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영 한국전력주식회사의 탄생>

해방 무렵 남한 내 전력산업은 발전과 송전 부문의 조선전업, 그리고 배전회사인 경성전기와 남선전기 3사가 지배하고 있었다. 1945년 9월 8일 남한에 진주한 미군은 군정포고 제1호를 공포하여 일본인에 소속되었던 사유재산은 그 형태와 내용의 여하를 불문하고 전부 군정청에서 소유권을 인수한다고 못을 박았다. 이에 따라 9월10일 미군정은 어빈 젠트리 중위를 조선전업주식회사 관리관 겸 사장으로 임명하여, 일본인 구보다 유다카 사장으로부터 9월21까지 일체의 자산과 조직을 인수하였다. 젠트리 중위는 1947년 7월 30일 조선전업의 운영권을 윤일중 사장에게 부여하였다.

젠트리가 조선전업을 접수하던 날 벌트 소령은 보좌관 피어스 대위와 이태환을 대동하고 경성전기주식회사로 진주했다. 9월 15일 일본인 호즈미 신로구로우 사장으로부터 인수를 마친 벌트 소령은 이태환을 사장대리로 앉혔다.

문화재 약탈로 유명한 오구라 다케노스케가 대주주였던 남선합동전기주식회사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해방 후 한국인 종업원들은 자치위원회를 구성하여 전 이사이며 주주인 장직상(장택상의 형)을 사장에 추대하고 일인들로부터 운영권 인수 작업을 벌였다. 그러나 미군정은 이를 허용하지 않았다. 9월에 조선전업과 경성전기를 장악한 미군청은 10월 하로드믹스 중위를 관리관으로 파견하여 남선전기를 귀속한 뒤 장직상을 사장으로 임명하였다.

1948년 남한에 단독 정부가 수립되어 미군정청에 귀속되었던 일본인 재산도 이미 불하한 것을 제외하고 약 85% 정도가 한국 정부로 인계되었다. 미군정에 의해 전업 3사의 사장으로 임명된 윤일중과 이태환, 장직상은 정부 수립 이후에도 자리를 지켰다. 윤일중은 상공부 전기국장을 겸하였다.

한편 소비자들은 계속되는 전력난으로 어려움을 겪는 가운데 이들 전력 3사도 시설 부족과 가동률 저하, 전력 손실(1953년 37.1%), 자금 사정의 악화 등으로 만성적인 적자운영에 허덕였다. 게다가 한국전쟁은 부족한 시설마저 파괴해 버렸다. 마침내 전시인 1951년 5월 국무회의는 전업 3사의 통합을 의결하고, 1953년 7월 상공부 산하에 ‘전기사업체통합위원회’를 설치하였다. 이 위원회는 그 해 9월 ‘대한전력공사법안’을 작성하였으나 이해집단 간의 이견과 국회 심의 과정에서 비판에 부딪혀 흐지부지 되었다.

그런데 1957년 통합론이 다시 일어나자 이승만 정부는 전업 3사의 귀속주를 매각하고 민영화 하기로 결정하여 ‘발전회사 귀속주 처리사무협의회’를 구성하였다. 이 협의회는 재무부가 소유한 귀속주를 발전사업과 배전사업 및 운수사업으로 분리하여 1958년 2월 중순까지 매각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그러나 민간주주들의 반발로 이마저 지지부진하던 차에 4.19혁명으로 이승만 정권의 막이 내렸다.

민주당 정부는 1960년 11월 국무회의에서 전기 3사를 통합해 국영화 하고 운수사업만 분리 운영한다는 원칙을 의결했다. 이듬해 3월 국무회의에서는 한국전력주식회사법안을 의결하고 민의원 상공분과위원회를 통과하는 등 법적 절차를 밟던 중에 5.16 쿠데타로 중단되었다.

