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직장생활은 왜 지랄맞을 수 밖에 없는 것일까?
직장생활은 힘든 일이다. 지금도 이 땅의 수많은 직장인들은 눈물을 머금고 직장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그렇다면 직장생활은 왜 이렇게 지랄맞을 수밖에 없을까? 직장이라는 구조 자체에 어떤 본질적인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닐까?
직장은 원래 비민주적인 곳이다. 21세기 현대사회의 보편적 가치는 ‘자유’와 ‘평등’이다. 그러나 직장은 위계에 따른 불평등이 본질적으로 당연시 되는 곳이다. 또한, 이익창출과 성과달성을 목표로 하는 조직이기 때문에 개인의 자유는 후순위로 밀리게 된다.
직장은 당신을 어떻게 '사용'할지 생각할 뿐, 당신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Human Resource라는 단어의 의미를 생각해보라. 습관적으로 들어와서 가치중립적인 단어로 느낄지도 모르지만, Human Resource를 직역하면 '인적자원'이 된다. 인간을 자원으로 여긴다는 것이다. 일본이 조선을 빨아먹을 자원으로 여겼던 것처럼 회사는 당신을 빨아먹을 자원으로 여기고 있다.
안 그래도 힘들게 살고 있는 직장인들을 더욱 힘들게 하는, 직장에서 없어져야 할 단어들로는 무엇이 있을까? 직장인을 가장 힘들게 하는 것 중 하나는 '야근'이다. 지금도 이 땅에 수많은 직장인들은 사직서를 가슴에 품고, 서울 야경에 하나의 불빛이 되고 있다.
<『야근의 요정』 몰락인생(이현민) 作>
2. 왜 야근이 당연시 될까?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근로자의 의사에 반하는 야근은 불법이다.
제50조(근로시간) ① 1주 간의 근로시간은 휴게시간을 제외하고 40시간을 초과할 수 없다.
제53조(연장 근로의 제한) ① 당사자 간에 합의하면 1주 간에 12시간을 한도로 제50조의 근로시간을 연장할 수 있다.
56조(연장·야간 및 휴일 근로) 사용자는 연장근로와 야간근로 또는 휴일근로에 대하여는 통상임금의 100분의 50 이상을 가산하여 지급하여야 한다.
제109조(벌칙) ① 제56조를 위반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근이 불법이라는 사회적 인식은 매우 미미하다. 심지어 야근을 숭고한 희생으로 여기며 신성시하는 분위기마저 존재한다. 왜 야근이 당연시되는지 탐구해보기 위해, 야근을 숭고하게 여기는 위법적 인식이 무엇으로부터 유래하였는지 살펴보았다.
3. '정신력'의 유래: 일본제국의 정신승리
기술, 체력, 전술 모두 유럽과 남미의 강호에 뒤지지만, 정신력으로 이를 극복해야 한다는(지금 생각해보면 턱도 없는) 월드컵 축구 중계의 논조가 90년대에는 유행했었다. 이런 비상식적인 논조는 또 무엇으로부터 유래했을까?
“정신력으로 모든 것을 극복하자”라는 주장을 만들고 퍼뜨린 것은 일본제국이었다.
일본은 적극적으로 서양 문물을 받아들여 제국주의 국가가 되었고, 조선은 쇄국정책을 해서 국제적인 바보가 되었다는 일반적인 인식과 달리, 일본의 서양 제국주의 국가들에 대한 입장은 쇄국정책이었다. 1840년 아편전쟁 이후 서구 열강은 아시아 국가들에 대해 개방 압력을 높여 왔지만 일본은 네덜란드에만 제한된 교역을 허용하는 쇄국정책을 고수해 왔다.
1853년 미국의 페리 제독이 이끄는 함대는 쇄국정책을 고수하는 일본을 강제로 개항시키기 위해, 도쿄만에 함대를 배치하고 포격을 쏟아 붇는다. 미국의 무력에 굴복한 결과, 일본은 미국과 불평등 조약을 맺고 개항을 하게 된다. 당시 일본인이 남긴 그림을 보면, 그들이 서양을 얼마나 두려워했는지 짐작해 볼 수 있다.
