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부 주
본지는 언제나 독자 여러분의 관심사를 최우선으로 하는 빛나는 편집방침을
생각만해고수해 왔다. 편집부 회의에서는 '명리니 관상이니 안 믿는 척 하면서 뒤에서 무쟈게 다니던데 대놓고 해보자'라는 생각에 명리학을 도구삼아 대선 후보들을 예측해 보기로 했고 과연, 반응이 괜찮았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믿든지 말든지 알아서 할테니 명리학 자체에 대한 글을 써보겠냐고 필자에게 제의했다. 이에 필자가 덥썩 물어 매주 관련 연재물이 올라갈 예정이다.
낮과 밤의 이중주
해가 떠있는 시점을 우리는 낮이라 하고 해가 진 때를 밤이라 한다. 그렇다면 밤이 없는 세상은 어떤 세상일까? 밤이 없는 세상은 낮이 계속되는 세상이다. 북극권의 여름이 그렇다. 해가 지지 않으므로 밤이 없다.
밤이 없는 세상은 이 말고도 하나가 더 있다. 그것은 바로 밤만 계속되는 세상이다. 밤만 계속되기에 이것은 더 이상 밤이 아니다. 낮이 있어야 밤이 있는 것인데 밤만 있으니 이를 두고 밤이라고 할 수가 없는 것이다. 밤이라는 것은 낮의 상대적인 개념이기 때문이다. 역설적이게도 밤만 있는 세상에는 밤이 없다. 비교의 대상이 전제되지 않고서는 인간의 인식은 성립할 수가 없다. 도덕경 2장이 주는 가르침이다.
마찬가지로 사람이 사람을 파악하고 규정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타자가 전제되어야 한다. 인간이라는 종에서 가장 기본적인 분류법이라고 한다면 바로 성별을 들 수 있다. 사람이라고 한다면 일단 남자와 여자로 나뉜다. 성정을 기준으로 한다면 내성적인 사람과 외향적인 사람이 될 것이다. 가장 기초적인 이분법이다.
너가 있기에 내가 있다
사람을 알아가는데 있어서 이러한 이분법은 시발점에 불과하다. 나와 타인, 통틀어 인간을 파악하기 위한 인간의 노력은 점점 더 세밀해진다. 인간의 유형을 태양, 소양, 태음, 소음 4가지로 구분을 짓기도 하고, 이것이 불충분하니 8가지, 24가지, 나아가서는 주역에 근거해 64가지로 분류하기도 한다. 이는 동양에만 국한된 현상은 아니다. 갈레노스의 4체액설부터 현대에 개발된 16가지 유형의 MBTI까지, 인간이 인간을 파악하기 위한 노력은 언제나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현재진행형이다.
4체액설에 따른 기질을 인물로 표현한 목판화(왼쪽)와
한국한의학연구원이 만든 사상체질별 대표얼굴(오른쪽)
사주명리학의 대상은 인간이다. 구체적으로는 인간 그 자체와 인간의 삶을 알고자 하는 인간의 노력의 산물이다. 그렇다면 사주명리학은 인간을 몇 가지 유형으로 판단하는 것일까?
명리학의 근간은 음양오행이다. 음과 양, 시작은 이분법이다. 위에서 말한 내성적인 사람, 외향적인 사람이 그 예가 되겠다. 오행은 음양이 세분화된 것이다. 각각의 오행은 음과 양의 동태적인 위상을 나타낸다. 따라서 오행에 따른 다섯가지 분류도 가능하다. 이 오행의 양상은 다시 음과 양으로 나뉘어 열가지로 세분화된다. 열개의 천간이 그것이다. 사주명리학에서는 크게 보아 사람을 열가지 유형으로 나눈다. 열개의 천간은 그 작용면에서 12가지의 양상으로 나타난다. 천간과 지지의 조합은 60가지, 바로 육십갑자이다.
이런 인식의 틀을 바탕으로 명리학에서는 2가지, 5가지, 10가지, 60가지로 사람을 분류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년월일시에 따라 가능한 사주명조의 수는 518,400가지이다. 따라서 사주명리학이 분류하는 인간의 유형은 모두 518,400가지이다. 16가지의 MBTI보다 32,400배 많다.
518,400가지 중의 하나
16가지 성격유형보다 32,400배나 많은 경우로 인간을 파악한다니 그렇다면 사주명리학은 개개인 모두를 완벽하게 파악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518,400가지나 된다고 할 수도 있지만 518,400가지밖에 안 된다고 할 수도 있다. 현존하는 인류는 75억명이다. 같은 사주를 가진 사람은 동시대에 만명이 넘는다. 한반도로 범위를 좁혀도 같은 사주는 100명이 넘는다. 남자와 여자는 대운의 방향이 반대니 다르다 쳐도, 같은 성별의 같은 사주만 해도 수십명이 되는 것이다.
모든 살아있는 사람은 염통에서 피가 뿜어져 나오고 허파에서 들숨과 날숨이 출입한다. 하지만 이 세상에 나와 같은 맥박수와 호흡수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사주 여덟글자로 당신의 심장이 빠르고 호흡이 얕은 것까지 짐작할 수는 있어도 시간당 심장박동수와 호흡수까지 알아낼 수는 없는 일이다.
말하자면 사주명리학은 16가지의 유형으로 파악하는 MBTI와 다를 게 없다. 굳이 다를 게 있다면 그 가짓수가 매우 많아서(518,400가지), 그리고 대단히 치밀해서 마치 나만의 심장박동수와 호흡수까지 맞히는 것처럼 들릴 뿐이다.
당신은 MBTI로는 16개 유형 중에 하나이다. 당신과 같은 유형이 한국 내에 몇백만명이다. 당신은 사주팔자로는 518,400개의 유형 중 하나이다. 당신과 같은 팔자가 반도에만 몇십명이다. 당신의 사주팔자가 아무리 세밀하게 당신의 삶을 속속들이 말해준다 하더라도 결국은 유형을 말할 뿐이다. 사주팔자에 속지 말아야 한다.
일호명리학당 강주 김태경
저서 '지피지기 명리학', '체용으로 보는 명리해석론' (근간)
편집 : 딴지일보 인지니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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