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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피가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내가 산 종목을 제외한) 거의 모든 종목이 쭉쭉 오르는 요즘이다. “그러지 말아야지”를 되뇌지만, 사람이 돈이 걸리면 잃고 따는데 연연하고, 매일 일희일비하다가 ‘빅픽쳐’ 놓치기 마련이다. 이럴 때 심해 속을 해매는 불쌍한 개미 중생들에게 천상계에서 내려온 현자들의 말씀 한 마디 한 마디는 피가 되고 살이 되기도 한다. 물론 도박판 같은 시장엔 제대로 된 조언을 해줄 현자보다 피와 살을 발라먹으려는 개미핥기들이 더 많지만.


그래도 전 세계 최고이자 최대의 헤지펀드인 ‘브릿지 워터’의 창립자이자 회장님이신 레이 달리오는 믿을 만하다. ‘How the Economic Machine Works’라는, 현대 경제시스템을 쉬운 언어와 깊이 있는 통찰력으로 정리한 애니메이션과 페이퍼를 발표하신 적이 있다.




그는 최근 ‘링크드인’에 ‘빅픽쳐’란 제목의 짧은 글을 통해 세계 경제진단을 내놓으셨다. 투자에 관심이 없더라도 세계 경제가 지금 어떻게 굴러가고 있는지 맥을 잡는데 이만한 게 없는 것 같아 공유한다. 궁금하지 않은가. 전 세계에서 가장 큰돈을 굴리는 위대한 헤지펀드 매니저는 지금의 경제를 어찌 바라보고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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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Big Picture>


레이 달리오가 바라본 현 세계 경제는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단기적으론 보기 좋은데, 장기적으론 끔찍하다.”


- 한 1~2년만 놓고 보면 거대한 경제위기의 징조가 보이지 않으나, 장기적으론 상당한 난관들이 놓여있어 경제적 압박이 예상

- 사회·정치적 갈등은 지난 수십 년 내 최고치이며, 갈등은 경제가 안 좋을 경우 더 나빠질 것



이 말들을 액면으로만 보면 하나마나한 분석 같지만, 레이 달리오니까 디테일을 볼 필요가 있다. 강산이 수십 번 바뀔 동안 월가에서 가장 정확한 거시경제학적 진단으로 안정적인 수익을 내온 진짜 중에 진짜니까.


레이 달리오는 크게 세 가지 차트를 통해 경제를 분석한다.


5~10년의 주기를 가지고 저점과 고점을 형성하는 단기 채무사이클

여러 개의 단기 채무사이클이 모여, 사이클 간의 저점과 고점을 형성하는 장기 채무사이클 (100년에 한 번 꼴로 나타남)

채무사이클들이 모여 만들어지는, 오랜 시간에 걸쳐 서서히 상승하는 경제 생산성 그래프


지금의 경제상황을 대입해서 이 차트를 그려본다면, 레이 달리오는 지금 세계경제를 단기 채무사이클의 중간지점에 해당한다고 보았다. 경제성장은 너무 과열되지도, 위축되지도 않은, 단기 채무 사이클에서 가장 안정적이라 할 수 있는 딱 중간. 그래서 앞으로 1~2년간은 (지정학적 리스크를 제외하고) 눈에 띄는 변동성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장기 채무사이클엔 걱정스러운 부분이 많다. 돈 빌리기가 쉽다보니 장기 채무가 계속 늘어가는 데다가, 연금 및 의료비와 같이 채무는 아니지만 앞으로 사회가 내야할 비용들 역시 증가하고 있다. 채무가 쌓이고 쌓여 서서히 경제를 옥죌 것이고, 빚에 가장 취약한 계층들부터 고통 받기 시작할 것이라는 게 레이 달리오의 분석.


경제위기에 대처할 수 있는 대응수단 중에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은 상당히 제한되어있다. 이미 금리가 낮아서 깎을 여지도 별로 없는 데다가, 양적완화도 위기 시엔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재정정책의 역할이 앞으로 중요해질 텐데, 정치적 갈등 때문에 이 역시도 물음표.


