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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겁나 바쁘다. 동네 커뮤니티 컬리지에서 여름 수업을 듣는 탓인데, 직장을 다니면서 수업을 듣는다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다. 특히 여름학기는 8주로 짧은 데다가 (일반 학기는 12주에서 16주에 걸쳐 진행된다), 짧다고 진도를 덜 나가는 것도 아니라서 일정이 무척 빡빡하다. 4과목을 8주에 들으면, 매주 최소 두 과목씩 중간고사를 봐야 하는 지옥 같은 스케쥴이 펼쳐진다. 그냥 왠지 징징되고 싶었다.

 

각설하고, 처음 커뮤니티 컬리지에 다닌 소감은 꽤 괜찮다. 커리큘럼 자체는 일반 대학교 수준과 크게 다를 바 없는 반면에, 가격은 무척 저렴하다. 내가 다니던 대학교의 등록금이 한 학기에 무려 2500만 원이었는데, 이곳에선 약 150만 원 정도를 내고 다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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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연설명하자면, 미국 공립학교는 거주민과 비거주민에게 등록금을 다르게 받는다. 공립의 경우, 같은 학교라도 해당 학교가 위치한 주에 사는 주민들은 더 적은 등록금을 낸다. 반면, 해당 주에 거주하지 않거나, 외국 학생들의 경우 훨씬 비싼 등록금을 내야 한다. 내가 다니는 커뮤니티 컬리지의 경우 거주민은 150, 비거주민은 450만 원을 내야 하니, 약 세배 차이가 난다 (주립대의 경우 몇 배 차이가 나진 않지만, 액수로는 몇천 만 원 차이가 난다). 나는 영주권 없이 H1B라는 외국인 근로비자로 거주하고있는데, 다행히 주민으로 인정받아서 거주민 등록금을 내고 커뮤니티 컬리지에 등록할 수 있었다(제출해야 할 서류도 많고, 행정 과정이 엄청 복잡해서 사실 애를 많이 먹긴 했다). 모처럼 꼬박꼬박 냈던 주세금을 돌려받는 기분이었다.

 

등록금이 이렇게 싸니, 여름학기의 경우 커뮤니티 컬리지에 다니는 학생의 다수가 다른 일반 대학교의 대학생들이다. 커뮤니티 컬리지에서 수강한 학점들을 대부분의 대학교에서는 인정해주기 때문에, 이들 대학생들은 등록금을 아끼기 위해 커뮤니티 컬리지에서 수업을 듣는 경우가 많다. 특히 미국대학교에서 조기졸업을 하는 가장 쉬운 방법 역시 여름 동안 커뮤니티 컬리지에서 열심히 수업을 듣는 것이다. 교양 과목들을 커뮤니티 컬리지에서 여름에 다 들어놓으면, 본인이 원래 속한 대학교에선 전공수업만 들으면 1년씩 조기졸업하는 게 가능하다. 가성비를 생각하면 이는 매우 합리적인 생각이다. 

 

여기에 덤으로, 매우 앳된 학생들도 커뮤니티 컬리지를 많이 찾는다. 내가 교육열이 매우 유별나는 동네에서 살고 있어서 그런 것 일 수도 있겠지만, 고등학생들이 대학교 과목을 미리 이수하기 위해 이곳을 찾는다. 좋은 대학교 어드미션을 받기 위해서인 것 같기도 하고, 대학교 생활을 편하게 하기 위해서 선행학습을 하는 것 같기도 한데, 어쨋거나 주말에 부모와 함께 커뮤니티 컬리지를 찾는 고등학생들도 꽤 많이 보인다.

 

하지만, 일반대학교나 고등학교의 수업을 시작하는 가을학기나 봄학기는 분위기가 또 달라진다. 좀 더 다양한 부류에 사람들이 커뮤니티 컬리지를 찾는데, 크게 두 가지 그룹으로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한다. 대학교에 진학하지 않은 “학생” 그룹과, 대학교를 이미 졸업했거나 직장을 다녔던 “생활인”그룹.


