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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의 한 중심가에서 한국인 여학생을 향한 인종 차별 및 무차별 폭행 사건이 있었습니다. 사건과 관련된 소식들이 뉴스와 각종 포털사이트를 통해 알려지면서 큰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사건은 11월 11일, 일요일 오후에 발생했습니다. 영국의 한 지방 도시에서 학업을 진행 중인 A 양은 주말을 이용해 모처럼 여가를 즐기러 런던 시내를 방문했습니다. A 양이 거닐던 거리는 런던의 가장 중심가였죠. 10대로 보이는 10여 명의 영국 청소년들이 A 양의 뒤통수에 쓰레기를 집어던졌습니다. 급기야 집단행동을 보이며 인종 차별적 발언과 심한 구타를 했습니다. 주말 오후, 시내 한복판에서 벌어진 일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일이 발생한 것이죠. 이 일로 인해 얼굴과 뒤통수를 수없이 맞았던 A 양의 턱과 머리에는 큰 혹이 있는 상태입니다. 게다가 현재까지도 숨이 잘 쉬어지지 않고 머리에 피가 안 통하는 느낌에 매스꺼운 속 쓰림까지... 아주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당시 상황을 지켜보던 베네수엘라 출신의 한 청년이 이를 말리지 않았다면, 정말이지 더 큰일을 당할 뻔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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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피해자 페이스북(실명은 밝히지 않습니다)

 

A 양은 경찰에 신고를 했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현장에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사실, 최근 들어 런던에 사건사고가 많이 일어나고 있다죠. 브렉시트의 영향으로 민족주의적 성향이 짙어진 탓이라는 언론의 보도가 있었고 보수당이 집권하면서 경찰을 감축했습니다. 인력이 너무 부족한 상태죠. 지난 2년 사이 런던에서 큰 테러가 있었는데 주된 원인 중 하나가 바로 인력 부족이었습니다. 그래서였을까요. 끝내 경찰은 현장에 출동하지 않았습니다. 오지도 않는 경찰을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었습니다. 요즘 영국은 서머타임이 끝나 해도 일찍 저뭅니다. 시간을 더 지체하면 어두컴컴한 밤이 돼서야 집에 도착할 것 같았던 A 양은 더 늦기 전에 가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제대로 걸을 수도 없을 만큼 힘들었지만 서둘렀습니다.

 

대중교통을 이용해 기차역에 도착하여 간신히 기차에 올라탄 A 양은, 무거운 마음으로 부모님께 피해 사실을 알렸습니다. 대사관에 연락을 해 보라는 조언을 들었죠. 우리나라를 대표해 주재하고 있는 곳이니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A 양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기대를 안고 대사관에 연락을 취했습니다. 문제는 이때부터 시작됩니다.

 

 

 

대사관의 사건사고 처리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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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외공관이라 부르죠. 주영국대사관에는 사건 사고를 담당하는 담당자가 2명입니다. 경찰에서 파견을 나온 외교부 소속의 외사관과 현지에서 채용되는 행정 직원이 각각 1명씩 있죠. 현재 영국의 재외국민은 공식적으로 4만여 명에 이른다고 하니 2명이 4만 명을 커버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매일 사고가 일어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2명이면 충분할 것 같지만, 사실 한 번 사고가 터지기 시작하면 연속으로 발생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인력이 매우 부족하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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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종 일주일 만에 런던 템즈강 와핑 비치에서 숨진 채 발견된 유학생 장모 씨(21) / 골드스미스대학

 

이번에도 그랬죠. 얼마 전 런던 시내에서 실종된 여학생이 있었습니다. 실종된 지 10여 일 뒤 템즈 강, 타워브릿지 동쪽에서 주검으로 발견되었습니다. 영국 경찰에서는 타살의 흔적이 없다는 소견을 발표하기도 했었죠. 이 일을 해결하느라 담당자들이 무척이나 바빴을 겁니다. 이처럼 사건이 터지기 시작하면 2명의 인력으로는 턱없이 부족한 일들이 많습니다. 사건 사고 이외에도 여권 분실이나 기타 크고 작은 문제들이 있기 때문에 근무 시간 이외에는 외교관들이 당직 근무를 하게 됩니다. A 양이 피해를 입은 날은 일요일, 주말이었죠. 때문에 사건 사고 담당자가 아닌 외교부 소식 직원이 당직 근무를 할 때였습니다.

