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11. 06. 목요일
파토
“너 생긴
걸 보니 진화가 덜 됐구나.”
어릴 때 이런 이야기를 자주 들어 봤을 거다. 아니 머, 열분들이 직접 들어보진 않았어도 주변에서 서로 저런 소리들을 했을 것임에는 분명하다. 주로 이마가 튀어나오고, 눈이 움푹 들어가고, 기골이 우락부락한 타입들이 이런 놀림의 대상이었다. (사진은 푸틴의 경호실장이자 아마추어 레슬링의 신이자 진정한 세계 최강자로 일컬어지는 알렉산더 카렐린 형님이시라
이 논의와는 무관하시다).
남의 외모를 갖고 이런 소리를 하는 건 절라 무례한 짓이지만, 여하튼
이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진화 덜 된' 존재는 대개 수만년
전 멸종된 네안데르탈인을 뜻하는 듯 하다. 따라서 이 말의 배경에는 우리, 즉 현생 인류인 크로마뇽인이 네안데르탈인보다 한 차원 더 진화된 종족이라는 관념이 깔려 있다.
머 말이사 맞는 말 아니냐고?
바로 이
지점에서부터 진화에 대한 오해가 시작된다.
현생인류와 네안데르탈인.
오른 쪽 사진에서 연상되는 친구들 한
둘은 있을거다.
진화에 대한 일반의 관점은 대략 아래의 문장으로 정리될 수 있다.
아메바가 프랑크톤이 되고, 프랑크톤이 벌레가 되고, 벌레가 물고기가 되고,
물고기가 개구리가 되고, 개구리가 도마뱀이 되고, 도마뱀이 쥐가 되고,
그리고 원숭이와 유인원이 등장해서
마침내 인간으로 바뀌었다.
이렇게 하등동물들이 점점 복잡하고 진보된 종족으로 변해 가면서 수십억년 후에는 컴퓨터를 만들고 자신들의 진화에 대한 글까지 쓰고 앉은 우리 인간으로 발전되었다는 게 대부분 사람들의 진화에 대한 생각이다.
그래서 이걸 그림으로 그리면 대충 이렇게 된다.
영어는 몰라도 된다.
위에 예로 든 문장하고 대략 같은 소리임.
머 그럴싸해 보이지만 잘 생각해 보면 좀 이상한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아메바를 포함해 인간보다 '하등한' 단계에 있던 많은 생물들도 지금 현재 멀쩡히 잘 살고 있지 않냐? 그럼 그 수십억년 동안 얘들은 대체 진화 안하고 뭘 한 걸까. 나비는, 상어는, 도마뱀은, 코끼리는, 그리고 침팬지는 왜 위 그림처럼 사람을 목표로 변해가지 않고 계속 저러고들 사냔 말이다.
그럼 진화란 건 한 종이 다른 종으로 변화/발전/진보하는 게 아니라, 남을 애들은 남고 한편으로 과거에 없었던 종이 새로 생겨나는 과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진화를 저런 식의 목표 지점을 가진 움직임이라고 말하기 어려워지고, 실제로 아메바는 플랑크톤이 되지 않고 침팬지는 절대 인간이 되지 않는다.
이걸 설명하기 위해 등장하는 개념이 바로 다윈의 '자연선택'이다. 이게 좀 복잡하니 예를 하나 들어 보자. 아래의 이야기는 실제 진화상에서 일어난 팩트라기 보다 우원이 대충 지어낸 거지만 이해하는데는 도움이 될 거다.
옛날에 영희라는 다람쥐가 있었다.
얘는 우연한 돌연변이로 앞다리 밑 겨드랑이의 피부가 넓게 처져 있어 친구들 사이에서 왕따로 외로운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주변에 뭔가 변화가 생겨 영희가 사는 숲에 작은 동물을 잡아먹는 사나운 짐승들이 늘어나게 됐다. 그래서 다람쥐들은 가급적 땅으로 다니지 않고 나무 사이로 뛰어다니게 됐는데, 처진 살이 날개 비슷한 역할을 해서 영희는 다른 다람쥐들보다 좀 더 멀리 뛸 수 있었다.