먼저 후자는 전역 군인이나, 직종 변환을 꿈꾸는 직장인 혹은 오랫동안 경력이 단절된 주부들이다. 직업교육의 일환인데, 엑셀 파워포인트 쓰는 법릏 가르쳐주는 수업도 있고, 정말 다양한 것을 배운다. 나는 그중에 전산회계 교육을 받고 있는데, 'Quickbook'이라는 회계 장부를 기록하는 소프트웨어를 배우고 있다. 회계사인 주제에, 어떻게 중소기업이 회계장부를 적는지 전혀 몰랐었는데, 이걸 배우니 많은 도움이 된다. 

 

본격적으로 하고 이야기는 전자, 즉 학생들에 대한 이야기다. 이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풀타임 직업이나 대학생이 되지 않은 학생들이다. 내 아내가 이 그룹에 속한다. 아내는 고등학교 때 미국으로 이민을 왔는데, 고등학교 졸업시점에서 당장 영어도 안 되고 (고등학교 학점이나, SAT 같은 표준 성적이 없음은 물론이다), 환경상 일반대학교로 진학할 수 있는 여건도 되지 않았다.

 

보통 이러면, 당장 돈을 벌기 위해 대학교 학위 없이 할 수 있는 간단한 파트타임잡을 찾을 수밖에 없다. 이민 1세대인 장인, 장모님은 지금도 식당에서 서빙일을 하고 계신데 (영어가 안되고, 자영업을 할 자본이 없는 외국인이 할 수 있는 일은 제한되어 있다), 주변 동료들의 자제분들 대부분이 식당일을 하고 있다. 본인들이 식당서 받는 돈으로 등록금을 마련하기란 불가능한 데다가, 무엇보다도 학업을 열심히 이어나가면 더 좋은 직장이나 삶을 갖을 수도 있다란 롤모델 자체가 없다.

 

물론, 저소득 계층의 자녀라고 하더라도, 무언가 특출난 게 있으면 등록금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당장 하버드, 유펜 같은 명문대들은 가정 소득을 보지 않고 일단 학생을 뽑은 다음, 장학금을 지원해준다(가구 소득이 1.20억 미만이면 거진 장학금을 받는다). 꼭 공부가 아니더라도, 운동이나 음악 등 재능이 있으면 이들을 데려가기 위한 장학금 제도도 있다. 또한, 좋은 대학일수록 다양성을 추구하는데 많은 비용과 품을 들이기 때문에 (혹은 그만큼 재정 여력이 되기 때문에), 공부 좀 할 것 같은 저소득가정 자녀들을 뽑기 위에 정말 많은 노력을 한다. 역차별 논란이 나올 정도로, 흑인 저소득 가정의 아이들은 훨씬 낮은 객관적인 성적(학점이나 SAT점수)으로 아이비리그에 진학하기도 한다.

 

그러나,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런 타고난 재능을 갖지 못했거나, 혹은 재능을 아직 발휘하지 못한 평범한 학생들에 관한 것이다. 저소득 가정에서 태어난 학생들의 절대 다수, 그러니까 중고등학교 때 공부를 탁월하게 잘 하거나, 모든 역경을 노력으로 뛰어넘겠다란 야망이 없는 아이들은, 본인에게 세팅된 디폴트값을 따르기 마련이다. 잘난 애들이야 힘든 상황에서도 극적인 성공을 일궈낸다지만, 절대 다수는 환경의 영향을 받으면서 살아간다. 평범할수록 내 부모가 하는 일, 내 친구가 하는 일을 이어받기 쉽다. 본인이 어떤 노력을 언제 기울이면 어떻게 성공할 수 있는지 아무도 알려주지 않고, 롤모델도 없기 때문에. 사실 돈이 없어서 하버드를 못 갔다는 말은 구라다. 하버드는 돈이 없어도 애들을 받아주니깐. 진짜 문제는, 돈이 없으면 하버드를 꿈도 못 꾼다는 것이다.