그러나 군사정부도 민주당 정부의 전력정책을 승계하여 상공부 내에 전기 3사 통합설립준비위원회를 설치하였다. 쿠데타 한 달 뒤인 6월 23일 국가재건최고회의에서 한국전력주식회사법안을 의결·공포하고 6월 24일에는 전기 3사 사장이 합병계약을 체결하였다. 나흘 뒤 6월 28일에는 경성전기 회의실에서 한국전력주식회사 창립주주총회를 열어 정관을 의결하고 임원을 선출함으로써 마침내 발전과 송·배전을 통합한 단일 국영 전력회사 한국전력㈜이 탄생하였다. 초대 한전 사장에 임명된 이는 9사단장인 육군 소장 박영준이었다.

민주당 정부의 국영 전력회사 통합 계획은 군사정부에서 마무리되어 1961년 한국전력주식회사가 창립되었다.

한국전력주식회사가 출범한 당시 총 발전용량은 367,254kW로 당시 전력수요 435,000kW를 밑돌았다. 군사 정부는 긴급대책으로 3개의 디젤발전소를 건설하고 3만kW의 발전함을 도입하였다. 이어 1962년을 기점으로 제1차 전원개발 5개년계획에 착수했다. 이 계획에 따라 부산화력 등 5개의 화력발전소와 춘천, 섬진강 등 2개의 수력발전소 등 총 402,000kW를 신규로 건설하는 한편, 영월화력을 복구하여 최종 목표년도인 1966년 말에는 발전설비용량이 769,000kW로 크게 늘었다. 부산화력 1·2기가 가동을 시작한 1964년 4월 1일에는 19년 동안 되풀이 되었던 제한 송전을 해제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전후 복구 시기를 지나 산업 발전이 본격화 되면서 전력 수요는 해마다 20%를 넘어섰고 1968년 10월에 마침내 100만kW를 넘어섰다. 이로 인해 1967년 하반기와 다음해 상반기에 걸쳐 다시 제한 송전이 실시되었다. 1967년 시작된 제2차 전원개발 5개년계획은 당초 1,177,000kW의 신규개발 목표를 상향조정하고, 부족한 투자 재원 마련을 위해 동해전력과 경인에너지, 호남전력 등 3개 민간전력회사의 발전소 건설을 승인했다. 국내 정유사가 속속 문을 열면서 정부는 유류 발전설비의 건설을 독려했고, 2차 계획기간 말인 1971년의 전체 발전설비는 262만 8천kW로 늘어났다.

1970년대 초 완공되어 2014년 퇴역한 울산의 영남화력발전소.

중유(벙커C유)를 연료로 썼다.

1973년 1차 석유파동이 닥치자 정부는 유류 중심을 포기하고 전원 다변화를 꾀한다. 그러나 정부는 풍력 등 재생가능에너지에까지 관심을 기울이기보다는 당시 세계 시장 확보에 나선 원자력에 우선 주목하였다. 원자력 발전은 어떡해서든 핵무기에 접근해보려는 나라들에게 좋은 돌파구였다. 이미 한국 정부는 1971년 미국 웨스팅하우스에 고리원전 1호기를 발주하였으며, 1975년 두 번째 발주를 공사비가 4배나 더 들어간 중수로(월성원전 1호기)로 선택하여 플루토늄에 대한 열망을 드러냈다.

1978년 4월 가동을 시작한 고리원전 1호기 이후 우리나라의 전력 정책은 원자력과 유연탄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국내 생산량이 줄어든 무연탄 대신 수입 유연탄이 화력 발전의 주 연료가 되어 원전과 함께 기저부하로 자리잡았고, 1986년 천연가스가 본격 도입된 이후에는 기동성 있는 가스발전소가 첨두 발전을 담당하는 구조로 현재까지 이어져 왔다.

제5차 전원개발 5개년 계획이 끝난 1986년 말 총 발전설비는 1,806만kW로 1961년보다 49배가 늘어났다. 5차 계획 기간 동안 신규 설비는 원자력이 417만kW, 석탄화력이 323만kW로 늘어난 양의 88%를 차지하여 원전과 유연탄 중심의 전력 증강 정책이 확고해졌다.

우리나라에서 원자력 시대의 문을 연 고리원전.

