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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1 시즌 챔피언스리그 결승을 아직 잊지 못한다. 축구선수로서 전성기를 구사하던 박지성이 과거 결승전 명단제외의 아픔을 뒤로하고 선발라인업에 이름을 올렸던 날이었다. 그 날, 쌈짓돈을 탈탈 털어 치킨을 시켰던 나는, 무력한 경기력으로 바르싸에게 압살당하는 맨유와 박지성을 보며 분노의 먹방을 찍었다. 이겨도 먹고 져도 먹었을 닭다리지만, 그날만큼은 “축구 엿같이 하네”란 말이 절로 나오는 바르싸의 말도 안 되는 경기력을 보며 울분을 삭혔다. 물론, 나는 맨유팬이 아니라 우리 형(박지성)을 열심히 응원했을 뿐이다.

 

그날, 전력을 다해 뛰던 박지성은 후반전 체력이 급감했고, 교체 아웃했다. 박지성이 나가는 장면을 보며 TV를 껐다. 직감했다. 이제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한국인을 보는 것은 어쩌면 남은 생애에 다시 보기 힘들지도 모를 일이라고.

 

그날이 이렇게 빨리 올지는 정말로 몰랐다.

 

 

국뽕과 축구의 미묘한 경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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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란 것은 참 웃기다. 평소 나는 축구에 내셔널리즘이 끼얹어지는 걸 썩 호의적으로 바라보지 않았다. 예컨대, 한일전에서 기성용이 한 원숭이 세레모니나, 박종우의 독도는 ‘우리땅 세레모니’ 같은 것들은 축구장에서 사라져야 할 문화라고 생각했다. “으데 문명인이 야만스럽게 그런 것을 한다냐”, 뭐 그런 심리였다. 한국이 아니라 세계무대를 봐도 그렇다. 이번 시즌 유로파리그 결승전이 열리는 바쿠에 아스날 소속 미키타리안은 출전하지 못했다. 결승전이 열리는 아제르바이잔과 치열하게 영토 갈등을 겪는 아르메니아인이기 때문이다. 입장료와 시청료를 지불하는 축구 팬들에게 오직 축구로서 답해야 할 프로축구가 온갖 대외적 환경, 특히 내셔널리즘에 기반한 문제 때문에 ‘2% 빠진 축구’ 밖에 할 수 없다는 건, 한 명의 추꾸팬으로써 불행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아무리 고상하고 세련된 척을 해도, 박지성, 이청용, 기성용, 손흥민 등이 이역만리 타국에서 맹활약하는 모습을 보면, 어쩐지 가슴 저 깊은 곳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꿈틀꿈틀 식도를 타고 올라와, 머리끝이 곤두서고 소름이 쫙 돋으며 두 주먹을 불끈 쥐고 환호하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야레야레, 이것이야 말로 우짤 수 없는 본능이 아닌가 싶다. 보다 더 개인주의적이고 사회 경제적으로 소위 ‘진보’했다는 국가들도 스포츠 앞에선, 아니, 오히려 평소 쉽게 이야기하지 않는 국뽕스러운 이야기를 스포츠를 앞세워 소리 내곤 한다. 독일이 그렇고, 프랑스가 그렇고, 잉글랜드가 그렇다. 북유럽도 마찬가지.

 

박지성의 출전 여부를 밤새 기다리는 팬의 모습, 그리고 박지성이 조금 무력해도 어떻게든 그의 활약을 쉴드치는 현지 언론의 기사를 찾아내던 국내 언론사들의 모습이 눈에 선한데, 어느새 시대가 바뀌어 ‘주모’와 ‘국뽕’이 경기마다 달라진다. 손흥민이 활약하는 날엔 뜨거운 마음으로 주모를 부르짖고, 손흥민이 저조한 날엔 역시 국뽕으로 고평가된 선수라는 혹평이 쏟아지는 것이다. 아무래도 스포츠와 내셔널리즘의 완전한 분리는 불가능한 것임을 요즘에서야 깨닫고 있다.

