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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이야기


“저기 에어컨이 너무 쎈데... 에어컨 좀 줄여주심 안될까요?”


“아, 잠시만요. 저도 이 버스를 잘 모르기 때문에... 엔지니어에게 말해 볼게요.”


기사는 자신도 추웠는지 엔지니어를 불렀고, 엔지니어가 와서 에어컨을 보더니,


“어? 이거 버튼이 나갔는데요. 다음 정류장 세크라멘토에서 부르세요.”


하면서 무책임하게 버스를 떠났다. 해는 떨어진 지 오래요. 난 덮을 잠바도 없고 이제 9시간을 가야 하는데 기사는 정말 얄밉게도 휴지로 자신 앞에 있는 에어컨 구멍을 틀어 막은 채로 버스를 움직였다. 내 입술은 버스를 탄 지 10분도 되지 않아서 파래져 있었고, 이빨은 너무 빨리 떨려서 딱딱 거리는 소리가 멈추질 않았다.


더이상 즐겁지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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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움직여지질 않았다. 카톡 소리에 전화기를 꺼내 확인하려 하니, 손가락까지 얼어버려서, 답장을 보내기 힘이 들 정도였다. 힘겹게 고개를 들어 창밖을 보니, 도시의 휘황찬란한 불빛들은 사라진 지 오래고, 어둠 사이를 달리고 있었다. 맞은편에서 달려오는 차량도 없이.


'아... 이러다가 죽겠다. 너무 춥다.'


너무 추운 나머지 내 입에서는 알 수 없는 욕들이 나오고 시작했다. 물론 혼자 중얼거린 거지만. 피가 조금이라도 돌 수 있도록 몸을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죽지 않기 위한 최대한의 몸부림이었다. 에어컨이 얼마나 춥다고 이러나 생각하겠지만. 옷도 덜 마른 상태에서 버스에 올라탔고, 에어컨 바람을 이기기엔 턱없이 부족한 얇은 반팔티, 츄리닝이었다. 게다가 마른 사람들은 추위를 훨씬 더 많이 탄다.


난 의자에 꼽혀있는 물을 꺼내들고, 허기를 달래기 위해 주머니에 있는 초코바를 꺼내 한 입 물었다. 하나에 2불 정도 하는 트윅스 쵸코바 2개가 붙어 있었는데, 하나를 금방 먹어치웠다. 그때 즈음, 내 자리 건너편 흑인 커플은 나란히 이어폰을 끼고 KFC 종이봉투를 부스럭 거리며, 치킨과 빵을 꺼내 날 약을 올리듯이 버스 전체로 달콤한 향기를 퍼트리고 있었다.


내 코는 그들이 치킨을 꺼내기 전부터 그 종이봉투 안의 정체를 파악하고 있었다. 그 냄새는 남자를 미치게 한다는 여성들의 샤워코롱 냄새보다 내 맘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난 그 냄새를 피해 츄리닝 바지 안으로 얼굴을 집어넣었다. 얼굴을 츄리닝 바지 사이에 집어넣고, 손을 빠르게 움직여 다리와의 마찰로 열을 내고 있을 무렵 버스가 속력을 줄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난 고개를 들어 밖을 쳐다보았다. 버스는 오레곤주의 끝자락 'eugene'이라는 작은 도시의 주유소로 들어가고 있었다. 버스 안의 불이 켜지자, 오랜 여행에 지쳐있던 사람들은 하나 둘 일어나서 잠시의 휴식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버스 기사는 마이크를 잡고 30분 정도 정차할 테니, 내리라는 얘기를 했다.


내 옆자리의 백인여성도 지갑을 들고 나에게 길을 비켜 달라며 손짓을 했다. 난 힘겹게 두 다리를 접어 길을 터 주었다. 그때서야 버스 엔진음이 꺼지기 시작했고 잠시나마 추위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나의 굳어있는 몸은 바로 움직이지 않았고 난 사람들이 다 나갈 때까지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왼쪽 귀에 들리는 발자욱 소리가 끝이 날 무렵, 난 고개를 들고 버스 밖으로 나가려 했다. 물도 얼마 남지 않아서 물이나 채울 생각으로 자리를 일어나려는 순간, 내 눈에는 흑인 커플이 먹다가 구겨 넣은 종이 봉투가 들어왔다. 난 하지 말아야 할 짓을 했다. 어떻게 보면 그리 나쁜 짓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쓰레기였을 뿐이니까.