미국 웨스팅하우스의 기술로 지었다.

원전의 증가는 새로운 문제를 발생시켰다. 전력 수요는 하루 주기로 변화한다. 산업 활동을 비롯해 사람들이 많이 움직이는 낮에는 많이 쓰고 밤에는 줄어드는 변화 곡선을 그린다. 그런데 원전은 가동을 시작하면 연료 교체 전에는 밤새 가동할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이에 따라 야간 전력의 과잉 현상이 만성화 되었다. 한전은 야간 전력 소비 촉진을 위해 1985년 11월 심야전력 제도를 도입하였다. 야간에 축열식 난방기 등을 이용하는 전력에 대해 요금을 대폭 할인해 준 것이다. 심야전력에 대한 수요는 꾸준히 늘어나 2000년 들어서는 수요량이 남는 전력량을 넘어서게 되었고 이를 공급하느라 한밤 중에 비싼 가스발전소를 돌려야 하는 난감한 상황이 전개되었다. 게다가 한전의 적자를 압박하는 요인이 되면서 결국 한전은 2000년대 후반부터 심야전력 요금을 대폭 올렸다.

한편 석탄화력과 원전은 용수의 확보와 대기오염, 안전 등의 이유로 대전력 소비처인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해안가에 주로 자리를 잡았다. 발전 효율을 위해 규모는 점점 커진 반면 생산한 전력을 원거리의 소비처로 전송하기 위해 고압의 송전 시설이 필요했다.

1923년 강원도 중대리와 서울을 잇는 66kV의 송전선이 첫 선을 보인 이래 1937년 154kV 송전선이 서울-평양 간 170km, 상주-대전 간에 65km 건설되었다. 일제하에서는 아직 도시배전 시절이었기에 그리 많은 송전선이 필요하지는 않았다.

해방 후 전력 공급이 늘어나면서 송전선도 확대되었다. 1953년 경인-중부-영남을 잇는 송전간선이 주축을 이루고 66kV와 22kV의 지선이 각 지역으로 뻗어나갔다. 1968년에는 154kV의 대구-부산-울진-대구를 잇는 영남지역 환상송전선과 부평-대전-상주-영월-덕소-부평을 잇는 대환상선이 망을 이루었다. 급격하게 증가하는 서울의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수색을 중심으로 한 수도권 환상권이 1972년에 추가되고, 1976년엔 대전-이리-광주-마산-대구-상주-대전을 잇는 지역간 대환상망이 구축되었다.

발전소 규모의 대형화에 따라 송전선도 고압화 하여 1976년에 건설된 신여수송전선(여수화력-신옥천변전소)은 345kV로 건설되었다. 345kV 송전선은 2012년말 8770km로 전국 및 수도권 환상망을 완료했다. 한 지역에 발전시설이 밀집하면서 한전은 1998년 당진화력-신당진변전소 간 54km의 765kV 초고압 송전선을 도입하였다. 밀양 주민들의 거센 반발을 뒤로 한 채 2014년 말에 완공된 신고리원전-북경남변전소 간 송전선 91km 2회선 등으로 765kV 송전선도 1000km를 넘어섰다.

전국의 전력계통도(2015년 5월 기준, 한국전력).

세계에서 가장 촘촘한 망을 보유하고 있다.

한전은 고압 송전선 건설에 대한 주민들의 민원이 증가하고 지중화 등 비용도 커지고 있어 재생가능에너지와 열병합발전소 등 분산전력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으나 아직은 석탄화력과 원전이라는 원거리 대량 생산 방식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정부 주도로 전원개발 계획을 추진하여 어느 정도 전력산업의 기반을 닦은 정부는 1989년 4월 13년을 사업기간으로 하는 ’89 장기전원개발계획’을 끝으로 계획의 목표를 ‘전원 개발’에서 ‘수급 안정’으로 바꾸었다. 1991년부터는 2년마다 ‘장기 전력수급 계획’을 5차까지 세우고, 2002년에는 15년을 계획기간으로 하는 ‘제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수립하여 현재 7차 계획이 진행 중이다.

