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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영이 자진사퇴했다. 문재인 대통령을 지지하는 많은 이들이 박기영 인선을 옹호하거나 반대로 실망감을 표했다. 그런데 이 정도로 수습될 줄 알았다. 오만이 아니다. 나뿐만 아니라 내 아버지도 그랬고 열렬한 박정희주의자이신 친척 어르신도 마찬가지였으며 동네 술친구들도 확신했다. 표본이 적긴 하지만 이들을 이야기해보자.


아버지는 해병대 월남 참전 용사이신 산업화세대이며 술친구들은 정치의식과는 거리가 먼 이들로, 종종 ‘깨시민’이라 통칭되는 좌파의 관점에서 보면 '소양'이 없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비단 딴지 독자들 뿐 아니라 오유에서부터 멀리로는 일베에 이르는 사람들이 담지하고 있는 종교적 태도는 없다.


이런 종류의 사건에서 근본주의자들의 신앙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첫째, 구원자는 옳아야만 한다.

둘째, 구원자는 언제나 옳다.


첫째의 경우는 부글부글 끓는다. 이 꼴을 보자고 그 추위에 광화문에서 손발 얼어가며 민주주의를 외쳤는가? 화가 나서 잠도 안 올 것이다. 이 사고관에서 문재인은 민주주의의 성자가 되기 위해 하나의 흠결도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둘째는 좀 더 우습다. 박기영도 문재인이 점지하였으므로 사실은 등에 적폐세력의 눈에 보이지 않는 천사의 날개가 돋아난 분이며, 우리가 지켜줘야 한다는 식이다. '그분‘께서 틀릴 수 있다는 것은 형용모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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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영의 사과문은 기괴하다. 전문의 일관된 주제가 자기 자신의 감정이다. 보통은 공적 가치를 중심에 놓고 자신이 공공이라는 주인공에 어울리지 않는 조연임을 밝히는 게 상식이다. 박기영의 사과문에는 사회도 타인도 없다. 이런 사람을 소시오패스라고 부를 수 없으면 이 단어가 사라져야 한다.


그런데 말이다. 우리는 지난 9년간의 보수정권을 거치며 박기영 류의-종종 그보다 훨씬 심한- 인간들이 자신의 영지를 배당받는 모습을 수도 없이 목격했다. 그들은 여론에 굴하지 않고 성에 입성해 영주의 권좌에 앉았다. 권력의 수뇌인 이명박과 박근혜(이 경우는 최순실이 더 정확하겠지만) 전 대통령은 그들이 논공행상에 편입되는 과정을 묵인하거나 때로 지지했다. 이 역시 권력을 재확인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권력자의 결정이 철회되면 권위에 해를 입는다.


박기영의 '자진사퇴'에서 과연 그 ‘자진’이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겠다. 박기영의 전력과 사과문은 그가 권력지향적 소시오패스임을 보여주지만, 바꿔 말해 현재의 문재인 정부가 이런 인물형이 원하는 대로 뻔뻔할 수 없는 환경임을 보여준다.


그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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뜬금없지만 심보선 시인의 작품 <평범해지는 손>이 한때는 꿈같던 사랑을 묘사하는 방식을 가져와보겠다.
 

"둘에서 셋 아니면 셋에서 넷이 되었겠지

그 정도겠지"


그 정도라는 것. 정치도 연애다. 정치인과 지지자의 관계는 연인관계와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사랑과 마찬가지로, 거꾸로 어디까지나 정치이기에 ‘그 정도’임을 인정해야 마땅한 순간이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줄 구원자도 아니고 청와대가 바티칸도 아니다.


진실은 단순하다. 유권 대중이 참여한 촛불혁명을 거쳤기에 대한민국은 권력의 크기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 그 직(職)에 오르는 꼴을 저지할 수 있는 사회가 됐다. 그 정도 회복이고, 그 정도 재출발 선상이다.


광화문의 인파는 오류임이 분명한 정부를 정지시켜 민주주의가 회복하는 모습을 보려고 촛불을 들었다. 현 대통령인 특정 개인을 옹립하기 위해 거리에 나선 게 아니다. 대통령이 욕망한 인사가 여론에 의해 떨어져 나갈 수 있는 사회. 대통령도 그러한 현실을 받아들이는 사회.


이 정도 상식을 위해 거리에 나섰던 게 아니란 말인가? 우리는 자본주의 체제의 시민이다. 예루살렘을 수복하고 기독교 군주를 앉히려고 출정한 십자군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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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정권 9년간의 정부 인사는 유권 대중이 납득할 만한 것이 아니었다. 이는 참여정부의 인사와 비교될 수밖에 없었다. 허나 그렇다고 해서 참여정부의 인사가 완벽한 것은 아니다. 황우석 옹호에 국비와 권력을 동원한 박기영의 행태는 참여정부의 오점 중 하나다.


문재인 정권은 박기영을 재신임함으로써 오점을 반복했다. 대통령이 참여정부를 흠결 없는 이상향으로 신봉한다는 의심을 받을 만한 일이다. 그러나 과거의 오류와 현재의 실수를 인정하는 모습은 중요한 발전이다. 대권을 잡은 정치세력의 수정적 태도는 두말할 나위 없는 진보다. 그 자체로 인정받을 일이며 촛불혁명을 성공시킨 국민의 힘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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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영의 자기중심주의는 지난 정권의 ‘적폐 인사’들과 별다른 차이가 없다. 그런데도 <나만의 슬픔>을 주제 삼아 자진사퇴를 할 수밖에 없었다면 이는 문재인 정권이 적어도 지난 보수정권보다는 공과 사를 구분한 결과다.