일어나서 버스 안을 한참 둘러보고 아무도 날 쳐다보지 않는 것을 확인한 후, 번개와 같은 속도로 그 종이봉투를 낚아채, 티셔츠 안으로 숨기고 버스에서 도망치듯이 뛰어내렸다. 심장이 배 밖으로 튀어 나오는 줄 알았다. '어디서 이걸 열어보지?' 마땅한 장소를 찾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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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화장실만 따로 있는 건물이 보였다. 다행히 그쪽에는 사람들이 서 있지 않았다. 화장실 구석탱이에 휴지를 깔고, 난 품속의 종이 봉투를 꺼냈다. 종이봉투를 여니, 이빨자국이 있는 빵조각, 먹다 남은 치킨조각, 그리고 건들지도 않은 코올슬로가 내 눈을 사로 잡았다. 뚜껑을 열고, 숟가락도 없이 내 모든 손가락을 이용해서 퍼먹기 시작했다. 누가 먹다 남긴 거라는 생각도 들지 않았고, 이런 걸 먹는 내가 슬프지도 않았다.


정신없이 먹고 있을 그때즈음, 갑자기 문이 벌컥 열렸다. 너무 급하게 들어오는 바람에 문 잠그는 걸 잊어버렸었나 보다. 화장실에 들어온 사람은 나이가 좀 있어 보이는 백인 할아버지였고, 난 눈이 마주치자 쳐다보지도 못하고 고개를 떨구고, 입에 남아있는 치킨 뼈를 손으로 끄집어 내면서, "고멘네, 고멘네"란 일본어를 하고 있었다.


그때 무슨 생각이었는지 한국사람이란 걸 들키기가 싫었다.


“너 여기서 뭐 하는 거야?"


“……. 고멘나사이”


“영어 할 줄 알아? 어디 가는 길이야? 여행 중은 아닌 것 같고...”


아마, 화장실에서 먹지 않고, 그냥 밖에 어디 구석에서 먹었으면 그런 일은 없었을 것이다. 아님 문을 잠그고 먹었던가. 그럼 그 사람이 내가 주운 걸 먹는지, 아님 산 걸 혼자 먹는지 알지 못했을 거니까.


“미안. 배가 너무 고파서 쓰레기통에 있는 걸...”


난 창피함에 말을 끝까지 하지 못했다. 날 쳐다보고 있던 할아버지는 내가 쪼그려 있는 자리로 걸어왔다. 세면대에 물을 틀어 자신의 손을 씻더니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내 손은 마요네즈가 범벅이었고, 치킨의 기름기까지 묻어 있었지만 할아버지는 그런 내 손을 잡고 날 일으켜 세워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뭔가를 물어봤지만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날 데리고 간 곳은 주유소에 붙어 있는 큰 마켓이었다.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사실, 예전에 이 길을 왔다 갔다 하면서 몇 번 들른 적이 있는 주유소였기 때문이었다. 창피함도 있었고, 그때와는 다른 내 모습이 싫었던, 자괴감에 빠져드는 눈물이었다.


할아버지가 얘기했다.


"먹고 싶은 거 있으면 골라. 너무 많이는 말고, 나도 그렇게 넉넉하지 않으니까"


이게 무슨 소린가. 날 위해 뭘 사준다는 말인가? 난 놀란 토끼눈을 뜨고, 할아버지를 쳐다보았다. 세상에서 그렇게 인자한 표정은 다시 볼 수 없을듯 했다. 난 우유 하나와 크로와상 2개를 들고 한 입에 털어 넣었다. 정말 고맙다는 인사를 몇 번이고 했고, 할아버지는 엄지손가락을 세우며 날 응원한다면서 사라졌다.


버스를 타기 전, 빈 물통에 물을 다시 채우고, 담배를 하나 물었다. 담배 역시 주워서 피웠다. 버스에 올라타니, 흑인 커플은 종이봉투의 행방을 찾기 시작했고, 난 그쪽은 아예 쳐다보지도 않았다.


