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부 주
딴지 초창기부터 군사, 역사 분야 관련을 전문, 현재는 2년째 <전쟁으로 보는 국제정치>를 연재하고 있는 베스트셀러 작가 펜더(이성주)님이 사이언스 북스의 <비행기 대백과사전>출간을 맞아 비행기에 관한 특집 연재물을 준비했습니다. 매주 1회 연재 예정입니다.
하루 지나면 새로운 기술이 나오고, 한 달 지나면 새로운 전투기가 튀어나오던 1950년대, 세이버는 금방 뒷전으로 밀려났다.
70대 이상에게 제트 전투기에 대해 질문하면 “쌕쌕이? 아니면 팬텀?”이라는 대답이 돌아올 것이다. 쌕쌕이는 한국 전쟁에서 활약했던 F-86 세이버 전투기, 팬텀은 F-4 팬텀이다. 세이버와 달리 팬텀 전투기의 이름은 정확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5,200여 대나 생산된 덕분에(서방 세계 최고의 베스트셀러 제트 전투기였음) 제트 전투기의 대명사라 기억할 수도 있지만, 특별한 인연이 더 있다. 팬텀이 도입된 시기는 북한이 청와대를 기습 공격한 1.21 사건과 푸에블로 호 납북 사건 등 남북 간 긴장 구도가 최고조로 올랐던 1968년이었다. 1인당 국민 소득이 210달러였으니 오늘날 최빈국이 최신예 F-22 전투기를 도입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1968년 기준으로 전 세계에서 팬텀을 도입한 나라는 미국을 제외하고는 영국과 이란이었고 우리나라가 아시아에서는 최초였다.
팬텀의 첫 비행은 1958년이다. 미 해군의 장거리 공격용 전투기 개발 의뢰에 미국의 맥도널 더글라스 사가 응답했다. ‘해군’이 발주했다는 데 주목해야 한다. 유명한 알력 다툼대로 미 해군 항공대와 미 공군은 상대방이 사용하는 기체를 사용하기 꺼려했다. 양군 간 자존심 문제이기도 했지만, 운용 환경 차이 때문이기도 했다. 특히 해군 항공대는 항공 모함이라는 좁은 공간에서 운영하기 위해 상당한 준비가 필요하다. 이륙 시 캐터펄트(catapult, 사출기. 압축 공기 등 동력을 이용한 이륙 발사 장치)를 써서 어떻게든 날릴 수는 있지만 문제는 착륙이다. 함재기들에게 허용된 착륙 거리는 225.6미터, 이중 100.6미터는 와이어가 늘어나는 거리로 항공기가 사용할 수 있는 길이는 125미터 정도에 실질적으로 항모 착륙을 사용하는 착륙용 거리는 70미터에 불과하다. 진입 각도 3도를 유지하면서 시속 240킬로미터로 들어가 착함한다는 것은 ‘잘 계산된 추락’이라고 칭할 법하다.
착륙-어레스팅 와이어에 테일 후크를 걸어 항공기를 정지시킨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묘기다.
이러다 보니 항공 모함 함재기는 육상 운영을 하는 전투기와 달리 더 많은 요구 조건이 달린다. 우선 크기 제한이 있고(날개를 접는 기능 추가), 가혹한 이착륙 환경에 놓이니 랜딩 기어나 기체에 대한 강도 보강에 나선다. 여기에 더해 해수(海水)로 인한 부식 방지를 위해 도장도 해야 한다. 이러다 보니 육상 운영 전투기보다 비싸다. 그리고 성능에도 제한이 오는 경우가 종종 있다. 공군의 경우에는 이런 운영 상의 제한이 상대적으로 덜하기에 전투기 성능 자체에만 집중한 전투기가 나올 수 있지만, 해군은 그렇지 않다. 그런데 이런 제약을 뚫고 등장한 괴물이 바로 F-4 팬텀이다.
한 대라도 더 많이 생산해야 가격이 떨어지는 것이 아닌가? 기업 경영인 출신인 로버트 맥나라마(Robert Strange McNamara, 1916~2009년)가 케네디 행정부에서 국방부 장관으로 입각하고 펜타곤 개혁을 내놓았다. 비슷한 성능이라면 같은 전투기 사용이 비용 절감에 도움이 된다며 해군과 공군이 같은 전투기를 쓰도록 압박했다. F-4를 미 해군과 공군이 같이 쓴 이유가 여기에 있다. 첨언을 한다면, F-4와 같은 성공이 일상적인 것은 아니다. 이후 F-111의 경우가 실패하고 해군은 F-14를 개발해 낸다.