1962년부터 시작된 전원 개발 계획으로 지난 50년간 우리나라의 최종에너지 소비 구조는 극적인 변화를 겪었다. 그 무렵 농촌은 여전히 호롱불을 밝히고 산에 가서 나무를 해다가 밥을 짓고 군불을 땠다. 개울가의 물레방아는 연일 돌아가며 마을 사람들의 벼와 보리, 밀을 찧었더랬다.

그 해 전력 설비 용량은 521MW, 발전량은 2,165GWh였으나 2015년 말에 전력 설비 용량은 101,399MW, 발전량은 545,529GWh로 각각 194배, 251배가 늘었다. 보급률은 산간 오지나 작은 섬을 제외하고는 거의 백퍼센트 수준이 되었다. 최종 에너지 소비에서 전력이 차지하는 비중도 점차 늘어나 1970년 3.7%를 거쳐 1981년 7.8%, 1990년 10.8%, 2000년 13.7%, 2015년 19.0%로 세계 평균을 넘어섰다.

에너지원별 발전량을 보면 2015년 기준으로 원전이 31.2%, 화석연료 화력발전이 60.3%로 전체의 90%를 넘는다. 원전은 1981년 7.2%에 불과했으나 급격히 늘어나 1987년에는 전체 발전량의 53.1%를 차지하여 최고치를 기록하였다. 그 후 부지 확보의 어려움으로 원전의 비율은 조금씩 줄어들고 그 자리를 석탄화력발전소가 채워나갔다.

전력의 공급과 소비가 늘어난 만큼 전력산업도 크게 성장했다. 1961년 판매전력량은 1,189GWh에 불과했으나 2015년엔 483,655GWh로 407배가 늘었으며, 고객호수는 797,000호에서 2,203만 호로 전체 일반 가구수보다 많다. 1인당 소비량은 46kWh에서 9,555kWh로 208배가 증가했다. 2015년 한국전력의 매출액은 58조 9577억원으로 삼성전자와 현대차에 이어 3위를 차지한다.

<전력산업 민영화>

1961년 7월 발전·송전 부문의 조선전업과 배전 부문의 경선전기와 남선전기 3사를 통합하여 창립한 한국전력주식회사의 독점은 전원 개발에 민간 자본을 끌어들이기 위해 1968년 민간기업의 전력사업 참여 허용으로 일시 후퇴하였다. 이 때 쌍용그룹을 주축으로 한 시멘트업계에서 동해전력주식회사를 설립하여 1970년과 1971년 울산에 1·2호기를 잇달아 준공했다. 한국화약그룹은 미국 유니온오일사와 합작으로 경인에너지주식회사를 세우고 1970년 인천 율도에 162MW 2기를 건설했다. 호남정유와 럭키그룹은 호남전력주식회사를 설립하여 여천에 300MW 2기를 건설하였다.

그러나 이들 민간전력회사의 발전소 건설계획은 송·배전 계통을 도외시하고 건설지점 역시 지역적 수급균형을 외면하여 준공 후 전력계통 운용에 어려움을 주었다. 또한 수요 예측 실패로 설비투자가 과잉되었을 뿐만 아니라 민간발전소의 건설비가 한전보다 과다하게 소요되어 결과적으로 이를 사주어야 하는 한전의 부담만 늘어났다. 결국 정부는 1971년 10월 민간발전소 인수 원칙을 수립하고, 1972년 동해전력을, 1973년엔 호남전력을 한전이 인수하게 하였다. 수도권에 있던 경인에너지는 한전 인도를 거부하고 자체 운영하다 1994년 ㈜한화에너지, 2001년 ㈜한국종합에너지를 거쳐 2005년에 포스코가 인수하여 2012년 포스코에너지로 개명하였다.

