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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03. 23. 월요일

金氷三









처음 싱가포르를 가 본 것이 대략 20년 전. 당시의 싱가포르는 별 다를 것이 없는, 잘 사는 흉내(?)를 내보고자 노력하는 도시 국가였다. 처음 도착하자마자 눈에 띄던 것이 수많은 금지 표시와 벌금 액수, 그리고 'By Law'라는 단어였으니까. 그러던 싱가포르가 2000년 초 이후에는 진짜로 눈에 띄게 달라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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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에도 싱가포르를 매우 부러워하고 살만한 나라(실제로는 도시 국가이지만)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깨끗한 도시인데다 아시아임을 떠올릴 수 없을 만큼 수많은 외국인과 풍광, 그리고 높은 국민 소득.


사실 오늘날 싱가포르의 발전에는 리콴유가 만든 안정된 정치체제, 홍콩의 중국 반환으로 인한 기회 이득, 금융 중심지로의 부상이 있었지 않나 싶다. 사실 인구 350만으로 할 수 있는 경제 발전 수단이 뭐 그리 많겠는가. 아는 사람은 알다시피 싱가포르의 '안정된 정치 시스템'은 바로 '독재 체제'를 뜻한다. 독재가 편하고 효율적인 이유는 통치를 당하는 입장에서 쓸데없는 생각을 할 필요도, 정력을 낭비할 필요도 없이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헉슬리의 미래 소설 <멋진 신세계>와 조지 오웰의 <1984>를 합했을 때의 모습이 싱가포르와 가장 잘 어울린다. 길에는 사복 차림을 한 비밀경찰이 쉬지 않고 불순분자(?)를 감시하고, 능력에 따라 국가가 개인의 용도를 지정 내지는 한정해주는 모습. 그게 싱가포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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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1984'의 한 장면)



싱가포르에서는 초등학교를 졸업했다고 무조건 중학교에 진학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정원 자체가 다르다. 즉, 누군가는 초등학교만 졸업하도록 되어 있다. 왜냐하면 사회에는 초등학교만 졸업해도 할 수 있는 일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쓸데없이(?) 중학교에 진학하는 것을 비효율적이라고 판단하는 것이다. 이는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 대학교를 졸업할 때도 마찬가지다.


또한 최고로 권위 있는 대학인 '싱가포르 국립대학'에는 인문학과 관련한 학과가 아예 없다. 사회학이니, 정치학이니, 철학이니 하는 것은 당장 도움이 되지 않을 뿐더러 사회적 분쟁을 야기할 수 있기 때문에 아예 가르치지 않는다. 의대나 공대, 문과의 경우는 부동산 운영관리학과, 자산 중개학과 등 돈과 직결되는 과들만 운영한다. 복잡한 사회적 이슈나 인간의 본질 따위는 잊고 그저 돈만 생각하라는 그런 발상이 아닌가 싶다. 혹시라도 싱가포르인 중에 누가 괜찮은 인문학 관련 책을 낸 적이 있는가 생각해 보라. 단 하나도 없다. 싱가포르가 이룬 경제적 성과에 비하면 놀라울 정도로.


물론 싱가포르는 정치적으로 매우 청렴하다. 뇌물을 받았다가는 어마어마한 처벌을 받지만, 애초에 월급을 많이 준다. 싱가포르의 의원은 연봉이 수억이다. 장관쯤 되면 십억 단위를 넘어가기도 한다. 충분한 돈을 줄 테니 부정을 저지르지 말라는 말이다. 실제로 싱가포르 정치인이 뇌물을 받거나 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이들은 행동이 매우 자유롭고, 기업인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거나 골프를 쳐도 아무도 이상한 눈으로 보지 않는다. 뇌물을 받을 리가 없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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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렇게 형성되는 인맥이 일반인들보다는 기업인들에게 유리한 정책으로 반영될 것은 자명한 일이다. 싱가포르는 그래서 경제인과 정치인의 협력이 잘 이루어지는 국가 중에 하나다. 우리나라 경제인들이 보면 얼마나 부럽기도 하겠지만, 자본과 노동의 괴리를 더 심화시키는 일이기도 하다.


싱가포르에는 아직 최저임금이 없다. 싱가포르 같이 좋은 나라에서 살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국민 소득이 5만 불을 넘는다고 하니, 시급이 우리 몇 배는 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10여 년 전 기억을 되살려 보면, 당시에 일반 정규직 노동자들, 대학을 졸업하고 경력이 2~3년쯤 되는 엔지니어의 월급이 대략 1,000싱가포르 달러(70만 원)일 때, 회사 사장의 연봉은 30억 원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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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사정이 약간 나아졌겠지만, 기본적으로 싱가포르에서 '노동'으로 벌 수 있는 돈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낮다. 그래도 우리보다 나은 점은, 그 돈으로 생활은 할 수 있는 시스템 정도다. 부자가 페라리를 타고 100억 원짜리 아파트의 투명 엘리베이터로 40층인 자신의 집까지 갈 수 있는 나라이기도 하지만, 서민이 동네 뒤쪽의 허름한 노상 식당에서 1~2불짜리 볶음밥을 사먹을 수 있는 나라이기도 하다.



싱가포르에서 최고 부자는 리콴유의 며느리이자 현 총리의 마누라라는 말이 공공연할 정도로 리콴유 일가의 재산은 어마어마하다. 하지만 거기에 아무런 비토를 하지 못할 정도로 싱가포르는 안정된(?) 사회다. 누군가 싱가포르를 잘사는 북한이라고 표현하기도 하는데, 적어도 싱가포르에 북한만큼의 경제적 평등함(?)은 없는 게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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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 사랑해요"



이명박 이래 수구정권들이 발전의 모델로 꼽는 대상 중 하나가 싱가포르이다. 급속한 발전에다가 확실한 빈부 격차, 거기다 반발 없는 안정된(?) 사회는 수구 기득권의 '드림'이 아니겠는가.


싱가포르가 근 20년 만에 국민소득 1만 불에서 5만 불로 유례없이 빠르게 성장한데 중요한 이유가 있다. '싱가포르가 잘 사는 것과 싱가포르인이 잘사는 것'이 다르다는 것이다. 무슨 말인가 하면, 싱가포르는 경제발전을 위해서라면 능력 없는 싱가포르 사람보다, 외국인이라도 능력 있는 사람을 택한다. 중국인이 되었건, 인도네시아인이 되었건, 말레이시아인이 되었건, 심지어 한국인이 되었건 이들이 가진 돈이 많거나 능력이 출중한 사람이라면 언제든지 받아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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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콴유의 모습



오늘날 싱가포르 발전의 이면에는 능력 없는 오리지널 싱가포르인들의 비참한 실상도 숨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金氷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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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딴지일보 챙타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