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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영화 포레스트 검프의 유명한 초콜릿 얘기처럼, 내게도 생은 그랬다. 맛있는 과자를 먹으려면 맛없는 과자도 먹어야 하는 종합선물 과자세트. 심지어 맵고 짠 과자들만 잔뜩 들어 있는 그런 과자 세트, 한데 돌이켜 보니, 나는 그런 달지 않은 과자들을 먹으면서, ‘분명' 뭔가를 얻었다. 오늘은 그 얘기를 하려고 한다.

 

 

2.

내가 받은 과자 박스는 어떤 의미로든 남달랐다. 이 사실을 처음 알았을 땐, '왜 나한테는 이런 과자를 줬지? 대체 왜 나지?' 라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내가 박스를 나눠 주는 사람이라도, 이런 식의 불행 세트는 나한테 가져다 줄 것만 같다. 왜냐면, 아무리 주위를 둘러봐도, (여러 의미에서) 이런 박스를 받아 들만할 사람은 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물론 다 지나왔으니 하는 말이다.

 

생의 특이한 이력 때문에, 남들보다 좀 담대한 면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담당의사 얘기를 따르면 그건 아니란다. 애초에 내가 그런 성격을 타고났고, 또 여태 그 성격을 잘 유지해 온 거란다. 그 말을 듣고 보니 또 그렇다. 어디 성격 고치는 게 쉬운 일이냐고, 마음 바꿔 먹는 게 보통 일이냐고, 그래서, 나한테 그런 박스가 배달된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세상을 긍정하니 말이다.

 

그렇다 해도, 생의 큰 사건들이 나를 성장시킨 것만큼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니 불행은 필요 이상으로 고통스럽다는 단점이 있지만, 겪어내면 ‘분명’ 얻는 게 있긴 하다. 생에 도움이 되든 안 되든 관계없이 말이다.

 

예컨데, 사고 현장에서 너무 많은 죽음과 피를 봐서, 그 후로 어지간하면 피를 보고 놀라지 않는다. 전에 아이들을 돌보는데, 이제 막 잡고 일어서는 아기가 어쩌다 앞으로 ‘쿵’ 하고 넘어져 입술이 터져 피가 철철 났다. 마침 담당 수녀님도 안 계신 상황이라, 자원봉사자들이 놀라 서로 우왕좌왕하는 사이, 내가 얼른 아기에게 가 우는 아이를 달래고, 가제 수건을 적셔 입 주위를 닦은 후, 상처 부위를 찾아 소독하고 연고를 바르니, 옆에 계시던 분들이 나한테 직업이 뭐냐고, 의사냐고, 물어왔다. 아니다. 나는 그저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 중 가장 놀라지 않았을 뿐이다(참고로 입술은 피부 구조상, 상처가 조금 나도 피가 많이 난다).

 

또 어떤 의미로든 돈에 대해 자유로워졌다. 통장에 찍히는 숫자 또는 사회적 성취가 행복의 바로미터가 아니라는 것을 어린 나이에 깨달았기 때문이다. 물론 돈이 많으면 사는 데 여러모로 편하긴 하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라는 말이다. 여태 불행한 부자들을 숱하게 봤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결국 불행해지고야 마는 부자들 말이다. 게다가 '가난'이 어떤 건지 잘 모를 땐 되게 무섭더니, 막상 겪어보니 생각보다 괜찮았다.

 

뭐랄까, 어디 가서 뭘 하든 두 손 바지런히 놀리면, 얼어 죽거나 굶어죽지는 않겠구나, 하는 배짱이 생겼달까, 그러니 돈은, 엄마 말대로 남한테 아쉬운 소리 안 하고 살 수 있는 정도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한다. 사실 살아보니 이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3.