 

 

격세지감 : ‘독든햄’ vs ‘로또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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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하건대, 나는 토트넘 팬이다. 이영표가 막 토트넘을 떠나고 베일이 슬슬 윙으로 포텐이 터질 무렵부터, 즉 08/09 시즌부터 팬이 되었다. 이유는 단순하다. 열심히, 시원하게 뛰는데 엉망인 축구로 챔스권 바로 문턱에서 매번 좌절되는 그 모습이 재밌어 보였다. 그 시절 토트넘의 경기력을 요약하면 이렇다. ‘루카 모드리치가 왼쪽의 베일에게 뿌려주고, 가레스 베일이 치달로 열심히 올라가 크로스를 올린 뒤, 저메인 데포가 헛발질로 골 기회를 날린다. 그리고 이어지는 데포의 머쓱한 따봉’. 강호동-이수근 콤비의 1박2일보다 더 재밌었다. 

 

이 시절의 토트넘 별명은 ‘독든햄’이었다. 하위권 팀을 상대로 무난히 앞서다가 뜬금없이 동점골, 역전골을 얻어먹고 갑분패하는 일이 꽤 많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또 강팀킬러는 아니어서, 빅4에게 얻어먹고 하위권 팀에게 승점을 차곡차곡 쌓으며 딱 유로파 대회에 나갈 수 있을 정도의 능력만 보여줬다. 토토를 즐기는 사람들은 토트넘을 ‘독이 든 햄’이라 부르며 한강물 온도를 체크했었다. 물론 나야, 토트넘이 이길 때보다 재밌게 지는 걸 더 좋아하던 사람이니까 즐거워했다.

 

한편, 비슷한 시기에 리버풀에겐 ‘로또풀’이라는 별명이 생긴다. 베니테즈 감독이 리버풀을 지휘하던 시절부터 스티븐 제라드는 시원한 중거리 슛으로 멋진 골을 뽑아냈었는데, 경기를 지거나 비길 각이 씨게 잡혀있는 후반 80분 이후 제라드의 뜬금 중거리 골로 결과를 바꾸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긍정적인 의미가 많은 별명이었지만, 이후 리버풀의 행보가 썩 좋지 않으면서 이 별명은 조롱용으로 쓰인다. 들쑥날쑥한 경기력과 순전히 운 빨 같은 승리가 이어지자, 찬사를 받았던 제라드의 중거리도 ‘남은 건 로또밖에 없다’는 GG 선언과 비슷한 취급을 받았다. 케니 달글리쉬와 브랜든 로저스가 한 시즌은 우승 팀급의 퍼포먼스를 보여주다가, 한 시즌은 중위권으로 내려앉는 모습조차 로또풀 같았다.

 

그랬던 두 팀이, 이제 챔스 결승에서 만난다. 10년 사이에 참 많은 일이 있었다.

 

 

덕장 vs 덕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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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트넘의 감독 마우리시오 포체티노와 리버풀 감독 위르겐 클롭 모두 덕장형 감독이라고 정의하고 싶다. 동의하지 않는 분도 계실 것이다. 특히 클롭은 ‘게겐 프레싱’ 전술로 유럽의 축구 트렌드를 바꿨던 사람이다. 챔스 결승에 두 번이나, 그것도 다른 팀을 이끌고 오른 감독을 덕장형 감독이라 부르는 건 전술의 중요성을 경시하는 표현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덕장형 감독이야 말로 감독의 완성이라고 생각한다.

 

두 감독이 양 팀을 맡았던 첫 시즌을 돌아보자. 그 때엔 둘 다 전술가형 감독이었다. 높게 올린 수비라인, 90분 내내 강하게 몰아붙이는 압박 전술, 빠르고 공격적인 모습은 두 감독의 공통점이다. 차이점이라면, 포체티노 감독은 조금 더 볼 점유에 집중하면서 컴팩트한 축구를 했고, 클롭은 의미 없는 볼 점유보다 확실한 공격 기회를 위해 과감히 와이드한 대열을 선택하기도 했다.

