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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3일. 죽지않는돌고래 편집장에게 문자가 왔다.


“제가 왜 문자를 보내는지는 아시리라 믿습니다. 음하하하하.”


왜 문자를 보냈을까 고민했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고 적폐청산을 본격적으로 해야하는 이 시국에 바둑계 적폐청산에 대해 논해보라는 뜻이리라! 그래서 답변했다.


“바둑계 적폐청산이 시급하죠.”


죽돌 편집장은 커제vs알파고 이슈가 있다고 했다. 일단 쓴다고는 했는데 이건 뭐 무조건 지는 게 뻔한 승부라 관심이 안 갔다. 그리고 졌다. 그렇게 독촉을 피해 기원에 은거하고 있다가 또다시 죽돌 편집장에게 추적을 당해 글을 쓴다. 


비트겐슈타인의 말마따나 말 할 수 없는 것에는 침묵해야 한다. 바둑에 제 아무리 재능이 있다해도 알파고에 대해 알고 떠드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원숭이가 인간을 이해할 수 있을까? 너무 큰 차이인가? 그럼 이건 어떤가? 초등학생 아이에게 양자역학을 이해시킬 수 있을까? 어려운 일이다. 인간 수준에서 알파고에 대해 논한다는 것은 그런 것이라 생각한다. 이 글은 그냥 나의 의견이니 한 귀로 듣고 흘리시면 된다. 


누가 감히 알파고를 논하겠는가, 라는 전제 하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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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알파고 상대로 인간의 패배가 의미하는 점은?

올해 초 인터넷에서 60연승을 하고 이번에는 커제가 졌다. 이로써 인간은 알파고에게 완벽하게 패배했다. 패배를 신경 안 쓰는 이들은 어차피 사람이 자동차보다 빨리 달릴 수 없는 것 아니냐? 라며 당연히 기계에게 이길 수 없다고 받아들인다. 그런데 달리기는 자동차가 아니어도 지구상에서 인간만큼 느린 동물 찾기도 쉽지 않다. 그나마 인간이 동물보다 똑똑하다고 하는데 지적인 분야에서 진 것이 충격이리라. 과거 체스판에서 컴퓨터에게 진 것도 충격이었지만 체스는 경우의 수가 적고, 기물 값이 수치화되어 있어 컴퓨터가 강한 분야다. 하지만 바둑은 특유의 모호성(기물의 성격이 없는 대신, 반상의 상황에 따라 유기적으로 가치가 변하는) 때문에 컴퓨터가 약한 분야라고 대부분의 이들이 판단했다. 


이런 바둑을 컴퓨터가 이겼다는 건 앞으로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점점 줄어듦을 의미한다. 뭐 해먹고 살지 걱정이다. 더 좋아질 수도 더 나빠질 수도 있다. 다만 예측하지 못 할 뿐이다.



2. 커제와 알파고 대결은?

별 신경을 쓰지 않은 이유는 60연패 당해 놓고 또 호선으로 두는데 당연히 지는 것 아닌가, 라는 판단에서 였다. 이 정도 졌으면 수준차이가 심하게 나는데 호선으로 둔 자체가 이상하다. 진짜 최소한 선으로 두던가. 치수고치기를 해야 하는데 인간의 정신승리는 알파고도 어쩔 수 없다. 인간끼리도 60판 둬서 한 판도 못 이기면 두 점 깔고 둬야 한다. 이번 대결이 흥행에 실패한 이유는 바로 호선으로 두기 때문이다. 두기 전부터 질 줄 알았다. 그리고 역시 쉽게 졌다. 대부분 바둑인들의 감상평은 역시 알파고 잘 두네. 이정도?



3. 알파고와 인간의 치수는?

필자는 2~3점 사이로 본다. 이거는 해봐야 알 수 있다. 해보기 전까지는 어떤 말을 하든 의미없다. 증명할 수 없는 걸 말해봤자 입만 아프다. 6점 주장하는 교수가 있는데 말이 안 되는 소리라 반박할 가치조차 없다. 필자는 2점이면 알파고, 3점이면 프로 정상급에 걸고 싶다.


(치수數 : 바둑에서, 기력()의 정도에 따라 누가 먼저  것인가를 정하는 기준호선(), 선상선(), 정선(), 을 겸하는 접바둑접바둑의 다섯 가지가 있다. - 네이버 사전)



4. 기타 이벤트들에 대한 소견?

상담기, 페어 등 여러 이벤트를 커제 대국과 진행했다. 솔직히 말하면 중국기사들은 질 생각을 하고 두는 것 같다. 목숨 걸고 둔다는 절박함이 없다. 희희낙락거리다가 ‘어 졌네.’ 하는 느낌이다. 커제가 도저히 안 되니깐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있기는 한데... 크게 와닿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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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알파고 VS 알파고 50국 공개

사실 이번 이벤트는 딴 건 신경 쓸 필요 없고, 알파고 기보 공개가 핵심이다. 딥마인드의 깜짝 선물이다. 기상천외한 수와 기기묘묘한 행마들을 선보였다. 이걸 자세히 풀어주고 싶지만... 아직 연구가 덜 끝났다. 다음 기사는 이걸 중점적으로 풀어보겠다. 이 기보공개가 의미하는 게 무엇이냐 묻는다면 다음과 같다.