그 정도 권력자고, 권력자가 그 정도일 수 있다.
적어도 ‘그 정도’가 엄연한 민주주의의 틀 안에 존재한다는 점에서 우리는 촛불과 정권교체의 긍정적 결과를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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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의 포화를 받았던 또 한 사람, 탁현민 청와대 행사비서관과 비교해보자. 그의 여성비하적 발화는 여야를 가리지 않고 성토의 대상이 되었다. 탁현민 역시 일부 문재인 지지자에 의해 ‘아름다운 사람’으로 포장되는 과정을 거치거나 다른 일부에 의해서는 눈엣가시 취급을 받았다. 반면 조중동은 대통령과 탁현민의 개인적 친분에 방점을 두었다. 나는 문제의 본질을 다르게 본다.


탁현민이라는 인물을 어떻게 해석할지와 상관없이, 행사라는 것은 다분히 권력자 개인의 취향의 영역이다. 말끔한 여론수렴 과정을 거치지 않더라도 이 정도는 밀어붙일 수 있다는 판단의 결과다. 누가 맡아도 그 정도 지위와 연봉을 누려야 한다면, 그게 누가 될지에 대해서는 권력을 행사하겠다는 뜻이다.


박기영이 지명된 자리는 언론의 표현대로라면 20조원의 지원금을 주무르는 위치다. 공공성의 정도에서 행사비서관과는 다르다. 결과도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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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이 흠결 없는 구원자가 아니었음이 드러나면 큰일이라도 나는가? 왜 정치적인 '소양'이 없는 사람들은 열광적인 정치적 시민보다 더 차분하고 때로 더 정확한 예측력을 발휘하는가? 더 똑똑해서가 아니라 다만 종교적 태도에서 자유롭기 때문이다.


박기영의 사례가 전형적이다. ‘그분’은 무조건 옳다고 믿는다면 박기영은 ‘아름다운 사람’이어야만 한다. ‘깨어있는’ 자신의 지지를 받았으니 옳지 않으면 안 된다고 믿는 사람이라면 박기영이 흰 페인트 통에 떨궈진 검은 페인트 방울처럼 느껴질 것이다. 조금만 섞여도 한 통 전체를 회색으로 만드는 흑색은 불쾌하기 이를 데 없다.


진실은 단순하고 실상은 복잡하다. 결국 정부란 것은 복잡다단한 체계다. 한계를 드러내다가도 멈출 줄 아는 상식의 영역을 지키면 된다. 그리고 웬만한 국민들은 무식할지언정 멍청하지는 않다. 생각을 언어화하지는 못해도 알 건 안다. 그래서 도출되는 '못 배운' 어른들의 말씀이 이런 식이다.


"그래도 이게 어디냐."

"뭐 이만하면..."

"심했다."

"이건 아니다."


소박하고 우스꽝스럽지만 이런 언어에 담보된 진실의 힘은 생각보다 크다. "이건 아니다" 수준으로 악화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우리는 봤다. 가장 보수적이라는 경상북도의 노인들도 관광버스를 타고 올라와 촛불을 들었다.


이쯤해서 한 번 비교해보자. 근본주의자의 교리해석과 시골 촌부의 체감 중 어느 편이 상식과 보편에 가까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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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대통령이 구원자이고 그는 언제나 옳거나 옳아야만 한다고 믿는 사람들의 태도는 냉정히 말해 반대편 극단과 큰 차이가 없다. 반대편이란 조중동, 혹은 일베를 뜻한다. 물론 이들은 박기영 사태에 즐거운 분노를 만끽했다. 그러나 ‘문재인은 틀려야만 한다’는 결론이 미리 삽입된 종교적 접근이란 점에서는 같다.


평소에 멀쩡하다고 생각했던 이들이 극단적인 스탠스 몇 개 중 하나에 투신하거나, 겨우 그 몇 중 하나인 교파를 정해지 못해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면 의아하다. 종교적 태도란 다시 말하면 강박이다. 특정 정치인 개인을 신성시하거나 악마화하여 모든 현상을 그의 의지로 해석하려는 습관이다. 악당이 없다는 얘기가 아니다. 이것만으로는 정치도 사회도 판단할 수가 없다는 뜻이다.


특정 정치인에 집착하는 태도는 민주주의와 거리가 멀다. 오히려 봉건적이라 할 것이다. 중세를 배경으로 한 ‘좋은 임금님 나쁜 임금님’ 동화와 다를 바 없다.


국민의 감시를 받는 와중에 실수가 있었고 여론에 의해 철회되었다. “실수했다”에 “실수를 취하했다”는 건전한 사실이 포함되어 있는 한, 아무리 문재인 지지자라 한들 그의 실수를 인정하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는가? 반면 정치에서 눈을 떼야겠다고, 심지어 치가 떨린다고 할 만큼 분노할 이유 또한 어디 있는가?


우리는 근대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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