<일본인이 그린 흑선(Black Ship)과 페리 제독의 초상 『흑선 두루마리(Black Ship Scroll, 1854)』>
1854년 ‘미일 화친조약’ 체결부터 1945년 2차 세계대전 패전까지, 19세기부터 20세기에 이르는 일본 제국주의의 역사를 한 단어로 요약하면 '미국 따라잡기'라고 할 수 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의 공업생산량, 군대의 전력, 확보 가능한 지하자원의 양 등 모든 국력의 지표에서 미국과 맞서 싸울 능력이 되지 않았다.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싸움을 벌인 일본제국은 "동양의 정신으로 서양의 물질을 극복하자"라는 정신승리의 구호를 만들어서 유포한다. 쉽게 말해, "객관적인 전력상 도저히 이길 수 없으니, 정신력으로 극복하자"라는 자기자신에 대한 설득이라고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일본제국 정신승리 정서의 잔재를 21세기 애니메이션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객관적인 전력상 절대 이길 수 없는 적 거인에 맞서, 심장을 바쳐 인류를 수호한다는 설정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의 역사인식과 일맥상통한다.
<애니메이션 『진격의 거인』>
일본제국이 즐겨 쓰던 '정신력'이라는 단어가 식민지배를 거쳐 한국인의 인식에 내면화 되고, 서양 오랑캐와 싸우는 국제전 90년대 월드컵이라는 자리를 통해 다시 표출된 것이 아닐까?
객관적으로 도저히 승산이 없지만, 정신력으로 극복하자는 정신승리 정서 -> 객관적으로 도저히 불가능한 일처리지만, 야근으로 극복하자는 야근 신성시 정서
4. 자원이 없으니 몸으로 때우자: 산업화를 통한 ‘정신력’의 내면화
한국은 자원이 부족하고 국토가 좁은 것에 반해, 단위면적당 인구는 많다. 가진 것이라고는 몸뚱이 밖에 없던 1960~1970년대 산업화 시대에, 일본제국의 정신승리 정서는 "안 되면 되게 하라"라는 한국식 정신력으로 토착화 된다. 이 과정을 통해 “몸으로 때우자”는 정서가 한국인의 인식 속에 깊게 뿌리 박히게 되었다.
거래처에서 깎아서 맞추어 달라는 견적 금액을 짤 때, 이것 빼고 저것 빼도 안되면 뭘 깎는가? 이런 상황에서 한국인이 습관적으로 깎는 항목은 바로 '당신의 인건비'이다. “몸으로 때우자”의 21세기적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넓은 국토에 자원이 널려 있는데, 단위면적당 인구가 적어서 이 자원을 개발할 인력이 부족한 캐나다, 호주와 같은 나라에서 '당신의 인건비'는 깎아달라고 해서 깎을 수 있는 항목이 아니다. 두 시간만 배관공 불러도 수십 만원 써야 하는 사회에서는 “상황에 따라 견적에서 인건비를 뺄 수 있다”라는 인식 자체가 없다.
사람들의 인식과 같은 정서적인 측면 이외에, 물질적이며 지정학적인 측면을 생각하더라도, 한국 직장인은 야근을 할 만한 지정학적인 환경에 놓여져 있다.
5. 만인의 만인에 대한 갑질: 생태계를 이룬 야근의 수레바퀴
역사적 환경, 지정학적 환경만 야근을 촉진시키는 것은 아니다. 야근을 촉진시키는 또 다른 주요 요인은 한국인의 ‘참을성 없음’이다.
- 편의점에서 사람들이 줄을 서 있는데, 계산대에 있는 알바가 버벅거리며 시간을 지체하면 화가 난다.
- 민원을 처리하러 관공서에 갔는데, 몇 시간을 기다려야 하면 공무원의 먹튀성과 불성실성을 개탄한다.
소비자의 입장에서 누군가의 야근을 촉진하는 참을성 없음은 생산자의 입장에 있을 때 야근을 할 수 밖에 없도록 만드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다.
<네이버웹툰 『질풍기획』 “35화: 집으로!!”>
이와 같은 한국인의 참을성 없음을 극단적으로 표현한 표어가 바로 이것이다.