한편 1970년대 전반 1차 석유파동을 거치면서 발전연료값이 폭등하고 포괄증자에 따른 무상주 발생 및 이익 배당금의 부담 등으로 한전의 경영 여건이 악화되었다. 이에 한전은 1976년 장기 재무구조 개선계획을 수립하여 정부에 건의하였는데, 포괄증자의 폐지와 민간주식의 정부 매입, 정부 출자의 확대, 감가상각제도의 개선, 최대부하 요금제도의 도입 등이었다. 이를 수용한 정부는 1977년부터 1981년까지 1억 2680만 주의 민간주식을 매입하여 1982년 1월 한국전력주식회사를 한국전력공사로 전환하였다. 공사가 된 한국전력은 이익배당 및 무상주 발행의 압력을 해소하고, 정부의 지원강화로 안정적인 사업 수행이 가능해졌으며, 상법 적용 배제로 사무절차를 간소화하고 공익성을 강화하였다.

하지만 어려울 땐 발을 뺐던 민간자본이 한전의 경영이 안정화되자 다시 비집고 들어올 기회를 노렸고, 시장 만능주의에 경도된 정부 역시 민간 자본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1988년 6월 포항제철이 국민주 1호로 주식시장에 진입한 데 이어, 1989년 8월 한전이 국민주 2호로 상장되어 공사주식의 21%가 국민주로 매각되었다. 1994년 10월에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금융자율화의 바람을 타고 뉴욕증권거래소에 3억달러치의 주식예탁증서를 상장하였다.

국가 부도 사태에 직면하여 국제통화기금(IMF)로부터 구제금융을 받은 1997년 12월은 한국 경제에 혹한기의 시작이었다. 부실 대기업은 물론 건실한 기업까지 자금난에 몰려 헐값에 넘어가고 정부는 공적 자금을 투입하여 부실채권을 떠안았다. 공기업은 구조조정과 경영합리화라는 이름으로 대거 민영화로 내몰렸다.

세계 유수의 인프라를 보유한 한전도 예외는 아니었다. IMF의 강요에 의해 정부는 1999년 1월 전력산업 구조개편 기본계획을 수립하였다. 우선 1단계로 한전의 발전 부문과 송배전 부문을 분리하고, 2단계로 2008년까지 도매 배전·판매 부문을 분할하여 단계적으로 민영화 하며, 3단계로 2009년에 가계소비자까지 시장을 개방한다는 시간표를 제시하였다. 송전부문은 설비의 특성상 독점 공기업으로 유지한다는 방침이었다.

GS파워 부천열병합발전소 모습.

2000년 6월 GS파워는 한국전력과 지역난방공사로부터 부천과 안양의 열병합발전소 및 지역난방 시설을 인수했다.

이에 따라 한전은 2001년 4월 발전 부문을 한국수력원자력㈜와 한국남동발전㈜, 한국중부발전㈜, 한국서부발전㈜, 한국남부발전㈜, 한국동서발전㈜ 6개 회사로 분할하고, 이 중 남동발전부터 매각 절차에 들어갔다. 그러나 남동발전의 매각은 공고가 나간 뒤 불과 5개월만에 중단되었다. 입찰을 준비 중이던 4개사가 최종적으로 불참의사를 밝혔기 때문이다. 이들은 불투명한 국내외 경제여건과 투자자들의 내부사정이라고 했지만, 수조원 대의 발전회사를 인수할 수 있는 곳은 대기업이나 외국 자본이라는 현실을 확인시켜 주었다.

발전회사의 민영화가 지지부진한 가운데 정부는 2004년 6월 열린 제70차 노사정위원회 공공부문 구조조정특별위원회의 정책권고에 따라 배전부문 분할 중단을 선언하였다. 이후 노무현 정부에서 전력산업 민영화 논의는 잠복되었다.

한편 2008년 이명박 정부는 인수위 때부터 공공부문 민영화를 정책 과제로 제시하며 드라이브를 걸었다. 그러나 미국산 소고기 수입을 계기로 촉발된 촛불집회가 수 개월을 지속하면서 집권당인 한나라당은 6월18일 “수도와 전기, 가스, 건강보험의 민영화를 이명박 정부 임기 내에는 절대 추진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은 이튿날 담화에서 ‘공기업 선진화’라는 표현을 사용하여 여지를 남겨두었다. 2011년 1월에는 한전의 발전부문 6개 자회사를 시장형 공기업으로 지정하여 언제든지 민영화를 진행할 수 있도록 했다.