그 결과 영희를 왕따시키던 일진들은 대부분 떨어져 잡아먹히고, 살아남은 영희의 자손들이 점점 번창하게 됐다. 겨드랑이 막이 넓은 다람쥐일수록 생존 확률이 더 높았기 때문에 오랜 세대가 지나면서 막은 점점 더 넓어졌다.
그렇게 날다람쥐라는 새로운 종이 생겨났다.
날아라 다람쥐
뭐야, 변한 거 맞네. 할지도 모르겠지만 그게 아니다. 차근차근 함 보시자.
영희에게 막이 있던 것은 어떤 목적도 없던 우연한 돌연변이의 결과다.
돌연변이는 모든 생물에서 일어나는 유전자나 염색체 상에서의 '에러'로 예측이 불가능하다.
그런데 갑자기 영희의 생존에 유리한 쪽으로 자연 조건이 변화한다.
덕택에 일진들이 죽는 동안 영희는 살았고 왕성하게 번식했다.
당연히, 그런 영희의 자손들 중에도 막을 가진 아이들이 있었다. 돌연변이는 유전되기 때문이다.
그 아이들 중에서도 가급적 큰 막을 가진 애들이 비행시간이 길어 생존 확률이 높았다.
그 큰 막을 가진 아이들이 교미해서 자손을 낳고, 이런 상황이 수없이 반복되면서 같은 이유로
후손들의 막은 조금씩 더 커지게 된다. 이런 상황이 수천, 수만 세대를 지나면서 지금의 날다람쥐와
같은 모습이 되었다.
보다시피 몸의 모양이 환경에 적응해 주체적으로 변한게 아니다. 단지 어쩌다 돌연변이로 막이 있던 개체들이 상황에 맞아 살아남았고, 그 형질이 유전되어 그 후손들도 막이 있었을 뿐이다. 이것이 반복되면서 점점 넓은 막을 가진 애들이 더 많이 살아 남으면서 주류를 이루고 결국 날다람쥐라는 새 종이 생겨나는 거다. 요 상황을 끌어낸, 즉 땅바닥에 다람쥐의 포식자들이 늘어난 일을 유식한 말로 '선택압'이 작용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렇게 새로운 종이 생겨날 때까지는 대개 수천 년 이상에 달하는 긴 세월이 필요하다.
그래서 비록 저 숲에서는 날다람쥐가 생겨났지만 포식자 들짐승이 늘어나지 않은, 즉 겨드랑이 막과 관련된 선택압이 작용하지 않은 다른 숲의 영희 사촌 명자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다람쥐는 그냥 다람쥐로 남아 있게 된다.
요게 바로 아메바는 왜 지금도 아메바고 상어는 왜 상어인지의 답이다.
걔네들은 이미 자신들의 환경에 맞게 충분히 진화하고 적응해 있기 때문에 거기서 굳이 변해갈 이유가 없다. 즉, 지금 지구상에 살아 있는 모든 생물들은 이미 현재 관점에서 진화적으로 최대한 업데이트 된 상태인 거다.
그래서 진화는 앞에서 본 사다리나 계단이 아니라 아래의 나무 형태로 표현하는 게 옳다는 말씀.
이 그림도 정확한 건 아니지만, 대략 굵은 세개의 나무가지가 위로 뻗어나가는 것을 시간의 흐름으로 보면 된다. 그 흐름 속에서 일렬로 하등동물 -> 고등동물의 방향으로 발전하는 게 아니라, 돌연변이와 자연선택의 과정 속에서 옆으로 가지를 치며 새로운 종이 생겨난다. 그랬다가 공룡처럼 멸종하기도 하고, 잠자리처럼 인간과 같은 시간 대까지 살아남아 있기도 하는 거다. (따라서 이 그림이 정확해지려면 인간이 저렇게 맨 위에 혼자 있는 게 아니라 현재 살아 있는 모든 생물 종이 윗줄에 똑같이 위치하는게 바람직할듯 하다)
한편, 아래 그림은 우리 인간 주변의 상황을 나타낸다.
