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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 애국가에 저작권을 허하라?
애국가를 공식국가로 지정하라!

2004.2.8.일요일
딴지 편집부


영화를 보기 위해 극장에 들어선 관람객들은 의지와는 무관하게 별로 보고 싶지 않은 몇 편의 광고를 보아야만 한다. 아울러 나중에 상영할 작품의 예고편도 한두 편쯤은 봐 줘야 애초에 자기가 보고 싶었던 영화를 볼 수 있게 되어 있다. 섬진강에 살던 한 시인이 다음 영화의 예고편을 보여주지 않는 극장은 가지 않겠다며 예고편에 대해 강한 집념을 보여주었듯 예고편 보는 재미는 제법 쏠쏠한 데가 있다 하겠으나, 그 밖의 상품 광고들은 관람객들을 짜증나게 하기 일쑤이다.


그러나 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이보다 사람들을 더 짜증나게 하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극장에서의 애국가 감상과 대한뉴스였다. 애국가가 흘러나오면 사람들은 어둠 속에서도 모두 기립해서 숙연한 분위기를 함께 지켜내야만 했다. 양심의 문제를 강제적인 공개 검증의 차원으로 몰고 가려는 독재정권의 일종의 통치수단으로 애국가가 사용되었던 까닭이다. 때문에 사람들의 애국가 듣기는 오히려 불쾌한 것으로 전락해버리곤 했다. 물론 대한뉴스가 주는 불쾌함은 더 말할 필요도 없었고.


어쨌든 사람들은 애국가를 통해 엄숙한 예를 갖추고 나서야 비로소 애마부인이나 뽕을 볼 수 있었던 것이다. 요즘은 애국가를 듣는 일이 예전에 비해 다소 드물어지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애국가에 대한 애정, 혹은 삼천리금수강산에 대한 애정이 줄어들었다고 말하는 건 별로 타당하지 않은 것 같다. 지난 2002년의 월드컵을 통해 사람들은 그러한 사실을 새삼스럽게, 또 아주 요란스럽게 확인할 수 있었다. 헤비메틀, 펑크, 힙합 등의 가면을 쓴 애국가들이 여기저기서 울려퍼지곤 했다.


월드컵에서처럼 비교적 반가운 일로, 또 자발적으로 애국가를 부르는 경험은 애국가를 우리에게 한결 친근한 것으로 만들어준다. 하지만 예전에 극장에서 듣던 애국가나, 아침조회시간 혹은 운동경기 시작하기 전에 강제적으로 울려 퍼지는 애국가는 애국가를 향한 우리의 마음을 그저 멀어지게 할 뿐이다.


그런데 얼마 전에 이러한 애국가를 우리로부터 더욱 멀어지게 만들어버린 사건이 있었으니, 바로 애국가 저작권 사태였다. 관습적으로 공동체의식을 다지기 위해 국가적 차원에서 불리던 애국가에 대해 "우리의 사유 재산을 침해했다"며 이른바 애국가의 저작권자와 그 대리인들이 일부 스포츠 단체를 경찰에 고발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더 웃겼던 건, 이들이 그동안 애국가에 대한 사용료를 실제로 징수해왔다는 사실이다. 이에 대한 수많은 사람들의 반응은 당연히 어이없음 그 자체였다.


돌이켜보면 애국가가 이토록 큰 화제 거리가 된 것이 처음은 아니다. 이미 60년대와 70년대에 애국가 표절을 둘러싼 파동을 거치면서 애국가를 정식으로 제정하자는 움직임이 광범위하게 일어난 적도 있었다. 표절을 둘러싼 파동은 애국가의 선율이 불가리아의 민요인 <오 도브루얀스키 크레이>의 선율과 상당히 유사하다는 점, 그리고 애국가의 선율을 만든 안익태의 독선적이고 거만한 태도에 대한 국내 음악인들의 적대감 등이 어우러져 발생했던 것이었다. 그런데 이것이 국가(國歌)의 재개정 논의로까지 발전한 데에는 또다른 이유가 있었다.


