는 영사관 전화번호가 있었는데, 그 전엔 그걸 찾질 못했었다. 북한 영사관도 있는데 한국 영사관이 없을까.


“안녕하세요. 시애틀 이민국수용소에 잡혀 있는 240이라고 합니다.”


“아, 네~ 선생님. 안 그래도 저희가 알고 있으니까요. 다른분 바꿔 드리겠습니다.”


“아, 아. 안녕하세요. 선생님. 저 영사관 OOO인데요. 저희한테 선생님에 대한 정보가 들어온 게 있어서 안 그래도 찾아 가려고 하다가 지금 저희가 휴가철이라서 그렇게 하질 못합니다. 저희 휴가가 며칠 있음 끝나는데, 그때 찾아 뵙도록 할게요.”


난 할말도 없이 그냥 전화를 끊었다. 휴가래. 와... 그냥 나도 여기 휴가라고 생각할까? 8월달의 아름다운 시애틀 햇빛을 받지도 못하는데 무슨 휴가. 생각 마저도 사치스러웠다. 난 그냥 습관처럼 이메일을 열어보고 있었다. 읽고 읽고 또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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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망명 사무실 면담 날짜가 잡혔다는 메일이 왔다. 이메일은 내가 재판을 신청할 수 있다는 얘기랑 같다. 얼마전 국선 변호사 사무실 오리엔테이션이 끝나고 난 후, 난 똑같은 스토리를 메일로 이민국에 보냈다(세 번정도 보낸 것 같다)내 기도를 이제서야 들어주나 보다 생각했다. 난 재빨리 샌프란에 있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친구야. 나 망명 담당관이랑 면담 잡혔어.”


“그게 뭐야? 망명 신청을 한단 말야? 그건 북한 사람들만 될 걸? 내가 한번 알아볼게.”


오랜만에 밝은 목소리로 얘길 하니 친구도 그리 짜증을 내지 않았다. 면담을 받기 전날. 난 변호사 오리엔테이션 때보다 훨씬 기분이 좋았다.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드디어 당일. 내 스토리를 적어 놓은 것을 팔꿈치 사이에 끼우고 군대 휴가 나가는 기분으로 철문 앞에 서 있었다.


전에 갔던 곳과는 좀 다른 장소로 갔다. 복도가 그 전에 갔던 곳과는 다르게 너무 깨끗했고, 죄수들이 대기를 하는 대기감방도 차이가 났다. 서너명이 가슴에 서류를 품고서 천장을 쳐다보며 뭔가를 중얼거렸다. 자세히 들어보니, 어설프게 영어를 연습해서 그 단어 단어를 웅얼거리는 거였다.


그때 대기감옥 플라스틱 창문으로 노란색 옷(여자 죄수들)이 지나가는게 보였다. 난 내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분명 한국 여자였다. 난 두 손바닥으로 창문을 치면서,


“야~ 야~ 너 한국 사람이지~ 그치?!!!”


여자는 가던 발걸음을 살짝 멈추었다.


“봐~ 봐~ 너 한국사람이지? 그치??!!”


뒤로 돌아서는 여자의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다. 한국인이 맞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있던 곳은 재판이 이뤄지는 곳이었고, 망명 담당관 사무실이 있는 곳이었다. 그 여자는 추방 명령을 받고 나온 듯 했다. “한국으로 가는 거에요?” 라고 묻자, 교도관은 손으로 창문을 퍽 치며, “shut up” 이라고 했다. 여자는 내 쪽을 바라보고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해 주었다. '건강하세요.'라며 다시 뒤로 돌아 걸어갔다. 멀어지는 그 여자를 쳐다보려는 순간, 교도관이 앞에 딱 섰다.


“240!!!!! 나왓!”


긴장이 되기 시작했고, 또 다시 손이 차가워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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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기사


1편 밀입국

2편 국경을 넘어라

3편 미국 감옥에 들어가다

4편 감방 생활

5편 익숙해진 감방생활

6편 익숙해진 감방생활 2

7편 누군가 널 죽이려 한다던가

8편 거짓 증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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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