동체 한가운데 착탈식 기관포를 달았지만, 어딘가 부족해 보인다.
서방 세계 최고의 베스트셀러 전투기라 불리는 팬텀이지만 완벽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팬텀 초기형에는 중대한 오류가 있었다. 강력한 엔진에 풍부한 무장 탑재량, 공대공 전투뿐만 아니라 공대지 폭격 임무까지 활용할 수 있는 전천후 전투 폭격기에 무슨 오류가 있는 걸까? 팬텀에는 기관포가 달려 있지 않았다. 전투기라면 당연히 무기가 달려 있고, 제1차 세계 대전부터 공중전의 기본은 상대방의 꼬리를 물고 기관총탄을 쏘아 붙이는 접근전이 아닌가? 그러나 이때는 이런 상식이 부정되던 시대, 패러다임이 교체되던 시기였다.
“앞으로의 항공전은 미사일로‘만’ 싸울 것이다.”
이미 전투기의 속도는 마하를 넘어섰는데(1950년대 이미 마하 2에 도달) 이런 속도에서 전투기끼리의 교전은 기관총이 아니라 미사일로 끝나리라는 전망이 중론이었고 실전에서도 검증됐다. 1958년 금문도 포격전에서 AIM-9 사이드와인더 미사일을 장착한 대만 공군의 F-86 세이버가 중공군의 Mig-17 전투기를 격추시켰다. 세이버가 3대 떨어지는 동안 미사일에 혼비백산한 미그기들이 산개해 도망치는 와중에 14대나 격추됐다. 미사일 만능론이 시대의 대세가 된 순간이다. 미사일 만능론을 거부한 나라도 있다. 대세에 편승한 프랑스가 내놓은 미라지3 전투기에도 기관총은 달려 있지 않았다. 그러나 미라지 전투기를 구매하려던 이스라엘은 생각이 달랐다. 기관포는 공대공 전투뿐만 아니라 공대지 전투에도 효용이 있다며 기관포가 없으면 구매하지 않겠다고 말했고, 그 결과 기관포가 달린 미라지3가 나왔다.
팬텀에게도 할 말이 있다. 당시 팬텀의 레이더에는 진공관이 들어가 있었다. 미사일을 유도하기 위해서는 레이더는 필수가 아닌가? (당시에는 반능동 방식의 스패로우 미사일을 사용) 문제는 레이더 안에 들어가는 부속이다. 팬텀의 레이더에는 진공관이 달려있었는데, 진공관은 진동에 약하다. 기관포를 쏘면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진동으로 진공관에 문제가 생기고, 레이더가 오작동하거나 고장 날 수도 있었다. 미사일을 쏘기 위해 기관포를 포기해야 했다.
그 결과는 베트남전쟁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북베트남군의 미그기는 특유의 기동성으로 팬텀의 꼬리를 파고들었다. 미사일의 최소 사정거리 안으로 파고들면 미사일을 쏘기 어렵다. 당시 미사일은 쏘는 족족 맞는 만능 무기도 아니었다. 21세기에 들어선 지금도 미사일의 명중률을 100퍼센트 신뢰하지 못한다. 하물며 1960년대 미사일이라면 말해 무엇하겠는가? 여담이지만, 베트남전쟁에서의 참담한 실패가 「탑건」의 시발점이 돼 준다. 베트남전쟁의 졸전(?)을 경험한 미해군이 근접 공중전 기술을 전문으로 교육하는 탑건 스쿨(Navy Fighter Weapon School)을 만들고 전투기 조종사들의 공중전 훈련교관을 양성한다. 역시 파일럿이나 기체의 문제로 치부할 수 없는 것이, 복합적인 부분을 고려해야 한다. 미군은 그제야 부랴부랴 기관포를 외부에 장착하는 임시방편을 찾게 됐고, 이도 모자라 공군형 F-4E형에는 고정식으로 20밀리 M-61 벌컨포를 탑재한다.
한때 미국을 포함해 한국, 이란, 독일, 영국, 일본 등 세계 10여 개국에서 팬텀을 운영했다. 한국의 경우에도 1968년 도입 이래로 지금까지 꾸준히 운영 중이고, 지금도 70여 대의 F-4E가 우리의 하늘을 지키기 위해 날아오르고 있다. 우리 공군의 사정이 열악하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만큼 튼튼하고, 쓰임새가 많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오늘도 이 노장(老將)을 끌고 하늘로 날아오를 우리 공군 전투기 조종사들의 건승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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