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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확산으로 중국의 일거수일투족이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중국 당국의 발표는 믿을 것이 못 되고, SNS에는 확인하기 힘든 소문들이 많다. 우한에 거주하는 주민 중에서도 유튜버가 있어, 좀비 영화에서나 볼 법한 도시의 황폐함을 직접 볼 수가 있다. 하지만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2 10일 경이면 봉쇄가 풀린다는 얘기가 있고, 동시에 1달은 더 걸릴 거라는 말도 있다. 아직까지는 전염병이 꺾일 징조가 보이지 않으니 장기화하지 않을까 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_I6pyMfRssM

1 29일경의 우한 시민 상황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사태에 적절한 대처하지 못한 중국 당국을 보며, 많은 사람이 지난 메르스 사태를 떠올릴 것이다. 정부 기구도 병원도, 인력도 같았는데, 사스 때의 대처와 그토록 다른 결과를 낸 이유가 무엇인가. 컨트롤타워의 부재, 관료의 무능을 그 원인으로 들기도 한다. 중앙당국의 개입 없이는 지방정부에서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시스템에 교차 대입해보면, 중국의 경직된 정치로 인해 화를 키웠다는 분석에 이른다. 맞는 말이다. 우한(武汉)시의 서기 마궈치앙(马国强)은 전염병 보고를 늦춘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며 공개사과하기도 했다.

 

마국강.jpg

 

그러나 이런 방식은 황제는 현명하나 신하들이 음모를 숨기는중국 사극의 전개를 닮았다. Sina닷컴의 뉴스에서는 인민의 힘으로 이 역병을 이겨내자는 공산당 특유의 선언과 결기가 가장 첫머리에 부각된다. 전염병이든 미국의 위협이든, 당 중앙 시진핑 주석의 영도 하에 일사불란하게 단결하여 위기를 헤쳐나간다는 스토리는 바뀌지 않는다.

 

그런데 이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는, 너무나 당연하게 보였던 이 중앙집권제의 시스템에 균열을 내고 있다. 우한의 한 젊은이는 유튜브를 통해 구호의 손길을 청하면서 말하기도 했다. “우리는 바보가 아니다. 다 세뇌된 게 아니다. 이곳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지 모르는 거 아니다.” 이후 많은 사람이 이 젊은이가 체포되지 않을까 걱정해 며칠 후 후속 영상이 나오기도 했다. 이런 개인 차원의 반발은 숱할 것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9ZNfotemZNc

1 26, 우한 젊은이의 호소

 

 

홍십자회의 추태

 

조금 덩어리가 큰 이야기를 해보자중국 홍십자회(紅十字會)는 적십자와 비슷한 단체다. 좀 다른 점이라면, 중국 홍십자회의 명예회장을 국가주석이 맡고 있었다는 것이다. 국가주석이 홍십자회의 명예회장을 맡던 관행은 1994년부터 2015년까지 이어졌으나, 2011년 궈메이메이(郭美美) 사건으로 신뢰가 떨어져 국가주석 대신 국가부주석이 명예회장을 맡게 되었다.

(궈메이메이 사건: 2011년 궈메이메이라는 20세 여성이 자신을 홍십자회 간부라 소개하며 명품과 고급 스포츠카 등을 과시하는 사진을 인터넷에 올린 일. 이후 기금 유용 의혹이 일자 홍십자회는 조사 끝에 해당 여성과 홍십자회는 아무 관계가 없다고 발표했으나, 인터넷에서는 해당 여성이 홍십자회 부회장의 딸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홍십자회.jpg

중국 홍십자회 홈페이지

 

물론 우리도 명예직으로 총리나 장관이 이름 걸고 있는 단체들이 꽤 있고, 그런 단체가 일반 시민단체보다는 형편이 좋으리라는 것은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중국에서 국가주석이 개입하는 단체라면, 정확한 비유인지 모르겠으나 박정희 정권 때의 새마을운동본부 정도의 위상이 될 것이다. 함부로 건드릴 수 있는 곳이 아니란 뜻이다. 시와 성마다 홍십자회 지부가 있으며, 당연히 우한과 후베이(湖北)성에도 각각 지부가 있다.

