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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칭기스칸을 노래(?)로 먼저 배웠다. 독일 가수들이 부른 노래를 한국어로 번안한 노래. “그 언젠가 누군가 들려주는 이야기 후!하!후!하! 나라 위해 몸을 바친 아름다운 이야기 후!하!후!하! 약한 자를 도우며 사랑했네. 슬픈 자는 용기를 주었다네 내 맘 속의 영웅이었네~ 후!하!” 그리고 그 유명한 후렴구,


‘징, 징, 징기스칸~!!!’


사실 이 번안은 엉터리 중의 엉터리다. 독일 원곡은 ‘여자를 닥치는 대로 텐트에 끌고 들어가고 하루에 일곱 명씩 임신시키는’ 육욕의 화신 칭기스칸을 노래하고 있을 뿐, 나라 위해 어쩌고 하는 건 단 한 마디도 등장하지 않는다.

기실 ‘나라 위해 몸을 바친’은 다분히 한국의 70년대적이다. 12세기 말 13세기 초의 몽골에는 부족은 있어도 나라는 없었다. ‘약한 자를 돕고 슬픈 자에게 용기 주고’ 하는 대목도 지극히 범연한 상투어일 뿐이다. 무슬림들이 악마의 채찍이라고 부르며 와들와들 떨었고 저 억센 러시아 사람들도 두 손을 들었으며 저항한 성을 함락하면 고양이 새끼 하나까지 알뜰하게 죽였던 칭기스칸을 노래하면서 뭔 약자에 대한 사랑이며 슬픈 자에 대한 용기란 말인가.


그런데 “뭐 그렇긴 한데 그 노래가 아주 틀린 건 아냐.”라면서 뒷머리를 툭 쳐오는 책이 있다. <테무진 투 더 칸> (홍대선 저, 생각비행)이다. 그리고 이 책은 다시금 나에게 묻는다.


“칭기스칸에 대해 얼마나 아는데?” 그리고 어리둥절해하는 내 앞에서 돌멩이로 툭툭 차면서 설명해 주는 느낌으로. 그러면서 조근조근 설명한다.


“오히려 독일 노래 가사가 틀린 면이 있어. 칭기스칸은 일생 동안 열 번 정도 결혼을 했지만 한 서너 명을 제외하면 정략결혼 측면이 강했고 본처 보르테와의 사이가 좋아서 다 늙어서까지 부부생활을 할 정도였어. ‘(적을 죽인 뒤) 적의 말을 타고 그 부인들을 내 게르로 데리고 와서 그녀들의 가슴과 배를 잠옷과 담요로 삼는 기쁨’을 얘기한 칭기스칸 얘기는 뭐냐고? 몽골 역사 전문가 잭 웨더포드는 이걸 아랍의 역사가 라시드 앗 딘이 꾸며낸 얘기라고 단언해. 아랍 세계 기준으로 칭기스칸을 최강의 남자로 그리려 했던 거지.”


이 책은 분명 평서형으로 쓰여진 책이지만 읽는 내내 나는 저자와 대화하는 느낌으로 책을 읽었다. 이건 뭐지? 궁금할라치면 자상하고 알기 쉬운 설명이 득달했고 글을 읽는다기보다 소담소담 얘기를 풀어놓는 것처럼 문장이 매끈하고 부드러웠다는 뜻이다. 읽다보면 눈에 보이는 게 아니라 귀로 들리는 책, 그런 책 본 적 참 오랜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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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기스칸이 천재라고 생각하고 있지? 비상한 머리와 불굴의 의지를 지닌 불세출의 위인으로 몽골족의 특성을 최대한 활용한 전쟁의 신? 아니야. 테무진은 의외로 찌질한 쪽이었어. 하지만 말이야. ‘역사 속 위인들 중 아마 테무진만큼 남의 말을 잘 듣는 인물도 없었을 거야. 그는 다른 사람들 앞에서 자기만 생각해 낼 수 있는 천재가 아니라 태도의 천재였어. 그는 어머니, 아내, 노예, 동생의 말을 귀담아 들었어.”