오른쪽 'Not Evolution' 파트가 우리가 흔히 착각하는 진화의 모습인데 저런 일은 안 일어난다. 지금 존재하는 모든 유인원들은 각자의 영역에서 가장 진화한 상태고, 인간으로의 진화를 위해 대기하고 있는 게 아니다. 따라서 수백만년이 지나도 그들은 결코 '우리'가 되지 않는다. (그들의 후손 중 지능이 발달한 다른 종족이 생겨날 수는 있지만 그게 인간은 아님)
반면 왼쪽의 그림은 제대로 된 진화의 형태다. 맨 아래 붉은 사각형은 고릴라와 인간(왼쪽에서 두번째의 다윈), 침팬지, 보노보 등이 수천만년 전 같은 조상을 갖고 있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그러다가 어느 시점에 고릴라와 나머지의 조상이 갈라졌고, 시간이 지나 다시 인간과 침팬지/보노보의 조상이 갈라졌다. 가장 늦게 갈라진 것이 침팬지와 보노보인데 이들은 실제로 구별이 어려울 정도로 흡사하다.
자, 이렇게 보면 친구들 중 누가 누구보다 더 진화햅네 아닙네 말하는 것이 얼마나 말도 안되는 소린지 알 수 있다. 우리가 네안데르탈인보다 더 진화한 게 아니라 같은 조상에서 갈라진 네안데르탈인과 크로마뇽인 두 종족 중 전자가 멸종되고 후자가 살아남은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 현생 인류는 네안데르탈인의 후손이 아니라 명이 더 긴 친척일 뿐이다.
침팬지나 보노보 등과 비교해도 마찬가지다. 우리의 진화 방향이 이런저런 이유로 문명과 과학기술을 발전시킬 수 있는 방향이었던 것일 뿐 우리가 그들보다 진화가 '더 된' 게 아니다.
안다 알아. '그 과학기술을 통해 강한 힘을 갖고 지구를 지배하게 됐으니 역시 인류야말로 가장 진화된 종족이다'라고 말하고들 싶은 거. 인류가 뇌를 기준으로 봤을 때 가장 '복잡하게' 진화한 건 맞다. 그리고 어떤 의미에서는 다른 생물에 비해 발전되거나 진보된 것도 사실일 거다. 하지만 과연 지구를 '지배'하고 있을까?
천만의 말씀. 생물학적 관점에서 지구를 지배하는 존재는 35억년 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로 박테리아다. 다른 모든 생물을 다 합쳐서 제곱해도 비교도 되지 않는 압도적인 개체수와 짧은 수명을 통한 엄청난 환경 적응력(개체가 많고 수명이 짧은 종일 수록 선택압에 적응하기 쉽다) 을 통해 이들은 지구에서 일어난 여러 번의 대파국과 멸종에서 살아남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 분명하다. 거기에 비하면 우리 인류는 기나긴 지구 역사 속에서 잠깐 잘난척하다 사라질 그림자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오늘의 포인트는 이거다.
생물학적 진화, 즉 다윈의 진화는 진보나 발전과는 다른 개념이라는 것.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니 어쩌니 해도 진화라는 관점에만 따지면 다른 현존하는 생물들과 같은 위치에 있다는 거. 머 여기에도 학자들 사이에 세세한 의견차이는 있다만, 그건 열분들이 앞으로 리처드 도킨스나 스티븐 제이 굴드 같은 사람들의 재미있는 책을 읽으면서 직접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란다.
그럼 담 이 시간에.
파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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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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