 

문제는 함부로 건드릴 수 없을 것만 같은 홍십자회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국내외에서 들어오는 기부와 모금을 처리하는 유일한 채널이라는 점이다. 즉, 병원에 직접 기부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최근 우리 기업이 중국에 마스크 등을 기부했다는 뉴스를 접했을 텐데, 이 역시 홍십자회에 기부한 것이다.

 

BBC 차이나에 보도된 사례를 하나 소개해보자. 예안(가명)이라는 영국 유학생은 교내 동문들과 1 24일까지 총 206천여 위안을 모금했고, 일본에서 방호복을 구입해 우한의 병원으로 보내려 했다고 한다. 그러나 며칠 후인 1 27일 병원 측에서 규정 때문에 홍십자회로 보내야 한다고 알려왔다. 홍십자회가 미심쩍어 예안이 세관을 거쳐 병원으로 보내려 했지만, 서류뿐만 아니라 20%의 관세까지 붙는다는 사실에 결국 홍십자회를 선택해야 했다. 

 

홍십자회로 몰려든 물품은 '배달 사고'없이 배송되었을까? 1 29일 후베이 홍십자회가 발표한 물자 사용 내역에 힌트가 있다. 홍십자회는 총 245천 개의 마스크를 배급했는데 그중 시에허(协和) 병원에 개인이 기부한 일반 마스크 3000개를 보냈다. 그리고 런아이(仁爱) 병원에는 기업이 기부한 N95 마스크 15000개를 보냈다. 시에허 병원에는 기부금 12000위안을, 런아이 병원과 티엔여우 병원은 총 기부금 360000위안을 보냈다. 시에허 병원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담당의 최일선 병원이고, 병상 수가 런아이 병원의 10배다. 마스크와 기부금을 더 많이 받은 런아이 병원은 민영병원으로 성형외과, 치과 등의 영리성 의료를 위주로 하는 곳이다.

 

이번 사태와 관련된 뉴스를 쭉 보아온 분들은, 중국 의사들이 SNS를 통해 마스크와 방호복을 기부해달라고 요청했다는 뉴스를 기억할 것이다. 그 의사들이 바로 시에허 병원 사람들이었다. 홍십자회로 몰려든 기부품은 정말 제자리로 배급되는 것일까. 

 

https://www.youtube.com/watch?v=mBs9Uz5Qsu0

1 31, 병원에 가지 못하고 쌓여 있는 기부품들

 

기부금 사용도 오리무중이다. Epoch Times 보도에 따르면, 1 28 24시까지 우한시 홍십자회가 받은 누적 기부금은 398,716,870 위안으로 4억 위안이 조금 못 된다. 그러나 방역 작업으로 쓰인 돈은 5391만 위안이고, 아직도 3억여 위안이 놀고 있다. 상세 사용내역은 공개하고 있지 않다. 보도에서는 우한시 홍십자회의 직원이 총 12인이며, 2018년 고용 비용으로 약 330만 위안이 지출되었다고 한다. 단순 평균으로 연봉이 275,000 위안이다. 같은 해 우한시 관리직(고위직) 평균 연봉이 88,327 위안이었다고 하니 비교가 될 것이다

 

위 수치들은 모두 우한시 홍십자회가 공식 발표한 문건에 근거한 것이다. 그러나 사용내역이나 인건비의 난맥상을 넘어 더 큰 의문이 남는다. 과연 기부금을 4억 위안만 받은 것일까? 중국 가수 한홍(韩红)은 자신이 모은 기금을 매일 투명하게 발표하고 있었는데, 1 31일 하루에만 1억 위안 이상이 모금돼 총 14000만 위안이 되었다. 물론 한홍은 유명 가수니까, 모금이 잘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최전선에 있는 우한에서, 유일한 채널로 국내외로부터 받은 기부금치고는 아쉽다.