안익태의 애국가는 실제로 대한민국의 국가로 제정된 적이 없는 노래다. 그저 사회적 관습으로 불러오던 것이 별 탈 없이 정착해 버린 경우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비공인 국가인 것이다. 예컨대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통해 우리가 들을 수 있었고 영국 민요 <올드 랭 사인> 선율에 담겨 불리던 지난날의 애국가와 안익태의 애국가는 그 공식성의 차원에서 아무런 차이가 없다. 실제 해방 이후에 남과 북에서는 국가의 공식 행사에서 <올드 랭 사인> 선율에 담긴 애국가를 부르곤 했었다. 아마도 이러한 느슨한 정황과 전체주의적 잔재가 어우러져서 애국가가 지금과 같은 저작권 분쟁에까지 이르게 된 것일 터이다.


어쨌든 안익태의 애국가는 그동안 각종 행사와 국제적인 스포츠대회에서 사용되어 왔고 또 음악 교과서의 첫 페이지와 지루한 아침조회 시간을 통해 우리 일상에 깊이 뿌리내려왔고, 그러면서 국민적 반감도 크지 않은 만큼 이 참에 아예 공식 국가로 지정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본다. 그래서 일반적인 교가나 자치단체들의 노래처럼, 국가적이고 공식적인 의례 및 국제행사 등과 같은 비영리적 차원에 사용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프로스포츠와 같은 상업적이고 민간적인 영역에서는 더 이상 강제적으로 애국가를 사용하지 않게 유도하는 것도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차원에서 도움이 될 것이다.


또한 한국에서 극장의 애국가와 대한뉴스가 폐지될 무렵, 중국에서는 중국의 애국가로 총 55곡이나 되는 애국가를 공식화했던 경우가 있다. 이처럼 안익태의 애국가 뿐만 아니라 상황에 맞게 자발적으로 부를 수 있는 복수의 국가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생각해보면 이승만, 박정희 등의 독재정권에 의해 전체주의가 강요되지 않던 시점에는 한국에도 여러 개의 애국가가 존재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과정을 차분하게 밟아 나간다면 온 나라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던 애국가의 저작권 사태, 애국가를 사유재산이라 우겨대는 짜증나는 일은 다시 반복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애국가는 공공의 자산이어야 한다거나, 사유재산은 애국가가 될 수 없다거나 하는 원칙을 세우고 그 원칙을 실제로 적용할 때가 온 것이다.









안익태


스페인에 살고 있는 안익태 유족들의 옹졸함은 둘째치고, 국내 음악문화의 건전한 발전을 위해 행동함이 마땅한 한국의 저작권협회가 이러한 사태를 주도하고 있다는 것은 실로 아연실색할 일이다. 수수료 몇 푼을 위해 이들이 벌이고 있는 빌어먹을 행동 덕택에 일반인들의 분노가 터지고, 온라인 게시판이 모처럼 활성화되는 모습을 보면 정말 한심하기가 그지없다. 그러나 이런 상황 속에서도 저작권협회가 공식적으로 드러낸 입장을 보면 사실 뭐라고 더 할 말도 없다. 차라리 애국가를 바꿔버리는 게 낫겠다 싶어질 정도다.


"최근 언론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애국가의 저작권은 저작자인 안익태 선생의 유족과 우리 협회와의 신탁 계약에 따라 안익태 선생의 음악저작물을 저희 협회에서 관리하고 있으며, 일반인들이 국가의 위촉 저작물로 생각하고 있는 애국가는 누구든지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공유 저작물이 아닌 개인의 재산권입니다...... 따라서 애국가를 상기 매체에 이용할 경우 일반 가요와 동일한 조건으로 저작권 보호 대상임을 알려드리오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이번 사태는 안익태의 유족과 그들의 대리인, 그리고 스포츠 단체의 타협으로 적절히 마무리 지을 일이 결코 아니란 점을 사태의 당사자들은 알아야 한다.이미 애국가는 이 나라 국민의 재산이지 개인의 소유물일 수 없기 때문이다. 스페인에 살고 있는 안익태의 유족들은 고인에 대한 최소한의 명예와 이 나라 국민들에 대한 최소한의 존경심을 지켜주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숨죽여 있던 공식 애국가 제정운동이 다시 고개를 들어올리지 않겠는가? 결국 돈 몇 푼 때문에 가슴 속에 품고 살아왔던 명예까지 모두 잃어버리게 될 것 같아 하는 이야기이다.



 
음악만담가
김토일(449tong@dreamw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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