 

이런 기회의 불평등 문제는 노오오력이 부족하거나, 자기계발서가 없어서 벌어지는 문제가 아니다. 진심으로 그 아이를 위해주는 어른이나 멘토가, 그 아이의 눈높이의 맞는 코칭과 “모범” (이거해라 저거해라 하는 입꼰대질 말고, 본인이 말하는 가치를 본인의 삶으로써 오롯이 증명해보임을 의미한다)을 보일 때, 비로써 아이는 그 사람에게 귀 기울이게 되고, 자기 삶의 변화를 추구하게 된다.

 

음, 벌써 개저씨가 되려는지 글을 쓰다가 별 이유 없이 너무 흥분해 버렸다. 사과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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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침착하게나



어쨋거나, 내 아내는 평범한 부류에 속했다. 머리가 특출나게 좋은 것도 아니었고, 성공하겠다란 강렬한 열망이 없는 그런 평범한 학생. 대신, 아내는 운이 조금 좋았다. 아내 주변에는 아내를 진심으로 걱정해주는 진짜 어른들이 있었고 (학교 선생이라든가 이웃 등), 이들은 아내에게 커뮤니티 컬리지에가서 영어수업이라도 몇 개 들어볼 것을 권유했다.

 

커뮤니티 컬리지의 문턱은 다행히 수 천만 원의 등록금과 온갖 성적을 요구하는 일반대학교보다는 훨씬 낮았고, 일주일에 두세 번 정도 듣는 수업은 아내가 알바를 병행하면서 듣기에도 경제적으로나 시간적으로나 크게 무리되지 않았다. 그렇게 2~3년이 지났고, 아내는 꽤 괜찮은 성적을 받고 커뮤니티 컬리지를 졸업할 수 있게 됐다.


졸업 시즌, 커뮤니티 컬리지에는 꽤 많은 대학교의 입학사정관이 방문했다. 아내 학교 주변에 있는 대학교는 물론, 꽤 떨어진 곳의 사립학교에서도 입학담당관을 파견해 오리엔테이션을 실시했다. 커뮤니티 컬리지 졸업생에게 편입기회를 주기 위해서다.

 

아내 말에 따르면, 미리 예약을하고 입학사정관과 1대1 면접을 봤는데, 커뮤니티 컬리지에서 받은 학점과 입학사정관과의 면접만으로도 바로 입학허가를 내주는 대학교도 꽤 있었다고 한다(이름만들어도 알만한 대학교들이다).

 

아내는 오리엔테이션 동안 인터뷰한 학교 7곳에 지원해서, 5군데에 입학허가를 받는다. 개중에는 UNC나 조지워싱턴대학교 같은 유명한 학교도 있었다고. 그리고 대부분의 대학은 아내의 가정환경을 감안해 장학금을 제시했다. 아내가 미국에 와서 얻게 된 첫 번째 진짜 기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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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고심 끝에 장학금을 많이준 모 주립대로 편입했고, 1년 반 만에 졸업했다. 그리고 현재 다니는 직장에 입사한 뒤 나와 만났다. 이게 제일 중요한 파트. 나도 한국에서 고등학교까지 나온 뒤 늦게 유학을 온 케이스였지만(중간에 군대도 다녀오고), 아내에 비하면 정말 편하게 직선만 밝은 편이다. 미국 직장엔 이렇게 사연 많고, 돌아온 사람들이 꽤 많다. 물론, 그위엔 정말 성공만 거듭해서 출세가도를 걷는 사람들도 많지만.

 