 

이처럼 우한과 후베이성 홍십자회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자, 2 1일 베이징의 중국 홍십자회에서 성명을 발표하고 직접 이 두 곳의 홍십자회를 지휘하기로 했다. 상당히 빠른 조치였다. 이날 오후엔 중국 CCTV 기자가 우한 홍십자회 창고를 찾아 물자 출입을 생방송으로 중계했는데, 문제가 없음을 보여주려는 일종의 기획성 보도였을 것이다. 그런데 경비원이 와서 이들을 내쫓는 해프닝이 발생하고 방송은 갑작스럽게 중단되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4zmEjCKonJk

2 1, 쫓겨나는 CCTV 기자

 

 

홍십자회의 추태는 그 자체로 근거인 듯하다. 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사태가 단순하게, 단기적으로 끝나지 않으리라는 근거.

 

 

우한기역(武漢起疫)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 사태는 단순히 위생적이지 않은사람들이 일으킨 문제만은 아니다. 발생은 사람의 문제였지만, 확산은 국가의 시스템이 도왔다. 경직된 정치체제로 인해 우한시는 방역 작업에 늦장을 부렸고, 얼마나 많은 사람이 폐렴으로 죽었는지 조사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중앙의 지시로 도시를 봉쇄했다. 확진 판정은 오로지 베이징에서만 내려지고, 진단 키트의 수까지 제한되어 그만큼 확진자 수가 줄어들게 만든 환경에서 의료가 제대로 행해질 리 없다. 중국은 이를 바꿀 생각이 조금도 없다.

 

그리고 홍십자회의 경우는 이 경직된 정치가 중국인의 관습과 맞물렸을 때 얼마나 이기적이고도 어이없는 결과를 낳는지 보여준다. 개인이 그렇다면 이기적이라고 하겠으나, 집단과 기관이 그런 성향을 보일 때 우리는 부패라고 부른다. 상황이 어떻든 제 이익을 챙기고, 윗선에 댈 뇌물을 먼저 거두며, 도망칠 뒷문을 마련하는 데 온 힘을 다한다. 自己人이라 하여 중국에서 자기편을 중시하는 관습은 의리나 정으로 굳게 결속되는 사람됨에서 비롯됐으나, 윗자리로 가면 갈수록 부패를 정당화하는 기제로도 작용해 왔다.

 

이런 부패상은 중국 사회에서 새삼스럽지 않았다. 다만 우리든 중국이든, 이로 인해 민초들의 생존권까지 위협받았을 땐 얘기가 달라진다. 곳간에 곡식을 쌓아놓고도 굶주림을 핍박하면 예외 없이 난()이 일어났음을 역사에서 배웠다. 지금 중국이 처한 현실이 그 꼴이다. 국민들에게 중국 굴기를 한창 자랑해대던 시국에, 인구 1100만의 대도시에서 마스크와 방호복이 없고 식량이 바닥난다니 납득이 어렵다. 이게 박쥐 때문인가?

 

홍콩 시위를 보며, 그리고 이전부터 신쟝 지역의 반발을 보면서도 중국의 변화는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생각했다. 중국 지도부가 물러설 리 없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는, 이런 정치가 계속되다간 자기 목숨이 위험해질 수 있음을 중국인들에게 각인시켜주었다. 권력의 힘으로 궁핍과 부자유를 버텨내게 할 수는 있어도 목숨을 내놓게 하진 못한다. 청나라를 무너뜨린 혁명을 가리켜 우한기의(武漢起義)라 말한다. 하필 역병의 역() 자가 의()와 중국 발음이 똑같아서, 중국 사람들이 지금 사태를 우한기역(武漢起疫)이라고 비꼰다. 어쩌면 정말로 우한에서 그 시작이 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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