버스가 출발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버스는 다시 추워지기 시작했다. 그 추위를 이기지 못할만큼 나의 몸은 지쳐있었다. 그레이하운드 버스에는 화장실이 딸려 있다. 너무 추웠던 나는 버스 뒷편에 있는 화장실로 조심스럽게 들어갔다. 비행기 화장실과 비슷한 화장실. 뚜껑을 덮고 변기 위에 앉으려 했지만 뚜껑이 없었다. 정말 다행인 게 화장실은 에어컨이 나오지 않았다. 화장실 냄새쯤은 별 것도 아니었기에 난 휴지를 바닥에 깔고 자리에 앉자마자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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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앉아 있었을까. 잠에서 슬슬 깨고 있을 때쯤, 버스가 멈춰 있다는 걸 느끼게 되었다. 오랫동안 쪼그려 앉아 있었던 탓인지, 일어서려 하니 온 몸에서 우드득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화장실 문을 열고 나니, 버스 안에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고, 불이 다 꺼져 있는 상태였다. 창밖을 보니 버스는 어느새 세크라멘토 주차장에 정차해 있었다. 버스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난 버스 문을 두드리고, 차 클랙션을 누르며 내가 있는 것을 알리기 시작했다. 버스 클랙션을 울리니, 건물 안에서 사람이 나왔다. 자정이 넘은 시간이었기 때문에, 나온 사람은 좀 놀란 표정이었다.


“어? 너 왜 여기에 있어?”


“아... 에어컨 때문에 너무 추워서 화장실에서 잠이 들었네. 미안해”


“표 좀 보여 줄래? 아이디도 같이?”


난 주머니에 표를 꺼내서 보여주며 이민국에서 발급해 준 아이디도 함께 보여주었다.


“응? 이게 뭐야?”


하면서 직원은 어딘가에 무전연락을 하기 시작했다. 난 한참을 그 직원에게 나에 대해서 설명을 했고, 그때부터 그 직원은 날 쳐다보지도 않았다. 무슨 죄수취급을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였으니까.


그때, 버스정류장 입구쪽으로 지프차 한 대가 들어오고 있었다. 예전에 잡혔을 당시 국경수비대 차량, ICE 차량이 버스정류장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아... 다시 꼬이기 시작하나...' 차량에서 내린 수비대는 내 아이디를 확인 하더니, 따라 오라며 손짓을 했다. 출소한 지 하루 조금 넘었는데.


다시 보는 수비대원들이 반갑지 않았다. 자정이 넘은 시간이었기 때문에 그들 또한 날 반갑게 여기지 않은 건 마찬가지였다. 난 죄를 지은 것도 없는데 예전과 같이 고개를 숙인 채 손가락을 비비적 거리며 안절부절 하지 못했다. 왜 나한테 자꾸 이런 일들이 생길까 그냥 추워서 버스 화장실에 앉아 있었던 것 뿐인데. 그냥 추워도 화장실로 가지 말고 자리에 앉아 있을 것을. 후회가 밀려들기 시작했고, 눈물이 다시 뺨을 타고 흘렀다.


'아 XX 차라리 출소를 하지 않았으면,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


한숨이 코와 입에서 한 번에 나왔다. 수비대원들에게, 석방 명령서를 보여주고, 그들은 어딘가에 전활 걸어 나에 대해서 확인을 했다. 당연히 난 죄가 없었다. 난 샌프란시스코로 가는 길이라고 말했고, 내에 대한 특이 사항이 없자, 일어나라면서, 모든서류를 돌려주며 돌아가도 좋다고 했다.


난 뒤로 돌아서서 나오면서, 다시 한번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눈물이 많은 사람이 아니었는데... 수용소에 한 달 이상 지내면서, 내가 흘린 눈물은 말라 있는 강을 채우기 충분할 정도였고, 하늘에 기도한 것을 다 합한다면, 성경책 반은 채울 수 있을 정도였은니.


그렇게 서러울 수가 없었다. 왜 도대체 내가 이런 상황에 처해야 하며, 내가 무슨 잘못을 그렇게 많이 했길래 이런 시련이 쉬지 않고 나에게 오는 것일까, 깊은 자괴감에 빠지기 시작했다. 내 자신이 점점 싫어졌다. 난 눈물을 흘리느라, 그 자리에 한참을 서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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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크라멘토 버스 정류장. 자정이 넘은 시간이어서 그런지 돌아다니는 사람도 없는 대기실에서 한참을 혼자 있었다. 버스표를 쳐다보니, 아직 가야할 길은 멀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버스탑승구에 문이 열리면서 버스에 올라타라는 방송이 울려퍼졌다.


