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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09. 17. 수요일

너클볼러










다들 알다시피 필자는 종종 야구에 대한 글을 쓰곤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미국 메이저리그 보스턴 레드삭스 '빠'로서 메이저리그, 그 중 보스턴과 관련된 몇몇 글들을 쓰곤 했다. 하지만 지난해 우승 이후에 야구에 대한 글을 쓰지 않았다. 아는 분덜은 아는 것처럼 보스턴 레드삭스의 성적은 그야말로 최악 오브 더 최악이다. 경기는 커녕, 경기 결과를 보는 것도 처참하다 못해 슴가 한 켠이 쓰릴 정도로 고통스런 시즌을 보내는 마당에 글까지 쓰는 게 하릴없이 무상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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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기 싫다.


하지만 필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졸라게, 너부리 편짱이 지시한 중요 프로젝트를 준비하겠노라 꼼꼼히 계획해둔 일까지 미뤄가며, 어제 늦게 마신 술로 인해 슬슬 신호가 오는 배를 부여잡고 타자를 후다닥 내리치고 있는 이유는 바로 야구 역사의 획기적인 발견이라 할 수 있는 '투수 김성일'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마이클 조던의 페이더웨이 슛을 직접 보고, 메시의 볼 트래핑을 실시간으로 시청하고, 사이영상과 MVP 동시 수상이 유력해보이는 커쇼의 투구를 보는 것 정도가 스포츠팬인 내 인생에 주어진 행운의 전부라고 생각해 왔던 필자. 요금 연체로 스포츠 케이블이 당장 오늘 끊긴다고 해도 여한이 없는 투수를 그것도 '뜬금 없이' 보게 된 것이다.


자. 여기 최고의 투수가 있다. 창원 새누리스 2군 소속으로, 쿠바 선수처럼 미국 메이저리그에 입성하기 위해 탈출을 감행하고, 브로커를 동원하는 위험천만한 계획을 꾸밀 필요도 없다. 메이저리그 스카우터들이여. 단 두 차례의 불꽃 같은 투구만으로도 안정적인 투구폼, 제구, 마인드 등의 모든 덕목을 완벽하게 보여준 이 투수를 주목하시라.


아. 씨바 시간없다. 본론으로 바로 드가자.



초대형 투수의 등장.


일단 김성일(창원새누리스 2군)투수의 투구를 감상해 보자.


김성일 투수의 불꽃 투구 (25초부터)


김성일투수는 단 두 개의 공(계란)을 선보였다. 단 두개의 공(계란)만으로도 그가 얼마나 위대한 투수인지 딴지가 아니면 그 누구도 거들떠 보지않았을 그의 투구를 졸라 꼼꼼히 분석해보자.



1. 차분한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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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창원시의회 본회의장. 수많은 팬들이 몰려있었을 뿐더러, 곳곳에 카메라까리 자리 잡고 있는, 투수에게는 호락호락하지 않은 무대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매우 차분히 마운드에 올랐다. 등판을 준비하는 투수에게 반드시 필요한 투수 코치의 콜도, 몸을 풀기 위한 워밍업도 없었다. 팀이 필요로 할 때 언제든 자신을 던지는 일전불퇴의 각오를 느낄 수 있는 부분이라 할 수 있겠다.



2. 상황과 조건을 따지지 않는 겸허한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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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일 투수의 위치가 안상수 타자와 가까웠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다들 알다시피 투수의 마운드는 타자가 서 있는 홈플레이트보다 10인치(25.4cm) 정도 높도록 규정되어 있다. 이거 무슨말이냐. 타자와 투수가 같은 높이에 있을 경우 전적으로 타자에게 유리하다는 말 되겠다.(사실 메이저리그의 경우 1968년까지는 15인치 였으나, 투수들이 지나치게 타자를 압도하는 바람에 5인치 낮췄다). 헌데 김성일 투수는 자신이 매우 불리한 위치, 즉 타자와 같거나 오히려 살짝 낮은 위치에서 투구를 감행했다. 상황과 조건에 연연하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투구에만 집중하는 진정한 스포츠맨쉽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3. 한국의 부동산 정책과 흡사한 매우 안정적인 투구폼


가장 일반적인 투구폼은 팔이가 어깨보다 높은 곳에 위치하며, 높은 키킹과 릴리스 포인트(공을 손에서 놓는 포인트)를 통해 공이 위에서 아래도 메다 꽂는 느낌의 '오버핸드'다. 머 대충 투수의 7-80%가 오버핸드 투구폼을 장착하고 있다고 보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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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게 오버핸드


