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03. 27. 금요일
파토
어릴 때부터, 과학은 원래 어렵고 재미없으나, 우리 주변의 물건들이나 일상과 관련되면 흥미로와진다는 말을 줄창 들어왔다. 그래서 잡지나 신문, 방송 등에서 실생활에 도움이 되는 유익한 과학 지식, 머 이런 것들도 많이 보고 읽고 들었다. 아마 열분들도 크게 다르지 않을 거다.
그래서 우리는 그렇게 믿게 됐다. 과학의 재미있는 부분은 맥가이버가 물리나 화학 지식을 동원해 난국을 헤쳐 나올 때, 혹은 스폰지나 호기심 천국 같은 티비 프로그램에서 뭐와 뭐를 섞으면 어쩌구의 이상한 현상이 일어난다 따위의 대목이라고 말이다.
우원은 진심으로, 열렬히 그 생각에 반대한다. 한번도 그런 생각을 가져 본 적 조차 없다. 물론 저런 것들이 전혀 재미가 없다는 말은 아니지만, 결국 단편적이고 사소한 흥미 거리에 그칠 뿐이다. 그리고 진짜, 정말로 가슴 뛸 정도로 재미있는 것은 단편적이고 사소한 것들에서 오는 게 아니다.
그래서 과학은 실은 실용적이지 않은 부분에서 가장 재미있다.
우원도 맥가이버 좋아했지만 그는 과학자라기보다는 공학자(엔지니어)고,
우리가 즐기는 것은 기묘한 상황들에서 주변 물건들을 사용하는
그의 출중한 능력과 캐릭터지 과학적인 면 자체가 아니다.
살면서 맨 처음, 진정한 경이감을 느꼈던 때를 우원은 기억한다. 아마 초등학교 때였지 싶다. 내 손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는데 그 손이 갑자기 낯설게 느껴졌다. 내 몸의 일부인데도 이렇게 마치 내가 아닌 다른 것인양 쳐다볼 수 있다는 데에서 확, 신비감이 들었다.
그래서 손가락을 움직여 봤다. 움직인다. 내가 움직이고 싶은 손가락이 '놀랍게도' 내 의지대로 움직이고 있다! 그 전에도 수천 번은 했을 이 뻔한 동작이 갑자기 너무나 새롭게 느껴지면서 대체 어떻게, 왜 이게 가능한건지 궁금해졌다.
그리고는 곧 그것에 관해 내가 아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그저 내게 주어진 신체적, 정신적 능력에 의해 당연하다는 듯 손가락(그리고 다른 모든 부분들)을 움직이지만 어떻게 그게 가능한지에 대해서는 완전히 무지했던 거다. 근육이 뼈에 붙어서 당기고 있다, 비스무리한 정도는 유추가 가능했지만 거기까지였다.
그 근육에는 어떻게 내 명령이 전달될까? 그 명령 신호들은 어떻게 각각의 손가락과 관련된 근육을 구별하나? 그리고 무엇보다도, 도대체 내 머리 속에서 생겨난 이 '의지'가 어떻게 모종의 신호로 변해서 정확한 손가락 움직임이라는 물리적 현상으로 현현될 수 있단 말인가!
머, 솔직히 초딩 주제에 이렇게 구체적으로 생각하진 않았을거다. 하지만 의지라는 내 맘속 무형의 무엇인가가 몸의 움직임을 일이킨다는 점에는 실제로 아주 깊은 경이감을 느꼈다. 나아가 그것에 대해 아무것도 모름에도 그 동작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더욱 놀라웠다.
그래서 이 일을 수십 년이 지난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우원은 아직도 이게 신기하다.
우원 손 아님
내 자신의 손에 대한 이 갑작스러운 각성은 실용성이라고는 눈꼽만치도 없다. 머 아주 길고 크게 보면야 뇌에서의 뉴런 발화가 각 기관에 미치는 영향 등을 통해 치료에 도움이 되는 면도 있을 수 있겠지만, 적어도 내 자신에게 미치는 실용성하고는 무관하다. 하지만 그 신비함이 주는 모종의 강렬한 재미랄까 쾌감이랄까는 분명히 존재한다.
실제로 우원이 팟캐스트 <과학하고 앉아있네>나 기타 과학 관련 토크 콘서트, 전시 등을 할 때 경험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주변에서는 실제적인 것을 이야기하고 실용적인 정보를 전달할 때 사람들이 더 관심을 가질거라고 여기곤 하는데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고 오히려 반대다.