이명박 정부에서는 삼성물산과 동양, 동부, 대우건설, 현대산업개발 등 에너지·건설 자본이 대거 참여하여 민간화력발전소가 꾸준히 늘었다. 2001년 6.6%에 불과하던 5개 발전회사 대비 점유율은 임기 첫해인 2008년 8.1%를 거쳐 임기말인 2012년엔 19.3%까지 늘어났다. 설비 용량을 볼 때 5개의 화력발전소 중 1개는 민간발전소인 셈이다. 2013년 2월에 발표한 제6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르면 2027년까지 민자발전은 총 11,760MW의 발전 설비를 추가로 건설할 예정이었다.

박근혜 정부도 에너지 공기업의 민영화 기조를 이어받았다. 2016년 6월 발표한 에너지·환경·교육 분야 공공기관 기능 조정 방안에서 정부는 △한전이 독점하고 있는 전력 판매(소매) 분야 규제를 완화하고 단계적 민간개방을 통해 경쟁체제 도입, △가스공사가 독점하고 있는 가스 도입·도매분야는 민간직수입제도 활성화를 통해 시장 경쟁구도를 조성한 후 2025년부터 단계적으로 민간에 개방, △발전5사와 한수원, 한전KDN, 한국가스기술 등 8개 기관의 지분 20~30%를 상장하여 민간자본 유치, △자본잠식과 부채가 많은 석탄공사와 광물자원공사의 단계적 축소 등을 제시하였다. 이미 민간에 의해 장악된 석탄과 석유에 이어 가스와 전력도 꾸준히 민간에 개방하겠다는 게 정책 방향이다.

자본은 이익을 취할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 무엇이든 가리지 않는다. 다만 힘이 부치는 분야는 국가에 양보하고 그 분야가 틀을 갖추면 비집고 들어가 영역을 확보한다. 우리나라의 전력산업에서도 이런 양태는 그대로 드러나는데, 해방 이후 몇 차례의 민영화 시도와 국영 또는 공영으로 회귀를 거쳐왔다.

민관 혼합 형태의 지배 구조를 가지고 있던 해방 후 전업 3사는 1961년 한국전력주식회사로 통합되어 대주주인 정부의 주도로 운영되었다. 전원개발이 본 궤도에 오른 1968년 민간발전소를 개방하여 동해전력과 경인에너지, 호남전력 등 3개 민간전력회사가 생겼으나 이익을 내기 어렵자 1970년대 초 2개 회사는 한국전력에 발전소를 넘기고 물러났다.

1970년대 후반 정부가 전력 다소비 업종인 중화학공업에 집중하고 초기 투자 비용이 큰 원전 건설을 추진하면서 한전의 민간 소유 주식을 매입하여 1982년 한국전력공사로 온전한 국영기업으로 재출발하였다. 1980~90년대 한국전력공사는 원전과 석탄화력발전소를 대거 건설하여 심야전력 등 전력 소비 촉진에 나서는 상황이 되었다. 그러자 발전·송전·배전을 독점하고 있는 한국전력공사는 다시금 민간자본의 먹잇감이 되었다.

공공부문에 대해 끊임없이 숟가락을 얹는 것은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다. 일찍이 영국은 마거릿 대처 수상이 이끈 보수당에 의해 1991년 전력산업이 민영화되었다. 레이건 대통령의 신자유주의 정책에 편승해 캘리포니아를 비롯한 미국의 여러 주도 전력산업 민영화를 진전시켜 1996년 전력시장이 들어섰다.