 

그러나 두 감독은 깨달았다. 전 세계에서 경기 템포가 가장 빠르고, 경기 수가 상당히 많으며, 거칠고, 공격수에게 보다 엄격한 판정 전통을 가진 프리미어리그에서 90분 내내 강한 압박을 유지하며 좋은 순위를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것임을. 시즌이 거듭될수록 두 감독은 조금씩 자신의 전술 색깔을 수정해나갔고, 핵심은 압박의 정도에 있었다. 수비라인이 조금 내려오거나, 혹은 압박의 강도를 줄이면서 선수들의 체력을 다른 영역에서 조금 더 집중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했다. 

 

변화는 언제나 계기에서 비롯되거나, 또 다른 계기를 낳는다. 포체티노의 경우, 이번 시즌이야 말로 자신의 감독 능력을 최대치로 보여준 시즌이었다. 단 한 명도 새로운 선수를 수혈하지 않는 0입, 신 경기장 완공 지연으로 혼란스러운 구단의 분위기, 제각기 사정으로 너덜너덜한 스쿼드, 중간에 불거진 감독의 이적설 등 온갖 문제를 떠안으면서도 꾸역꾸역 목표를 달성하는 모습은 충분히 찬사를 받을 만했다. 비록 우승하지 못하더라도 포체티노가 보여준 모습은, 주요 선수들이 모두 부상당해 박지성을 윙백으로 쓰거나 하파엘, 파비우 형제를 윙으로 쓰면서 리그 우승을 일궈내던 알렉스 퍼거슨 감독의 면모를 보는 듯했다.

 

위르겐 클롭 감독의 성장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장면은 조금 더 드라마틱했다. 지난 시즌, AS 로마와의 중요한 챔스 준결승 2차전을 앞두고 자신의 장자방인 젤리코 부바치 수석코치와 결별한 것이다. 위르겐 클롭 감독의 ‘게겐 프레싱’ 전술을 고안한 사람은 부바치 코치였다. 심지어 선수 영입까지도 그렇다. 그 여파인지 몰라도 클롭 감독은 두 번째로 도전한 챔스 결승 역시 패배하게 됐지만, 리버풀의 전술은 조금씩, 아주 조금씩 진화되어 왔다. 한 선수에게 의존하는 방식도 줄이고, 특정 선수가 빠져도 스쿼드를 돌리면서 충분히 결과를 내며, 영입 선수와 유소년 선수의 조화로 원 팀의 모습을 보여준다. 역사에 남을 대역전승으로 바르싸를 이기던 날, 리버풀의 로컬보이인 알렉산더-아놀드와 대부분의 팬이 잊고 있던 오리기가 합작한 재기 넘치는 코너킥 골은 ‘원 팀’으로 똘똘 뭉친 리버풀을 보여주는 결정적 장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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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둘 사이의 결별엔 리버풀이란 클럽이 추진하는 철학 때문이기도 하다. <머니볼>이란 영화를 익히 들어보셨을 것이다. 영화는 세밀하고 엄격한 통계에 근거해 팀을 운영하고 그에 따른 성공 스토리를 담고 있다. 리버풀의 구단주 존 헨리는 미국의 야구팀 보스턴 레드삭스의 구단주이며 머니볼 철학을 적극적으로 도입한 인물이다. 그가 리버풀 구단주로 올 때부터 말이 많았는데, 보수적인 일부 영국 감독은 “추꾸는 통계로 나타내기에 너무 복잡하다.”는 등의 말을 하기도 했다. 당연히, 이런 클리셰가 있어야 성공이 더 멋진 법이다. 리버풀은 현재, 전 세계의 축구팀 중에서 데이터에 기반한 의사결정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팀이다. 과거보다 더 진보한 인공지능, 알고리즘, 아무튼 뭐시기 등등까지 총동원한다. 자신의 의견보다 통계에 근거한 팀 전체의 결론이 더 중요시되기 시작했을 때, 자부심 강한 부바치 코치는 더 이상 팀에 남아있지 않았다. ‘동네 형’ 같은 친근한 리더쉽을 보이던 클롭조차 받아들일 수밖에 없게 한 통계의 힘은 리버풀의 시즌에서 드러나고 있다.