“산타로사행 버스 탑승 시작하겠습니다.”


얼마나 오래 앉아 있었는지 몸이 말을 잘 듣지 않았다. 몸은 지칠대로 지쳐 있었고, 끼니를 제대로 챙기지 못해서인지, 몸이 둔해질 대로 둔해져 있었고, 갑자기 편두통까지 심하게 오기 시작했다. '제발 다른 버스를 탔으면 좋겠다. 제발” 하지만 버스를 타려 승강장에 들어서니, 타고 온 버스와 똑같았다. '아... 이번에도 화장실에 앉아서 가야하나. 하...”


버스를 타니, 이번에는 운전사가 흑인 여성으로 바뀌어 있었다. 정말 다행인 건, 에어컨 버튼이 고쳐져 있었다는 거다. 그렇다고 따뜻해진 건 아니었지만, 여기까지 올 때 만큼 춥지는 않았다. 버스를 타고 주머니를 뒤적거리니, 먹다 남은 초코바 반쪽이 비닐에 싸여 있었다. 그 초코바를 한 입에 털어 넣었다. 내 옆은 백인 여성이었는데, 어느새 남자로 바뀌어 있었다. 그 남성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어디까지 가는 길이야?”


“응... 난 산타로사”


말을 많이 하면 체력이 낭비가 되니까, 난 최대한 말을 아끼고, 버스가 출발함과 동시에 난 긴팔을 다시 츄리닝 바지 안으로 집어넣고 몸을 최대한 웅크리고, 전투준비를 했다. 그때, 뭔가 따뜻한 담요같은 것이 내 등을 덮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고개를 살짝 들어 옆을 쳐다보니, 남자가 추워하는 날 보고, 가방에 잠바 하나를 더 꺼내서 날 덮어준 거였다. 난 고개를 슬쩍 들어서 옆을 쳐다보았다. 그 남성은,


“춥지? 나 샌프란까지 가는데 덮어.”


라고 하면서 등을 토닥여 줬다.


“아까 버스정류장에서 너가 추위에 벌벌 떨고 있는 모습을 봤어. 어떻게 하다가 이렇게 되었는지 묻지는 않을게. 갓 블레스 유”


난 땡큐라는 말을 하지 못했다. 목이 메어서. 버스는 어느새 캘리포니아 사막 한가운데를 지나고 있었고, 창 밖은 아침이 다가오는지 점점 밝아지고 있었다. 앞으로 남은 시간은 12시간 정도. 샌프란시스코 다음 오클랜드. 다음이 목적지인 산타로사였다. 시간표를 확인하니 운행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는데, 정류장 대기 시간이 길었다. 사막이 끝나고 푸른 초원의 언덕이 펼쳐지며 어느새 창 밖은 환하게 아침이 밝아 있었다.


갑자기 차가 막히기 시작했다. 샌프란시스코에 거의 다 와 가고, 아침시간인지라 출근하는 차량때문에 버스는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버스 안에서 보이는 사람들. 한국과는 다르게 사람들의 얼굴에는 여유가 묻어 있었다. 한국에서 난 신림동에서 살았더랬다. 매일 아침 출근길, 지나가는 한강대교는 지옥과도 다름이 없었고, 사방팔방에서 들리는 클랙션 소리와 "야! 미친새끼야"를 10번은 넘게 들어야 회사에 도착을 했었으니까.


버스는 어느새 샌프란시스코 정류장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도시가 커서 그런지 버스정류장 규모도 여지껏 봐 왔던 곳과는 확실히 달랐다. 버스도 엄청 많았고, 사람들 또한 많았으며, 건물도 깨끗했다. 표를 다시 확인하니, 샌프란 시스코에서 3시간 대기 후 출발이었다. 대합실을 들어가니, 역시나 따뜻하지는 않았다. 난 또 다시 화장실로 뛰어들어갔다.