아이들을 보러 간 어느 겨울, 차가운 놀이방에 혼자 남겨져 울고 있는 아이가 있어 "아가야 이모가 젤리 줄게, 이모랑 가자" 하니까, 그 쪼끄만 애가 다시 몸을 웅크리더니 "젤리 아니야" 하며 고개를 저었다. 그래서 곁에 앉아  "그럼 뭐 줄까?" 하고 물으니 "안아줘" 한다. 그 아이 안아들며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그러니까 말이다. 아가 말이 맞다. 젤리 아니다. 사랑이다. 나 또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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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차가워 봐서, 따뜻한 걸 알고, 어두워 봐서 밝을 수 있고, 외로워 봐서, 가족의 의미가 뭔지 안다. 또 불행해 봐서, 너무도 절절하게 불행해 봐서, 행복이 뭔지도 안다. 꽤 오랜 시간 행복에 대해 대단히 큰 착각을 하고 살았다. 내가 겪은 불행이 너무도 명확해서, 너무도 서슬 퍼렇게 선명해서, 행복도 그렇게 요란하게 창문을 깨고 들이닥치는 줄 알았다. 이제 와 보니 행복은 불행과 전혀 달랐다. 행복은 언제나 조용하고 고요하게 생에 스며들었다. 행복은, 그냥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두 죽거나 다치지 않은 상태, 바꿔 말해, 여태 살아오면서 슬프지 않았던 모든 날들이 전부 행복한 날들이었다.

 

얼마 전에 대모님 댁 아이들과 공원에 갔는데, 일곱 살 형아가 장난친다고 내 머리 위로 낙엽을 한가득 쏟아붓자 네 살 동생이 "안 돼" 라고 소리치며 달려와 울먹이며, 그 작은 손으로 내 니트에 붙은 낙엽을 하나하나 떼 주었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한가. 사랑이고 행복이다. 그러니까 행복은 어디 멀리 걸려있는 게 아니었다. 발끝에 채이는 게 행복이었고, 거리마다 널려있는 게 행복이었다.

 

전에 나는, 그러니까 사랑을 몰랐을 때의 나는, 천국은 됐고, 지옥은 있으라고, 반드시 있으라고 했다. 왜 아니었겠는가, 그 파란의 세월 동안, 나라고 무슨 용빼는 재주 있어, 원한 없이 원망 없이 살았겠는가, 수없이 많은 날, 나도 “너는 살아서도 지옥에서 살고 죽어서도 지옥에서 살아라” 했다.

 

하지만 요즘 그런 생각 안 한다. 정말로 지옥이라는 데가 있어서, 악인들이 간다고 치자, 좋다. 헌데 만에 하나,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그곳에 섞여 가면 어떡해. 그래서 싫다. 신자로서 해서는 안 될 말이지만 나는 천국도 지옥도 애초에 없는 게 맞다고 본다.

 

이제, 나는 가슴에 맺힌 게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그 세월 내내, 곧이 곧대로 서서 부는 바람을 이마로 맞은 건 아무래도 좀 아쉽다. 그치만 또, 아무리 생각해도 이런 식의 불행은 견디는 것 외에는 별다른 방법이 없는 것 같다.

 

 

4.

아마 나는 이 글을 끝으로 당분간 아무것도 쓰지 않을 것 같다. 이번에, 글을 쓰면서 이 일이 보통 일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글을 쓴다는 게 향기로운 차 한 잔을 옆에 두고, 우아하게 써 내려가는 게 아니라, 매일매일 미친년처럼 키보드를 두드려대는 막무가내의 노동이라는 사실을 이번에 배웠기 때문이다. 또 올 한 해, 꼴에 글을 쓴답시고 너무 요란스레 보내서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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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삼스러울 것도 없다마는, 세상에는 쉬운 일이 없는 것 같다. 그런 일이 있으면 이미 누가 하고 있거나, 돈 안되는 일들 뿐이다. 그러니 별 수 있나, 앞으로도 지금처럼 그냥저냥 살아야지. 비슷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여 고만고만한 고민을 나누며, 그렇게 말이다.