 

물론 토트넘도 요모조모한 과학적 방법을 동원하는 팀 중 하나다. 다만, 포체티노의 방식은 현재의 리버풀보다 조금 더 전통적인 것 같다. 17/18 시즌 레알 마드리드와의 챔스 조별리그  원정 경기에서 포체티노는 페르난도 요렌테와 해리 케인 투톱을 꺼내 들었다. 경기는 예상과 달리 무승부로 끝났고, 포체티노는 이런 말을 했다. “주변 사람들한테 나 케인-요렌테 쌍탑 전술 쓸 거라고 하니까 미쳤다고 그러던데?” 토트넘도 물론 코치진, 스카우터, 데이터 분석가 등 모든 스탭의 의견을 취합하여 의사결정을 하지만, 어떤 경기는 순전히 포체티노의 상상력과 아이디어를 동원하여 설계하고 있음을 드러내는 발언이었다. 추꾸계 전술 진보의 심볼인 펩 과르디올라 역시 샤워하면서 전술 짠다고 하지 않던가. 우리네가 불 끄고 누워서 천장에 당구대를 그리고 길을 찾듯이, 그들은 끝없이 상상하며 추꾸를 그린다. 이것이 전통적인 의사결정 스타일이며, 토트넘과 리버풀의 대결은 어떤 의미에서 전통 vs 통계의 대결이라고도 할 수 있다.

 

덕장형 감독이란 개성 넘치는 선수단을 모나지 않게 잘 관리하면서, 선수와 사람 대 사람으로써 끈끈한 관계를 유지하고, 나아가 구단 전체에 관여하며 안정적인 매니지먼트를 하는 감독을 말한다. 대표적인 예로 안첼로티가 있다. 한 발 더 나아가서, 자신의 의견과 다를지라도 보다 더 좋은 의견을 채용하는 결단력 역시 덕장의 장점이라 할 수 있다. 아주 가끔, 독단적인 모습도 보여주면서 말이다. 삼촌 같이, 형 같이, 선배 같이, 팀과 선수의 리스크를 인간적으로 관리하면서도, 자신이 이상적이라고 여겼던 바를 과감히 수정해 나가며 성장하는 모습. 더하여, 그동안 포체티노의 약점이었던 교체 미스나, 클롭의 약점이었던 전술적 완고함이나 소극적 로테이션 등도 점차 희미해져 가고 있다. 게다가, 가끔 통계나 과학을 무시하고 직감으로 내리는 결단까지. 이러니, 완성형 덕장이 아니라 할 수 있겠는가.

 

쓰다 보니 자꾸 누상촌 돗자리파 두목 유비가 생각난다. 요즘 삼국지 토탈워에 빠져서(...)

 

 

뇌피셜로 쓰는 결승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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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번의 시즌과 주요 선수의 변화로 만들어진 현재 양 팀의 전술적 면모는 다음과 같다. 먼저, 토트넘이다. 현대 축구 전술의 핵심 중 하나는 풀백의 전진에 있다. 풀백의 전진은 아주 다양한 선택지를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한 때 리그 탑급 양 풀백을 보유했던 토트넘은 워커의 이적과 로즈의 폼 저하로 풀백 전진 전술의 무용함을 여실히 드러냈다. 수비적인 면에서의 단단함도 옅어져, 요즘 들어 토트넘은 아예 풀백의 대인마크를 포기하는 대신, 박스 근처에 오밀조밀 위치하여 올라온 크로스를 잘 걷어내는 방식의 수비로 전환했다. 스피드가 많이 부족한 하위권 팀에서 주로 쓰는 수비방식을 적극 이용하고 있는데, 불안불안하면서도 그럭저럭 막아낸다. 