그러나 이들 민영화 국가의 성적은 매우 부정적이다. 영국은 경쟁 도입 초기 요금을 규제하여 1990년에서 2003년까지 14년간 소비자요금이 12.7% 올랐으나, 요금 규제가 폐지된 2004년부터 불과 2년만에 51.7%나 올랐다. 미국은 더 비관적이다. 2001년 1월 17일과 18일 이틀간 캘리포니아주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 이래 처음으로 전기 공급이 중단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3월 19일에는 주 남부 지역이, 5월 7일과 8일에는 주 전체가 다시 정전되었으며 그 해 여름이 되어서야 전력공급이 안정화되었다.

2001년 캘리포니아주 샌디에고시의 순환정전 모습.

전력시장의 경쟁 도입이 이런 사태를 불러왔다.

캘리보니아 정전 사태의 원인은 △전력산업에 경쟁이 도입된 후 전력사기업들은 손쉽게 거래를 통한 수익 창출에 몰두할 뿐 발전설비 확충을 하지 않았고, △전력사기업들이 담합하여 발전설비 용량 1/3을 수리와 점검을 핑계로 정지시켜 전력시장을 조작하였으며, △전력 공급을 책임지던 정부의 역할이 축소되어 이러한 상황에 대비할 수 없었다. 반면 캘리포니아 지방 전력공기업인 새크라멘토전력공사(SMUD)는 전기를 직접 생산하여 공급하고 이익이 나지 않아도 전기 생산을 계속하여 정전 사태 기간에도 충분한 전력을 확보할 수 있었으며, 1990년대 후반에는 원료비 하락을 반영하여 전기요금을 낮추기도 하였다.

전력은 대규모의 송배전 시설이 통합적으로 관리되지 않으면 대정전(블랙 아웃) 사태에 이를 수 있는 에너지이다. 발전시설이 첨두 수요(부하)의 변화에 빠르게 대응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전력산업을 어떤 구조로 가져갈 것인가는 이런 특성을 감안하여 공급의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는가가 판단의 첫번째 기준이 되어야 한다.

개별 기업의 이익 추구가 최대의 목적인 민간 기업의 다수를 참여시킬 때는 반드시 전력 공급의 안정과 공익을 위해 개별 사기업을 통제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추어야 한다. 사기업은 수익이 나지 않고 자본이 잠식되면 철수를 하든지 가동을 줄인다. 그럼 에너지 공급은? 따라서 사기업이 다수 참여하는 상태에서는 공급 안정을 위한 제어 장치 또한 반드시 전제되어야 한다. 하지만 이런 구조는 공기업으로 유지하는 것보다 효율적이기가 쉽지 않다.

2014년 9월의 사례는 혼합기업 한전에서 민간 자본의 역할을 잘 보여준다. 당시 한전은 삼성동 본사 부지를 현대자동차에 10조 5500억원에 팔면서 매각 대금 모두를 부채 상환에 사용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듬해 한전은 당시 59조원의 부채에도 불구하고 부채 상환에는 5조 5176억원을 사용하고 배당에도 7360억원을 배정했다. 한전의 민간 주주에게 부채는 중요치 않다. 여의치 않으면 팔고 나가면 되니까. 그들에겐 주가를 높여줄 배당률이 중요하다. 만약 한전의 부채가 감당할 수준을 넘어서고 자본이 심각하게 잠식되는 상황이 되면 그 때는 민간 자본은 빠지고 다시 국가가 인수하여 뒷처리를 하게 될 것이다.

공기업의 효율화와 민영화는 동일어가 아니다. 공기업으로 유지할 필요가 있는가 하는 판단을 먼저 하고, 그 다음에 어떻게 효율적인 운영을 담보할 것인가를 논의해야 한다. 우리나라 국민연금은 대통령을 파면하는 사태에 이르기까지 제대로 된 복기 한번 하지 않았지만, 네덜란드연기금은 투자한 기업에 문제가 생길 때마다 연금이 과연 주주로서 책임을 다했는지 낱낱이 따진다. 다양한 주체와 소비자가 참여하는 공기업 이사회의 구성에서부터 투명한 경영과 시행착오를 경험으로 축적하는 복기 구조 등 공공 부문의 효율화는 그 나름의 절차와 방식이 필요하다.

에너지전환

편집 : 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