 

이미 타 언론에서 알려진 바와 같이 대사관의 초동 조치가 문제로 지적을 받고 있죠. 이유는 다름 아닙니다. 당직 근무를 하고 있던 외교관의 미온적 태도가 문제였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직자들은 이런 사건 사고를 어떻게 처리하면 될지 잘 모릅니다. 주된 업무도 아니거니와 2주 혹은 3주에 한 번 정도 돌아오는 당직 근무라 업무를 숙지하기엔 시간이 꽤 걸립니다. 아무런 일이 없을 경우에는 당직 근무라 할지라도 하는 일이 없기 때문에 어쩌다 한 번씩 발생하는 사건 사고에 잘 대응하지 못하죠. 사건이 접수가 돼도 대부분 실무를 담당하는 행정 직원들이 처리를 합니다. 그러다 보니 시간이 걸릴 수밖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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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피해자 페이스북(실명은 밝히지 않습니다)

 

물론 성의의 문제가 있습니다. 재외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하는 재외공관인 만큼 직원들이 성심성의껏 대처를 한다면 이번처럼 일이 커질 일도 없었겠죠. 수많은 재외국민들이 제기하는 문제가 바로 이 ‘미온적 대응’에 있습니다. A 양은 피해 당일인 11일 대사관에 연락을 취하고 사건을 접수했지만 별 도움을 받지 못했죠. ‘스스로 신고해라’라는 언론의 보도가 있었는데요. 영국의 경우 피해자가 직접 신고를 해야 효력이 있긴 합니다. 그런데, “해 줄 수 있는 게 없다”라고 한 건 문제가 있습니다. 왜 해 줄 수 있는 게 없나요? 여러 사람에게 구타를 당한다는 것이 사실 보통 일은 아닙니다. 육체적인 고통은 둘째 치더라도 밖으로 제대로 외출이나 할 수 있었을까요? 트라우마와 같은 정신적 고통이 이루 말할 수 없었겠죠. 어려운 일을 당한 사람에게 도와줄 일이 왜 없겠습니까. 홀로 외로이 떠나온 유학길, 유일하게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대사관에서는 알아서 하라고 하니 이 얼마나 답답한 경우인가요.

 

무엇보다도 A 양은 아무런 이유 없이 지나가는 사람을 무자비하게 폭행한 범죄 청소년들을 붙잡고 싶었습니다. 억울하고 분통이 터졌죠. 이들을 잡아서 법의 심판을 받게 해야만 A 양은 자신에게 조금 덜 미안하게 될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가해 청소년들의 얼굴이나 이름은 커녕 CCTV 조차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 경찰도 대사관도 기다려보라는 답변뿐이었죠. 사실 대사관은 수사 기관이 아니기 때문에 형사 사건이 발생할 경우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지만 영국의 경찰에 외교적인 압력은 행사할 수 있죠. 우리 국민이 이런 피해를 당했으니 빠르게 조치해 달라는. 그런데 시간은 계속 흐리기만 했습니다. 어느덧 시간은 11월 14일이 되어 48시간의 골든 타임도 지나버렸습니다. 이렇게 가다가는 아무런 소용이 없겠다고 생각한 A 양은 개인 SNS 계정을 통해 피해 사실을 알리기로 결심합니다.