 

그 까닭은, 장판파 장비처럼 무쌍을 찍어대는 시소코의 중원과, 과거 모드리치를 떠올리게 하는 에릭센의 창조적인 연결에 있다. 하위권 팀이 밀집 수비로 몇 차례의 공격을 잘 막아내다가 결국 골을 먹히는 건 수비 성공 후 이렇다 할 반격을 하지 못한 채 볼 소유권을 넘겨주기 때문이다. 토트넘은 다르다. 기어코 손흥민, 모우라에게 볼을 보낼 수 있는 토트넘 중원의 창조성 덕분에, 하위권 팀의 수비 전술을 쓰면서도 효과적으로 결과를 뽑아낼 수 있다. 이번 시즌 후반기 케인이 돌아왔음에도 팀 성적이 좋지 않았던 이유도 리그와 챔스 모두 이런 식의 역습 전술을 특화해왔기에 순간적으로 밸런스를 잃어버렸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하지만, 대부분의 평론가가 지적하는 것처럼 리버풀의 우세는 쉽게 점칠 수 있다. 반다이크는 수비의 핵으로 불리는데, 리버풀 중원 멤버를 고려하면 수비의 핵일 뿐만 아니라 공격의 시작이다. 리버풀 중원의 ‘헨밀둠(헨더슨, 밀러, 베이날둠)’ 조합의 가장 큰 장점은, 중원에서 소위 개싸움을 벌이며 치열하게 볼 다툼하면서 중원을 싸움터로 만든다는 것이다. 상대 중원이 아무리 기술적으로 훌륭하고 창조적이라 하더라도, 이 세 명의 미드필더가 최적의 컨디션으로 전장을 난전으로 이끈다. 따라서 리버풀의 공격은 반다이크의 커트로 시작해, 대난투가 벌어지는 중원을 빠르게 벗어나고, 리버풀이 자랑하는 마누라 라인으로 볼을 보내는 형식이다. 모든 공격 전술이 다 그런 거 아니겠냐고 하지만, 상대의 강점을 무력화시키면서 동시에 자신의 장점을 끌어올린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 프리미어리그에서 자신들의 추꾸를 가장 잘 최적화한 팀을 꼽아보자면, 당연히 맨시티와 리버풀이다. 이 두 팀이 경기하는 모습을 보면, 참 쉽게 넣고 멋잇게 수비한다라는 인상이 든다. 

 

특히나, 반다이크라는 걸출한 수비수를 볼 때마다 그 벽이 참으로 높아 보인다. 레알 마드리드의 연속된 챔스 우승은 라모스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유벤투스의,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리버풀의, 유럽의 그 어떤 팀을 만나도 충분히 골을 넣을 수 있는 능력 있는 공격진이 두드려도 잘 열리지 않던 것은 라모스라는 벽 덕분이었고, 레알 마드리드는 설사 경기력이 다소 후져도 라모스의 존재로 인해 위기상황에서 꾸역꾸역 버텼다. 만약, 일반적인 팀을 상대로 5번 기회를 얻어 1번은 넣을 수 있다면, 레알 마드리드의 라모스는 그 확률을 2배 이상으로 낮춘다. 반다이크도 그런 선수다. 경기를 보나 스탯을 보나 세계 최고급의 수비수임을 부정할 수 없다.

 

어쩌면 리버풀을 상대하는 팀은 자신들의 스트라이커를 폴스 나인으로 붙여 반다이크와 함께 경기장에서 영향력을 최대한으로 낮추고, 나머지 9명의 필드 플레이어로 공격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마저 든다. 그것도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반다이크를 라인에서 끌어내 지지고 볶으며 부비부비하려면, 적어도 케인 급의 공격수는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토트넘의 몇 안 되는 장점인, 케인이 관여하지 않는 상황에서의 공격 전개를 고려하면, 그럴 수도 있겠다라는 상상이 떠오른다. 물론, 단순히 상상일 뿐이다.

 

 

이기는 팀은 ‘진짜’ 빅클럽

 

그러나 토트넘을 리버풀과 같은 선상에서 놓는 건 리버풀 팬에게 실례다. 아마 몇몇 리버풀 팬은 지금까지 읽어오면서 다소 불쾌할 수도 있겠다. 우승컵 횟수를 봐도 당연하고, 가장 최근의 역사를 돌아봐도 그렇지 않은가? 리버풀은 리그 우승을 노리면서도 챔스 결승에 연달아 올랐다. 우승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클롭의 성취는 찬사를 받아야 마땅하다. 반면, 해리 레드넙 시절부터 지속적으로 비판받아온 우승컵 제로의 역사는 포체티노 시기까지 이어져, 흔한 국내 컵 대회조차 우승하지 못했다는 치명적인 결점이 있다. 