칭기스칸은 군사적 천재가 아니었다. 그의 ’안다‘, 즉 의형제 자무카가 오히려 군사적 천재라 불릴만 했다. 칭기스칸은 자무카의 적수가 도저히 못되었다. 자무카와 사이가 벌어진 뒤 처음으로 맞붙은 13익 전투에서 테무진은 괴멸적인 타격을 입는다. 산산이 부서진 뒤 겨우 재기하여 자무카를 이기긴 했지만 그건 바람의 급작스런 변화에 따른 행운이 컸다. (우리 역사의 귀주대첩처럼) 급기야, 테무진이 항상 도와 주었지만 그때마다 배신했던 옹칸이 자무카와 연합하여 테무진을 공격하면서 테무진은 재기 불능에 가까운 참패를 당한다.


그런데 테무진은 쫓겨 도망가면서 일생에서 가장 위대한 명령을 내렸다. (작자의 표현) 퇴각하면서 ”자신을 위해 죽지 말고 도망가라.“고 명령한 것이다. 부하들을 바리케이드삼아 자신의 재산과 친위 병력을 지키던 보통 몽골 귀족들이 아니라 자신이 추격대의 타겟이 되면서 자신을 위해 싸운 부족들을 살린 것이다.


임전무퇴 따위는 칭기스칸의 머리 속에 있지 않았다. ”살아남아라“ 그것이 군율이었다. 오히려 용기에 휩싸여 무모한 돌격을 하는 이들을 제지했다.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인간은 역설적 동물이다. 자신의 목숨을 귀하게 여기는 지도자를 위해서는 기꺼이 목숨을 버리고 싶어진다.“


아마도 나를 버리고 떠나 살아남으라고 부르짖는 테무진의 곁을 떠나면서 그를 따르던 부족들은 피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떠나라 군율이다. 살아남으라. 어차피 적은 나를 따라올 것이다.” 거기서 같이 죽고 같이 삽시다 했다가는 테무진이 먼저 칼을 겨눴을 테니 어쩔 수 없이 떠나면서도 입에 칼 한 번 물고 하늘을 향해 빌었을 것이다.


“살아남으시오. 바보 테무진.”


테무진은 ‘모전 벽의 사람들’ 즉 게르에 사는 사람들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노예제도를 없앴고 약탈품을 일괄적으로 분배받을 권리를 인정했다. “상상도 할 수 없는 평등과 복지를 경험한” 사람들은 더 이상 무지한 백성이나 노예가 아니었다. 테무진을 위해 자신을 걸 수 있는 ‘인간’들이 돼 갔다는 것이다.


테무진은 초원의 영역을 벗어난 변경 발주나 호수까지 도망갔다. 거기 남은 건 단 열 아홉명의 전사들. 테무진까지 쳐서 스무 명이었다. 그들은 흙탕물을 마시면서 맹세한다. 이른바 발주나 맹약. 그런데 기적은 그들로부터 시작된다. 우연히 발주나 호수로 이동해 온 한 부족, 스무 명의 전사들 쯤은 몇 분이면 해치울 수 있었던 규모의 한 부족은 테무진을 향해 무릎 꿇는다. ‘한 부족이 열 아홉명의 패잔병을 거느린 실패자에게’. 여기서 작가의 원문을 들어 본다.


“우월한 타인의 카리스마에 의지하려는 것은 기본 심리다. 그러나 그를 사랑까지는 하지 않는다. 재능에 대한 사랑과 사람 자체에 대한 사랑은 다르다. 실력 위주의 인물은 실패를 용서받지 못한다. 반면 후천적 노력으로 품성과 세계관이 완성된 사람은 대중의 애정을 받는다. 사람은 영악한 동시에 순수한 동물이다. 노력하는 인물에게는 불이익을 감수하면서까지 충성한다. 초원 대중에게 테무진은 따르고 싶은 사람을 넘어 지켜줘야 할 사람이 되어 있었다.”