 

나조차 믿기 어렵지만 우리 엄마는 여전히 내가 크게 될 거라 믿고 있다. 40년도 더 된 태몽 때문이다. 그러기엔 좀 늦은 감이 있다고, 아무리 고쳐 주어도 요지부동이다. 그대로 둘란다. 또 내게는 무슨 일이 있어도 나 잘 되는 건 반드시 보고 죽을 거라고 벼르는 이모도 있다. 그러니 다른 건 모르겠지만, 나는 이분들 때문이라도, 여태도 그랬듯 앞으로도 마음껏 나빠지지만은 못할 것 같다. 그러니 염려 붙들어 매시길.

 

전에 친한 수녀님이 내게 이런 말을 한 적 있다. "기억해. 선민 씨, 하느님은 절대로 선민 씨가 다치는 걸 원하지 않으셔. 그게 어떤 일이든 다치면서 하는 일은 옳은 일이 아니야. 알았지? "라고 말이다. 생각해보니, 그 말이 맞다. 아무리 내 말이 옳아도, 그 말이 사람을 헤치면 안 되고, 아무리 사랑한다 해도 그 사람을 다치게 해서는 안 된다. 앞으로도 명심 또 명심해야 할 말이다. 그래서 하는 말이다. 그대 어디에 있든, 무엇을 하든 무조건 다치지 마시라, 나 또한 그럴 테니.

 

봄부터 지금까지, 참으로 감사한 여정이었다. 혼자서는 여기까지 못 왔지 싶다. 함께 해주신 딴지일보 독자 분들, 자유게시판의 많은 분들, 그 마음에 용기 내어 여기까지 왔다. 따뜻하고 진심 어린 위로, 사는 동안 내내 못 잊을 것 같다.

 

정말 감사하다.

 

 

especially thanks : 그간 글을 쓰라고 부추긴, 죽지않는돌고래 편집장 원망도 많이 했지만, 아마 딴지 편집부가 아니었다면, 내 얘기들은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그들이 있었기에 내 얘기가 그나마 '꼴'을 갖추고 이곳에 실렸으니 말이다.

 

 

 

조금, 긴 뱀발

지난여름 강서 경찰서에 두 번 조사 받으러 갔었다. 특정인을 지칭해 '일베' 라고 SNS에서 여러 번 언급한 죄로, 모욕죄로 고소를 당해, 조사를 받았다. 사실 조사를 받을 때만 해도 원통하고 분했다. 일베한테 일베라고 하는 게 왜 잘못된 건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담당 형사님 말씀이, 모욕죄는 내가 하는 말이 맞고 틀리고가 중요한 게 아니라, 내가 하는 말로 인해 상대가 느끼는 감정이 중요한 거라고 했다.

 

고소인은 형사님한테, 자신은 일베가 아니라 그냥 정치 성향이 '보수' 인 사람이라고 했단다. 이 말을 듣고 집에 와 곰곰이 생각해 보니, 맞다. 형사님 말이 맞다. 이걸로 때리면 아플 거라는 거 모르고 쳤대도, 맞은 사람이 아프면 아픈 거다. 그건 내가 잘못했다. 그러니 미안하다고 하는 게 맞다.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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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아니 다른 것도 아니고, 서로 다른 이념을 갖고도 함께 잘 살아 보자고, 그런 세상 만들어 보자고, 그렇게 열심히 여기까지 와 놓고, 정작 그런 세상이 오고 보니, 어머나 세상에, 나도 예전에 그들처럼 “나는 맞고, 너는 틀려"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 그래서 반성했다. 앞으로도 주의하며 살아야 할 것이다. 잘은 모르지만, 이 세상 모든 일에는 완벽한 정답이 없는 것 같다. 그저 사람들이 오랜 세월 동안 합의로 만들어 온 사회적 규칙과 통계가 존재할 뿐이지. 그래서 반성했다.

 

하지만 여전히 타인의 불행을, 고통을, 가볍게 여기고, 조롱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다른 건 몰라도 그건 정말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또 아무리 사는 게 바빠도 잊지 말아야 할 것들은 잊지 말고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잊지 말자. 기억해 주자.

 

내가 할 말은 여기까지다.

 

그럼 진짜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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