항상 제일 인기를 끄는 것은 그런 것과는 가장 먼 지점들의 것, 거대한 우주의 이야기나 상대성원리, 양자역학 등 어렵기 그지없는 물리학 개념, 수십억년의 생물 진화 같은 거다. 나름 실용적이고 그래서 대중적일거라고 접근했던 3D 프린터 같은 것은 의외로 열광적인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왜? 사실 생각해보면 이상할 것도 없다. 우리는 철저히 실용성의 융단 폭격 속에서 생활하고 있다. 특히 우리 사회는 유달리 그게 심해서, 뭘 하든 간에 뭔가 쓸모가 있거나 쓸데가 있거나 돈이 되거나 애들 진학에 도움이 되야 한다. 그렇지 않은 일에 시간과 돈은 물론 머리와 마음을 쓰는 건 도무지 쓸데없는 짓이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에, 역설적으로 이 실용성의 강요가 주는 피로감이 장난 아니다. 그리고 여기에 집착하면서도,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그게 한편으로 공허함의 원흉이라는 사실을 어떤 수위에서는 다들 알고 있다. 다만 이미 올라탄 호랑이 등에서 내려 올 수 없을 뿐이다. 그런 와중에 과학이든 뭐든, 실용적이고 일상적인 면만 강조한다면 뭐가 그리 재미있을까?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정말 좋아하는 건 현실 적용성 따위가 아니라 신비한 이야기다. UFO나 초능력, 고대 문명 등의 이야기는 누구에게나 관심을 끄는 소재고 우원은 성향상 살면서 그걸 확인할 기회가 아주 많았다. 사람들이 이런 걸 재미있어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실용적이거나 일상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보고 겪는 이것들, 이 조그맣고 한정된 세상이 다가 아니라는 것, 그 뒤에는 뭔가 거대하고 놀랄만한 것이, 숨겨진 비밀과 드라마가 존재할 지도 모른다는 것을 믿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화제를 끌었던 '쓰레기통' UFO. 이건 대체 뭘까.
하지만 애석하게도 이런 이야기들의 대부분은 사실이 아니거나 검증되지 않은 것들이다. 그래서 우리가 이런 것들의 신비함을 즐기는 데도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 확신을 가질 수 없는 것에 대한 믿음에는 언제나 찝찝함이 따른다. 종교처럼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믿음을 갖고 뭉쳐 있지 않은 한 의심이 삐져 들어오는 걸 막을 수 없다.
그런데 이제 여기 과학이 있다. 사실 과학이 이야기하는 세상은 UFO나 유령, 초능력 이상으로 신비하다. 시공간은 ‘실제로’ 구부러져 있어서 블랙홀 주변에서는 빛이 잡혀 먹히고 시간이 엄청 느리게 간다. 그리고 그런 사실은 우리는 보지도 느끼지도 못하는 다른 차원의 존재를 상정한다. 빛은 초속 30만 킬로미터의 유한한 속도로 달리지만 우주 속 어느 것도 이보다 빨리 움직일 수 없다.
우리 은하에는 천억개의 태양이 있다. 우리 지구는 태양을 돌고 태양은 은하를 돌며 은하는 또 어딘가의 중력 중심을 돌고 있다. 그래서 '일상에서는' 정지해 있는 듯한 우리들은 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엄청난 속도로 움직이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다. 이런 놀랍고도 이상한 세상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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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삼아, 이렇게 평소처럼 딩굴고 있는 호머 심슨이 실제로는 얼마나 빨리 움직이고 있는지 한번 계산해 보자.
미국이니 대략 서울과 같은 위도에 있다고 보면 자전속도는 시속 1,337km 로 일단 음속을 넘어선다. 여기에 지구가 태양을 도는 속도인 시속 107,000km 가 더해진다. 음속의 87배, 즉 마하 87의 속도다. 그리고 태양계 전체가 우리 은하 중심을 공전하는 속도는 그 8배에 가까운 시속 792,000km다. 이는 1시간에 적도 주위를 20바퀴 도는 속도이며 마하 647에 해당한다.
