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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조사기관에 맡겨도 조선 역사상 가장 인기 없는 군주 TOP3안에 당당히 이름을 올릴 선조는 재위 기간 내내 동인과 서인을 교묘히 저울질하며 오직 왕권 강화에 혼신을 다했어. 임진왜란이 끝나고 의병대장들과 이순신 장군에게 보인 극도의 질투심만 봐도 그의 쫀쫀함과 권력에 대한 의지를 확인 할 수 있지. 조선 최초의 방계 왕 출신에서 비롯된 콤플렉스의 발로였을까?

 

1589년 10월. 선조 22년 정여립의 역모 신고로 시작된 기축옥사는 무려 3년에 걸쳐 –민간인 포함- 1,000여 명의 동인 계열 정치인들의 목숨을 앗아갔어. 조선의 4대 사화의 희생자를 다 합쳐도 사망자수가 500명인데,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참고로 조선의 4대 사화는 무오사화(1489년), 갑자사화(1504년), 기묘사화(1519년), 을사사화(1545년) 야)

 

최근에는 정여립이 역모 사건이 조작 된 것이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가 많아. 그런데 이 기축옥사를 주도한 인물은 놀랍게도 관동별곡의 정철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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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으로 치면 음유시인으로 칭송을 받을 정철이 기축옥사의 특검을 지휘했다? 자 이제 차근차근 역사의 베일을 벗겨 보자고.

 

1860년 어느 시골 마을. 전염병이 온 마을을 죽음의 도가니로 몰아넣고 있었어.

 

“아범아 이러다 우리 밀양 이씨 집안 대가 끓기겠다. 어서 건넛마을에 그 용하다는 무당을 모셔오느라. 당장 굿을 해야겠다.”

 

무당은 굿을 시작하기 전 집안의 오래된 물건을 모두 태우라는 지시를 내렸어. 몹시도 과학적이지 않아? 오래된 물건은 병균의 온상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잖아. 식솔들은 무당의 지시에 따라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책이나 문서들을 분류하던 중, 장롱 깊숙한 곳에서 유서 한 장을 발견하였어.

 

“어머님! 이것은 1610년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250년 전에 작성된 우리 집안 어른의 유서입니다.”

 

“메야? 그런 것이 있었어? 어서 그 아범이 읽어 보거라.”

 

유서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어.

 

<내가 작성한 이 유서가 언제 발견될지 모르겠지만, 부디 우리 집안이 번성하여 그 후손이 평온한 상태에서 이 글을 읽었으면 한다. 그럼 나의 후손이 읽어 본다는 전제하에 우리 집안의 비밀에 대해서 알려주겠다. 너희는 사실 밀양 이씨가 아니고 광산 이씨의 자손이다. 이 글을 쓴 나는 이원경이고, 나의 부친은 정여립의 난 때 주모자로 몰려 억울한 죽음을 맞이한 이발의 친형님이시다. 정여립의 난으로 비롯된 기축옥사는 우리 집안을 초토화 시켰다. 집안 대부분의 사람이 죽었지만, 어머니는 9살인 나를 데리고 관군의 칼을 피해 달아나셨다.. 그러나 어머님은 과로를 견디지 못해 그만 객사하셨고, 나는 천애 고아로 전국을 떠돌게 되었다. 어린 마음에도 오직 집안의 대를 잇겠다는 일념 하나로 이를 악물고 살아남았다. 그렇게 고된 세월을 견디고 장성한 후에는 천민과 결혼하여 신분을 속이며 살아가게 되었다. 하지만 행복도 잠시. 어린 시절의 갖은 고생이 화근이 되었는지 나는 서른 살이 되자 큰 병에 걸렸고, 죽음을 직감하게 되었다. 사실 이 글은 지금 내 옆에 누워있는 3살짜리 내 아들에게 집안의 원수와 혈통을 알려 주기 위함이다. (후략) >

 

이 유서는 현재에는 전라도 광주에 사시는 후손들이 아직까지 잘 보관하고 있다고 해.

 

그럼 이제 한 집안뿐만 아니라 조선사회 전체를 뒤흔들어 놓은 기축옥사의 시발점 정여립의 난 속으로 들어가 볼게(정여립이 난을 일으켰다는 실질적인 증거는 턱없이 부족하지만 일단은 이렇게 불러 두자고).

