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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먹는데 꼬막 찬이 나와서 떠오른 옛 생각.

찢어지는 가난이나 엄청난 실패, 계속되는 좌절을 딛고 인생역전을 이룬 사람들을 다룬 프로그램을 맡아 다양한 ‘성공담’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상황이 다르고 업종도 제각각이라 그 스토리가 천차만별이긴 합니다만, 그래도 그 성공담 속엔 공통되는 특징 몇 가지가 발견됩니다.

첫째, 그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분야로 성공의 발판을 닦았습니다. 좋아하는 만큼 알게 되고, 아는만큼 보인다는 것이죠. 그리고 둘째, 과도한 욕심은 독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하더군요. 왜냐면 그들 태반이 이른바 ‘잘나갈 때’ 더 잘 나가 보려고 욕심을 부리다가 패가망신 직전까지 가 본 경험이 있었거든요. 셋째, 그들에게는 항상 ‘귀인’이 있었습니다. 점집에 가면 ‘동남방으로 가면 귀인을 만난다’는 식으로 이야기하는, 인생이라는 사막의 오아시스 같이, 풍랑 속에 만난 등대 같이 그들의 인생을 수렁에서 건져 준 귀인이 그들의 막다른 골목에 나타났다는 겁니다.

신길동에 있던 한 대박 해물탕집 주인도 그랬습니다. 그 양반은 위 세 가지 특징을 몸으로 겪고 맘으로 다지고, 필생의 기억으로 삼고 있는 사람 중의 하나였죠.

우선 그는 해물탕을 너무도 좋아해서 결국 해물탕 냄비 안에 자신의 인생을 실어 버렸습니다. 부부가 모두 해물탕을 즐긴 관계로 맛있는 해물탕집이 있다면 거리불문, 가격불문 찾아다니면서 맛을 보던 중 “우리가 해물탕을 해 보면 어떨까?”라는 데 의기투합을 했고 급기야 해물탕집을 차렸답니다. 즉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시작한 겁니다. 그러나 좋아하는 만큼 알게 되고 아는 만큼 보이기까지는 기나긴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내가 얼마나 개념이 없었냐 하면요. 하루는 손님이 항의를 해 와요. 해물탕 조개에 흙이 들어 있다고. 그러니까 내가 조개를 잘 안씻은 거지. 나는 그 생각은 안 하고 손님한테 그랬다니까. 여보세요 조개가 뭘 먹고 삽니까? 뻘 먹고 삽니다. 그러니 뻘흙 있는 건 당연하잖아요."

그 말을 들은 손님도 꽤나 개념이 없는 손님이었던지 아니면 너무도 당당한 주인의 기세에 눌렸는지 아 그래요? 하고는 양순히 자기 자리로 돌아가 해물탕을 깨끗이 비우더랍니다. 그렇게 ‘무댓뽀’로 덤비던 장사였지만, 그 패기 때문인지 아니면 유달리 손님들에게 싹싹하게 대하고 단골을 정성스레 챙겼다는 아내 덕분인지 장사는 번창 일로를 걸었다지요. 그렇게 무난히 잘 나갔으면 웬만한 동네 해물탕집으로서 남부러울 것 없었을 텐데 남편이 삐딱선을 타기 시작했습니다.

“이왕 하는 거, 한 번 사는 인생인데 한 번 통 크게 놀아보자 해서 서초동에 80평짜리 해물탕집을 차렸지요.”

한국 사람들은 왜 그리 통크게 ‘한 번 지르는 것’을 멋있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 걸 ‘한탕주의’라고 하는지 모르겠습니다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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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는 '과도한 욕심을 부리지 말라'는 금기를 어겼고 댓가는 쓰디 썼습니다. 화려하게 문을 연 지 2년만에 그간 모았던 수억의 전재산을 털어 넣었던 그 80평짜리 식당에서 손 탈탈 털고 쫓겨 나와야 했던 겁니다. 순항하던 거함의 선장이 뗏목에 가까스로 올라탄 채 자신의 피땀 어린 배가 물 속으로 곤두박질치는 걸 눈 뜨고 지켜봐야 하는 심정이었겠지요.

