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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미국에서 아이를 낳아서 키우고 대학을 보내면서, 경험하고 배운 것을 바탕으로 쓰는 글이다. 대학 입시와 관련된 미국 사회의 현실을 이야기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한국의 상황과 비교가 될 것이고, 한국의 고질적인 문제(학벌, 서열, 대학 입시의 병폐)에 대한 해결책은 아니더라도 참고해 볼 만한 부분들이 나올 수 있지 않을까. 아님 말고.

 

하버드, MIT의 간판. 미국 내에서도 그렇지만 한국에서는 더한 것 같다. 하버드, MIT의 학생이라면, 일단은 공신이라는 기본 전제를 깔고 바라보게 된다. 거기에 다른 재주라도 하나 더 있으면(노래를 잘한다거나 잘생겼다거나 이쁘거나) 순식간에 엄친아가 된다. 한국에서 아이를 키우는 부모치고, 자기 자식 공부 잘 시켜야 한다는 생각을 안 하는 사람 없을 테다. 자식을 서울대 보내는 게 소원은 부모들도 많고. 하지만 '서울대 로망'은 80년대 얘기다. 요즘에는 자식을 하버드, MIT 같은 해외 톱 클래스 대학에 보내는 게 꿈인 부모들도 많아졌다.

 

주변에서 한두 다리 건너서 누구네 집 아들, 딸이 하버드 들어갔다는 얘기를 들으면, "거봐, 하버드 대학 합격이 그냥 꿈이 아니었다니까. 근데 저 집 아이는 옛날부터 공부를 별나게 잘했어. 옜다 부럽다." 하며 현실이 오묘하게 오버랩된다. 그러면서 하버드 로망을 나만의 것으로만 간직하고 겉으로 떠벌리지 않았던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고는 한다. 난 절대 아니라고 자신 있게 손들 수 있는 사람! 혹시 그런 분 계시면 더 이상 이 글을 읽으실 필요 없으니 패스해도 된다. 패스하고 싶지 않음 말고.

 

 

1. 하버드, MIT가 정말 미국 내에서도 대단하게 받아들여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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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서울대의 위상처럼, 미국에서 하버드, MIT가 최고로 인정되는가? 간단하게 말하자면, "그렇다". 그런데 속내를 들여다보면 조금 복잡해진다.

 

요즘엔 좀 덜하겠지만, 한국은 모든 것이 '서울'에 올인되는 경향이 강하다. 장사를 해도 서울에서 해야 하고, 성공을 해도 서울에서 하는 것이 진정한 성공이고, 공부 역시 서울에서. 왜냐? 서울에서 최고인 것이 곧 한국에서 최고인 것을 의미하니까. 서울대는 수재 중의 수재들이 몰렸고, 서울대 출신들이 수십 년간 한국 사회 곳곳에서 굵직한 영향을 끼쳤다. 좋든 싫든 그것이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 되어 버렸다.

 

미국은 땅덩어리가 워낙 크고 인종과 가치관이 다양하기 때문에, 어느 한 지역에 모든 것이 올인되지 않는다. 무엇보다 한국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 미국에는 '잘난 사람들'이 참 많다. 바꿔 말하면, 잘난 사람들이 잘난 척을 하는 것이 자연스럽고, 그런 분위기를 부추기며, 잘난 척하는 것을 관용적으로 받아들여 주는 사회 분위기가 있다. 누가 잘난 척을 한다 싶으면 사회적으로 금방 매장시켜 버리는 한국과는 차이가 있다는 거다.

 

그래서 하버드, MIT에 대한 인정이나 칭찬에 조금도 박하지 않다. 하지만 주의할 점이 있다. 미국에서 학교 간판에 대한 대화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런 식이다.

 

"하버드, MIT. 참 좋지. 최고 최고!!”

 

그렇게 이야기가 끝나는 게 아니고, 뒤에 뭐가 더 붙는다.

 

“근데 스탠퍼드도 좋아.”