재미있는 건, 아내가 딱히 유별나게 잘풀린 케이스가 아니라는 점이다. 아내는 커뮤니티 컬리지를 다니면서 꽤 많은 친구들을 사귀었는데, 2년을 끝까지 채운 친구들 대부분 졸업 후 정규대학교에 합격했고, 거의 모두 직장을 잡거나 대학원으로 진학했다(커뮤니티 컬리지를 나와서 지금은 박사과정까지 밟고 있다). 이 커뮤니티 컬리지가 특출나거나 아내 주변 친구들이 운이 좋아서 그런 것일 수도 있겠지만, 어쨋거나 한번 입시에 실패한 사람들에게 또다른 기회가 주어지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물론, 좀 삐딱하게 보자면, 좋은 대학교일수록 졸업율이 낮아서 결원을 채울 필요도 있고, 잘은 모르지만 정부보조금이나 선심용으로 편입을 많이 받는 걸 수도 있다. 하지만 실제로 꽤많은 커뮤니티 컬리지 졸업생들이 편입의 기회를 얻는 걸 보면, 훨씬 더 중요한 이유가 있는 것 같다. 세컨드 찬스. 즉, 고등학교 때, 준비가 되지 않아서든, 몰라서든 기회를 흘려버린 학생들을 어떻게서든지 다시 한 번 대학교 입학 기회를 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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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스는 너굴맨.. 아니, 커뮤니티 컬리지가 주니 안심하라구!

 


사실 커뮤니티 컬리지에서 좋은 성적을 받는 건, 일반 대학교에서 보다 훨씬 쉽다. 당장 박사학위도 없는 강사들이 가르치는 수업인 데다가, 부업으로 강의하는 경우가 많아서 학생들에게 큰 관심과 시간을 기울이지 못한다. 대부분의 퀴즈나 시험이 객관식이고, 그마저도 절대평가라 수업의 절반이 A학점을 받는 경우도 생긴다고 한다. 내가 다니던 학교만 해도 학생대 교수비가 7:1수준이었고, 교수가 시간이 남아돌다 보니 대부분의 수업에서 에세이와 토론으로 학점을 메겼다. 게다가, 한반의 A를 받을 수 있는 학생 비율도 정해져 있어서, A받기 정말 힘들었다.

 

내 아주 주관적인 경험상으로는, 커뮤니티 컬리지에서 편입온 많은 학생들은 그래서 일반 대학교에가면 적응하는데 애를 먹었다. 내 아내의 경우도, 편입한 후에 교수들이 시험문제도 잘 안 찍어주고, 비틀어내는 문제 때문에 고생을 많이 했다고 한다.

 

그러니까, 딱히 공부 잘하는 학생들을 뽑기 위해 대학교가 커뮤니티 컬리지에서 학생을 뽑는 건 아닌 것 같다. 그렇다 보니, 좀 예민하지만, 공정성 문제로 시비가 붙을 수도 있다. 미국 고등학생 입장에서 명문대를 진학하려면 정말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공립의 경우, 학년에서 상위 몇 등 안에 들어야 하고, SAT도 2200 이상 받아야 하는데, 같은 학생이 먼저 커뮤니티 컬리지에 갔다가 학점관리를 잘해서 명문대에 지원하면 입학 확률이 오히려 올라갈 수도 있다.

 

그런데도 왜 미국 대학교들에서 점점 더 많은 학생들을 커뮤니티 컬리지에서 뽑으려고 한다. 왜 그럴까? 나는 이것이 결국 가치의 문제로 귀결된다고 생각한다. 엄격하게 줄 세워서 가장 훌륭한 학생들만 뽑아다 교육시키는 것과 일정 기준을 채운 아이들 중 최대한 다양한 배경의 아이들을 모아 같은 문제에 다양한 시각을 갖도록 하는 것의 차이 말이다. 후자의 경우, 제대로 기회를 갖지 못한 아이들에게 세컨드 찬스를 줄 수 있다는 '덤'도 있다.

 

커뮤니티 컬리지 출신들은 어떤 이유나 사정에 의해서건 일반 대학교에 진학하지 않았지만, 그 뒤로도 학업을 이어가고자 노력을 한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에게 다 시 한번 기회를 주는 것, 나는 매우 긍정적이라고 본다. 이렇게 두 번, 세 번 정도의 기회가 주어져야 불평등의 문제가 조금이나마 해소되기도 하고, 한번 실패하면 끝이라는 절박함이 사라진다. 이런 절박함이 좀 없어져야 사회의 아픔도 덜해지고, 창의성도 생겨나는 게 아닐까.

 

 

 

씻퐈


편집: 딴지일보 coco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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