큰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거지보다 더 심했다. 입술은 다 갈라져 있었다. 따뜻한 물을 틀어 얼굴에 묻히기 시작했다. 뜨거운 물이 얼굴에 닿자, 난 이유 모를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눈물이 흐르기 시작하니, 세수하는 속도가 빨라지기 시작했다. 눈물이 흐르는 걸 다른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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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가야 할 길은 멀고, 춥고, 배고프고. 너무 서러웠다. 난 추운 대합실을 피해서 건물 밖으로 빠져 나갔다. 버스정류장 입구쪽에 있는 의자에 걸터 앉았다. 주머니에는 담배도 없었다. 그때 한 남자가 피우던 담배를 바닥에 던지고 내 앞을 지나갔다. 담배는 아직 반 이상이 남아 있었고, 난 그 담배를 줍기 위해 힘겹게 일어섰다. 내 눈에는 담배 밖에 보이지 않았다. 담배를 집으려 하는 순간,


“오 맨~ 잇스 마인~”


하며 검은 손이 내 담배를 확 낚아채 갔다. 깜짝 놀라 고개를 드니 흑인 거지가 날 쳐다보며 손가락을 좌우로 흔들며,


"내껀데~"


하며 약을 올리듯이 뻐금뻐금 피우고 있었다. 난 그 자리에 앉아서 담배 사냥이라도 하듯이 지나가는 사람들만 쳐다보고 있었다. 멀리서 긴 담배를 물고 걸어오는 여성, 아 저 담배가 날 위해 오는구나 하며 난 눈을 반짝이며 쳐다보고 있었다. 그 여자 또한 날 쳐다보았다. 담배를 다 피웠는지 담배를 바닥에 버렸고, 난 그 모습을 보고 일어나려는 순간, 여자는 떨어진 담배를 발로 비벼서 껐다.


“쒯. 쒯.”


아니 저건 어서 배워 먹은 버릇이야? 정말 긴 장초였는데. 계획을 바꿔야만 했다. 지나가는 사람에게 담배를 구걸하기로 했고, 오히려 그 방법이 더 쉬웠다. 난 지나가는 사람들을 붙잡고 담배를 구걸하기 시작했다. 어렵지 않게 2가치의 담배를 얻었다. 정류장 앞에는 휴지통 위에 큰 재떨이가 있었다. 거기서 담배를 공급 받을 수 있었지만 경비원이 그 앞에 서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 못했다.


내가 담배 2가치를 얻는 걸 보자, 아까 내 담배를 스틸해 갔던 거지가 나에게 다가왔다.


“아까는 미안했어. 나도 담배 한 가치만 줄래?”


“(피식) 담배 달라고 정중하게 부탁할래?”


그 와중에 난 장난기가 발동했고 그 친구는 고개를 숙여 담배 하나만~ 하며 히히 웃었다. 난 담배를 주며, 같이 앉아서 피우자고 했고, 한참을 둘이서 얘기를 나눴던 것 같다. 버스 출발 시간이 다가오고 난 다시 버스에 올라탔다. 버스 운행 시간이 그리 길지 않았다. 버스는 얼마 가지 않아서 오클랜드 정류장으로 들어갔다. 오클랜드에서의 대기 시간이 가장 길었던 듯 했다. 이제 마지막 관문이구나.


오클랜드...


이상하게도 낯선 동네가 아니었다. 예전, 2011년도에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에 샌프란시스코 피셔먼스 워프라는 관광지 기념품가게에서 잠시 일을 했던 적이 있다. '더 락'이라는 영화가 있다. 알카트라즈 감옥에서 포로들을 구출하는, 내가 일했던 곳이 그곳이었고, 같이 일하던 매니져 형님이 살던 동네가 이쪽 근처였기 때문이었다. 버스 정류장은 여지껏 정차했던 곳과는 분위기가 엄청 달랐다.


지붕이 엄청 높은 건물이었고, 성당을 개조해서 만든 것과 같은 느낌이었다. 대기실 의자도 몇 개 되지 않았고, 버스도 많이 없었다. 솔직히 무서운 느낌이 조금 들었다. 난 버스에서 내려 대합실에 앉았다. 이상하게도 머리가 자꾸 아파오기 시작했다. 가슴이 턱턱 막히는 느낌과 함께. 손에서는 식은땀이 줄줄 흐르고 기침까지 하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힘이 드는데 이렇게 아프기 까지 하면 어쩌나...