그때 아내가 “그래도 이 직업에는 정년이 없지 않느냐”면서 절망하는 남편의 어깨를 두들겨 주었답니다. 그리고는 죽으나 사나 살 길은 해물탕 밖에 없다고 생각했고 금싸라기 땅 서초의 꿈을 저만치 밀어낸 다음 영등포구 신길동에 또 해물탕집을 차렸습니다. 아마 이쯤에서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은 “에이 마누라가 귀인이었구나.”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만, 그건 아닙니다. 그에게 진짜 귀인이 나타난 것은 그 후였습니다.

경기가 형편없이 어려워지고 거리에 부쩍 걸인들이 늘었던 무렵, 가게 인근에도 그 일단의 걸인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밥 달라고 식당 앞에서 진을 치는 그들이 손님을 쫓을까 저어되기도 하고, 남루한 형편들이 불쌍하기도 하여 몇 상을 따로 차려서 그 걸인들을 먹였다지요. 거기에 해물탕이야 올라가지 않았겠지만 밑반찬들은 풍성히 올렸던 모양입니다. 그렇게 몇 달을 지냈는데 어느날, 그들이 물린 상을 무심코 보던 중 주인은 뭔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습니다.

밥 한 톨 남김없이 말끔히 먹어 치워진 밥상이었지만 유독 꼬막 접시는 차려줄 때와 거의 변함이 없이 온전하게 남겨져 있는 겁니다. 한 상만 그런 게 아니라, 다른 상을 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젓가락을 대기는 했는데 한 두 번 째각거린 것 이상의 흔적은 찾아 볼 수가 없었지요.

도대체 이유가 뭘까, 유독 꼬막이 맛이 없었을까 궁금해 하던 양만호씨는 걸인의 밥상에 남겨진 꼬막을 한 입 두 입 베어 물었습니다. 잘근잘근 꼬막 몇 개를 씹어 본 다음에야, 그는 비로소 꼬막이 '아주 미세하게, 완전히 맛이 간 건 아니지만 조금은 갔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걸인들 역시 몇 젓가락 주워 먹다가 그 느낌을 받았고 더 이상 꼬막에 손을 대지 않고 물려 버린 겁니다. 그 순간 주인의 머릿 속에는 번갯불 하나가 번득이고 지나갔다고 합니다. 그것은 그 이후 그의 평생 신조가 되어 버린 말 한 마디였습니다. “임금 눈과 귀는 속일 수 있어도 거지 입은 속이지 못한다.”

감언이설과 속임수를 써서 임금님 눈과 귀를 막기는 어렵지 않지만, 그 ‘미세하게 상한’ 꼬막은 제대로 된 끼니를 때우기 어려운 걸인들의 혀조차 속일 수 없었던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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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입맛처럼 정직한 게 없다는 걸 전 그때 정말 무섭게 배웠어요. 못 먹고 못 사는 거지가 저러는데 돈 내고 밥 사먹으러 온 손님들의 입이 얼마나 무섭겠느냐. 생각만 해도 덜덜 떨리더라구요. 조개가 뻘 먹고 사니 흙 있는 거 당연한 거 아니냐고 장사한 거 생각하면 그냥 쥐구멍으로 들어가고 싶더라고.”

그 이후 주인은 항상 걸인의 밥상에 수북이 쌓여 있던 꼬막을 가슴 속 깊이 담아 두고 장사를 했더랍니다. 그에게 사람의 정직한 입맛과 그를 만족시키는 충실한 음식이란 무엇인가를 깨닫게 해 준 귀인의 충고로 새기고 말입니다. 오늘날 번창하는 가게의 생명같은 교훈으로 삼고서 말입니다.

그 이름 모를 걸인은 그에게 평생 잊지 못할 귀인이 된 겁니다.

인생에 세 번의 기회가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에둘러 말하면 누구나 자기 인생에 귀인을 만날 기회도 그쯤은 있겠지요. 하지만 그 귀인 역시 스스로의 노력 없이는 알아보지 못하고 지나치게 될 지도 모릅니다.

만약 주인이 수북이 쌓인 채 되돌아온 꼬막 접시를 보고 “배부른 거지들이구만. 내일부터 꼬막 올리지 마! 이 사람들이 음식 아까운 줄을 몰라!”라고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으면 그는 그 진리를 깨닫지 못했을 테고 걸인은 걸인으로 끝났겠지요. 하지만 걸인의 밥상에 젓가락을 대고 맛을 본 그의 노력이 결국 일생의 귀인을 만나게 된 행운의 이유가 되었다 싶기도 합니다.

결국 귀인은 기다리는 게 아니라 찾는 거겠지요.




산하


편집 : 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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