"고객은 왕이다"
고객은 고객일 뿐,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다. 이를 견딜 수 없는 '참을성 없음'이 생태계를 형성하여, 다시 내가 야근을 할 수 밖에 없는 사회를 창조하게 되는 것이다. 근로기준법이 완벽하게 지켜지는 사회는 편의점 계산대에서 알바가 버벅거릴 때 신경질 내지 않고 차분히 기다리는 사회, 관공서의 민원이 5분만에 총알처리 되지 않는 사회를 의미한다. 야근이 없는 사회는 엄격한 근로기준법 집행만으로 이룰 수 없다.
6. 야근 없는 사회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사람은 흔하고 자원은 귀한 지정학적 환경의 변화는 25세기쯤 새로운 지하자원이 발견되어 한국이 자원부국으로 거듭나는 천지개벽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야근 없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첫 번째로 야근을 신성시하고 숭고하게 여기는 사회적 분위기부터 타파해야 한다. 제도가 인식의 변화를 이끌어가는 효과도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에, 근로기준법이 엄격하게 집행되도록 정치적 의사표시를 해야 한다. 입법을 할 필요도 없고, 있는 법을 지키기만 하면 된다. 실천은 의외로 간단하다. 고용노동청 조사관에게 신고하면 된다. (하지만 이는 말처럼 쉽지 않다. 내 목숨과 같은 직장을 잃어버릴 위험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에)
또한,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야근이 없는 사회가 이룩된다는 것은, 다른 한편으로 누군가의 야근을 통해 취해왔던 편익을 포기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야근의 생태계를 억제시키는 참을성 있는 소비자의 태도가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마땅히 내 몸을 불살라 야근을 해야 한다”는 인식을 없애는 것이 아닐까? 사회적인 압력 상 어쩔 수 없이 야근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다만, 이를 내 스스로 당연히 해야 할 일로 여기거나, ‘숭고한’ 희생으로 여기지 않아야, 야근을 당연시 하는 사회적 인식이 변화할 수 있지 않을까?
나의 건강과 나의 시간은 가치를 가진 유한한 자원이다.
7. 사회에서 개인으로 논의의 전환
지금까지는 직장인의 삶을 힘들게 만드는 거시적 요인 '야근'에 대해 알아보았다. 야근 문화는 개인으로서 바꾸기 쉽지 않는 사회문화적 현상이다. 이제 초점을 개인으로 옮겨, 어떻게 하면 지랄맞은 직장인의 삶을 조금이나마 편하게 살 수 있을지 '극복'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고찰해 보았다.
많은 한국인들은 학창시절부터 “시련을 극복하고 이겨내야 한다”라는 구호를 습관적으로 듣고 자란다. 직장생활에서는 이와 같은 구호가 “성장해야 한다”라는 현대적 표현으로 대체된다.
<’성장’의 메시지를 담은 자기계발서들>
'성장'이라는 단어를 조직의 관점에서 보면 Human Resource의 Resource가 늘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성장 프레임은 다분히 조직의 입장을 반영하고 있지, 그 속에 있는 개인의 입장을 반영하고 있지는 않다. 극복과 성장은 조직을 위한 것이지, 개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역량'이라는 개념을 통해 탐구해 보았다.
8. 역량의 개념: 개인마다 역량의 프로파일은 다르다
역량이라는 단어는 현 시점에 보편적으로 널리 쓰이는 단어가 되었다. 그러나 역량의 개념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고 있는 경우는 많지 않으며, 막연하게 능력과 비슷한 의미로 통용되고 있다. 보통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한다.
사실 사람은 이렇게 생겼다.
- 사고(Thinking)영역: 자료와 문서를 바탕으로 상황을 판단하여 적합한 해결책을 도출하는 역량. 모든 일의 기본이 되는 역량.- 관계(Relation)영역: 호의적인 관계를 만들고, 도움을 얻어내는 역량. 사람 좋고 착한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정치력과 협상력을 의미한다.- 업무(Working)영역: 포기하지 않는 추진력, 같이 일하는 팀원들까지 동기부여 하는 긍정 에너지, 근성과 끈질김. 때 되면 열심히 하겠지 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때가 되도 열심히 하지 않는다.
어떻게 하면 이렇게 생긴 나 자신이 잘 살수 있을까?
Naiveself
블로그 cafe.naver.com/itselfcompany
편집 : 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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