난 다시 화장실을 가야만 했다. 화장실은 1층에 있는 게 아니었고, 2층을 올라가 골목 골목을 걷다보니 작은 화장실이 나왔다. 화장실은 영화에서나 보던 것처럼 어두운 조명에 소변기 2~3개 정도. 거울은 금이 가 있었다. 화장실에 들어오니 갑자기 먹은 것도 없는데 배가 아팠다.


변기가 있는  문을 향해 걸어 갔는데 이미 누군가가 사용중이었다. 변기 물 내리는 소리가 들리고 난 후에도 한참을 나오지 않아서, 난 앞에 서 있었다. 문이 열리니 키가 큰 흑인이 날 내려다 보며 건들건들 나오기 시작했다. 나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쳤다. 그 사람은은 웃으며 자리를 떠났다. 그 사람이 화장실을 벗어나는 걸 확인 하고 변기가 있는 곳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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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을 잠그려 하니 확실히 잠기지가 않았다. 그래도 문이 열리지 않는 것을 확인 한 후, 바지를 내리고 일을 보기 시작했다. "먹은 것도 없구만 나올 게 있나" 투덜거리며 환희를 느끼는 순간, 누군가가 화장실을 급하게 뛰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똥이 밀려져 나오는 순간, 갑자기 문을 누가 발로 찼고, 제대로 잠기지 않은 문은 쾅 하는 큰소리와 함께 부서지듯 덜렁 거렸다. 난 너무 깜짝 놀란 나머지 그대로 바닥에 주저 앉았다. 바닥에 주저앉아 똥묻은 엉덩이를 바닥에 비비며,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갈색 털모자를 뒤집어 쓴 흑인은 내 멱살을 잡으며,


“여기 있던 봉투 어디에 있어? 니가 챙긴 거야?”


하면서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고, 난 겁에 질려서 움직이지도 못했다. 그때 변기와 벽 사이에 누런색 종이가 보였고, 난 손가락으로 가르키며,


“저거야? 나 안 건드렸어.”


라고 얘길하자, 흑인은 그걸 낚아채서 도망치듯이 뛰쳐 나갔다. 그 봉투가 뭔지 신경조차 쓰이지 않았다. 이게 뭔 일이야. 난 웃음도 눈물도 나지 않았다. 순식간에 너무 황당한 일을 겪어서인지 멍했다. 다행히 똥은 바지에 묻지 않았다. 난 여러번을 들락날락 하면서. 몸에 묻은 똥을 닦아내기 시작했다. 너무 어이가 없었다. 혹시라도 그 놈이 총이라도 꺼냈으면 어쨌을까 하는 생각이 드니, 이정도 똥 쯤이야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똥을 닦고 있으니 청소 도구함을 들고 스페니쉬 아줌마가 화장실로 걸어 들어왔다. 날 한참 쳐다보더니 무슨 거지 취급을 하며 변기 안쪽에 똥 자국을 보곤 소리를 질렀다. 난 내가 한 게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화장실을 나왔다.


두통이 점점 더 심해졌다. 자리에 앉아 있기가 힘이 들 정도였다. 어딘가에 좀 누워 있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건물 밖으로 나왔다. 오후 시간이어서 그랬는지 햇살도 좋았고, 이제 거의 다 왔다는 생각때문인지 기분이 그렇게 나쁘지만도 않았다.


“응~ 나 이제 조금 있으면 도착할 거 같아”


“어 수고 했다. 내가 정류장으로 마중 나갈게”


산타로사 버스 정류장에 친구가 마중 나와있었다. 친구는 날 보고 환하게 웃으며 날 끌어 안아주었다.


“밥은 먹었어? 밥 먹으러 갈래?”


난 된장찌개에 비빔밥을 한 입에 다 처넣고, 그제서야 행복한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그동안 진짜 고생 많이 한 것 같았다. 어쩌면 내 인생에 이렇게 큰 일은 다시 없으리라... 


캘리포니아의 햇살은 날 따뜻하게 감싸주었고, 그렇게 나의 미국 생활은 시작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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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





지난 기사


1편 밀입국

2편 국경을 넘어라

3편 미국 감옥에 들어가다

4편 감방 생활

5편 익숙해진 감방생활

6편 익숙해진 감방생활 2

7편 누군가 널 죽이려 한다던가

8편 거짓 증언

9편 망명 신청

10편 석방 명령서

11편 석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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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