최고의 무공을 개발하고 찾기 위해 혈안이 되어있는 무림. 어느 날 절대지존이 나타나 구양신공, 그러니까 PDF 구음진경 파일을 무료로 다운받게 해준 것이다. 나만 알고 있어야 비급인데. 우리 모두가 아는 이상한 상황이 된 것이다. 그럼 다들 바둑이 느는가? 그건 또 알 수 없다. 과연 사람이 이걸 해석할 수 있느냐다. 알파고가 좋은 수는 두는데 거기에 왜 두는지를 아무도 모른다. 정확하게 말하면 수백억가지 경우의 수를 시뮬레이션 해봐서 가장 승률 높은 수를 두는데, 인간에게 불가능한 경지다. 왜 두는지 모르는 좋은 수는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



6. 알파고 이후 바둑은?

알파고의 가장 큰 영향은 앞으로 프로제도에 대한 변화로 본다. 조훈현, 이창호, 이세돌 같은 최고수들이 바둑의 정점인 줄 알았는데 거기보다 까마득하게 높은 상수가 존재했던 것이다. 100미터 달리기에 비유하겠다. 9초 후반대로 달리는 인간들이 일류라고 생각하며 0.1초에서 0.2초 느린 선수들과 격차를 자랑하는데 갑자기 아무렇지도 않게 8초 대를 달리는 사람이 나온 것이다. 모든 인간은 9.5초가 한계라고 생각했는데 8초가 나온 것. 


그러다 보니 9.7초 뛰는 애나 9.8초나 10초나 그냥 다 느린 애들이 되어 버렸다. 졸지에 한 번에 하수들이 된 것이다. 그렇다면 아마추어 입장에서는 어떤가? 프로라는 벽으로 크게 양분되어 있는 세계에서 하나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프로는 나보다 잘 두지만 어차피 다 하수 아니냐? 이런 분위기가 되는 것이다. 나와 프로의 격차보다 프로랑 알파고의 격차가 더 크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프로들의 시합이 과연 의미가 있을까? 최고의 기보를 보기 위해서라면 알파고의 기보를 보면 된다. 재미를 따지자면 사실 하수바둑이 더 재밌을 수도 있다. 정상급 기사들의 남자바둑 리그보다 여자리그 바둑이 더 스릴 넘치고 재밌다. 승부도 엎치락뒤치락 하고 전투도 치열하다. 스폰서가 바둑을 후원할 이유가 있을까? 최고의 기보를 만드는 건 이미 틀렸다. 알파고끼리 둔 수백만판 중에 반집승부 난 바둑 1000개만 골라도 인류가 가진 최고의 기보일 것이다.


팬들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서 바둑을 둔다? 어차피 너무 어려워서 봐도 뭐가 뭔지 알기 힘들다. 프로는 그저 자격증에 불과한 시대가 될 것이다. 이런 난국에 가장 중요한 한국기원, 대한바둑협회 행정부는 어떠한가. 답이 없다. 


이제는 모든 인간이 살아남기 힘든 시대, 바둑계도 다를 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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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신. 알파고vs알파고 기보는 조금 더 자세하게 풀어서 따로 기사를 쓰겠다. 대략 포인트는 잡아놨는데 자세하게 풀어서 설명해도 어려운 내용이라 시간이 걸릴 것 같다.


추신2. 한동안 안 썼더니 쓸 거리가 많다. 기보해설이 먼저일지 이 기사가 먼저일지는 모르겠지만 단신 형식으로라도 쓸 계획이다.


추신3. 이세돌 기사회 탈퇴는 해결 될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기사회장 임기 초에 터진 일이 임기가 끝나가는데 진척된 게 없다. 이제는 누가 옳고 그르고의 문제를 떠나서 무슨 일처리를 이렇게 하느냐라는 생각이 든다.


간단히 정리하면 한국기원의 프로기사는 자동으로 기사회의 소속이 되고, 현재 기사회를 탈퇴하면 한국기원이 주최, 주관하는 대회를 참가할 수 없다. 그 얘기는 한국기원과 기사회는 한 몸이라는 것이다. 기사회 탈퇴는 곧 기사직을 내려놓는 은퇴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한국기원과 기사회의 입장은 명쾌하다. 기사회 탈퇴는 곧 기사직 은퇴를 의미하기 때문에 불가하다. 라고 이세돌에게 통보해주면 되는 것이다. 만약 기사회 탈퇴하고도 한국기원이 주최,주관하는 대회에 나갈 수 있으면 기사회 탈퇴를 받아주면 되는 것이다. 뭘 이리 질질 끄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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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