보통 경제상황과 정치·사회적 갈등은 비례하는데, 특기할 것은 지금은 경제가 상당히 양호한 편임에도 이미 정치·사회적 갈등이 역대급이라 부를 만큼 심각하다는 점이다. 그리고 경제 사이클은 언제가 되었든 반드시 하락할 것인데, 이 경우 정치·사회적 갈등이 훨씬 심각해질 것이다.


끔찍한 결론 아닌가. 나는 레이 달리오가 앞으로 다가올 갈등을 미리 예견했기에, 이를 대중에게 쉬운 언어로 전한 게 아닌가 생각한다. 얼마나 갈등이 심각하고 골이 깊으면 몇 년 전부터 계속 같은 메시지를 전하는 걸까.


그는 근거라고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차트를 제시했다.


1) 단기 경제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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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GDP성장률은 GDP잠재성장률에 매우 근접해있다. 즉, 세계 경제는 과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안정적인 상태.


2) 자산 가격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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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적정’하다. 자산에 반영된 리스크 프리미엄(현금 대비 기대수익율)은 정상수준이고, 빚이 과하지 않다. 장·단기적인 비즈니스 사이클과 이에 의한 자산들의 가격은 적정하다.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이다. S&P지수, 코스피 등이 역대 최고치를 찍는 게 ‘과열’은 아닌지 투자자로서 걱정이 많았기 때문이다. 근데 이 분야에 한해서 장인이라 할 수 있는 레이 달리오가 괜찮다니 그런 줄 알아야겠다)


3) 장기부채 사이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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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지 않다. GDP대비 부채 및 비부채성 의무비용이 증가 중인 상황.


4) 경제 성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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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음. 경제 성장성이라는 건 워낙에 서서히 증가하기 때문에 단기적으론 경제 사이클에 영향을 주지 않지만, 장기적으로 가장 중요하다. 지난 10년 간의 경제 성장성은 평균이하였다. (두 번째 흥미로웠던 부분. 현재 IT기업들은 상당히 높은 주가수익비율을 유지하고 있지만, 그들이 가져온 실제 경제에 가져온 성장성은 크게 눈에 띄지 않는 듯하다)


5) 경제·정치·사회적 분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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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우 심각하다. 이글의 결론이라고 할 수 있다. 필라델피아 연준이 발표하는 정치적 갈등지수가 최대치를 기록하고 있는 데다가, 상승 중. 경제 위기 시 분열은 더욱 심각해진단 걸 감안하면 앞으로가 매우매우 걱정된다.


분석 뒤에 그는 지역, 경제권을 나누어 경제상황을 진단했는데, 대부분의 선진국들을 단기 사이클의 중간지점, 장기 사이클의 끝 지점에 와있다고 보았다. 중국을 제외한 다른 개발도상국들은 단기 사이클에선 선진국에 비해 조금 뒤떨어져있지만, 장기 사이클에선 양호하다고 보았다.


중국에 대해서는, 과거 우려했던 구조조정문제가 생각보다 잘 관리되고 있고 성장률도 안정화되었지만, 과잉상태에 다다른 ‘구 경제’와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기업들과 소비증가와 같은 ‘신 경제’에 따라 각자 다른 미래가 예상된다는 예측을 곁들였다.



지금까지 레이 달리오가 본 세계경제의 빅픽쳐였다. 구체적으로 언제 경제가 어떻게 맛갈 것이라는 종말적인 예언이나, 앞으로 계속해서 성장을 거듭할 것이란 장밋빛 예언은 전혀 없는, 어찌 보면 지극히 상식적인 경제 예측이다.


한 발짝 떨어져서 지금 벌어지는 모든 경제 현상들을 아울러 설명하는 경제 예측이란 게 원래 이렇게 상식적일 수밖에 없다. 지금 우리가 처한 경제상황이 딱 그렇다. 뭔가 터질 듯 말 듯 사방에서 연기가 치솟지만, 거대한 불길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이럴수록 우리가 어디쯤 왔는지를 기민하게 살필 필요가 있다.




씻퐈


편집: 딴지일보 챙타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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