 

미국에는 세계적인 '톱 클래스 대학'이라고 할 만한 대학이 수십 개나 되고, 그런 대학들이 하버드, MIT에 아쉽지 않을뿐더러 더 우수한 경우도 얼마든지 많으니까. 이렇게 뒤에 붙는 말대꾸가 끊이지 않는데, 이걸 가지고 사람들이 게거품을 물고 네가 잘났느니 내가 잘났느니 싸우지 않는다. 그런데 이야기가 여기서 끝나는 게 아니다.

 

"하버드, MIT 참 좋지. 근데 University of Washington도 여러모로 좋아.”

 

이런 식으로 확장이 되기도 한다(워싱턴주, 오리건주 근처에서는 그런 사람들이 훨씬 많을 것이고). 이렇게 유수 주립대까지 붙여주게 되면 수십 개가 아니고, 백여 개의 대학이 “근데 OOO도 좋아”라는 말대꾸에 들어갈 수 있게 된다. 그런 의견들을 무시할 수도 없다. "너만 잘났냐, 나도 잘났다."라는 게 기본적으로 인정되는 미국 사회이기 때문에 그렇다. 그런데 이건 또, 웬걸?

 

"하버드, MIT 참 좋지. 근데 Olin College of Engineering도 좋은데. 몰랐나 보네?”

 

한국에는 별로 알려져 있지 않지만, 미국에서는 이렇게 “듣보(“잡”은 아니고)"에 해당하는 소규모 college들이 많은 데 그중에 많은 대학은 하버드, MIT 만큼이나 들어가기도 힘들다. 즉, 이 학교에 불합격하고도 MIT에 합격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 졸업생들은 여기저기에 진출해서 굵직한 일들을 하고, 그 대학들은 이런저런 이유로 '명문'이라 불리게 되었다. 이들은 자기의 출신 대학에 자부심을 느끼고, 자기는 최고의 대학 교육을 받았다고 한다. 아무도 이들에게 딴지를 걸지 않는다.

 

한국에서는 대학 선택을 할 때 그 대학의 이름을 먼저 생각한다. 간판이 중요한 사회니까 그렇다. 반면 미국에서는 그보다도 자기가 그 대학에 들어가서 실질적으로 얻을 수 있는 이익이 무엇일까, 그것을 더 고려하는 것 같다.

 

 

2. 미국에서도 학벌을 본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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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학벌 사회가 아니고 능력 사회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다. 미국이 능력 사회인 건 맞는데, 학벌 사회가 아닌 것도 아니다. 다만 학벌이, 학교 서열이 한국처럼 1차원적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고 큰 틀 안에서 유연하게 고려된다는 점이 다르다. 학벌은 능력 중 하나의 요인으로 인정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학벌 사회라고 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구글 같은 회사는 소위 말하는 '명문대' 출신이 아니라면 서류 전형에 통과하기도 불가능하다고 알려져 있다(다만 그 '명문대'의 기준이 한국식보다는 훨씬 더 유연할 뿐).

 

이쯤 되니 벌써 귀가 간질간질해진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 중, 미국에 사시거나 사셨다가 온 미국 사정에 밝은(밝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딴지를 거실 것 같다.

 

“당신이 잘 모르나 본데, 미국에서도 알게 모르게 대학 서열이 있고, 진짜 미국의 상류 사회로 올라가려면 조그만 college나 주립대 같은 건 끼지도 못하고, 하버드, MIT, Ivy schools, 스탠퍼드 등등 한 20개 정도 top 학교 출신이어야 하는 거야. 당신이 그런 inner circle 안에 있지 않으니 모르는 거지.”

 

“Ivy League 학교라고 다 같은 게 아니에요. 말이야 말이지, Harvard하고 Dartmouth를 같이 놓고 비교해서는 안 되죠.”

 

이런 말들을 주변에서 쉽게 들을 수 있다. 특히 아시안계 이민자들이 이런 얘기를 많이 한다. 자세히 관찰해 보면 그런 사고방식의 틀 안에서 이야기를 하는 백인들도 간혹 있기는 하다. 몇몇 사람들이 그런 생각을 하고 말과 행동을 한다고 해서 그걸 무턱대고 진리로 취할 수는 없는 노릇. 세상 좀 넓게 보자. 하나씩 하나씩 짚어 보겠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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