 

전라도 전주에서 태어난 정여립은 조선시대 과거급제 평균연령인 30세를 6년이나 앞당겨 패스했어. 더불어 당시 최고로 잘 나가던 서인 이이의 관심을 받으며 출세 가도를 보장받고 있었지. 하지만 불행히도 정여립의 기질은 조선시대 어느 당파와도 맞지 않았고, 결국 38세의 나이에 낙향을 하게 되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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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여립은 전라도 진안의 죽도라는 곳을 기점으로 하여 라이온스 클럽 같은 조직을 만들게 되었는데, 그 이름은 바로 대동계였어. 이름부터 먼가 막 백성과 민중을 위하는 불온한(?) 사상이 느껴지지? 대동계는 정기적으로 모여 활쏘기도 하고, 술도 한잔하면서 알쓸신잡급의 지식의 향연을 뽐내기도 했지.

 

“천하는 공물이다. 즉 공공재라 이 말이다. 그러니 권력자가 천하를 사유물처럼 사용하면 나라는 망하게 되어 있는 법이니라.”

 

왕이라도 나라 살림을 제 맘대로 주물지 말란 말인데 하물며 왕의 아는 누나 or 언니가 나라를 상대로 개인 재산을 착복하는 비즈니스를 했다면? 정여립의 화살이 그 or 그녀를 결코 용서하지 않았을 것이야.

 

정여립은 박학다식한 지식에 뛰어난 웅변술까지 타고났어. 한 번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 빠지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고 해. 또한 무예에도 뛰어나 전라도 지방에 왜구가 출몰하면 -정부의 요청을 받아- 대동계를 이끌고 출동하여 이를 진압하였다고 하니 문무에 능통한 매력남이야.

 

어때? 역모를 한 번 꿈꿔볼 만한 or 역모를 꾸몄다고 올가미를 씌울 만한 삼박자를 갖추고 있지? (똑똑한 머리, 용맹한 기상, 삐딱한 세계관)

 

1589년 10월 정여립이 대동계를 중심으로 하여, 역모를 위한 만반의 준비를 마쳤다는 비밀 장계가 선조에게 도착했어. 선조는 진상조사를 위해 즉시 의금부도사를 파견하였는데, 반란 준비가 끝났다는 정여립은 저항 한번 없이 자신의 본거지인 죽도로 가 자결을 해 버렸어. 현장검증 결과 무기고에는 역모란 걸 할 만한 무기도 갖춰져 있지 않았다고 해. 또한 정여립은 관군이 들이닥친다는 소식에 급한 나머지 캐비닛에 주요 문건을 그대로 남겨 두고 떠났는데, 의금부도사가 기대했던 역성혁명 계획서 or 새왕궁 조감도 따위의 역모를 뒷받침할 만한 어떠한 문서도 찾을 수 없었다고 해.

 

나라에 큰 사건이 났으니 특검이 발동되겠지? 그 현장으로 가 보자고.

 

“자자. 5분 후에 정여립 역모 사건의 특검을 이끌 정철 대감의 브리핑이 있겠습니다. 진행 중인 사건이라 제한된 질문만 받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고려일보 김경진 기자입니다. 지금 돌고 있는 찌라시에 의하면 이번 사건이 서인 세력의 브레인 송익필 대감에 의해 기획된 사건이라고 하던데요. 그래서 한직에 있던 정철대감이 특검을 이끌게 되었고 최종적인 목표는 동인 정권 제거라는데 사실입니까?”

 

“김 기자! 당신 이럴 거야? 기레기야 머야? 어디서 찌라시 들고 와서 정부 상대로 낚시질이야. 당신 앞으로 궁 출입 안 하고 싶어! 아까 배포해준 자료에 나와있는 10가지 외에 다른 질문은 안됩니다. 잘 들 좀 합시다. 서로 안 피곤하게”

 

“질문도 못 하게 할 거면 우리를 왜 불러. 씨xxx.”

 

“김 기자님, 속마음도 다 들리게 하는 묘한 재주가 있네요. 경비 머해? 저 새끼 당장 내쫓아.”

 

자 이제 정여립의 난을 잘 엮어서(?) 기축옥사로 몰고 가게 될 특검의 수장 정철을 소개할 시간이야.

