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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봉직의(페이닥터)’라고 불리는, 민간 병원에 고용된 의사입니다. 대학에 있는 의사들과는 달리 딱히 논문을 쓰지도, 논문 실적이 신상에 영향을 미치지도 않습니다. ‘저널’이라고 불리는 정기적으로 발간되는 논문집도 따로 보지 않습니다. 교과서가 업데이트 되면 새로 구입하고, 1년에 3-4번 정도 괜찮은 연수강좌를 들으러 다니는 정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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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이런 고백을 하는 이유는 대규모 임상실험이라든지 통계적 방법론이 중요한 논문 같은 것을 써 본 경험이 거의 없다는 점을 밝히기 위함입니다. 따라서 이 글을 논문 경험이 많으신 교수님들이 혹여 읽으신다면 아낌없이 질책하고 보완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1. 근거 중심 의학


“A라는 약물을 B라는 질병에 사용했을 때 효과가 있다”고 이야기하려면 약물의 효능이 사람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통계적’으로 증명되어야 합니다. 이 증명과정을 ‘임상실험’이라고 부릅니다. 임상실험은 보통 3상(‘상’은 ‘단계’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이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4상 이상을 거치기도 합니다.


일단 임상실험을 하기 전에 약물의 독성 등에 대해서 충분한 검토를 거칩니다. 보통 동물을 상대로 효과와 독성을 보는 단계는 임상실험 이전에 이뤄집니다. 임상은 말 그대로 사람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동물 실험 단계를 통과하지 못 하면 임상실험 자체가 이뤄지지 않습니다.


1상은 약물의 안정성을 검토하는 단계입니다. 소수의 인원에게 약물을 투약한 후 부작용, 안정성 등을 관찰합니다. 동물 실험을 통해 독성에 대한 검증이 이루어진 이후에 1상이 이뤄지기 때문에 비교적 안전합니다.


2상에선 대상 인원을 늘립니다. 1상은 안정성 확립이 주 목적이기 때문에 건강한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경우가 많지만 2상부터는 보통 환자를 대상으로 합니다. 즉 약물이 필요한 이들을 대상으로 안정성과 효과를 모두 알아보는 것입니다. 만약 2상에서 현저한 효과가 있으면 3상으로 넘어갑니다.


3상은 보통 Randomized controlled trial, 우리말로 하면 ‘무작위 대조군 연구’라고 부릅니다. 실험군(투약군)과 대조군(위약 혹은 다른 치료약)을 구분한 후 약효와 안정성을 비교하는 단계입니다. 1, 2상을 통해서 안정성과 효과가 어느 정도 증명되었기 때문에 다수의 환자들을 대상으로 여러 기관(병원)이 참여하기도 합니다. 3상까지 거친 후 각 국가의 보건 기관들의 시판 허가를 받으면 약이 시판됩니다.


4상은 Post Marketing survey라고도 부르는데, ‘시판 후 조사’를 의미합니다. 실제 약물을 사용하는 의사들을 대상으로 부작용의 종류 빈도 효과 등을 조사합니다.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약물 대부분이 이런 과정을 거칩니다만, 이걸로 끝이 아닙니다. 4상이 끝난 이후에도 약물의 효능에 대한 통계적 증명이 끊임없이 이어집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현대 의학에서 사용되는 진단이나 치료법들은 이런 증명과 지속적인 검증 과정을 거칩니다. 이런 증명과 검증을 통해 마련하고자 하는 것은 ‘근거’입니다. 현대의학은 근거가 있을 때 치료법이나 진단법을 선택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언제든 문제가 발견되면 문제를 수정하고, 치료법 혹은 진단법 자체를 폐기하기도 합니다.



2. 작용과 부작용


환자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부작용일 것입니다. 부작용(副作用)의 한자를 보면 아시겠지만, ‘부’자가 ‘아닐 부(不)’가 아니라, ‘버금 부(副)’입니다. ‘부수적’에 쓰는 한자로, 영어로는 ‘Side effect’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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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관확장제로 개발되었던 ‘실데나필’은 ‘음경 해면체의 울혈’이라는 부작용을 유발했습니다. 다시 말해 성기의 발기를 돕고 발기 지속시간과 강직도를 상승시켰습니다. 그 결과 수많은 뱀과 물개의 생명을 구한(뱀과 물개가 정력에 좋다는 말이 있다), 비아그라가 탄생했습니다. 부작용이 오히려 새로운 기능이 된 것입니다.


이처럼 모든 부작용이 부정적이지 않습니다만 일반적으로 “부작용은 부정적인 효과”라고 인식하고 있습니다. 물론 모든 약은 부정적인 효과가 발생할 위험도를 지니고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부작용보다는 효과가 더 크기 때문에 보통의 의사들은 부작용을 감수하고 약물을 처방합니다.


(이 때 중요한 것은 부작용의 빈도와 정도입니다. 극히 일부의 예외-예컨대 항암제 같은-를 제외하고는 부작용 정도나 빈도가 심하거나 잦은 약들은 대개 퇴출됩니다. 단순히 작용이 부작용을 압도하니 무조건 사용하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대부분의 의사들은 부작용을 피하고 싶어 합니다. 부작용의 발생으로 의사-환자 관계가 망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의사들은 가급적 부작용이 적은 약을 사용하려는 성향이 있습니다. 의사들도 부작용을 피하거나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부작용은 설사 발생했다고 하더라도 충분히 대처가 가능합니다. 즉 치명적인 결과로 이어지는 경우는 정말로 흔치 않습니다.



3. 현대의학은 완벽하지 않다


현대의학은 만능이 아닙니다. 완벽하지도 않습니다. 현대의학의 한계를 가장 절감하는 이들은 다름 아닌 의사들입니다.


아직 전이암을 완벽하게 치료할 수 있는 치료법은 없습니다. 여전히 일부 암들은 평균 생존율의 향상 속도가 달팽이 걸음으로 불릴 정도로 느립니다. 당뇨, 고혈압과 같은 만성 질환들은 완치가 불가능합니다. 여전히 사람들은 질병으로 죽고 고통 받습니다. 스마트폰이, 고속 열차가, 자율 주행 자동차가, 사물 인터넷이 일상화된 시대에도 이 사실만은 변하지 않습니다.


대신 치료법이나 진단법에 대해서 지속적으로 검증하고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현 상황에서 가장 정확하고, 안전하며, 효과가 좋은 방법을 선택하려 노력합니다. 이 선택을 보편화하기 위해 네트워크의 형성과 소통에 노력을 기울입니다. 이것이 전부입니다만, 이 전부가 현대의학과 의사들을 ‘내 몸이 아플 때 믿고 맡길 수 있는 무언가’로 만들어준다고 생각합니다.



PS

다른 분야 종사자들과의 소모적 논쟁을 위해서 글을 쓴 것이 아닙니다. 밥그릇 싸움으로 오인될만한 행위들이 없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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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탄


편집: 딴지일보 챙타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