뭔가 이 대목에서 떠오르는 사람이 없는가? 이 대목을 읽었을 때 나는 극장에 있었다. 다큐 <노무현입니다>를 보기 위해서였다. 감정이 심상찮게 일었기 때문인지는 모르나, 적어도 발주나 호수 뒤의 테무진과 계속된 선거 낙선 후 대선 출마에 나선 노무현과는 완전히 겹쳐 보였다. 곁의 국회의원이라고는 천정배 단기필마 정도였고 지지율은 2%를 웃돌던 수준의 정치인, 하지만 연이은 자살에 가까운 헌신으로 지역주의를 향해 돌진했던 용자에게 모여들어던 사람들 노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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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순 부족으로부터 병력을 얻은 테무진이 다시 전투행군을 시작한다는 소문이 들려오자 뿔뿔이 흩어졌던 ‘테사모’들, 즉 테무진의 정치를 맛보고 새로운 세상을 경험한 이들은 죽자고 달려오기 시작했다.


테무진이 온다! 말에 올라타라! 그들은 무기를 챙겨들고 전속력으로 테무진에게로 달려왔다. 친구를 설득하고 친척을 이끌고 전혀 새로운 부족들까지 끌고서. 발주나 호수의 스무 명의 패잔병은 불과 며칠 사이에 수만 전사와 수십만 백성으로 변해 있었다. 테무진을 몰아낸 승리의 잔치를 벌이던 옹칸과 자무카는 산산조각이 났다.


기적같은 승리. 그러나 테무진이라는 사람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승리. 이 대목을 읽은 뒤 영화관에서 노사모와 노무현의 승리 과정을 지켜보면서 눈물이 났던 것은 정확히 다음과 같은 생각 때문이었다. “우리도 그렇게 이겼는데. 우리에게도 테무진이 있었는데.” 뭐라고 해야 되나, 아쉬움도 아닌 것이 억울함도 아닌 것이 한탄도 아닌 것이 후회도 아닌 것이.


테무진은 계속 성장하여 자무카를 능가하는 군사적 재능까지 몸에 익혀 몽골을 통일하고 세계 역사를 뒤바꾸는 칭기스칸으로 남았다. 그러나 노무현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뒤 슬픈 최후를 맞았다. 칭기스칸은 몽골족에게 새 세상을 열었다. 몽골은 원래 초원의 한미한 부족의 이름이었지만 칭기스칸이 죽었을 때에는 ‘모전 벽 사람들’ 즉 오늘날 몽골 초원의 모든 유목민들을 통칭하는 이름이 돼 있었다.


노무현은 그가 원하던 ‘사람 사는 세상’을 보지 못하고 만들어내지도 못했다. 그러나 영화 속의 유시민 인터뷰를 들으며 나는 패주하는 테무진을 등지고 떠나던 몽골 전사가 돼 엉엉 울었다. “노무현의 세상이 올까요? 그러더라구요. 아 오지요. 100%” 그랬더니 근데, 그런 시대가 오면 나는 없을 것 같아요.” 했다는 그 말. 정말 그런 ‘세상’을 만들고 싶어하는 진심만큼은 가없이 튼튼했던 사람이었기 때문일까.


<테무진 투 더 칸>을 권한다. 우리의 기준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풍경이 속출하고 족보는 개족보에 헛갈리는 종족과 사람 이름으로 그득하지만, 한 시대를 바꾸고 천년토록 이름을 떨치는 변화를 일궈 낸 한 사람과 한 종족의 이야기이기에 절대로 낯설지 않다. 읽으면서 각각 우리를, 그리고 우리의 누군가를 대입해 보시기 바란다. 노무현 외에도 여러 사람이 보인다.


자무카 같은 사람, 옹칸 같은 사람, 테무진의 심복 보로추, 그 아내 보르테, 어머니 헐룬, 다양한 군상들이 오늘날의 누구와 겹치는 풍경이 어른거리며 독서를 방해하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책 재미있다. 장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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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하


편집: 딴지일보 챙타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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