 

 

 

미리 조치만 취해졌더라면

 

사실, A 양은 언론을 비롯해 SNS에 피해 사실을 알리고 싶은 마음이나 계획이 전혀 없었다고 합니다. 경찰이나 대사관으로부터 제대로 된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면, 이번 사건이 이렇게까지 화제를 몰고 오진 않았을 겁니다. 대사관이 비난을 받을 일도 없었을 테죠. A 양이 피해 사실을 밝히지 않았을 테니까요. 하지만 몹쓸 짓을 당해도 도움을 주는 이가 없었습니다. 이름을 비롯하여 신상이 노출될 것이 꺼려졌지만, 최후의 수단으로 피해 사실을 알린 것입니다. 피해자가 자신의 피해 사실을 직접 알리는 일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2차 피해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A 양은 가해자를 처벌하고 또 다른 피해자를 막아야 한다는 생각이 우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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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피해자 페이스북(실명은 밝히지 않습니다)

 

피해 사실을 상세하게 기록한 SNS는 삽시간에 퍼지기 시작했고 그제서야 세간의 관심을 받게 되었습니다. 한국에서는 주요 언론사에서 집중 보도를 시작했죠. 영국 사이트에 올린 게시글에도 믿을 수 없는 일이 발생했다는 폭발적인 반응이 있었습니다. 시기적인 문제가 있을 수 있겠지만, 이후 대사관에서도 담당자가 직접 나서 적극적으로 A 양을 돕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여론은 대사관의 문제점에만 몰두합니다. “왜 스스로 신고하라고 했느냐”, “민사사건이라고 했다는데 어떻게 이게 민사냐”, “국민의 피해를 왜 이런 식으로 대처하느냐”, “대사관의 이런 태도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등 온갖 비난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물론 대사관이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국민들의 분노를 사게 된 것은 단순히 이번 일만 있었기 때문이 아니죠. 서운함이 쌓여있었던 것입니다.

 

앞서 말했듯 A 양은 시시비비를 가리는데 목적이 있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도 가해자를 찾아 자신들이 잘못된 행동을 한 데에 대한 대가를 치르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만약 그렇게 되지 않으면 어이없고 뻔뻔한 가해 청소년들이 자신들이 어떤 잘못을 했는지 모를 테고, 또 다른 피해자가 나오지 말란 법이 없었던 것이죠. A 양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가해자를 찾는 일이었습니다.

 

 

 

가해자를 찾아주세요!

 

대사관의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닙니다. 대사관 자체의 인력 부족도 문제지만 거기에서 파생되는 외교관들의 무사안일로 인해 벌어지는 재외국민에 대한 보호가 느슨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도 문제였습니다. A 양은 가해자 처벌을 위해, 또 다른 피해자가 생기지 않기 위해, 정의를 실현하는 것과 자신의 신변 노출을 맞바꾸었습니다. 내가 희생하더라도 또 다른 피해자는 없어야 한다고 생각했죠. 만약 가해자를 처벌하지 않는다면, 가해자들은 자신들의 행동에 당위성을 부여받고 똑같은 일을 반복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신변이 노출되는 위험을 감수했습니다.

 

사건이 발생되고, 여론에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A 양은 수없이 많은 응원의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신변이 노출될 것을 알면서도 직접 나서 주어 고맙다"라고 합니다. 그러면서도 인종 차별은 비일비재하기 때문에 피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을 해 주는 이들도 많았다죠. 그렇습니다. 지금까지 유럽권 국가에서 발생하는 아시아인에 대한 인종 차별은 많이 있어 왔지만 문제를 짚고 넘어가는 일은 많지 않습니다. 많은 이들이 차별 대우를 받지만 나서서 해결하려고 하지는 않죠. 이번에 구타를 당한 A 양의 경우는 그동안 쌓여 온 침묵의 결과일 수도 있습니다.

 

A 양을 돕고 싶으신가요?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대사관을 향한 비난 여론보다는 가해자를 찾는 데 집중해야 합니다. 할 수 있는 일이 있냐고요? 물론 있습니다. 인터넷 강국, 대한민국의 저력을 보여야 합니다. 영국의 각종 언론 사이트에 방문해 가해자를 찾아 달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죠. 댓글이든 게시글이든 상관없습니다. 영어가 문제라고요? 요즘 번역기 잘 돌아갑니다. 딱 10분이면 됩니다. 여러분의 시간을 투자해 주세요. 또 다른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운동에 참여해 주세요. 작은 참여 하나가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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