 

일명 가사문학의 대가라고 우리에게 알려진 정철은 1536년 생이니 기축옥사가 일어났을 때에는 그의 나의 53세야. 지금이야 노인 소리도 듣기 무색한 나이지만 조선시대에는 인생의 마지막 승부수를 던질 나이야. 정철은 그의 인생을 통틀어 정치와 예술에서 극단적인 두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 우선 우리에게 잘 알려진 예술가로의 모습을 먼저 살펴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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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험생들의 치를 떨게 만든 관동별곡-속미인곡-성산별곡-사미인곡 시리즈의 저자야

 

정철의 음주에 대한 기록을 살펴보면 이건 머 거의 알코올 중독 수준이야. 심지어 입궐을 할 때도 술이 덜 깨어 있을 때가 많았다고 해. 이런 정철을 보고 어느 날 선조가 은잔을 하나 선물로 주었어.

 

“이보시오. 정 대감. 내 은으로 만든 술잔 하나 그대에게 내리리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전하. 제가 술 좋아하는 걸 어찌 아시고!. 하사하여 주신 잔에 술을 그득그득 담아 마시면서, 하늘과 같은 은혜를 매일 떠올리겠나이다.”

 

“됐소. 이건 내가 내리는 벌이요. 벌! 앞으로 하루에 딱 한 잔만 술을 마시도록 하시오. 어명이니 반드시 따르도록 하시오.”

 

집으로 돌아간 정철은 솜씨 좋은 하인을 시켜 은 술잔을 망치로 두들겨 최대한 크게 만들라고 지시를 했어.

 

“어명이니 따르긴 해야겠지만, 이거 참 간에 기별도 안 가는 저 잔에는..에잉! 최대한 크게라도 만들어 마셔야겠다.”

 

주변인 인터뷰를 덧붙이면, 오성과 한음으로 유명한 이항복 대감의 코멘트야.

 

“정철? 그 양반 참 재미있는 사람인데 머라고 한마디로 표현하기가 쉽지 않아. 그 양반이 술에 취해 손뼉을 치며 이야기를 할 때면 마치 천상계에서 온 사람 같단 말이야. 달라. 우리랑은 먼가 달라. 껄껄껄”

 

천재 작사가 정철의 뮤즈는 술이 아니었을까? 술 한 잔 걸치고 붓을 들어 숨도 안 쉬고 일필휘지로 시를 쓰면, 관동별곡, 사미인곡, 속미인곡, 성산별곡 같은 작품이 쏟아져 나왔다고 하니 예술인으로서의 정철은 그야말로 우리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고 할 수 있어.  

 

그런데 말이야. 어째서 이런 풍류를 알던 정철이 잔혹한 결과를 낳은 기축옥사의 특검을 맡게 되었을까?

 

앞서 김 기자가 말한 것처럼 이번 사건은 당시 공작정치계의 제갈공명이라 불리던 송익필이 기획하고, 정철이 총대를 메고 나섰다는 이야기가 찌라시로 돌았다고 해. 즉 꼬리는 정철, 몸통은 송익필, 머리는 무려 임금인 선조!

 

아래 송익필과 정철의 대화는 당시 한양에 돌던 찌라시에 기반한 작가의 – 합리적 추론에 의해 충분히 의심 가능한- 추리에 의한 내용이야.

 

“정 대감! 요즘 재야에서 어찌 지내십니까? 대감이 이렇게 지내 실 분이 아니신데 말이에요. 나라를 위해 큰일을 하셔야 할 분인데 쯔쯔쯔…. 그분께서도 참으로 안타깝게 생각하고 계십니다.”

 

“나 같이 무능한 늙은이가 나라를 위해 무슨 달리 할 일이 있겠습니까?”

 

“에이. 왜 이러십니까! 27살에 과거패스 하시고, 누이 두 분은 왕실과 혼례를 올린 대단한 집안의 정철대감 아닙니까! 무능하다니요. 그리고 어린 시절은 명종임금님과 친구 먹던 분이신데요. 대감! 정말로 이렇게 은퇴하실 요량이십니까? 대감만 원하신다면 저희가 준비해 놓은 정여립 프로젝트가 있긴 한데. 숟가락만 얻으시지요? 칼춤 한 번 신나게 추시고 화려하게 중앙정계로 다시 복직 하십시다.”

 

“정말로 사전 준비가 다 되어있는 겁니까?”

 

“당연하지요. 현직에 있는 감각 있는 저희가 이미 세팅 마쳤습니다. 서인도 이제 다시 정권 잡으셔야지요.  이번 일은 VIP의 큰 뜻이 담겨 있다는 것을 유념하세요.”