하지만 여기가 끝이 아니다. 우리 은하계 전체도 빠른 속도로 움직이고 있는데, 이 속도는 우주배경복사를 기준으로 측정한다. 그 측정값은 자그마치 시속 2,100,000 km다. 우리 모두는 가만히 누워 있어도 이런 엄청난 속도로 움직이고 있다. 중요한 것은 이것이 '실재'고 소파에 널브러져 꼼짝 않고 있다는 호머의 생각이 실은 '환상'이라는 것이다.
우리 자신의 존재는 어떠냐? 단세포
생물뿐이던 지구에 30여 억년이 지나자 인간이 생겼다. 우리는 단세포 생물들이 각자 살아남기 위해서 역할을 분담해 구성한 거대한
사회다. 자연이 그 법칙을 통해 만들어낸 우리들, 인간이라는 시스템은 하나하나가 너무 복잡해서 우주 전체와 맞먹을 정도다. 게다가
그렇게 생겨난 우리가, 마치 우원이 우원 손가락의 움직임을 궁금해했듯이 이제 우리를 낳은 우주의 법칙을 역으로 찾아내고 있다.
이것들은 꿈이거나 환상이거나 찝찝한 과장이 아니라 모두 실체적 진실이다. 비록 우리가 과학으로 모든 걸 알아내지는 못했지만, 그리고
지금 사실이라고 믿는 것들의 일부는 아마 잘못된 거겠지만, 적어도 과학은 다른 대책없는 신비주의와 달리 진실의 궤 속에서 엄밀한
기준하에 움직인다.
이런 것들을 조금만 느끼고 나면, 여기에서 얻을 수 있는 재미라는 것의 수위가 세상의 거의 모든 다른 것들을 초월한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 일상적인 쓰임새에서 멀수록, 실용성이 없는 것일 수록 우리가 사는 세상의 기괴함을 실감나도록 느끼게 한다. 그래서 그
어떤 상상도 우리가 실제로 살고 있는 우주의 기묘함을 넘어서지 못한다. 그래서 실용성없는 과학은 우리가 실은 중간계나 매트릭스보다
더 이상한 우주에 살고 있는 괴상한 존재라는 것을 끊임없이 상기시킨다.
그래서 우원은 과학 교육이 되었든 대중화가 되었든, 그 시발점은 실용성이나 유용성과 정 반대가 되는게 맞다고 본다. 실용성과 현실
적용 사례는 꼭 필요한 때만, 원래의 경이감이 강화되는 효과가 있을 때만 들이밀어도 충분하다. 그렇게 과학의 진정한 재미를 느끼고
깨달은 사람들이 과학을 발전시킬 수 있고, 심지어 실용적으로도 의미있는 새로운 것들마저 결국은 만들게 되는 거다.
우주는 시초부터 정말 이상한 것인 특이점에서 시작됐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이 괴상망측한 건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그러니 열분들아. 과학의 거대담론을 한껏 즐기시라. 어처구니 없으리만치 거대한 세상과 있을법 하지 않은 극미한 세상의 이야기들,
하루하루의 생활 속에서 아무짝에도 쓸 데 없고 먹고사는 데 아무 도움도 되지 않고 취직이나 애들 진학과도 일체 상관없는 그것들을
즐기시라.
바쁘고
정신 없다고? 이미 열분들은 그런 짓들 많이 하고 있다. 맘 맞는 친구들하고 술잔 기울이는 게 굳이 쓸데 있어서 하는 일이며,
오다가다 차에서 음악 듣는 건 취직에 도움돼서 하는 짓이며, 무한도전은 애들 대학 보낼려고 보냐. 인간은 결코 실용성만을 따지며 살
수 없고, 그렇게 살아서도 안된다. 아니, 실은 비실용적인 것일수록 더욱 인간적인 거다.
실용성은 그 속에서 자연히 꽃피게 놔두면 된다.
현재 본지는 <생각비행>출판사와 연계하여 딴지 인기연재물을 출판하고 있다.
첫빠타로 <호모 사이언티피쿠스> 가 책으로 나왔고
글의 이해를 도울 수 있도록 사진과 일러스트, 관련 자료 출처, 계보 등
아주 보기 좋게 정리가 되어 나온 상태.
많은 언론에서 본 저서를 다루었기에 언론사 서평 또한 링크 걸어 놓았다.
관심 있으신 분덜은 아래로 놀러가시라.
지난 기사
29. 영생, 인류 마지막의 유혹 , Memento Mori 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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