 

허나, 짐작하실 것이다. 리버풀 우승 징크스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클롭은 두 번이나 챔스 결승에서 고배를 마셨고, 리버풀의 상징 스티븐 제라드는 미끄러지는 바람에 리그 우승컵을 걷어찼으며, 카리우스는 챔스 결승에 출전한 역대 골키퍼 중 최악의 실수를 연거푸 보였다. 이쯤 되면 수맥이 흐르진 않는지 풍수지리사를 파견하거나, 라커룸에 달마도라도 붙여야 하는 거 아닌지 의심스럽다.

 

리버풀이 다행이라고 생각할 점이라면 상대가 토트넘이라는 것인데, 우승컵을 술잔 삼아 11명 모두 파티를 벌일 수 있는 레알 같은 팀이 올라왔다면 큰 부담이었겠지만 토트넘은 전시할 트로피조차 없는 팀인 데다가 대부분의 선수가 챔스 결승을 처음 뛰는 상황이다. 국제 대회로 따지면 벌써 세 번째 결승전인 리버풀이 이런 기회에서도 부담감에 무너질 것 같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결과가 어찌됐든, 이기는 팀은 리얼 빅클럽으로서 한 단계 도약할 기회를 갖는다. 클럽의 규모나 선수단의 퀄리티로 봤을 때 이미 두 팀은 전 세계에서 열 손가락에 꼽을 만한 규모를 갖췄으나, 우승컵이 현저히 부족하다는 치명적인 결점이 있었다. 챔스 우승이라면 그 오욕의 역사를 상당히 청산할 수 있다. 물론, 챔스 우승 후에 더욱 발전 가능성이 농후한 팀은 리버풀이다. 토트넘의 챔스 결승은 기묘한 시즌이 만든 드라마라면, 리버풀의 챔스 결승은 (물론 그들의 대역전극도 엄청난 드라마지만) 자신들이 갖고 있는 능력을 다시 한번 보여준 듯한 느낌이다. 주요 선수들의 이적설이 매 시즌 흘러나오는 토트넘으로썬, 챔스 결승 후 선수들의 주급 인상 요구가 상당할 것이다. 

 

 

그리고, 손흥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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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심의 여지없이, 손흥민은 선발이다. 내가 걱정하는 것은 그의 선발 여부가 아니라, 조금이라도 경기를 쉬게 되면 경기력이 떨어지는 손흥민의 독특한 특징이다. 어쨌든, 양 팀의 발전 가능성을 고려해봤을 때, 박지성의 분투를 지켜봤던 10/11 시즌 챔스 결승 때처럼, 한국인이 다시 한 번 챔스 결승 무대를 누비는 장면이 언제쯤 올까에 대해 다시금 회의적이다. 메시조차도 챔스 결승 무대를 밟아본 지가 꽤 됐다. 그래서 이 경기를 놓칠 수가 없다.

 

이번 결승의 결과가 어찌되든, 손흥민의 결승전 역시 추꾸를 사랑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뇌리 속에 오롯이 새겨질 것이다. 박지성 때처럼, 손흥민의 결승전 역시 수많은 추꾸 키즈에게 영감을 불어넣어 줄 것이다. 이런 국뽕이라면 자신 있게 주모를 외칠 만하지 아니한가. 

 

 

그러니, 보시라. 유럽은 왜 추꾸를 새벽에 하는지 모르겠지만, 다행히 토요일에서 일요일로 넘어가는 새벽 4시이므로 충분히 볼 가치가 있다. 단언컨대, 당신만의 추꾸 스토리가 새로이 써지는 날일 것이다.

 

 

뱀발. 평소 추꾸 내기는 하지 않는데, 편집부 코코아 기자가 리버풀에 500원을 걸었다. 역제안을 한다. 리버풀이 이긴다면 올해 받을 모든 고료를 코기자에게 주겠다. 대신 토트넘이 이기면 한달치 월급을 달라. 500원만 걸기에는 이 경기의 가치가 너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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