 

최종적으로 정철은 독이 든 성배를 손아귀에 쥐고 기축옥사의 특검을 진두지휘하게 되었어. 특검이 시작되자 온 나라에 불어 닥친 피 바람은 훗날 정철 그 자신도 감당하기 힘들 정도였어.

 

“참으로 요상시런 일이란 말 이지라. 정여립이란 양반의 역모가 조정에 고해졌을 때 아무도 안 믿었자녀. 심지어 당초 수사 책임자로 임명된 정언신 그 양반도 잘못된 고변이라고 콧방귀만 꼈다는디, 정철 대감은 어찌 귀신같이 알고, 임금님께 독대를 요청 했으까잉? 먼가 짜고 치는 고스톱 냄시가 솔솔 나는 디 형님 생각은 어뗘요?”

 

“봉출이 니 목숨이 몇 개나 되냐? 그 아가리 닥쳐라잉. 시방 나라가 계엄령하의 공안정국 인디 어디 정치적인 발언을 입에 나불거리고 있냐? 니만 디지는 것이 아니라 삼족을 멸한다고 안 하냐.”

 

“알것소 하긴 동인의 영수 이발 대감의 80세 노모랑 10살 난 아들도 고문으로 죽여 버리는 판이니. 나 같은 천한 것은 그저 입 닥치고 사는 것이 상책 이겠구만 이라.”

 

연려실기술에 따르면 선조는 정여립의 난을 보고받고 크게 진노하며 평소에 정여립을 칭찬한 사람들도 발원본색 하여 구속 수사를 지시하였어. 또한 이 난에 직접 연루된 자들은 –북한도 아닌데- 즉결 처분으로 죽여 버렸다고 해. 조선시대에는 사형 집행 시 결안 이라는 문서를 반드시 작성하게 되어 있었는데 이 과정도 당연히(?) 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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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이 지나치게 빨리, 지나치게 가혹하게, 투명성과는 거리가 먼 정치적 색을 띈 채 동인들을 타켓으로 진행이 되었어.

 

정여립의 집안 식구들은 당연히 아무도 살아남을 수 없었고, 가문의 집터를 다 헐어 버린 후 연못으로 만들어 버렸다고 해. 정여립의 시신이 한양으로 운송될 때 거리에 나와 있던 사람 중 하품을 하다 눈물을 흘린 자도 구속 수감되었어. 이 당시 정여립은 조선사회 전체에 걸쳐 금기어가 되었어. 미국 사회가 1950년대  매카시즘이란 광풍에 휩싸였던 것처럼 말이야.

 

혼절관록의 기록에 따르면 너무나 많은 사람이 죽어 나가자 특검 기간 동안 술을 끓었던 정철이 괴로움에 머리를 흔들고 손을 저으며 이렇게 말을 했다고 해.

 

“나로서는 작금의 일을 진정시킬 재간이 없다. 나오는 것은 한숨뿐이구나.”

 

한때는 왕실의 개인 비리를 덮으려는 경종임금에게 끝까지 맞서다 파직까지 당했던 정철이었는데 말이야.

 

독수리와 호랑이의 절개를 가졌다고 정철을 칭찬하던 선조는 모든 일이 마무리된 후, 정철이 지나치게 가혹한 수사로 무고한 사람들이 희생되었다고 하며, 정여립 일가를 제외한 대부분의 희생자들의 신원을 복원해 주었어. 과연 3년 동안 천여 명의 희생자를 낸 특검이 왕의 지시나 묵인 없이 이어질 수 있었을까?

 

세자책봉으로 선조와 정철의 의견 차이가 있었다고 하나 기축옥사가 끝나고 정철은 선조에 의해서 팽을 당하게 되었는데, 꼬리 자르기라는 의혹은 나만 품게 된 건 아닌 거 같아. 

 

현재에도 정여립의 난과 기축옥사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의견이 존재하니 이번 기회에 다른 자료들도 한 번씩 찾아보길 권하는 바야. 

 

요즘 시국이 하 수상해서 그런지 정철이 생각났어. 이 이야기에서 선조의 역할을 지금의 기득권으로 바꾸면, 꼭 누가 정철인 것 같단 말이야. 아무튼, 조옥 같은 역사는 단절되고, 주옥 같은 역사만 반복되길 바랄 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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