하지만 김성일 투수는 바로 오버핸드 투구폼에서 팔의 위치(신장의 3/4정도)와 릴리스 포인트가 조금 내려오는 '쓰리쿼터'를 선보였다. 주로 나이가 있는 노장 투수들이 애용하는 투구폼. 올해 나이 70세, 투수로 보면 이미 두  번은 어깨가 아작났을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어깨에 무리를 주는 '오버핸드'를 구사하지 않음으로써 구속과 무브먼트의 위력을 잃은 대신 완벽한 '쓰리쿼터'를 구사하여 정교한 제구력과 안정성을 두루 갖춘 투수계의 거북이로 등극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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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저리거 '챈호퐉'과 꼭 닮은 몸의 3/4정도에 공을 뿌리는 완벽한 쓰리쿼터


자. 끝까지 안상수 타자에게서 시선을 놓지 않는 안정적인 투구폼을 보라. 팔의 높이과 각도, 정확한 시선, 굽히거나 틀어지지 않는 안정적인 상체 발란스, 게다가 순식간에 주머니에서 공(계란)을 꺼내 세트 포지션에서 곧바로 투구로 이어지는, 그 어떤 빠른 주자도 도루할 엄두조차 내지 못할 '퀵모션'까지...


안타깝게도 공개된 영상과 사진을 통해서는 김성일 투수의 하체를 확인할 수 없다만, 투구 시 보여지는 상체 모든 곳의 무브먼트로 미루어 짐작컨대, 그의 하체는 매우 안정적이고 강철 같을 것이라 예상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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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뜻 봐도 안정적인 하체 밸런스


이렇듯 투구폼에서부터 관록과 연륜, 선수 생활을 길게 보는 안목까지, 그야말로 신이내린 투수라 할 수 있는 것이다.



4. 현대 야구를 뛰어넘은 완벽한 제구


김성일 투수는 매우 빠르게, 타자가 예측을 할 겨를도 없이 2번의 불꽃 투구를 시전했다. 동영상에 나타난 김성일 투수의 시선과 공(계란)의 위치가 정확히 일치하는 것을 볼 때, 그는 매우 빠른 쓰리쿼터+퀵모션을 구사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의도한 곳에 정확히 공(계란)을 내리 꽂았다고 할 수 있겠다. 이러한 일촉즉발의 상황에서도 완벽한 제구를 해낼 수 있는 투수라면 그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이 원하는 방향에 공(계란)을 집어 넣을 수 있을 것이라고 자연스레 예상해 볼 수 있겠다.


그리도 또 하나. 투수를 안정적으로 리드하는 포수도 없는 상황이라는 것을 우리는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보스턴 레드삭스 너클볼 투수 팀 웨이크필드의 경우 팀에서 그를 위해 전담포수 덕 미라벨리를 다시 트레이드해 델꼬온 경우도 있으니 투수에게 포수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새삼 말할 필요가 없는 법. 김성일 투수는 이 세상의 야구 이론을 뛰어넘는 독보적인 선수라 할 수 있겠다.


끝으로 구종을 보자. 속사포와 같았던 투구로 인해 구종을 파악하기가 쉽지 않지만 첫 번째 구종은 매우 빠른 포심 패스트볼(직구), 그리고 중요한 두 번째 구종은 바로 써클체인지업(가장 많이 구사하는 체인지업)으로 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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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클체인지업으로 보이는 김성일투수의 그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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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타자의 몸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흘러나가는 공(계란)의 궤적


뚜렷하지는 않지만 모든 손가락이 살짝 벌어진 상태에서 공(계란)을 쥐고 있는 김성일 투수의 그립과, 공(계란)이 안상수 타자의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휘어나는 것으로 볼 때, 써클체인지업이 확실하다 할 수 있겠다. 우리는 90년대 말 LA 다저스에서 맹활약했던 ‘챈호퐉’을 통해 확인했다. 확실한 직구와 직구를 던질 때와 폼은 같지만 속도가 느리고 궤적이 휘는 체인지업의 조합이 얼마나 위력적인지 말이다.(그래서 챈호퐉을 내새운 컴퓨터 이름도 체인지업이었다). 그는 자신이 던진 두 개의 공을 통해 '직구와 써클체인지업의 조화 + 제구' 두 마리 토끼를 한큐에 잡는 위력을 선보였다. 더 이상의 설명이 무의미할 뿐이다.



5. 신의 영역에 도달한 마인드.


마인드. 아무리 신이 내린 투구폼과 구속, 제구력을 모두 갖추고 있다 하더라도 자신을 관리하는 마인드가 허접할 경우 제 기량을 뽐내기도 전에 구장의 뒤켠으로 소리소문 없이 사라지게 된다. 2000년 혜성처럼 등장한 릭 엔키엘이 그러했다. 신인이었던 릭 엔키엘은 2000년 31경기에 등판해 11승 7패, 3.50의 방어율, 197개의 삼진을 잡으며 신인왕 투표에서 2위를 기록했다. 하지만 플레이오프에서 스트라이크를 던지지 못하는 ‘스티브 블래스 증후군(뚜렷한 이유없이 스트라이크를 던지지 못하는 현상)’ 겪으며 무너지기 시작. 이후 투수로서 제대로 활약하지 못하고 타자로 전향해 평범한 이력만을 남기게 되었다. 전문가들은 플레이오프 첫 경기 등판 부진으로 인한 심적부담과 두려움을 원인으로 뽑기도 한다. 이렇듯 투수에겐 공과, 마음의 컨트롤이 모두 필요하다 할 수 있는 것. 이 부분에서도 김성일 투수는 단연 돋보인다.


창원새누리스 2군 김성일 투수가 상대한 타자는 바로 창원야구협회위원장 안상수 타자였다. 보온병을 들고 타석에 들어서 온 야구팬들을 경악시킨 바로 그 선수. 일개 새누리스 2군 투수가 협회장을 겸직하고 있는 타자를 상대한다는 것 자체가 부담. 게다가 김성일 투수는 옛 진해구 육군대학 터로 결정된 NC다이노스 야구장 입지를 마산종합운동장으로 변경한 것에 대한 항의라는 정치적 목표도 가지고 있었으니 부담감은 ‘곱하기 100’. 하지만 그는 그런 심적부담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완벽한 투구를 선보였다. 동시에 그는 자신이 준비한 모든 것을 보여주는 투구와 함께 새누리스 출신인 안상수 타자를 배려하는 모습까지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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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일의 투구폼과 제구력을 보았을 때, 그는 두 개의 공을 모두 정확히 안상수 타자의 마빡에 정통으로 꽂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상대적으로 부상의 위험이 덜한 타자의 오른팔 알통 부근에 첫 번째 빠른 포심패스트볼(직구)을 던지고는 예측하기 힘든 두 번째 써클체인지업(체인지업)은 타자의 머리를 향하다가 바깥쪽으로 빠지게끔 완벽하게 제구함으로써 타자에게 위압감을 주되 함께 '탱자탱자'하는 동료로서 상대의 몸땡도 배려하는 꼼꼼함까지 선보인 것이다.


완벽한 투구폼과 제구능력. 거기에 일반인이 상상하기도 힘든 대범함이 깃든 마인드 컨트롤을 통해 창원새누리스 2군 투수 김성일은 100년 야구역사에 길이 남을 투구를 선보인 것이다.



'김성일상'을 제정하라.

 

그의 나이 70세. 이 노익장의 투구는 수백, 수천 년 이어질 야구 역사 곳곳에서 회자 될 것이다. 투수가 갖추어야할 모든 것을, 그것도 완벽하게 갖춘, 시대를 홀라당 타임워프하고도 남을 김성일 투수의 등장은 야구팬은 물론 야구를 모르는 모든 스포츠팬들에게도 축복이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투수는 마운드에 서 있을 때 비로소 빛이 나는 법. 전임 창원야구협회장이 행정절차에 따라 진해 육사부지에 건립하기로 한 야구장을 버리고, 행정절차를 무시한 채 독단적으로 마산 야구장에 옆에 있는 마산종합운동장 주경기장을 허물고 야구장을 새로 지어 혈세를 낭비한다는 이유와 창원(진해) 시민들의 요구를 무시했다는 분노가 그를 움직였다고 해도, 투수가 마운드가 아닌 회의장에서 공(계란)을 뿌린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은퇴 선수들에 대한 복지연금 약속도 가볍게 말을 바꾸고, 아픈 선수들을 보살피겠다고 해놓고 언제 그랬냐는 듯 등 돌리고 만날 생각도 하지 않는 새누리스 프론트의 모습이 어제, 오늘 일이 아니긴 하다만, 경기장에서 아름답게 보온병을 들고 있는 안상수 타자와 상대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다.


그런 아쉬움을 뒤로 하고, 김성일 투수가 던진 불꽃볼(계란)을 복원해 안상수협회장의 트레이드마크인 보온병에 담아 영구보존함과 함께 미국 메이저리그의 사이영상처럼 한국 최고의 투수를 꼽는 '김성일상'을 제정하는 것이 이 땅의 야구인 모두와 역사에 길이 남을 '투수 김성일'에 대한 당연한 예의임을 다시금 강조하며, 필자는 급하게 쓰느라 참고 있던 똥이나 누러 갈까 한다.


이상.







너클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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